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미니멀 시학(詩學)

-이창의 반복과 환영의 변증

이창展 / LEECHANG / painting   2024_0611 ▶ 2024_0616

이창_appearing plan_혼합재료_180×48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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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홈페이지_leeryeoul.com 인스타그램_@lee_ryeoul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대구문화예술회관 DAEGU ARTS CENTER 대구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성당동 187번지) 3전시실 Tel. +82.(0)53.606.6114 daeguartscenter.or.kr @daeguartscenter

이 창(이렬. 본명은 이창렬 b.1964)은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한국미협회원이며, 대구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창은 제7회 개인전(대백프라자 갤러리_2023)을 개최하며 꾸준하게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비구상 작품 연작 이전에 그는 탄탄한 묘사력으로 초상이나 사물을 담아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작가의 시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면서 더 이상 작품을 지속할 수 없었다. 작가는 인물이든 사물이든 자신의 묘사력과 기예를 '평면 자체'에 집중시키면서 비구상으로 나아간다. 어느 때이든 작가는 내심에 흐르는 조형 의욕의 순정(純情)을 잠재운 적이 없다. 세상 흐름과 무관하게 언제나 자기만의 이미지 구현을 위해 간단없는 담금질을 해온 것이다. 장식적인 화면 구성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바가 항상 뚜렷했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택한 그 길이 옳은 길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불안은 모든 작가들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이창이 선택한 여정 전반에는 '제작하는 자로서의 타고난 예술가'가 숨 쉬고 있다. 다듬고 정렬하는 수십, 수백 번의 반복을 이어가며 하나의 형식(the form)으로 다듬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고유성, 문체(文體)를 만든다. 이창의 반복작업은 화판의 높이에서 음각으로 파내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사물의 묘사가 사물의 제작으로 그 양태가 변화된 것이다.

이창_appering plane_혼합재료_162.2×240cm_2023
이창_appering plane(no.1)_혼합재료_227.3×181.8cm_2023
이창_appering plane(no.2)_혼합재료_227.3×181.8cm_2023
이창_appering plane_전시전경_2023

이창은 수직선이 무수히 반복되는 면 분할의 화면을 만든다. 그의 작품 이력을 거꾸로 따라가 보면, 기계적으로 가지런히 정렬된 현재의 작업(「평면인듯(Appearing plane)」, 2024), 모래를 활용해 '촉감의 현재'를 시각을 통해 구현한 작업(「사라지는(disappearing)」 2021), 원에 갇힌 숫자의 흐름이나 숫자의 반복 역시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열되어 있다. 숫자는 의미와 무관할 뿐 아니라 숫자가 보이는 여러 선들의 조형적인 기능만이 이창 작품의 뉘앙스를 만든다.(「숫자(numeral)」, 2019). 짧은 선들을 담은 사각 패널의 조합으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균일하게 긴 선으로 메운 조금 더 큰 사각형의 변주 공간(「몽드리앙(pour mondrian」 연작, 2015-2018) 등등 모두가 단순하되 세심하게 제작된 기하학적인 단위가 작품의 기본을 이룬다. 공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반복이 전개된다. 직선의 반복이나 단위가 맞아 떨어지는 그 아귀가 매우 섬세하다. 그의 창작작업은 제작함(poiesis)의 정수(精髓)로서 이창은 잘 만드는 작가이다.

이창_숫자(numer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434cm_2021
이창_숫자(numer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8×364cm_2021

초창기 이창은 구체적인 오브제를 활용하거나 도자기를 구워 이야기가 있는 조형공간을 구성한다. 마치 자코메티가 인테리어를 위해 만든 작품과 비슷하다. 이야기와 정서를 몰아 낸 최근 작업이 초창기 작업과 정반대의 작품인 듯 보이지만, '제작함(poiesis)의 테크네'와 '물성(物性)과 미술언어'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작품 중심에 놓여 있다. 이런 측면에서 초창기 작업부터 지금까지 창작의 방향은 일관된다. 오브제와 화면 그리고 물질의 언어에 대한 고심이 환영(일루전)의 극대로부터 극소에 이르는 과정 모두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 언어는 '제작함(포에이시스poiesis)'이라는 실천의 시학(詩學)을 관통한다.

