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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킴스아트필드미술관 제2전시관 KIMS ART FIELD MUSEUM 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암해안길 53 Tel. +82.(0)51.517.6800 blog.naver.com/kafmuseum instagram.com/kaf_museum
김정명- 차이를 만드는 즐거운 놀이 우연과 우발성에 의지한 작업 ● 김정명은 다양한 미술사 서적이나 화집에 실린 원색 혹은 흑백 도판을 참조해서, 여기에 기생해서 작업을 밀고 나간다. 우선적인 일은 다양한 책을 통해 수많은 미술작품/사진을 본다. 보는 행위는 일단 뛰어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인데 이는 그것과 자신의 감각이 공명 되는 어느 순간의 일회적 마주침이라는 우발적 사건이 일어나는 때의 포착이자 그러한 도래를 기다리는 의식적인 절차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는 마치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혹은 줄을 쳐놓고 하염없이 먹잇감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작품에 쓰일 이미지를 찾는다. 선험적으로 무엇을 제작하거나 목적의식적으로 연출하겠다고 주제를 미리 상정하지 않는 대신에 우연성과 우발성에 작업을 맡긴다. 미술책을 살피다가 자기 눈에 걸려든, 사유하도록 강요하며, 사유에 폭력을 강요하고 해석을 기다리는, 자신의 감각에 강한 전율을 안기는 빼어난 조형성을 지닌 작품을 발견하면 순간 이를 날카롭게 절취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품에서 모종의 에너지를 감지할 때인데 이 시간을 그는 "자신과 작품이 서로 무엇인가가 통했을 때"라고 그는 말한다. 작가는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찾아 나선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가시적 존재에서 비가시적 세계로 밀고 나가는 힘을 주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간직한 것들일 것이다. 이렇게 사유에 폭력을 강요하는 이끌린 이미지가 발견되면, 에너지가 교감 되는 작품이 포착되면 작가는 그 도판/작품 사진을 수집하고 관찰한다. 그런 연후에 이 사진이미지, 이른바 레디메이드 이미지에 작가의 개입이 시작된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놀이의 도구가 된다.
이미지의 주름들 ● 도판/사진의 절취는 비교적 두꺼운 책/ 덩어리에서 다시 얇은 피부를 지닌, 표면만을 거느린 존재의 이미지를 빼내는 일이다. 이는 책이라는 두께, 질량, 무게를 지닌 조각적인 존재를 다시 평면적인 회화로 환원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이는 평면이면서도 동시에 입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에 서식한다. 얇은 피부가 공간에 직립하면 조각적인 상태에 진입한다. 종이가 구겨지거나 뭉쳐지면 흥미로운 입체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작가는 오려낸 도판 사진/종이를 액틀 안에 반듯하게 세워두거나 도판의 형태에 의지해서(원본 이미지에 의해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주름, 굴곡을 만들어 나간다) 구기고 접고 부착했다. 그러자 납작한 평면의 종이는 조각/입체가 되었다. 표면 안에서 형성된 환영적인 주름들이 실제로 입체적인 표정, 굴곡을 이루면서 공간으로 밀려 나온 형국이다. 이처럼 김정명은 화집에서 오려낸 무수하게 많은 이미지 파편들을 이용해 그 각각의 이미지의 상황에 맞게, 표면에서 떠오르는 감각과 에너지, 영감에 의지해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위에서 언급한 화집에서 오려낸 작은 사진/종이를 요철효과를 지니게 구긴 이후에 액틀에 밀어 넣는 일련의 작업들이다. 조각가인 김정명의 손맛과 감각이 잘 구현된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미술사 책자 안에 있는 원색의 도판들은 비교적 작은 크기의 사진이미지들이다. 대부분 서구현대미술작품들이지만 더러 팔대산인이나 혜원의 그림도 있다. 