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4_0406_토요일_05: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개인전 제목으로 뾰족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아, '제목미정'으로 쓴 판촉용 임시 포스터를 제작해서 공지했다. '제목미정'이 일으킬 호기심 효과도 있고, 가느다란 실선을 차곡차곡 손으로 쌓는 주보람의 조형에 우연성이 커서 '제목미정'을 전시 제목으로 써도 통할 것 같다는 아팅 공동운영자의 의견도 있었다.
선 원 세모 같은 도형과 색채처럼 조형의 본질에 집중한 주보람의 작품세계는 의미를 따지기 앞서 직감으로 오호가 결정되는 만큼 '제목미정'이란 제목도 괜찮겠다 싶었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는 작품에 진중한 의미가 숨어있다는 통념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의미나 개념보다 조형의 기본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주보람은 언어 너머의 직감과 연관된 미술의 특성과 연관이 깊다고 봤다. ● 그렇지만 의미나 개념보다 첫 인상으로 승부를 건 미술가 그룹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개인전 제목엔 주보람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독창적인 색감과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화면을 통통 튀는 3음절 단어에 담았다. 색색깔 주보람.
가녀린 색선을 층층이 쌓아 추상같은 화면을 만들거나, 부릅뜬 두 눈이나 반쯤 저문 태양, 무지개를 닮은 반원형으로 귀결시킨 그림은 주보람의 색감色感 연대기를 통틀어 대표 도상이다. ● 주보람 색감 연대기의 초입에는 인물을 비범한 색채에 담은 구상회화가 놓여 있다. 고갱의 타히티 시절 화풍처럼 열대 야생의 원시 색감을 인물에 입히거나, 분할된 면들로 조합된 피카소 풍 얼굴 그림도 보이며, 빨간색 배경에 터키색 안면과 노란색 목을 지닌 형광 채색이 강렬한 모던 걸의 트렌디한 초상화까지.
주보람의 작품세계의 한 축이 색채 감각이라면, 실선을 층층이 쌓는 구성이 다른 축이다. 그녀의 화면은 나무의 연식을 드러내는 나뭇등걸처럼 대상의 단면斷面처럼 보이며 나아가 사물의 본질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결과적으로 주보람의 그림은 비좁은 화폭과 실처럼 가는 선들과 감각적인 색채 감각이 밀도 높게 결합된 총체다. 그녀의 작은 미술 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p.s. 이상은 작가노트를 접하기 전 내가 작품에서 받은 직감을 단문으로 요약한 거다. 작가노트(" " 표시)를 인용한 부록은 아래와 같다. ● "한 줄 한 줄의 드로잉은 하루, 혹은 순간에 대한 비유로 느껴졌다." RE: 층층이 쌓인 색선을 나무 나이테에 비유한 내 표현과는 통하는 셈이다.
"뾰족한 삼각형 위에 동그라미가 세워져 있는 그림이 많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정상, 절정에 도달한 찰나의 순간을 종이에 영원히 박제해두는 것이다. 문제는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을 때다. 절정의 순간 뒤에는 언제나 하강이 예정되어있다. 문제는 내려갈 때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가이다." ● RE: 작품의 의미보다 색채와 도형 같은 조형의 기본에 집중한 점을 주보람 미학으로 나는 위에서 풀이했지만, 삼각형과 동그라미로 구성한 그녀의 대표 도상에도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했다고 작가는 답한다. ■ 반이정
Vol.20240329d | 주보람展 / JOOBORAM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