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

Fiction+Mitochondria+System   김상소_이세준_정성진展   2024_0629 ▶ 2024_07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울특별시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주최,기획 / 윤지희

관람시간 / 12:00pm~07:00pm

홀원 Hall 1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22마길 8 1층

흔히 법의학의 친자 검사 또는 지문 추적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활용한다. 하나의 미토콘드리아에는 수많은 복제 DNA가 존재하고 이는 단일 세포 내에서 동일하게 기능한다. 여러 번의 분열과 융합을 통해 미토콘드리아는 자가포식(autophagy)1) 작용을 하여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든 자가포식이 실패하여 망가진 미토콘드리아가 넘쳐나게 되면 세포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가사멸의 길로 들어선다. ● 윌리엄 깁슨(William Ford Gibson, 1948-)은 공상과학 소설 『제로 히스토리(Zero History)』2)에서 과거와 미래가 혼합되어 공존하는 현실의 모습을 '무시간성'으로 묘사했다. 무시간성에서 시간은 선형적인 흐름이 묵살된, 그저 임시방편의 관념적 공간일 뿐이다. 위 개념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마 우리가 이미 액정 위를 미끄러지듯 스크롤 하며 모든 시대가 동시에 공존하는 무시간성의 이미지 피드 속에 안치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하이테크와 공존하는 빛바랜 빈티지 문화들을 소환하고 시간성을 제거한다. 미디어에서 과거와 미래는 구분되지 않는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는 무감각하게 이미지를 소비하며 서사의 초점을 증발시킨다. 마크 피셔가 이러한 동시대 징후를 유령학(hauntology)에 비유하듯, 세포의 자가사멸은 마치 (신체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각예술 아노미 현상 속 유령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3) 우리가 소비하는 이미지는 과거에 귀환한 것이 아닌, 기원 자체가 이미 유령적이다. 그의 말을 빌려 우리의 과거는 현재이며, 현재는 과거로 포화되어 있다.

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展_홀원_2024 / 촬영: 최철림

《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 전시는 이미지에 수반한 무시간성의 내러티브를 타파할 모듈러의 가능성을 표방하고자 한다. 이는 초점자로써의 관객과 창작자의 생존 메뉴얼이자 자가 복제의 유전적 형질을 담고 있다. 모듈 시스템은 표준화된 파츠(조각)들이 모여 확장된 구조체의 모습을 일컫는다. 파츠들은 조합과 분해를 거쳐 새로운 생명력을 소환하기도 한다. 모듈화 방법론은 생명력을 소환함과 동시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령적인 이미지를 생산한다. 20세기 이후 현대생물학에서 큰 오류를 범한 환원주의적(reductionism) 사고방식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신체를 기관, 조직, 피부, 세포, 분자로 쪼개어 연구하였다. 환원주의적 오류는 최소 단위의 하위 단계들이 합쳐졌을 때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발현된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될 때, 전체는 개별의 부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이처럼 모듈러 시스템의 요지는 환원주의 접근 방법의 맹점을 공유한다. 합쳐진 이미지 구조체는 무한하면서 유한하며, 여러 차원의 시제와 문화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통과한다. 그리고 터널 같은 이미지 레이어를 지나며 결합된 이미지의 유전적 사슬은 미토콘드리아의 복제 DNA처럼 자생적으로 분열되고 복제된다.

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展_홀원_2024 / 촬영: 최철림

전시는 모듈의 형태로 유기체의 시스템을 꾀하는 세 명의 창작자와 각자의 세계관 내에서 소환되고 복제되는 이미지와 서사 그리고 감각하기의 방식을 펼치고 있다. 이 곳에서 모듈러 시스템은 하드웨어 장치로 작동하며 동시에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충돌로 생겨나는 자생적인 유기체의 내부적 특징을 담기도 한다. 전시에서는 관람자가 모듈러 방법론이 취하는 이미지 회귀와 소환의 틈을 지나, 또 다른 장치로써 내부에 이식되길 바란다. 모든 이야기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윤지희

* 각주 1) 그리스어 어원 "auto-"와 "phagein"가 합쳐진 합성어로 "스스로를 먹다" 라는 뜻을 가진다. 자가포식은 세포의 항상성과 생명유지를 위한 재생 작용으로, 생존을 위해 세포의 불필요한 구성 성분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2) Gibson, William. Zero history, (New York: G.P. Putnam's Sons, 2010): pp.1-404. 3) Fisher, Mark; Ambrose, Darren; 박진철; 임경수. 『k-펑크 : 마크 피셔 선집 2004~2016』 (고양: 리시올, 2023), pp.1-390.

김상소_Short Talks_리넨,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스프레이, 레드파인_가변크기_2019~24