사진의 발명과 그로인해 화집이나 미술사책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 '상상의 미술관'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상당히 이른 시간부터 화집을 구입해 미술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던 경험을 내게 들려주었는데 자연스레 그에게 책이란 오브제, 시각정보매체, 물질적인 존재는 미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미술을 참조하고 미술에 대해 개입하는 작업, 그리고 기존의 미술작품, 레디메이드 이미지에 주석을 붙이거나 변형하거나 재구성하는 식의 개입, 이른바 메타미술적인 작업을 원활하게 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현재까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책이란 오브제를 활용한 일관된 그이의 작업은 한국미술계에서 상당히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도판을 이용한 놀이의 반복 ● 작가는 자신의 감각에 의해 선택된 작품, 에너지의 교감에 의한 것들을 절취하고 이를 액자 바닥 면에 일치하게 부착하거나 혹은 주어진 이미지의 형태에 따라 종이를 구겨서 입체를 만든 후에 밀착시킨다. 복제된 이미지, 사진이미지를 차용하는 이 작업은 원작과는 많은 차이를 지닌 것이다. 크기와 재료, 표면 처리가 그렇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한 것처럼 원본 없는 복제가 가능한 사진은 유일무이하다고 통하는 미술작품으로 부터 원본, 기원, 독창성 등의 신화를 제거하는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김정명이 오려낸 작은 이 미술작품 사진 또한 원본인 작품이 아우라를 망실시키긴 하지만 여전히 그 작품이 지닌 매혹적인 조형성과 감동을 전해준다는 점을 폐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작품들의 모든 의미는 현재 시점에서 이해하는 주체(김정명)와의 관련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지 원래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를 재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 미술사의 고전이 된 것들은 이미 소멸해버린 것의 진술을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재형으로 새로운 작품이 되어 있다. 김정명의 명화 도판들을 이용한 놀이, 변화와 반복은 그 미술작품이 과거의 것임에도, 여전히 현재에 귀속될 뿐임을 알려준다.
미술사의 DNA ● 김정명은 작품들을 선별해 액자에 넣은 후 이중의 유리를 설치해 놓고 그 유리 표면에 모종의 장치를 기입 했다. 그림/사진 위에 자리한 유리판에 밀착된 물감의 유동적인 자취는 마치 실이나 미꾸라지처럼 또는 정자처럼 미끄러지면서 응고되었다. 여러 색채가 혼재되어 응고된 이 물감은 미술사의 DNA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무수한 그림의 흔적과 물감과 붓질의 자취가 총체적, 나아가 미술사의 모든 역사가 이 안에 응결되어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게 작가는 여러 색의 물감을 굳혀 만든 얇고 가는 선이 유리판에 밀착되어 안쪽 바닥에 자리한 그림 위를 떠도는 듯한 환영을 연출한다. 작가에 의하면 그 흔적은 모종의 기(氣)의 흐름에 해당하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가 그 그림에서 받은 인상과 감각, 에너지의 교감을 그와 같은 선/물감의 흔적으로 그림 위에 부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흡사 초서체의 자취와도 같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생명체의 운동을 연상시킨다. 이 형상/선은 더러 물감이 노출되어 방사되는 튜브 물감 자체가 부착(튜브 자체를 떠내서 말려낸 것)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유리에 올라와 부착된 물감 자취가 바닥의 그림과 맞물려서 효과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것도 있다. 이 작업은 그림/사진이라는 환영과 물감이라는 구체적인 물질, 물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 둘 사이의 공간의 깊이를 또한 노정한다. 액틀 내부가 마련한 이 깊이는 단지 그림을 간직하고 보여주는 역할만이 아니라 그림 위에 이중의 공간을 조성하면서 회화의 평면성을 순간 망각시키면서 무한한 깊이감, 공간감을 증폭한다. 인물화의 경우 얼굴의 굴곡이나 의복의 주름 등에 종이 자체를 적절하게 구겨서, 우그러뜨려 요철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액틀 안에 자리한 작업의 경우는 평면적인 회화작업을 3차원적인 조각적 작업으로 변형시켜 내는 흥미로운 작업으로 다가온다. 조각가인 작가가 평면 회화를 공간적으로,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구현하고 있는 예다. 