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잠 Dream a little dream

유광식展 / YOOGWANGSIG / 兪光植 / photography   2024_0409 ▶ 2024_0414

유광식_깜빡잠#28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40×12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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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부평구문화재단 주최,기획 / 유광식

관람시간 / 10:00am~06:00pm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BUPYEONG ARTS CENTER_Gallery Kotnuri 인천 부평구 아트센터로 166(십정동 166-411번지) Tel. +82.(0)32.500.2057 www.bpcf.or.kr

북서풍이 지나는 직선의 바깥에서 ● 어떤 장소를 조심스레 구부려 본다. 당분간은 난제일 듯한 이 고민의 그물을 언제 번쩍 당겨 올려야 할는지. 잠시 잠든 세계에서 대규모의 장면이 내 앞으로 쏟아졌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놀라 번쩍 눈을 뜬다. 어디였지! 누구였을까! 전화는 받지 않고 지나간 장면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연탄은 타버렸고 까만 에너지는 하얀 재의 얼굴을 덮어 두고 도망을 갔다. 간혹 낮잠 중에 꾸었던 형상에 빗금을 치기도 지워보기도 한다. 우리 앞에 널린 장소는 과연 장소인가? 혹은 꿈같은 사고인가? 지금도 인천에 유효하게 작용하는 사실들을 바라보며 잊힌 시간을 건져 올릴 수 있다면 인천이라는 까마득한 방바다에서 헤매지 않을 텐데. 그저 발아할 무언가로 기대가 찰 텐데. 오늘도 깜빡 잠이 들자마자 감나무에 올라 지나가는 구름으로 다이빙해 숨겨둔 톱을 찾는다. 눈앞의 세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렁거려 애써 스템플러로 이어 붙여 보지만 심들이 삐쳐 박힐 뿐이다.

유광식_깜빡잠#65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38.8×58.2cm_2018
유광식_깜빡잠#22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38.8×58.2cm_2017
유광식_깜빡잠#27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26.8×40.3cm_2017

야트막한 언덕 너머 두드러진 것 없이 딱 봐도 가난이라 써진 동네를 보았을 적에 가난의 슬픔에 앞서 소외 섞인 반가움이 짙었다. 성냥갑만 한 집들이 빗물받이 넓이만큼 벌린 채 다투는 모습에서 한여름엔 덥겠단 생각이 들었고, 겨울엔 따듯한지 걱정되던 곳이었다. 비록 도시가스가 외면한 지형일지언정 까만 연탄에 둘러싸인 삶의 궤도는 은근히 아름다웠다. 사회적 위태로움이 큰 구역이었으나 숨겨둔 지도를 발견한 모양으로 한 예술가에게 북두칠성 못지않은 인천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보이지 않는 전파 레이저로 좌표를 연산하는 시대이건만 영문도 모르게 떠밀리기도, 마지못해 선택된 곳에서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실험과 모험은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한때 사라졌다. 점점 서로가 교차하고 얽혀 몰아넣어진 거주의 의미를 어떻게 풀어낼지는 정말 큰 관건이었다. ● 험난한 현실 속에서 한 장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안전으로 다가온다. 어두운 밤에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처럼. 딛고 서 있는 장소에 대한 덧없는 시선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봄을 밀어 올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 함수에 따라 장소는 존재를 한껏 드러내고 소유를 넘어 사랑으로 공유된다. ​언급되는 장소는 인천이 고향으로 형상화되는 기다란 아리랑 격으로, 많은 이에게 적잖은 안전을 제공한 곳이다. 이전 전시에서 이야기와 풍경이 직접 제시되었다면 이번에는 앞선 작업을 기초로 두고 거주와 이주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임차된 전시방에서 노래하고자 한다. 지금은 새로운 곳이 된 그곳을 매개로 어느 예술가가 집을 짓는 과정을 조금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광식_깜빡잠#15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9×28.5cm_2017
유광식_깜빡잠#74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26.8×40.2cm_2018
유광식_깜빡잠#18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26.8×40.2cm_2017

