초대일시 / 2024_0703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레이블갤러리 LABEL GALLERY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6길 31 (성수동2가 278-40번지) Tel. +82.(0)2.2272.0662 labelgallery.co.kr @label.gallery
지구의 여백을 촘촘히 메워나가는 풀의 자리는 지치지 않는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벽돌과 강철, 매끈하고 견고한 인공의 시설들이 대부분의 대지를 점유하며 땅의 피부막을 완강히 덮고 있어도 그 사이의 바늘끝 같은 여백에도 뿌리내리는 풀은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모든 틈과 틈 사이, 가장자리와 모서리, 균열과 구멍 사이는 풀이 흙으로 파고들어가 자기 뿌리를 내주는 공간이다. 도시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들의 생애는 대지를 막아서고 있는 막을 파고들어가 흙의 속살을 만나는 힘겨운 과정이다. 그것은 도시인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는 풍경이 되는 한편 식물의 고난과 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이를 안겨준다. ● 김신혜, 윤소연, 최은희 이 세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접한 사물이나 도구에서 식물의 이미지를 발견, 채집하고 이를 응용해 작업하는 이들이다. 식물이미지를 콜라주하면서 이를 상당히 공들여 재현한다. 그러나 이 재현주의는 이질적인 것들 간의 결합으로 인해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의 관여로 기존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인 인식 자체를 흔들어놓기도 한다.
김신혜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병에 부착된 상품 라벨에 주목하고 이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라벨에 들어와 있는 자연이미지를 확대해서 그린다. 병에서 풀려난 라벨, 그리고 라벨에 담긴 자연이미지들이 그 틀에서 빠져나와 실제 자연풍경으로 전경에 자리하거나 다양한 꽃들이 부유하는 장면이 환각처럼 펼쳐진다. 섬세하고 매력적인 이 채색화는 소비사회의 기물들 안에 잠식해 들어온 자연이미지를 주목하고 그것들을 채집, 선별해서 아름다운 자연풍경으로 돌변시키는 맥락의 도치를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활용하는 상품의 논리를 역설적으로 펼쳐 보이면서 소소한 기물 안에 들어와 있는 자연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윤소연은 정밀한 재현주의를 활용해 종이박스로 이루어진 풍경을 가설한다. 갖가지 종이박스와 포장지가 사실적으로 그려져있다. 중층적으로 쌓인 종이박스는 닫히고 열린 여러 상황을 연출한다. 그것은 인간의 거주지나 도시의 공간, 밀폐된 폐쇄성 등을 은유한다. 여러 개로 이루어진 종이박스의 어느 한 구석에 녹색의 풀이 수직으로 자라고 단조로운 박스 색감에 신선하고 청량한 녹음을 선사한다. 조감의 시선에 의해 그 박스들은 너무나 익숙한 도시건물의 외형을 지시한다.
최은희는 린넨 천 위에 아크릴물감 튜브를 단독으로 혹은 몇 개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납작한 캔버스 표면에 실제 물감 튜브가 오브제가 되어 부착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눈속임 회화다. 특정 색채의 물감을 내장하고 있는 튜브에서 나온 물감을 통해 화가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나간다. 캔버스, 튜브물감, 붓 등은 그림 그리는 이의 존재론적 조건들이다. 이 작가는 화면 중심부에 튜브물감을 그리고 덧붙여 그 입구에 발아하는 식물이미지를 얹혀놓았다. 마치 튜브에서 싹을 틔워 증식하는 식물의 존재를 응시하게 한다. 물론 그 꽃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고 물감 튜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눈속임 회화를 통해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물감 튜브가 자신에게는 소통의 도구임을 표방하는 한편 그림을 이루는 표면과 일루전, 허구와 상상이 깃든 흥미를 안겨준다. 동시에 자연이 품어내고 상상해내는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동경도 은연중 담겨있다. ■ 박영택
Vol.20240703c | 식물들의 거처 dwelling for Plan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