결과적으로 이 작업은 평면의 사진을 입체로 만드는 것, 그 위에 얹힌 유리판의 개입으로 깊이를 연출하는 것, 그 유리판에 회화적 붓질을 얹혀서 그림과 유리판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 등 여러 복합적인 층위를 하나로 묶어내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캔버스 뒷면에서 이루어지는 상황극 ● 미술사 도판을 활용한 작업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캔버스 두 개의 앞면을 서로 붙여놓은 것이다. 그것은 정작 그림이 그려지는, 그려진 앞면/정면을 시선에서 박탈시키고 벽면에 의해 가려진 뒷면을 보는 이의 시선에 갖다 놓은 것이다. 캔버스 뒷면 자체를 그림으로 제시한 경우는 안토니 타피에스의 작품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지만 김정명의 경우는 두 개의 그림을 압력에 의해 눌려놓아 캔버스 옆으로 정면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바깥으로 밀려 나온 듯한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그것은 실제로 이미지가 빠져나온 것은 아니고 마치 그와 같은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허구적 장면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두 개의 캔버스가 겹쳐져 있어 관람객이 보는 것은 위쪽의 캔버스 뒷면이다. 그리고 두 캔버스 사이에서 밖으로 밀려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만화 스누피와 심슨네 가족에서 차용한 그림들이다. 이 이미지들 역시 레디메이드 이미지들이다. 사각형의 캔버스 상하좌우에서 부분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관람객은 정면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고 캔버스를 이루는 물리적인 구조, 나무와 천이라는 물질을 보는 동시에 환영적인 이미지 또한 연상하게 된다. 이 작업은 주체로서의 작가의 지위보다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자리를 중요시한다. 정작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작가라기 보다는 캔버스 뒷면을 보면서 앞면의 장면을 자유롭게 상상하는, 주어진 단서를 매개 삼아 각자 보고 싶은 이미지를 연상해내는 관람객이 작업을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주체가 된다. 아울러 이는 그림 자체를 의도적으로 시선에서 배제시켜버리는 풍자적이고 시니컬한 비판적 작업이기도 하다. 시욕이 넘치는 과잉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날 미술 시장의 천박함이나 상품성이 압도되고 수준 낮은 작품들이 횡행하는 미술계에 대한 작가의 자조적인 비판이 개입되어 있는 날카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그림을 돌려놓았고 뒷모습만 보여주었으며 화면을 볼 수 없게 두 개의 화면을 붙여버렸다. 그 사이로, 틈으로 해학적이고 키치적인 만화이미지가 몸을 내민다. 모든 것이 속물적인 삽화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언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인 대중문화에서 작업의 소재를 차용하고 있는 작업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를 다분히 팝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레디메이드이미지를 이용하는 그의 작업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
차이를 만드는 놀이 ● 김정명은 일상의 비근한 재료들, 레디메이드 이미지와 재료들을 통해 메타미술에 대해 지속적인 놀이를 시도하고 있다. 미술사에 대해, 프레임/좌대에 대해, 레디메이드와 작품에 대해, 작가란 존재에 대해 지속적인 물음을 놀이하고 있다. 예술은 목적 없는 활동, 놀이이다. 놀이는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매번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미술사를 이루는 무수한 작품들은 생명체처럼 그 존재는 멈추어있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움직임이다. 존재는 흘러가면서 늘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어 내는 데 그것을 들뢰즈는 '사건'이라고 부른다. 존재는 생성 변화하는 움직임 그 자체다. 미술이 그렇고 작가가 또한 그렇다. 이 요동치는 존재, 존재하는 것들은 다만 차이 속에서 출현한다. 차이의 반복 속에서 차이의 계속됨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김정명은 반복되는 놀이 속에서 차이를 만들면서 나아간다. ■ 박영택
Vol.20240419f | 김정명展 / KIMJUNGMYUNG / 金正明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