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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10:00am~09:00pm 일요일_10:00am~06:00pm / 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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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다양한 학문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플라톤이 이 세상을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칭한 이후, 서양에서는 보통 그림자란 '실제가 없는 허상', '인간이 벗어나야 할 것' 같이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흥미롭게도 동양의 철학자 장자 역시 그림자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는데, 장자는 그이의 책 『장자』에서 '그림자'와 '그림자의 그림자'의 대화 이야기를 통하여 어쩌면 세상은 어떤 실체의 그림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철학을 전개한다. 여기까지 보면 플라톤과 장자의 사상이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그림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두 현인의 철학은 다른 길로 간다. 플라톤이 그림자를 벗어나 빛인 '이데아'로 상승하는 길을 택한 것에 비하여, 장자는 그 그림자 속에서 즐기며 노니는 것을 택한다.
사실 여기서 장자의 그림자란 우리가 사는 존재론적 세상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또한 그림자란 그 세상 또는 우리의 삶이라는 '구조'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구조'는 우리의 문화, 언어, 법과 같이 우리 삶을 둘러싼 작은(거대한 구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구조들로 이루어지며, 이를 그림자의 그림자에 비유할 수 있다. 장자는 우리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구조 속에 갇혀서 구조 속 수감자의 삶을 사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구조 속에서 삶을 살아가되, 구조가 '구조'임을 알고, 그 구조의 안과 밖, 구조와 구조들을 뛰어넘어 다니며 즐기며 노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장자가 이야기하는 그림자 속에서의 '소요유逍遙遊'이다.
김용원, 마동원, 지민석 세 작가의 이번 전시 『유영-흐르는 그림자에서 노닐다』는 장자가 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시각적으로 내보이는 전시이다. 전시의 제목 유영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헤엄친다는 뜻의 '유영遊泳(또는 游泳)'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遊'는 노닌다는 뜻으로,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관객들과 함께 우리의 삶 또는 세상을 둘러싼 수많은 구조들 사이를 헤엄치며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유영'의 '영'을 '그림자 영影'으로 읽어 그림자 속에서 노닌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장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은 그림자와 같고, 이 그림자를 '초월 극복'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기보다는, 그 그림자 속에서 '초월 유희'하는 것을 전시를 통해 보이는 것이다. 전시장은 예술을 통하여 하나의 그림자 공간이 되고, 3명의 작가는 관객들을 이 그림자 공간에 초대하여 함께 유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시에서 하나의 그림자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3명의 작가는 각자의 기존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협업에 가까운 창작활동을 통해 하나의 큰 작품이 되는 전시를 만들었다. 물론 각 작가의 기존 작업 스타일과 시각적 특징을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하나'의 그림자 공간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3명의 작가가 긴밀한 소통과 공유를 하였다. 김용원은 그이의 기존 자연물 드로잉 작품과 함께, 솔방울을 모티브로 맵핑작업을 선보인다. 작품을 통해 완성된 시각적 결과물은 숲인 듯, 바다인 듯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 그림자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마동원은 벽에는 집요한 묘사를 통해 완성된 나무 드로잉 작업들을 걸고, 천장에는 먹물을 물든인 천을 넘실거리게 거는 설치 작품을 보인다. 그이의 작품을 통해 전시장은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숲의 모습을 띄운다. 마지막으로 지민석은 전서로 쓴 『장자』 '소요유'의 새가 되는 거대한 물고기 이야기 함께 그가 창조한 동물인 '유족어有足魚' 드로잉을 넣은 드로잉 작업을 전시장 곳곳 허공에 건다. 또한 천장에 '유족어' 입체물을 마동원의 설치 작품 사이에 배치하여 그림자 공간을 '유영'하는 상상의 동물을 관객들에게 내보인다.
세 작가의 작품들은 서로 호흡하며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전시장 곳곳 바닥에 설치된 김용원의 작품은 마치 깊은 숲이나 바닷속의 저 밑바닥을 연상시키고, 천장에 설치된 마동원의 작품은 멀고 어두운 하늘이나 바다의 심연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리고 지민석의 작품은 그 모호한 풍경들 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신비로운 동물과 그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한다. 작가들은 이를 통하여 관객들을 이 공간, 작가들이 명명한 '유영-헤엄치며 노니는 그림자 공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수많은 구조들과 그 구조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 속에서 바쁘게 살며 지친 관객들은 작가들이 만든 그림자 속에서 잠시 마음을 놓고 쉬며, 노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지민석
Vol.20240522g | 유영: 흐르는 그림자에서 헤엄치며 노닐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