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파 미니멀리즘 선언

김민호展 / KIMMINHO / painting   2024_0611 ▶ 2024_0626 / 월요일 휴관

김민호_아홉 개의 절대주의 검은 정사각형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72.7cm_2024

초대일시 / 2024_0611_화요일_06: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평문 제목에 쓴 것처럼 아팅의 6월 전시는 충분히 낯익은 도상들이 출현하는 추상화 전시회다. 그렇지만 여태 시도된 바 없는 방법론으로 낯익은 도상이 제작된 경우다. 그 점에서 초유의 실행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기하학 패턴은 유사 이래 익숙하게 반복되어 왔다. 현대 미술사에서 전위의 방편으로 시도된 20세기 초반에 국한하지 않으면, 기하학 패턴은 이슬람 건축의 타일 장식에 두루 관찰될 만큼 내력이 깊다. 기하 패턴은 질서감과 안정감을 주는 구도 탓에 동서양 문화 모두가 선호하는 장식 패턴의 원형 쯤 된다.

김민호_빛의 노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72.7cm_2024

앞서 이번 전시에 대해 '초유의 실행'이란 표현을 썼지만, 초유는 이 전시와 초대 작가를 묘사할 때 연관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외관상 기하 추상으로 분류될 출품작이 어쩌면 미술사에서 수학 원리를 창작의 방법론으로 정확히 실행한 첫 경우라는 게, 작가 김민호의 일관된 입장이다. 작가의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만해도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그게 왜 중요할까'하며 무감동했다. 그러다가 김민호가 작품을 제작하는 수학 공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기하 추상이라는 범주만 공유할 뿐, 선대의 기하 추상이나 후대의 다양한 기하 추상과 김민호의 작업이 다른 출발점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만 전 세계 미술판을 전수 조사할 방도가 없기에 확답하지 못 할 뿐이다. 만에 하나 어디선가 이미 시도되었다손 쳐도, 기하 추상을 작도하는 이 방법론은 평가할 지점이 있다.

김민호_하늘, 구름, 그리고 바람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72.7cm_2024

평론가 경력 22년 동안 미술가를 희망하는 비전공자들과 만나왔지만, 김민호는 그들과도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그는 공대 출신(서울대 산업공학 90학번)이다. 미술 비전공자라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다. 그 안에 각양각색의 창작 스타일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비전공자 출신 작가는 대개 몇 가지 성향을 공유하는 편이다. 먼저 미술사와 미술이론에 대체로 어둡다. 또 주류 미술의 경향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즉 전통 재현회화를 추구하는 아카데미즘 혹은 취미미술의 형태로 나타난다. 끝으로 표현 욕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비전공자 출신 작가가 이 세 경향만으로 설명될 리 없지만 많은 경우가 그렇단 얘기다. 김민호는 이 세 경향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세 경향의 정반대 편에 있었다. 그는 이론전공자와 토론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미술이론에 해박했다. 작업실에서 처음 만난 날 그가 탐독한 교재를 보여줬는데, 미술이론 전공자의 현대미술 교과서로 간주되는 핼 포스터, 로절린드 크라우스, 이브-알랭 부아 등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1900년 이후의 미술사-모더니즘.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90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의 거의 모든 지문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곳곳에 메모가 남아 있었다. ● 아울러 그는 작품을 자신의 창작 욕구를 실현하는 매개로 보지 않았다. 작품은 그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수학적 발견을 투영하는 거울에 가까웠다. 표현 욕구의 흔적으로서의 작품이긴 고사하고, 김민호는 자신의 작업에 최대한 작가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다. 그가 고안한 수학적인 설계라는 추상성만 화면에 남도록 애썼다. 김민호는 실명이 따로 있다. 김민호라는 작가명은 흔히 예술가들이 작가성을 부각하려고 쓰는 예명과는 취지부터 다르다. 대리인을 내세워 작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최대한 지우려는 제스처로 예명을 쓴 경우다.

김민호_두 여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4

외형상 종래의 기하 추상과 대동소이해 보이는 김민호의 작업에서 어떤 점이 다른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모두, 김민호가 고안한 수학 공식에 따른 작도(作圖)로 제작되었다. 거기에는 피타고라스 정리처럼 수학 교재에 출현하는 유서 깊은 수학공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가 본인이 자연수 연구를 통해 발견한 공식을 따른다. 궁극적으로 김민호 작품의 진가는 현실 시공간에선 존재할 수 없는 수학 공식 자체라 할 수 있다. 수학 공식은 순수한 추상의 영역이어서 1세기 전 전위 미술가들이 지향했던 추상성과는 일치한다. 선배 세대와 김민호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점은, 1세기 전 선배의 기하 추상이 어림짐작으로 수학적 질서를 흉내 내어 면 분할과 수직 수평선의 교차를 화면 구성에 도입했다면, 김민호의 기하 추상은 수학 공식으로 정확한 넓이가 배당된 도형들로 화면을 채워지도록 했다.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빛의 노래」(2024, 캔버스에 아크릴, 72.7×72.7cm)는, 정사각형 화면 안에, 다시 3등분된 공간이 있고, 각 공간마다 가느다란 삼각형 6개가 서로 교차하는 기하 추상이다. 이처럼 단순 복잡한 도형의 구성은 수학 공식으로 제작된 거다. 정중앙의 복숭아색 삼각형과 하늘색 삼각형의 각 넓이의 합은 서로 같다. 좌우에 빨간색 삼각형과 파란색 삼각형의 넓이의 합도 서로 같다. 동일한 넓이의 면 분할은 어림짐작으로 그려진 게 아니라, 수학 공식에 따른 것이다.

