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과 빌런의 밤

김재민이_박미라_오제성_이은영_정정호展   2024_0502 ▶ 2024_0629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우민아트센터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ICOM Korea)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우민아트센터 WUMIN ART CENTER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Tel. +82.(0)43.222.0357/223.0357 www.wuminartcenter.org

소문, 괴담, 루머, 이야기들─이러한 것들은 대개 진실과 거짓, 실체와 허구, 앎과 무지 사이에서 시작되어 때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때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믿는 마음과 믿지 않는 마음 사이에서 순식간에 커지다가 작아지고, 누군가의 상상과 해석을 거쳐 그 모양을 달리하며 퍼져 나간다. 때때로 잿빛 불안과 걱정, 핑크빛 기대와 상상을 오가며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소문은 그에 가닿는 사람의 마음이 있기에 존재하고 또 그만한 힘을 가진다. ● 이번 전시는 이러한 소문을 키워드 삼아 도시 '청주'의 이면에 주목한다. 전시는 '- 라더라', 라는 작은 어구에서 시작해서 지역에 대해 새로 말하기를 시도한다. 소문처럼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소문처럼 전해지며, 소문처럼 원형과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과정을 통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모아보고자 한다. ● 『소문과 빌런의 밤』은 지역을 마주한 개인이 진실에 자연스럽게 근접하거나 미끄러지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뜬구름 이야기, 흥미로운 이미지와 서사를 소개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 김재민이, 박미라, 오제성, 이은영, 정정호는 청주라는 도시를 마주하며 현재의 시점에서 잘려나간 시공간을 이어 붙이며 어렴풋이 알려진 것들에 구체적인 형태와 목소리, 이미지, 서사를 발견한다. 과거와 현재, 상실과 지속 그리고 변화, 기억과 망각의 언저리에서 이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희미한 소문으로 남겨진/남겨질 장소와 공간, 사물과 이야기에 주목한다. 전시는 청주라는 지역의 장소와 사물, 시간과 이야기가 기존에 갖던 전형성을 탈피하며 한 개인이 그것을 마주한 방식을 구체화해서 보여준다.

정정호_구름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0×30cm_2024
정정호_기우제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0cm_2024

정정호는 지역의 숨은 설화나 민속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믿음이 현재 사회에 어떻게 드러나고 작동하는지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용바위 전설' 1) 에서 유래한 용암(龍岩)동 주변에 용과 관련된 지명과 장소를 답사했다. 신화와 민속학적 단서를 바탕으로 청주에 있는 용과 관련된 장소 - 작은 용굴과 큰 용굴, 구룡사와 구룡산, 용바위 그리고 동굴 인근에 있는 동물의 뼈와 우물 등 - 들을 다니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신화 속의 존재 용의 흔적을 찾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과정속에서 작가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공간에서 용의 존재를 상상하고 새로운 장면과 이야기를 발견했다. 그의 작업은 전설과 결부된 지명이 현실의 장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현재/현실의 풍경에서 과거/비현실의 존재는 어떻게 발견되며 의미화되고 있는지 드러낸다. 나아가 사실과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인 사진 매체가 과거의 이야기, 비현실의 존재를 현실로 불러들일 때 어떻게 발화할 것인지 탐구한 경과를 보여준다.

오제성_용화사의 추억_세라믹, PLA, 스티로폼, 발포우레탄폼, 방수페인트_가변설치_2024

오제성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설화와 전설을 영상, 설치, 조각으로 만든다. 「용화사의 추억」(2024)은 청주의 무심천 변에 있는 용화사의 석조불상군 2) 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작가는 석조불상의 시대적 미감과 제작방식, 의미를 넘어 시간이 흐르고 일상 경관이 달라져도 오랜 시간 동안 이 불상들이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존재해왔음에 주목한다. 용화사에 있는 옛 흑백사진에서 일곱 점의 석불은 지금과 달리 모두 야외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날의 추억을 간직했다. 작가는 용화사 불상의 3D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상을 다소 추상화된 형태로 재현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듯 모호하지만 명징한 모습이다. 작가는 불상 곁에 모였던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색의 세라믹 오브제로 형상화하고 불상 주변에 구성해서 지난 시간 청주의 사람들과 용화사 석불이 함께한 모습을 나타냈다.

이은영_꺾어진 나뭇가지에서 복사꽃이 피었다_ 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4_부분
이은영_소문의 얼굴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4_부분

이은영은 실재했지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심상을 시적으로 은유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재개발이 예정된 청주 구도심의 사직동에서 진행한 신작을 소개한다. 그는 재개발이 확정되며 사람이 떠나면서 빈집으로 스산해진 사직동 골목을 조용히 거닐며 이곳에 머물다 떠나간 사람들의 시간과 흔적을 살피고 같은 방식으로 사라진 외갓집의 구옥을 추억했다. 「소문의 얼굴」(2024)은 사직동의 공가에서 본 철제 창살을 모티프로 제작된 세라믹 작업이고 「꺾어진 나뭇가지에서 복사꽃이 피었다」(2024)는 오래된 주택가에서 마주한 외부 이미지를 수집한 뒤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사직동 골목에서 공간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 이를테면 빈 집의 녹슬고 손때 묻은 창살, 굳게 닫힌 대문과 담벼락, 그것을 넘어 뻗어 자란 꽃가지 등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희미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의 작업은 동네의 잔상을 바탕으로 사직동에 대한 새로운 소문을 만들어내어 이곳의 이야기가 어딘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박미라_말 없는 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227.3cm_2024
박미라_드로잉 애니메이션_가변설치_2022~3

