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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용 블로그_blog.naver.com/sooyong_sculpt 인스타그램_@sy_sculp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십의엔승 기획 / 안소연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10의n승(텐투더엔) ten to the 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2 102호 Tel. +82.(0)2.6160.8445 www.tentothen.com @tentothen
일이삼사 ● 다시 4월이다. 조각가 친구의 작업실은 여전히 겨울 같다. 수년 전의 겨울, 몇 달 전의 겨울, 그렇게 여러 번의 겨울이 지나면서 차갑고 건조한 공기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쌓여있다. 속사정을 알 수 없게 단단히 묶어 놓은 몰드는, 선반 위에서 회색 먼지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양수에 젖은 갓난아이의 얼굴처럼 물기를 잔뜩 머금었던 어떤 얼굴도, 주검처럼 이미 사라진 한 시간 속에 멈춰있다. 바닥에 벗어놓은 두꺼운 겨울 옷 같이 수수께끼 같은 원형의 흔적을 간직한 주물은, 혼자만 알고 있는 형태의 내막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조각가인 친구는, 조각이 가져다 주는 상실을 겨울의 흔적처럼 기억한다. 사라진 원형, 소멸해가는 윤곽, 지워지지 않는 자국, 조각은 이와 같은 상실의 내막을 자기 자신의 기원 속에 자리잡은 과거의 사건처럼 묻어둔다.
오래 전 어느 겨울, 차곡차곡 흙을 붙여가던 실물 크기의 「일상의 남자」는 완성을 앞두고 영영 사라졌다. 작업실 캐비닛에는 밀랍으로 주물 뜬 20cm 정도 길이의 모형 세 개가 남아 있다. 수용은 「일상의 남자」를 구상하면서, 지점토를 사용해 묘사가 거의 없는 단순한 형태로 긴 의자에 기대어 누운 남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는 유토로 만든 「일상의 남자 마케트」(2002)에서 이루어졌으며, 결정적인 상실을 겪은 후 작은 유토 마케트를 꼭 감싼 몰드에서 세 개의 밀랍 주물을 떠냈다. 한겨울의 추위가 완성 직전의 그 남자를 얼어붙게 해, 끝내 그 윤곽을 천천히 소멸시켰다. 수용은, 손쓸 수 없이 녹아 내리는 「일상의 남자」를 뭉개 다시 흙덩어리로 되돌려 놓았다. 그는 가끔, 내가 허공에 무언가를 떠올리며 내뱉은 조각의 "원형"이라는 말 대신 "모체"라는 단어를 꺼낸다. 우리 둘 사이에서, 원형과 모체가 꼭 같은 것을 가리키며 같은 것을 지탱하고 있는 말은 아닐 테다. 가만히 짐작해 볼 때, 수용이 말하는 "모체"의 의미는 몰드와 연관되어 보인다. 하나의 원형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몰드를 만들어서 원형과 "닮은" 이미지를 다시 현존하게 하는 것이, 원형에 대한 주형[mold]과 주물[casting]의 관계다. 수용은 이 중간적 상태에 불과한 몰드를 원형에 대한 (상실을 간직한) 기원으로서 모체라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 중간적인 것이 무언가의 기원, 상실을 지닌 모체가 될 수 있을까? 허공의 한 점으로부터 어떤 형상의 윤곽을 향해 덩어리를 붙여 나가는 소조의 행위는, 이미 그것의 주물을 탄생시킬 텅 빈 모체에 대하여 인식한다. 흙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 탄생과 소멸의 이중적인 시간 속에서 물질과 형상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모순, 그 한계와 모순을 감싼 실체가 모체로서 몰드에 함의된 수수께끼의 시공간과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평적인 받침대 위에 흩어놓은 작은 조각들은, 「떼어진 가슴 발굴」(2022)만큼이나 제각각 말못할 속사정을 간직한 개별 형상들로, 수용과 내가 함께 상상해 온 4월의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는 상태다. 어떤 것은 모델링 과정에서 멈춰 있고, 어떤 것은 몰드 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비약적인 크기와 무게로 자라나기 위해 마술적인 시간을 헤아리며 제 윤곽을 기억 속에 고정시키는 중이다. 삶의 순환처럼, 결코 멈출 수 없는 조각의 시간은 치열하면서도 애틋하다. 한계와 모순에 맞서 제 원형을 기억하려 자기 소멸을 스스로 감수한다. 조각가인 친구가 중간중간 끊기는 말들로 조각의 모체에 관해 말할 때마다, 그것은 내가 내 몸에 각인된 4월을 기억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 해 4월에 아이의 탄생을 경험했고, 또 다른 4월에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봤다. 4월에 먼 타인과 평온한 삶을 꿈꿨고, 4월마다 나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떠올렸다. 수용은, 작업실에서 상자를 열어 "9월의 조각 드로잉"이라며 사과 만한 석고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책상에 올렸다. 그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날 본 것, 그날 생각한 것, 그날 했던 것들 중에서 하나를 흙으로 만들어 석고 주물을 떴다. 이 작은 조각의 표면에는, 원형과 몰드의 한시적 접촉에 의해 만들어진 얼룩과 자국들이 형상과 뒤엉켜 있다. 닮음과 다름의 유전을 가진 채로 잠시 머물러 있는 상태다. ■ 안소연
Vol.20240404c | 정수용展 / JUNGSOOYONG / 鄭琇溶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