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0513_월요일_05:00pm
주최 / 갤러리 호호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호호 Gallery HoHo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72 (연희동 715-1번지) 2층 Tel. +82.(0)2.332.2686 @galleryhoho
"Antropologia para Antropofagia" - 인류학에서 식인주의로—용해숙×지현아 2인전 『교체의 기쁨』에 부쳐 ● '백과사전(encyclopedie)'은 어원상 '안에서(ἐν)-맴도는(κύκλος)-지식체계(παιδεία)'를 뜻한다. 백과사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항목과 항목들이 서로 지시하면서 의미를 확장해 가기 때문에, 한 독자가 어느 항목으로 시작하든지 종국에는 지식의 총체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각자의 앎'을 통해서 지식의 총체에 이르려 하는 계몽(les lumières)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단수의 빛(la lumière)이 아니라 복수의 빛들(les lumières)을 통해 각자 신학-정치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 정신사의 전통에서 볼 때, '하나의 빛'은 인간에게 진리를 계시(啓示)하는 빛, 유일신을 뜻한다. 그러니 '빛들'은 그 말만으로도 유일신 체계에 대한 부정과 전복을 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진짜 타겟은 '하나의 빛'이었을까? 물론 그렇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왕권은 신으로부터 온다고 천명한 절대왕정과 이 왕권신수설을 지식 독점과 검열을 통해서 지탱하는 신학이었다. 「백과사전」은 '하나의 빛'을 '각자의 빛'으로 분할하여 지식과 권력의 독점을 해체하려는 빛들 프로젝트의 유산이다. 이를 간파한 교회와 검찰은 그것이 집필되는 내내 원고를 검열했고 편집자였던 드니 디드로는 수 차례 소환 당하여 심문을 받거나 수감되기도 했다.
20여 년에 걸쳐 7만 개 이상의 항목, 3천개 이상의 삽화를 수록한 「백과사전」(전35권, 1772년 완간). 편집 과정에서 디드로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그의 말마따나 "지식의 연쇄(enchaînement)"였다. 백과사전의 어원상 의미처럼, 항목들의 선정과 순서, 내용상의 분량과 배치 들이 그 자체로 잘 순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공을 들인 부분은 따로 있다. 항목마다 붙어있는 참조사항(renvoi)이었다. "voyez ~ (~를 보시오)" ● 디드로는 '사슴'이나 '독수리' 같이 검열관이 관심을 두지 않는 항목에 기득권에 위협이 될 만한 내용들을 슬쩍 끼워 넣으려 했지만, 검열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참조기호는 사정이 달랐다. '식인자Anthropophages' 항목을 보자. 간단한 어원 설명과 함께 식인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가 달려있다. 그리고 이어진다. "이교도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을 식인 풍습을 이유로 비난했다. 저들이 오이디푸스의 범죄를 허용하고 티에스테스[가 자식들의 살코기를 먹는] 장면을 리뉴얼했다고." 검열관이 보기에 불경했지만, 이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사항이기에, 문제 삼기 어려웠다. 그런데 식인 항목의 끝에는 이런 참조기호가 달려있었다. "성체성사, 영성체, 제단 항목을 보시오." 같은 행에 올려놓기만 해도 불경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었지만, 검열관은 참조사항만으로 그를 처벌할 수 없었다.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독자들은 이렇게 디드로의 안내에 따라 참조사항을 맴돌면서 묘한 쾌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지금도 「백과사전」을 펼치면, 디드로의 낄낄 소리가 들린다. 즐겁디 즐거운 교체의 기쁨. 막상 프랑스 혁명은 디드로의 유머를 잃고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를 남겼을 뿐이지만.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뒷담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땅이 도냐 해가 도냐 따위 문제는 성체성사(성찬식), 부활, 삼위일체 들과 같은 교리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가톨릭 교회가 진짜로 문제 삼았던 것은 그의 지동설이 아니라 원자론이었다. 사실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떠받치는 주요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다. 예컨대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빵과 포도주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성체성사의 기적을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의존해 있었다. 그런데 갈릴레오의 원자론은 이 실체 개념을 흔들었다. "맛, 냄새, 색깔 등은 이 속성을 품고 있다고 여겨지는 물체에 부여한 이름들일 뿐이며 우리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지……. 