박미라는 의식과 무의식의 틈에 자라나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주로 검은색의 재료를 사용해 새겨나간다. 절단되고 변형된 신체, 여러 개의 구멍, 장면과 장면을 잇는 밧줄, 차원을 통과하는 문어 다리 등의 요소는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가상, 차원과 차원 사이의 벽을 허물며 관람자가 마주한 화면의 세계를 무한 확장하고 또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을 유도한다. 「말 없는 땅」(2024)은 현재의 시점에 우리가 마주한 풍경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건의 면면이 있을 수 있음을 단면이 잘린 케이크의 구조를 통해 전하는 회화 작업이다. 케이크의 겉면 아래 층층이 서로 다른 이야기의 단서가 존재한다. 이는 화면 내에 시간의 흐름대로 순행하지 않는, 다층적인 서사와 맥락을 생성한다. 박미라는 우연히 상당산성에 관한 영상을 보며 이 작업을 시작했다. 영상은 안온한 자연 풍경이 펼쳐진, 시민들이 애호하는 휴식처 상당산성 언저리에 있는 묘지가 사실 과거에 권세 있는 누군가의 묘지도 아닌 유명한 친일파 후손이 묻힌 묘지이며 상당산성의 상당 부분이 이 일가의 사유지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마주한 평범한 현재의 풍경 이래 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사건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작가는 "과거의 이야기는 긴 끈으로 현재와 이어져 있으나 사실 그 끈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김재민이_만나기만 만날진대 너도성공 나도성공_ 단채널 영상_00:07:00_2024
김재민이_만나기만 만날진대 너도성공 나도성공_ 아카이브 설치물_60×140×80cm_2024

김재민이는 지역 리서치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도시 외곽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수도권 변두리 공장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한때 대도시의 형성을 이끌었던 거대한 방직공장이 21세기 들어 대규모 주택지로 재개발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만나기만 만날진대 너도성공 나도성공」(2024)에서 작가는 청주 복대동의 지웰시티 자리에 있었던 방직공장 대농의 안양 시절을 따라가본다. 안양에는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이 있었다가 대농이 들어섰고,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었다. 대농은 청주로 이전했다가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쇠락했고 지금은 지역의 새로운 부촌으로 변모했다. 작가는 '대농'이란 이름과 공장 굴뚝만이 남은 안양의 댕리단길과 안양천을, 지금은 공장의 흔적조차 사라진 청주의 지웰시티와 석남천을 달린다.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공장의 번영과 쇠락, 도시 개발과 부의 창출 과정을 달리기라는 일상적이고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로 기록하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한다. ● 대농과 지웰시티, 무심천 용화사의 석조불상군, 사직동과 상당산성, 용굴과 용바위 등 용과 관련된 장소들까지, 다섯 작가는 청주의 여러 장소와 사물을 마주하고 사람을 만났다. 전시는 누군가의 기록이나 흔적을 더듬으며 현재의 땅 위에서 끊어진 시간의 틈새를 이으며 청주라는 도시가 간직한 여러 차원의 이야기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여기서 관람객은 소문의 진원지를 상상하고 탐색하는 또 다른 주체가 된다. ● 이번 전시는 문화인류학적으로 진실과 정보를 추적하는 '진실을 향한 여정'이 아닌 하나의 원형에 대한 울퉁불퉁한 오역과 재구성을 시도한다. 너무 익숙하기에 잘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 낯선 눈으로 다시금 조명한다. 나아가 이러한 예술적 접근을 전시의 형태로 공동체 안에서 공유함으로써 지역이 보유한 것들은 지금의 오늘에는 어떤 시선으로 감각하고 인지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 우민아트센터

* 전시명은 안숭범 시인의 동명의 시집 『소문과 빌런의 밤』에 수록된 시 「피 흘리듯 안녕한 이사」의 구절 중 "먼 숲과 먼 이름이 고요하듯이 // 객관을 가지지 못한 우롱차를 차마 // 다 마시지 못했다, 여기서 // 의미 이전의 기억들에게 편지를 써 왔노라고 // 제자리가 궁금한 사연들이 불시에 찾아오던 밤들에 대해 그는 결국 말하거나 말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에 영감을 받아 차용했다.

* 각주 1) 전설에 따르면 한 사나이가 영웅이 되려고 수련하던 중, 꿈속에 도인이 나타나 천하를 제패하려면 청벽수실(靑壁水室)을 찾아 7년을 수행해야 한다고 계시를 내렸다. 그 말을 듣고 사내는 동굴로 들어갔지만 이미 그곳엔 오랫동안 승천을 기회를 기다리던 용이 자리하고 있었다. 용이 동굴에서 나오길 기다린 지 100일째, 돌연 번개와 천둥이 치며 폭우가 쏟아졌고 용은 승천해버렸다. 무사는 동굴에 들어가 바위를 발로 찼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발자국은 장수 발자국이라 하고, 그 용이 승천한 자리는 용바위, 근처 마을은 용바위골이라고 전해진다. 2) 전설에 따르면 1901년, 고종의 후궁인 엄비의 꿈에 일곱 분의 부처가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 했다. 사람을 보내 무심천 변에 석불을 발견하고 절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용화사이다.

Vol.20240502j | 소문과 빌런의 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