김상소는 전통적으로 서사를 활용하는 매체의 문법과 형식을 회화의 재료로 사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Short Talks〉(2024) 시리즈를 통해 우연적인 이미지 병치에서 연상되는 개연성의 감각을 실험하고자 한다. "어느 이른아침, 말들이 사라졌다. 그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들이 있었고, 얼굴들이 있었다" 앤 카슨(Anne Carson, 1950-)의 『Short Talks』의 서문은 위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종의 아포리즘 같은 카슨의 시집은 어떠한 문학적 장르 분류에 속하지 않고 유유히 벗어나 있다. '언어의 그루터기'처럼 카슨의 시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생략됐지만, 오히려 그루터기만 남아 모종의 진실로 다가갈 수 있는 읽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김상소는 어떠한 형식의 문학적 형식으로 감각할 수 없는 오로지 직관과 감각에 의존하여 이미지를 화면에 얹힌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는 시제와 줄거리가 부재하지만, 형식들이 부재한 이미지 몽타주들의 나열에서 무엇이든 읽어내려는 관람자의 역할을 상상한다. 문자, 이미지, 기호, 실물은 감상자로부터 재배열되고 재구성된다. 나아가 작가는 만화의 문법과 읽는 방식을 흥미롭게 사용하고 있다. 만화의 프레임은 글과 그림을 이용하여 공간 속에 대상을 집어넣고 흘러가는 움직임을 동결한다. 그중 여백은 동결된 움직임 속에서 시간을 서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검정 여백은 과거를, 흰 여백은 현재를 약속하듯 기호를 통해 나열된 이미지 속 내러티브와 시간을 읽어낸다. 그러나 전시장 벽면의 검정과 흰색은 일종의 기호로써 작동하기도 하지만, 허상적인 색면 그 자체의 감각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작품은 사건의 다중을 포착하고 이야기가 부재한 그루터기의 이미지가 나열되지만, 숏(shot)과 숏 사이의 관계 속에서 관람자는 내러티브를 생산하고 편집한다.

이세준_가능세계의 그림들_리넨에 아크릴채색_291.3×291.3cm(9pcs)_2024
이세준_써클 1_리넨,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형광안료_지름 304cm(13pcs)_2021~4

이세준은 보고 듣고 경험한, 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모든 세계를 화면에 담고자 욕망한다. 작품 내 이미지들은 작가와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공간의 세계관에서 수집되고 재현되어 왔다. 그간 회화 형식에 대한 여러 실험을 바탕으로 그는 회화 매체의 추상성과 구상성에 대한 탐구를 진행했다. 최근 작가는 과거 작업에서 파생한 새로운 차원의 이미지를 작품에 병치하여 덧붙이는 형식으로 유기적 회화를 실험한다. 이는 다른 시제의 두 구상적 이미지가 뒤섞이며 발현되는 추상성을 실험하기도 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작품 〈써클1〉(2021-2024)과 〈시공간초월의 가능성 연구를 위한 회화〉(2020-2022)는 회화에서 당연시되었던 현재의 시제가 분열하고, 물리적인 캔버스의 이동을 통해 작품의 시제가 미래와 과거로 경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또한 시제는 통시적 방향을 벗어나 그림을 읽는 관람자의 작동 방식에 달라진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또는 작품의 년 도에 따라, 읽어내는 개인의 속도와 방향은 작품의 시제에 영향을 미친다. 〈가능세계의 그림들〉(2024)은 9점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대형 작업으로 캔버스가 상하좌우 이동하며 재조합된 화면의 형태로 읽을 수 있다. 캔버스의 이동에 따른 작품의 변화는 마치 기의가 없이 기표를 그리는 언어적 특징을 떠올리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화면의 경계는 새로운 서사를 여럿 생성하며 동시에 서사 간의 공통된 맥락을 삭제한다. 현대 생물학의 환원주의적 연구 오류와 같이 세계에 존재하는 복잡한 현상의 구성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서사들이 충돌하며 채워지는 화면은 작가의 직관적인 회화적 욕망이자 논리적으로 뭉쳐진 세계의 덩어리다.

정성진_횡단열차 - 세대전쟁_PLA, 에폭시 퍼티, 레진, 철, 자석, 폴리스티렌, 디지털 프린트, 스타코_225×140×340cm_2022~4

정성진은 미디어 환경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조각으로 재구축 될 때 확장될 기능과 형태를 모색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조각은 물질로서 당대의 문화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시대성을 반영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중 작가는 '형상 조각'에 주목하여, 육체를 포함한 추상적 형상을 재현하는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그는 역사의 조각과 현시대의 하위 문화적 이미지를 재료 삼아 빠르게 변화하는 시각 환경에서 구현되는 '형상 조각'의 모습을 면밀히 살핀다. 〈횡단열차 - 세대 전쟁〉(2022-2024)은 조각가 류인의 〈동방의 공기〉(1992)를 참조하여 형상 조각의 계승과 갱신의 태도를 표현한다. 추상 조각이 주를 이뤘던 80년대, 류인은 독자적인 조각언어로 신체상을 통해 세계를 담고자 하였다. 정성진은 류인의 인체 조각을 이식하여 그의 정신적인 예술적 태도를 계승한다. 또한 작품은 과거 자신의 조각 일부를 모듈로써 작동시켜 새로운 역학과 서사들의 연결성을 주목한다. 〈Trans-figure lll〉(2024)은 역소조의 방식으로 모듈 방법론의 해체와 재조립을 실험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파츠로 분해해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형태로 설계해 왔다. 조각들은 잠재태로써 실체 구현 가능성을 갖고, 이에 작가는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조각들을 이식하여 현실태의 모습으로 제작한다. 개별의 파츠들은 제각각의 시간과 시제 속에서 머물지만, 파츠들이 하나의 형태로 조립되었을 때 한시적으로 다른 시제의 이야기를 창조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조각 파츠들은 모체의 자가 복제의 유전자로서 기능하며, 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물리적 공간 속에 위치한다. 마치 리얼리즘의 파편들이 쌓아 올려진 바벨탑처럼, 모듈러 조각 속 이미지들은 현시대의 문화와 과거로부터 기승해온 설화들 마냥 자생적으로 이야기를 생성하고 있다. ■

Vol.20240629d | 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 Fiction+Mitochondria+System展

@ 제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