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번영-간절함으로 피워낸 꽃밭

김현경展 / KIMHYUNKYOUNG / 金炫京 / drawing   2024_0424 ▶ 2024_0429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68×96cm_202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현경 인스타그램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코사 Gallery KOSA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0(관훈동 37번지) Tel. +82.(0)2.720.9101 www.kosa08.com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피우며 산다. 불도 피우고, 연기도 피우고 고집도 피우고, 바람도 피우고, 냄새도 피우고, 꽃도 피운다. 그리고 꽃과 함께 웃음꽃도 피운다. 그와 중에는 앞만 보고 무엇이든 피우는 사람도 있고 이곳저곳 길을 찾아가며 느지막이 자신이 피워야 할 것을 심사숙고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사람들이 어울려 풍경을 이루며 살 텐데 필자가 만난 작가 김현경은 후자의 사람이다. 작가는 무엇이든 피우기 보단 자신의 삶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이 피워야 할 것을 찾았다. 또한 심연 속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안간힘으로 스스로의 연약함을 붙잡았고 지나간 시간과 삶을 훌훌 털어버리기 보다는 응시하고 곱씹어 또다른 체험으로 삼고자 했다. 나아가 이러한 체험이 자신에게 새로운 '시작'이거나 '전환'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랬던 그가 이번 전시 『부와 번영』으로 선보이는 것은 활짝 피어난 꽃밭이다.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68×96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최근의 김현경은 꽃을 그린다.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주변에 꽃을 두고 살아오며 꽃에게 다양한 의미와 기대를 담아왔다. 꽃마다 꽃말이 있듯 의미도 담았지만 희망 사랑 애도 종결 같은 의미를 넘어선 감정과 마음도 담았다. 작가 역시 그러한 꽃을 그리는데 「만개」 시리즈와 더불어 이번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부와 번영」 시리즈에선 많은 수의 활짝 피어난 생명들과 이들이 무리 지은 잘 가꾸어진 생명의 밭을 볼 수 있다. 꽃을 그리는 최근의 작가는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지금이 가장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잘하고 즐거워 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잘한다는 것에, 더욱이 미술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분분한 파악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의 한 방편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진솔한 즐거움과 다른 것들을 느껴가며 이러한 느낌들을 자신을 이해하는 데 보태어 가는 일이라면, 작가는 최근까지 긍정적인 시간 속에서 그림이 된 꽃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자연스러운 생기도 성취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활짝 혹은 크고 강하게, 작고 여리게, 은은하고 잔잔하게 등등…. 꽃은 가지각색의 양상으로 피어난다. 또 순식간에 피어나고 눈 깜빡할 사이 시들지만 그 안에 온기와 냉기 지난 시간과 수많은 감정도 품고 있다. 이처럼 꽃을 피운다는 일은 종합적인 환경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러한 결과에 인내와 끈기 같은 무형의 것이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꽃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많은 것을 부여한다. 이번 전시 『부와 번영』에서 김현경이 피워낸 작품들은 각양각색의 꽃들로 전형적이지 않은 조화를 선보인다. 종이에 얇은 펜으로 한 잎 한 잎 꽃잎을 그려가며 꽃들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작품의 주된 공정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바탕 위에서 작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기에 꽃들은 불규칙적으로 뒤엉켜 있으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잘 가꿈' 속에서 군락을 이루어 무엇으로도 '시작'되고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 김현경의 꽃밭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써 무언가를 '잘 가꾸어 나가는 일'은 어떻게든 굉장히 생산적이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전시의 관람객 역시 작가에 의해 「만개」한 꽃밭을 바라보며 유무형의 「부와 번영」을 환유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꽃이라는 상징을 소비하는 동시대적이고 예술적인 체험의 일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60×3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60×30cm_2024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60×30cm_2024

김현경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23년의 개인전 「있지만 없는 것과 없지만 있는 것」전에서 였다. 한눈에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이 설치된 공간이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500점에 달하는 「플로레오 flórĕo」 시리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품명인 라틴어 '플로레오 flórĕo'는 '꽃피다', '만발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당시의 전시 공간에서는 어떤 미적특질이나 형상 같은 것 보다는 미술적 체험을 해 나가는 한 개인의 지난한 노력이 먼저 다가왔다. 당시의 「플로레오」 시리즈는 작가가 직접 만든 나무패널에 커피가루를 재료 삼아 칠하고 깎고 다듬어 제작한 500점의 패널 작품이다. 작품은 플로레오의 의미와는 달리 어떤 특징적 형상이랄 것이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기성적이지 않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수천수만의 공정과 그것을 구성하는 소재에 작가의 서사가 녹아 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전시에서 작가는 "'텅 빔'이란 곧 '가득 참'과 다르지 않고 '공허함'은 동시에 '새로움'을 탄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문장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말 보다도 의미에 이르지 못한 수천 번의 덧칠과 공정을 이어가며 막연히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 이후를 바랐을 정성과 정성을 넘어선 간절함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 전시였다.

김현경_만개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30×60cm_2024
김현경_부와 번영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40×50cm_2024
김현경_부와 번영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30×30cm_2024

이같은 관점에서 이번 『부와 번영』展과 함께 지난 시간 작가가 만들어 낸 「플로레오」들을 떠올린다면 먹먹하게 보이던 작품의 면면이 현재의 건강한 꽃을 피우기 위한 황토빛 터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작품의 흔적이 이번 작품의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약한 향과 함께 더욱 큰 양분이 깃드는 밭의 원리를 목격해 왔다. 그렇게 형성된 터전이든 대지이든 하는 것이 있어 그곳에서 뿌리내리거나 자라는 것이 자연 속 생명의 이치이다. 또한 씨앗이 건강하거나 그것의 '모(母)'된 환경이 더욱 큰 건강을 지녔을 때 더욱더 활짝 피어날 수 있는 것도 생명의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의욕(意欲)을 가졌을 때 이때의 '욕(欲)' 중 하나는 다시금 혹은 처음으로 피어나고 싶다는 삶에 대한 의욕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의욕을 꽃피우기 위해 작가는 긴 시간을 가꾸어 건강한 터전을 찾아온 것이다.

김현경_부와 번영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17×30cm_2024
김현경_부와 번영_파브리아노에 잉크펜_17×30cm_2024

김현경이 가꾸어 낸 꽃밭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활짝 피어난 꽃들의 색이다. 만개한 꽃들을 작가의 과거작과 비교한다면 명도·채도·색상 모두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김현경의 화면은 밝고 맑고 다양해졌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은 예술의 어떤 작용일 텐데 작가는 작업과 함께 일구어낸 감각으로 밝고 맑고 다양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곧 작가의 시선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꽃은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피어 나지만 주변에게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김현경의 작업 역시 자신을 위한 필사적인 수행으로 시작됐지만 주변에게 아름다움으로 공유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꽃밭을 가꾸며 삶에 대한 의욕을 더욱 활짝 꽃피움과 동시에 그가 간절함으로 버티던 시간을 떠나 자연스레 시들어 가는 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도 싹틔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두 번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자각처럼 조급함이 사라진 끈기와 인내로써 아름다움에 대한 궁구를 이끌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 이주희

Vol.20240424a | 김현경展 / KIMHYUNKYOUNG / 金炫京 / 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