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얽힌 사물의 질서

유리성展 / YULISUNG / 成柳里 / installation   2024_0402 ▶ 2024_0502 / 월요일 휴관

유리성_뒤얽힌 사물의 질서展고양아람누리 고양시립 아람미술관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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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성 인스타그램_@yulisungyuli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4 고양우수작가 공모전 청년작가전1 고양 아티스트 365

주최 / 고양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고양아람누리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Goyang Aramnuri, Aram art Museum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마두동 816번지) 상설전시장 2 Tel. +82.(0)31.960.0180 / 1577.7766 www.artgy.or.kr

사물 전치를 실험하는 진지한 유희와 전유의 미학 ● 인공의 사물은 인간의 도구적 목적을 위해 저마다의 기능과 형태를 갖추고 태어났다. 인류가 사냥을 위해 만들었던 창이나 동물의 피륙을 벗겨내기 위한 돌칼 그리고 나무를 베기 위한 돌도끼와 같은 원시 도구뿐 아니라 오늘날의 컴퓨터, 자동차, 스마트폰과 같은 최첨단 기계는 매클루언(M. Mcluhan)의 언술처럼 모두 '인간의 확장'이었던 셈이다. 손, 머리, 다리와 같은 몸의 확장뿐 아니라 인간의 오감을 확장해 온 이러한 인공 사물은 저마다의 질서의 체계 속에서 분류되고 인식됨으로써 '인간을 위한 사물 존재론'을 공고히 해왔다. 작가 유리성은 이러한 기능적 사물의 존재론을 탈주하고 전복하는 유희적 전략으로서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과 사물 전치를 자신의 예술 작업 안에서 감행한다. ●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7개의 땅」은 아이들의 지능 개발과 유희를 위해 만들어진 퍼즐 놀이판이 출발점이다. 작가는 이 퍼즐 판을 발견된 오브제로 삼아 자신의 작업 안으로 가져오되, 이 퍼즐 판 표면을 흙으로 뒤덮어 어린 시절 경험한 바 있는 '땅따먹기' 놀이판처럼 구성한다. 1번부터 7번까지 순차적으로 매겨진 퍼즐 판의 숫자는 땅따먹기 놀이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도록 만들기에 족하다. 서구의 놀이와 한국의 놀이가 중첩된 셈이다. 그런데 이 모양은 마치 십자가 도상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십자가 즉 횡목(橫木)이 짧고 종목(縱木)의 하단부가 기다란 '라틴식 십자가'의 형상이다. 우리는 안다. 십자가라는 것이 고대 페니키아 시대 이래, 고대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죄인에 대한 책형(磔刑)의 도구였다가 예수의 십자가 책형 사건을 계기로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전파된 이후부터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승리와 인류 구원의 상징으로 숭배받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유리성은 서구의 퍼즐 판과 한국의 땅따먹기 놀이판 그리고 형벌이 도구이자 동시에 인류 대속(代贖)의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 전통 도상으로 자리 잡은 십자가를 혼성함으로써 서양과 동양, 속(俗)과 성(聖)의 양자 사이에서 최소의 공유 지대를 구축하고 재구성한다.