김민호_흔들리는 계단. 그림자 2024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4

「하늘, 구름, 그리고 바람」(2024, 캔버스에 아크릴, 72.7×72.7cm)은 정사각형 화면 안에, 삼각형과 부메랑을 닮은 각기 다른 모양의 도형 총 18개를 채운 기하 추상이다. 이때 18개의 모양이 다른 도형의 넓이는 모두 같다. 이 작업은 재현회화의 전통에 반해서 추상의 보편성을 지향하려고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중립적인 화면을 구성한 몬드리안의 대안으로 제작된 것이다. 경직된 그리드grid에만 매달린 몬드리안의 미학에 반해, 동일한 넓이의 다양한 대각선을 통해 역동성을 더하려 했다. ● 그가 자신의 미학을 '절대파 미니멀리즘'으로 칭하게 된 시조 쯤 되는 작업 중에, 말레비치의 「검은 정사각형」(1915)을 차용하고 오마주한 「아홉 개의 절대주의 검은 정사각형」(2024, 캔버스에 아크릴, 72.7×72.7cm)이 있다. 이 작품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4번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얼핏 정사각형 캔버스에 말레비치의 정사각형을 크기가 다른 9개로 채워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업은 연역 구조로 작도됐다. 먼저 캔버스의 정사각형이 화면 속 정중앙의 검정 정사각형으로 이어지는 1차 연역이 생긴다. 다시 정중앙의 정사각형이 주변의 총 8개로 확산되는 2차 연역이 생긴다. 이때 정중앙의 정사각형은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주변에 4개의 정사각형 쌍으로 파생된다. 즉 정중앙의 정사각형의 넓이는 주변 정사각형 총 4개의 쌍의 각 넓이의 합과 동일하다. ● 작가의 손을 떠나 수학 공식으로만 작도된 기하 추상미술. 김민호 미학의 핵심이면서 기존의 기하 추상과의 차별되는 점이다. 선배 기하 추상 가운데 1930년대 태동한 구체미술Art Concret처럼 수학 공식을 창작 기법으로 수용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구체미술은 수학적으로 완전하지 못 했다.

김민호_미지의 경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4

김민호 작품의 진가가 현실의 시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수학 공식 자체라는 말을 앞서 했는데,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 공식은 물리적인 연장성이 없다. 쉽게 말해서 현실에서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추상의 영역이다. 그것이 김민호가 지향하는, 그리고 선배 기하 추상미술가들 중 일부가 지향했으되 수학적으론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이는 철학사의 시원에서 흔히 만나는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이데아는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로, 현상 세계(실제 시공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되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존재하는 대표적인 이데아라 하겠다. 완벽한 사각형이나 완벽한 원 같은 개념이, 수학적으로야 존재하지만, 현상 세계에선 거의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을진 몰라도 100% 정확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김민호의 기하 추상 작업은 그가 차용하거나 독자적으로 발견한 수학공식이 낳은 결과물이지만, 미적 핵심은 이데아, 즉 '그림을 제작하는 수학공식'이라는 추상성에 있다. 여기서 작은 딜레마가 생긴다. 완벽한 수학공식에 따라, 작가 자신의 물리적 연장성을 최대한 제약해도 현실 공간에 내놓은 작품은 수학 공식 같은 추상성을 취할 순 없다. 공식을 현실에서 100% 동일하게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상 세계의 사물과 그 원형인 이데아가 외형상 닮았어도 같지 않은 것과 같다.

김민호_빛의 고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72.7cm_2024

따라서 현실(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미술 작품은 결국 현실의 언어를 따를 때 유통되고 소통될 수 있다. 수학 언어(작품을 제작한 공식)와 미술 언어(작품)의 차이에 빗대자. 김민호의 작품이 현실에 나온 이상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수학 언어를 따라 제작된 건 맞다. 그가 제작한 초기작을 본 적이 있다. 초기작이건 최근작이건 현상 세계에서 제작되어 물리적 연장성을 지닌 만큼, 수학적으로 완전할 순 없는 운명이다. 그와는 별개로 초기작에 비해 이번 출품작은 미술 언어 면에서 두드러진 진전이 있었다. 채색 감각과 구성의 조형성에서 그렇다. 그것은 수학 공식이 대체할 수 없는 미술 언어의 영역이다. 진정한 추상성은 현상 세계에선 실현 불가능하다. 그 점을 수용하는 지점에서 미술 언어가 시작되고 발전한다.

그가 선포한 '절대파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세기 전에 출현한 미술사조와, 반세기 전에 출현한 또 다른 미술사조를 결합한 조어여서 철지난 미적 영광을 답습하려는가 싶은 직감을 줄 수 있다. 수학공식이 작업의 주요 키워드여서 김민호의 작업 세계를 들여다보기엔 까다로운 관문마저 앞에 놓였다. 그의 미학을 시간을 들여 따져보니 나름의 진가가 보였다. 외형상 유사한 무수한 기하 추상의 대표 사례들과 출발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세기 전 선배 전위 작가도 미의 본질을 순수 추상으로 이해한 점에선 같았다. 그러나 수학적 모델이 아닌 사변에 따라 작품을 제작했다. 이에 반해 김민호는 지난 1세기 전, 이런저런 미술 사조의 이름을 걸고 선포된 두루뭉술한 형이상학에 안주했던 조형술에 검증 가능한 수학 원리를 장착했다. 그 결과, 작품의 설계도는 진정한 추상성을 성취했다. ■ ​반이정

Vol.20240611e | 김민호展 / KIMMINHO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