이창_숫자(numer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454.6cm_2021
이창_숫자(numer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390cm_2021

전체적으로 보아 이창 작업은 도널드 저드(Donald Judd)가 '사각 틀'을 통해 공간의 설치로까지 나아가는 문제의식과 과정을 공유한다. 이창 작업의 특징은 기하학적인 것, 직선의 열주 등 크고 작은 사각을 반복하면서 '색을 통해' 매체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깊이'는 고전적인 배후의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본질을 지시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작품의 전부이다. 말하자면 단위들의 반복적인 배열로 인해 '표면에 깊이'가 발생되는데 바로 표면의 물질감에서 비롯된 조형의 깊이를 말한다. 수십번의 아크릴 물감을 올려 만든 반짝거리는 표면은 물질적인 감각을 고조시키면서, 단단한 색은 즉물(卽物)의 양감(量感)을 강조한다. 색채가 덩어리감을 조장하고 표면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감각 세계가 바로 이창 작품 특징인 것이다.

이창_사라지는(disappearing)(no.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21
이창_사라지는(disappearing)(no.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21
이창_숫자(numer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90cm_2019

현장에서, 현재의 임시적인 방식으로 표면의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창의 색채 사용은 푸른 천상에 별을 그린 지오토(Giotto di Bondone)의 푸른색과 그 역할이 같다. 사물의 표피에서 깊이를 만들어내는 환영은 에바 헤세(Eva Hesse)의 「반복(Repetition)」에서도 나타난다. 일시적이고 덧없는 산업재료의 반복을 통해 헤세는 표피에 머물게 하면서 '모호하게'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환영이 관객에게 작품의 총체(總體)를 경험하게 한다. 배후가 없는 표면일 뿐이면서도 하나의 총체를 이루는 작품은 '덧없는 순간의 영원'이라는 변증적인 시공간을 구현한다.

이창_몽드리앙(pour mondrian)_혼합재료_162.2×130.3cm_2018
이창_몽드리앙(pour mondrian)_혼합재료_100×300cm_2018

이창의 작업방식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조밀하고, 일정하고, 대규모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마무리에서 곰삭은 기예를 발견한다. 반듯하게 제작된 사물의 선(線), 정확한 사각의 배열 등 균등하고 균일하게 배열함으로써 표면의 존재감, 즉 사물성(object-hood)을 강조한다. 동시에 작품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며 사물의 영혼(일루전)을 일으킨다. 이런 측면에서 이창의 작품은 1960년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근접해 있다. 저드의 '특수한 사물'이나 솔 르윗(Sol Lewitt)의 계열적인 모듈 전개를 환기시키면서도 파내기(carving)를 통해 선을 세우고 환영을 조장한다. 이런 면에서 이창의 작업은 '포스트미니멀(post minimal)'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선과 색, 그리고 형(사각, 원) 만으로 '서술적인 것'의 바깥에서 작품(「평면인듯(Appearing plane)」)은 '서술이 아닌 방식으로' 환영을 드러내며, 고립의 매체순수성에서 탈피하여 관계적 매체의 조건을 작품에 실현한다.

이창은 반복의 '제작함(poiesis)'을 방법으로 '선, 색, 형 그리고 관계'의 총체를 구현하는데, 문제는 남아 있다. 벽에 나열해서 작품을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저드(Judd)식으로 작품에 알맞은 공간조차 창작할 것인지 등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다. ● 미니멀니즘은 산업적이고 표피적이며 일상적인 것을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반영하여 시대정신을 하나의 양식, 스타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매체의 순수성에 저항하면서 개척한 '특수한 물제'나 어윈(Robert Erwin)의 장인적인 제작방식에 환영의 실루엣은 등장한다. 이창의 작품 역시 이들과 같은 계열이다. 반복이라는 방법을 통해 '사물과 환영의 모호한 중첩', 그 문지방을 넘어서 매체의 순수성이 극복되고, 이미지의 숨결이자 사물의 영혼인 환영이 '순수에서 관계'로 매체를 열어 포스트미니멀의 시학을 구성하고 있다. (2024.05.29) ■ 남인숙

Vol.20240611b | 이창展 / LEECHANG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