유리성_뒤얽힌 사물의 질서展고양아람누리 고양시립 아람미술관_2024

또 다른 출품작 「13개의 하늘」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우리가 학교 체육 시간에 경험했던 '뜀틀'이 그 출발점이다. 작가는 12개의 단으로 구성된 실제의 뜀틀을 계단처럼 어긋나게 쌓아 올리고 그 반대편에 또 다른 계단 구조물을 만들어 마주 보게 함으로써 마치 시옷(ㅅ) 또는 인(人)의 형상처럼 쌍을 이룬 고대 제단의 형상을 구축했다. 관객은 이 계단 위에 작은 돌기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은 작가가 실제의 엄나무 가시를 하나씩 올려놓은 것이다. 오르내리는 계단의 형상과 그 행위를 심리적으로 막는 듯한 가시 오브제, 그리고 가시가 상기하게 만드는 기독교 전승의 가시 면류관과 구원의 메시지 등 작가는 사물이 지닌 여러 메시지를 작품 안에서 무수히 중첩하게 만든다. 오브제 재배치와 사물의 전치 행위를 통해 원래 사물이 지닌 의미를 탈주하고 그 위에 새로운 여러 의미를 겹쳐 올리거나 교차하게 만든 셈이다. ● 한편, 이 작품은,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계단 구조의 상층부에 또 하나의 단을 쌓아 올려 숫자 13의 의미를 강화한다. 고대 아스테카 문명에서는 '13번째 하늘'을 '창조신이 머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던 만큼, 13은 긍정의 숫자였지만, 기독교 문명권에서 그것은 불길한 징조로 터부시해 온 부정의 숫자였다. 이처럼, 놀이도구로서의 뜀틀과 고대 제단처럼 인식되는 오르내리는 계단의 결합, 엄나무 가시가 함유하는 다양한 중복의 메시지, 12개의 뜀틀과 13개의 계단 등 놀이와 종교, 서양과 동양, 속됨과 성스러움이 맞물려 있는 '사물 전치의 의미'를 되묻는다. ● 여기서 이질적인 사물의 전치와 겹침의 결과는 낯설고도 생경한 이미지를 낳는다: "우연히 마주하는 놀이와 스포츠와 관련된 사물들을 재구성하는데, 이들은 우리를 때로는 가로막거나, 도전하게 하거나, 수행하게 하였던 사물들이다. 이 사물들에 상징적인 이미지와 의미들을 의도적으로 중첩하여, 익숙하지만, 낯선 긴장감을 제시한다." ● 유쾌한 흥미를 유발하게 하거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기도 하던 놀이, 게임, 스포츠는 유리성의 작업에서 도구의 사물 형태로 들어와서 기존의 사물 개념을 전치하고 속과 성을 뒤섞는다. "과거 믿음을 기반으로 행해졌던 의례나, 신성하게 여겨지는 성물들이 지녔던 상징성을 '일상성'에서 마주한" 까닭이다. 그렇다. 성스러움이 일상의 삶을 지배하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오늘날 성스러움은 이미 퇴락한 지위 속에 있거나,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성스럽다는 숭고의 가치는 오늘날 일상을 기이한 양상으로 이끌면서 기꺼이 손을 내민다.

설치와 영상이 혼용된 작품 「Rigging」에서는 숭고의 가치와 놀이의 일상이 기이한 양태로 뒤섞인다. 이 작품에서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은 체인과 로프가 공유하는 '당김, 들어 올림, 결박함'과 같은 내러티브와 더불어 동시에 그것을 탈주하는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풀이한다. 영상 속에서 꿈틀대는 체인과 로프의 형상이 마치 DNA 구조와 같은 생명체의 미시 세계를 연상하게 만들거나, 우주의 별자리를 한데 모은 상상의 천체도(天體圖)와 같은 거시 세계를 겹쳐 놓기도 하는 차원이 그것이다. 마치 체인과 로프가 자신의 결박을 풀고 미시와 거시 세계를 횡단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처럼 말이다. 영상이 투사되는 벽면 아래 바닥에는 표면이 하얗게 칠해진 여러 사물이 하나의 마을 풍경을 구성하듯이 배치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촛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신전처럼, 또는 마을의 건물들처럼 보이는 사물들의 본연의 정체는 자동차 장난감이나 레고블록과 같은 아이들의 놀이도구이다. 사물 고유의 기능을 전복하는 사물 전치와 전유를 전략적으로 실험함으로써 놀이의 일상에 숭고의 가치와 미학을 성공적으로 담아내었다고 평할 만하다. 풍경을 '뒤얽힌 사물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낸 셈이다. ● 마지막으로 작품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보자. 할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구성진 목소리로 청해 듣거나 방바닥에 엎드려 빈둥거리면서 읽어가던 동화책 속에서 발견된 동아줄 이야기는 유리성의 작업에 들어와서 전치와 변주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들로 되살아난다. 장식용 체인을 이어 U자 모양으로 천장의 두 군데 장소로 이어지도록 만든 '사다리 아닌 사다리'는 오르내리는 사다리의 고유 기능을 방해하는 엄나무 가시들의 위협이 앙증스럽게 도사리고 있다. 오를 수 없는 사다리를 통해 유리성은 구약성서 속 야곱이 꿈에서 본 천국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소환한다. 이 작업은 서구와 동양의 만남, 비유와 교훈 그리고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를 뒤섞어 사물이 담은 여러 의미를 흥미롭게 비틀어 낸다. ● 이처럼 작가는 일상의 사물을 자신의 작업 안으로 가져와 '사물 전치'를 개념미술의 지평 위에서 다양하게 실험한다. 그것을 통해 '뒤얽힌 사물의 질서'를 만들고 그것에 관한 전유의 미학을 탐구하도록 관객을 이끈다. 가히 사물 전치와 전유의 미학을 실험하는 진지한 유희적 작업이라고 하겠다. ■ 김성호

Vol.20240402j | 유리성展 / YULISUNG / 成柳里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