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言의 위로

박정원展 / PARKJEONGWON / 朴庭圓 / painting   2024_0605 ▶ 2024_0611

박정원_무언1_화선지에 수묵_50×65cm_2024

초대일시 / 2024_06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2층 Tel. +82.(0)2.735.3367 www.galleryh.online blog.naver.com/gallh

無言의 위로-제8회 박정원 개인전에 부쳐 ● 동양 전통미학 가운데 '무언(無言)'은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숭상되었다. '무언'은 침묵의 방식으로 사물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를 버리고 '하늘의 언어'에 도달할 경계이다. '하늘의 언어'는 인간의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즐거움'은 서서히 옅어지면서 '하늘의 마음'과 '하늘의 즐거움' 속으로 녹아드는 것. 이것이 바로 '무언'과 오묘하게 하나가 되는 경계이다.

박정원_무언2_화선지에 수묵_57×68.5cm_2024
박정원_무언3_화선지에 수묵_66×64cm_2024

『장자(莊子)』에는 아름다움을 두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대적 아름다움이다. 다른 하나는 도(道)의 아름다움으로 절대적 아름다움이다. 전자를 『장자』에는 '소미(小美)', 후자를 '대미(大美)', 혹은 '지미(至美)'라고 부르고 있다. '소미'는 인간 이성의 시계(視界)에 속하며, 사람의 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대미'는 인간의 이성이 미칠 수 없으며 인간의 언어로는 분별할 수 없는, 뒤섞여 하나가 된 아름다움으로 '무언'의 아름다움이다. 전자는 임시적이며 파생적이고 국한적이지만, 후자는 영원하고 본원적이며 무한하다. 전자는 인위(人爲)적 아름다움이요. 후자는 무위(無爲)적 아름다움이다.

박정원_무언4_화선지에 수묵_70×68.5cm_2024
박정원_무언5_화선지에 수묵_62.5×68cm_2024

『장자』에 따르면 일반적인 아름다움인 '소미'는 분별지(分別智)의 제어를 받는 지식에 의거한 판단이지만, '대미'는 지식을 초월하는 것으로 일종의 무분별적 아름다움이다. 일반적인 아름다움은 주체가 가진 지식의 한계에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인 아름다움은 모두 표준이 있으나, '무언'의 큰 아름다움은 구체적인 표준이 없다. 표준이 있는 일체의 아름다움은 모두 지식의 아름다움이자 '언어'의 아름다움이다. 근본적으로 말해, 장자는 '무언'의 아름다움을 절대적 아름다움이라 생각해 아름다움의 본체로 삼았다.

박정원_무언6_화선지에 수묵_56×66cm_2024
박정원_무언7_화선지에 수묵_62×62cm_2024

사람에게 언어는 분별지(分別智)의 제어를 받는 지식에 의거한 판단이지만, 개의 '무언'의 행위 즉, 얼굴 표정은 지식을 초월하는 것으로 뒤섞여 하나가 된 일종의 무분별적 아름다움이다. 큰 아름다움은 '무언' 속에만 있다.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들의 얼굴 표정과 눈동자는 '대미'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모든 존재를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의 애정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느끼게 되는 어떤 위로의 감정들을 작품 안에 투영시켜 '유언'의 현대인의 삶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주고 있다. ■ 하영준

Vol.20240605a | 박정원展 / PARKJEONGWON / 朴庭圓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