​마치 한 번도 삐걱대지 않던 사물과 사건들, 사고를 널어 두며 인천의 중력선인 듯 차디찬 기억을 싣고 나아가는 부재의 유람선을 얻어 탄 기분이다. 이미 사라져 안기는 장면은 예술가에게 어쩌면 집 장만이나 마찬가지다. 나름의 멋이자 한껏 휘날리는 맛이 아닐까. 한편 맨손으로 달려와 벽을 세우고 물건을 들이고 세상을 그리고 인천을 살아내었을 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공간의 표정이 따듯한 기억 투쟁으로 상기된다면 좋겠다. ● 인천을 나선형으로 돌며 거주가 이동한다. 거센 이주 소용돌이에 갇혀 돌다가 수렴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애당초 수렴은 이동의 상태로 도달 자체가 꿈일지 모른다. 이름 없는 산기슭에서 미끄러진, 꿈같았던 한 시대 연못에 파동이 일더니 밤톨 같은 한 장소가 떨어지고 떨어진다. 다시 집에 돌아온 것이다. ■ 유광식

유광식_깜빡잠#47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9×28.5cm_2017
유광식_깜빡잠#68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9×28.5cm_2018
유광식_깜빡잠#45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9×28.5cm_2017

모두를 위한 위로의 시간 ● 2017년, 그와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십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의 다소 기계적이고 행정적인 용어가 부평 열우물 마을 달동네를 송두리째 삼킬 준비 태세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곳이 사라지기 전에 박물관에서 기록화 작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곳은 피난민들의 안식처이자, 철거민의 마지막 보루였고, 노동자들의 배후지였다.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포용하여 그들이 힘을 합쳐 꿈을 키워나가던 곳이다. 하지만 재개발을 앞둔 시점 때문이었을까. '명동'이라고 불리던 시끌벅적했던 길조차 여느 재개발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을씨년스러웠다. 멈춰선 계랑기들은 더 이상 집에 활기와 온기를 공급하지 않았고, 밤이 되면 고양이들이 집주인인양 눈에 레이저를 켜고 담을 넘어 다녔다.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열우물 마을의 궤적을 훑어나가고 있을 때 그를 만났다. ● 그가 슬며시 내민 기록에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총천연색의 생동감 있는 마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마치 신문물을 처음 접한 듯 누가 봐도 들떠있는 나에게 "내가 이만큼 기록해 놓았다."고 으스댈 만도 한데,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찍어 놓았을 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 그는 외부 기록자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삶을 공유한다. 그가 엮어낸 장소와 시간들은 단순히 작품의 도구가 아니다. 몸소 겪어낸 이야기들이다. 열우물 마을에 살지 않았지만 열우물 마을 사람이다. 그의 기록이 사람들 마음속에 파동과 여운을 주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을 사람으로서 마을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축적해온 그의 기록을 마주하면, 어느샌가 그의 기억집 속 열우물 마을로 이끌린다.

유광식_꿈쟁이 모모가 찾아가는 섬_켄트지_가변설치_2024

이번 전시에서 꺼내어 놓은 이야기는 이미 지도 상에서 사라져버린 열우물 마을의 마지막 걸음이다. 정든 마을과 이별을 준비하던 그가 묵묵히 담아낸 열우물 마을의 터와 켜는 먹먹함 그 자체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본 적 있는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마치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골목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아이의 심정이랄까. 언제든 돌아와 다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사라져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린 느낌이랄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공간과 예정된 이별을 준비하는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낮은 담벼락에 매달려 있는 멈춰버린 계량기처럼... ● 열우물 마을 달동네라는 정겨운 이름이 사라진 지 몇 년이 흘렀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계단도,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개성을 뽐내던 집들도, 골목마다 나와서 뛰놀던 아이들도, 동네를 수놓은 그 많던 벽화도 이제 추억이 되었다. 구불구불한 선을 가진 마을은 네모로 반듯한 5,678세대 매머드급 아파트가 되었고, 어둠을 밝히던 필라멘트 백열 전구는 눈이 부시게 선명한 LED 전등으로 바뀌었으며, 동네 사랑방은 커뮤니티 센터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탈을 바꾸어 썼다.

유광식_깜빡잠#81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40×120cm_2012

열우물 마을 사람인 그 역시 이삿짐을 꾸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했기에 누구보다 짐이 많았다. 유년 시절부터 몇 번이고 이사를 다닌 경험이 있고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기억마저 철거될까 걱정이 앞선 그다. ●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매개가 하나씩은 있다. 그는 열우물 마을에서의 생활이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는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동여매었던 선물 같은 이삿짐 일부를 여기에 가지런히 풀어 놓고, 은은한 온도로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을 선물한다. ■ 손민환

Vol.20240409d | 유광식展 / YOOGWANGSIG / 兪光植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