물질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원래 있던 것은 하나도 남지 않고 전혀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주장, 이른바 실체변화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네"(갈릴레오 갈릴레이,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갈릴레오는 이런 식의 주장을 완강하게 펼쳤고, 이는 성체성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 아니 파괴하는 것이었다. 유력자들에 의해 수많은 고발이 이루어졌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체성사가 원자론과 연관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 자체를 우려했기 때문에 '지동설'을 갈릴레오의 공식 죄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빵과 포도주가 실체변화를 거쳐 진짜 살과 피가 된다면, 성체성사에 참여한 자들은 진짜 식인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훗날 익살꾼 디드로가 나타나 자신의 해체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면, 갈릴레오는 가택연금형으로 여생을 보내면서도 피식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 깨나 했으리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식인 프레임은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로부터 뉴기니 섬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선주민들에게 씌워왔던 것이기도 하다. 식인풍습은 20세기 중반 뉴기니의 중산간 지역에서 크루병과 함께 보고된 것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이 질병은 특정 구역의 주민 3만 5천 명 가운데 100분의 1을 사망하게 했고, 유난히 여성의 발병률이 높은 희귀병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는 고인이 된 친척의 뼈를 갈아 넣고 내장을 조리해 먹는 것을 참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다 인류학자들은 크루병의 원인을 식인 풍습에서 찾기 시작했고, 여성 발병률이 높은 것은 조리를 담당한 여성들이 조리 과정에서 계속 음식 맛을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백인들은 식인 풍습을 금지시켰고, 그러자 크루병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식인과 희귀병 사이에는 엄격한 인과관계가 있는 듯 보였지만, 오늘날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없다. 비 유럽인들에 대한 혐오가 낯선 풍습을 마주하여 그럴싸한-과학적 편견과 자리를 바꾸었을 뿐이다.
식인은 고대에 흔히 있던 풍속이다. 대부분의 문명 발상지에는 사람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희생자를 조리해 먹기도 했다. 예컨대 3500년 전 상나라에서는 특정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치러진 대규모 인신공양제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희생자의 머리를 청동 솥에다 찌기도 했고 복을 나누기 위해 그 일부를 먹기도 했다(飮福). 또, 16세기 브라질의 일부 종족들 사이에서는 전사가 이름을 많이 가져야 용맹하다고 여겼다. 전쟁 중에 적을 죽이고 나면 그 이름을 수령하기 위해 죽임 당한 적의 해골을 부수거나 신체를 먹으면서 더 용감한 인격체를 향한 변성 의례를 치르곤 했다. 그러나 지구촌 어디에도 식욕이나 미식을 위해 사람을 먹었다는 보고는 제출된 바 없다. ● 식인은 과연 야만적일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 집요하게 보여주듯,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선물을 주고받았고 받은 자는 답례를 의무로 알았다. 사람에게든 신에게든 선물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사고자 했던 것이다. "모스가 이 저서에서 성공리에 논증한 것은 영원히 지속 가능한 조건으로서 상호 침투의 가능성이었다… 나는 너의 사고 속에 너와 함께 있다… 또 네가 답례한 선물을 통해 너는 나의 사고 속에 나와 함께 있다."(팀 잉골드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인신공양은 신의 마음을 사기 위한 선물,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끼는 것을 바치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인신음복은 그 복된 순간을 구성원들과 함께 영원히 자신의 몸에, 그래서 마음에 남기는 의례였다.
우리가 서로 스며들고 대를 거듭해 영원히 간직될 수 있기만 하다면, 서구가 최후의 보루로 설정한 개인의 침투불가능성이 허물어질 수만 있다면, 저 침투불가능한 개인들이 맺고 있는 핏기 없는 계약들이 무효화될 수만 있다면, '식인 자본주의'에 멸사봉공하는 민주주의의 게으름을 죄칠 수만 있다면, 서로의 살코기는 물론, 뼈까지 모두 먹히고 만들 무슨 상관인가? ● 이제 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유쾌한 목소리들을 우리의 신성한 민주의회로 불러들여 식인 파티를 벌이자. ● "까띠띠 까띠띠 이마라 노띠아 노띠아 이마라 이뻬주" ■ 양진호
Vol.20240513e | 교체의 기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