甕獨讀(독독독) 흰 바람벽으로부터

김혜식展 / KIMHYESIK / ??? / photography   2024_0328 ▶ 2024_0407 / 월,공휴 휴관

김혜식_Relics storage #1_UV 프린트_67×100cm_2023

초대일시 / 2024_0328_목요일_02:00pm

2023 공주 이 이시대의 사진작가展

주최,주관 / (재)공주문화관광재단_아트센터 고마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트센터 고마 ARTCENTER GOMA 충남 공주시 고마나루길 90 Tel. +82.(0)41.852.9806 www.gongjucf.or.kr www.facebook.com/gjcf2020 @gjcf_2020 www.youtube.com

2023년 공주문화관광재단 이 시대의 사진작가상에 부치어 - 이름없는 것들을 위한 푸가 ●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알려준 완전한 세계는 하나이면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세계, 알렙의 세계다. 알렙.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모음집 마지막에 실린 알렙의 세계는 우주 만물과 모든 시간을 축소하지 않고 3cm 구슬에 비친 세계다. 김혜식의 평론을 준비하는 동안 녹음을 해둔 작가의 생각을 다시 들어보고 그녀의 시집을 읽고, 작업과정을 돌아보며 현실과 신화의 두 세계가 얽혀있는 알렙의 세계를 생각했다. 무한과 영원과 신과 영겁회귀의 시간을 암시한 알렙의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 사랑, 죽음, 질투, 아름다움, 고통, 슬픔, 질병, 가난, 신, 시간, 영원, 우주라는 삶에 곁들어지는 주제들이 일시에 나타날 수 있다면, 그 미로가 김혜식이 수없이 찾아갔던 바로 그곳이 아닐까? 붉은 흙덩이가 토기로 빚어지고, 어느 순간 그것들의 주인과 함께 매장되었다가 천년 뒤 저 휑한 공간에 위리안치된 그 황망한 여정 말이다.

김혜식_Relics storage #6_UV 프린트_54×80cm_2023
김혜식_Relics storage #9_UV 프린트_54×80cm_2023

시간의 실타래 ● 풍화작용은 모든 것을 부재로 되돌린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그것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무덤이란 고립계에서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생전의 부장품들 사이에는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는지, 어떤 기운이 전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밑으로 내려가야 만나게 되는 그 누적된 시간의 내력을 누가 읽어낼 수 있겠는가. 김혜식의 사진 작업은 어쩌면 그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숨죽여 자진한 것들을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은 운명 같다. 그녀가 40여 년 살아온 공주라는 공간은 사라진 백제의 오랜 기억을 소환하는 장소이며 신화의 공간이며 1500여 년의 시간이 누적된 영원성을 가졌기에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역사 바깥에 있으면서도 부식되지 않는 모든 시간을 담아둘 장소를 구성하려는 발상, 고정된 어떤 장소에 그들의 시간을 영원하고 무한하게 집적하려는 기획들이 연중 계속되는 이곳은 유크로니아의 초월적 공간이며 헤테로크로닉한 시간을 품은 곳이다.

김혜식_Relics storage #15_UV 프린트_180×120cm_2023
김혜식_Relics storage #16_UV 프린트_180×120cm_2023

그는 사진 작업을 위해 지난 몇 해 동안 발굴의 현장을 찾아갔고 수십만 개의 유물이 안치된 수장고를 드나들었다. 가끔은 햇살 비치는 수장고 유리벽 앞에 우두커니 앉아 긴긴 세월, 어둠에 묻혔다가 유리 철제 시렁에 갇혀버린 얄궂은 운명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날도 많았다. 한갓 깨진 도기에 불과했던 흙무리들이 어엿한 유물의 별자리를 차지하고 찬란한 빛의 공간으로 옮겨가 절대변화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다시 판옵티콘의 공간이라니! 박물관의 수장고란 얼마나 강박적인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가. 빈틈없이 체크되는 온도와 습도로 작동되는 창고에서 그들은 얼음공주처럼 무한대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수장고에 머무른다는 것은 무한한 고립이다. 이때, 김혜식은 기꺼이 그들의 바리공주가 되기로 한다. 예술행위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예술가는 생명수를 찾아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고 병든 것들을 일으킨다. 그녀의 사진작업은 살았으나 죽은 것들에 제 이름을 불러주고 그 얼굴을 드러내 주는 일이다.

김혜식_Relics storage #17_UV 프린트_180×120cm_2023
김혜식_Relics storage #24_UV 프린트_54×80cm_2023

이름없는 것들을 위한 푸가 ● 그의 사물들은 매우 사소하다. 자칫하면 지나쳐버릴 법한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다. 모종의 분류법에 의해 각각의 층고에 진열되어 있을 때면 그것들은 한낱 시대별 도기에 불과할 뿐이다. 비슷해 보이는 외양을 지닌 그들의 공통점은 부서진 몸체를 이어붙인 무수한 자국과 흙 성분뿐이다. 김혜식은 그들을 화려하게 살려냈다, 이미지를 찍고 선별하여 채색하며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였다. 시간의 무늬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컬러를 끌어들이고 픽셀의 변화를 비교하며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톤과 컬러의 픽셀값을 주었다.

김혜식_Relics storage #25_UV 프린트_54×80cm_2023
김혜식_Relics storage #28_UV 프린트_47×70cm_2023

그렇다면 그의 분류는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둔 것일까. 직관이다. 직관은 일종의 공감이다. 내가 상대 안으로 들어서서 상대의 미적인 것을 감지하는 힘이다. 직관은 나를 비워 대상 속으로 들어서게 하는 미의식이다. 대상에 공감하여 대상 안으로 들어갈 때라야 순수지각이 이루어지고 무심한 관조에서 상대의 본질에 오롯이 빠져들게 된다. 수장고는 관람객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이다. 더욱이 햇빛과 바람과 습도 모두가 작품을 손상하는 요인이 되기에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는 공간이어서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흙더미 속에 천년을 보냈다가 다시 갇혀버린 이름 없는 것들. 김혜식의 사진전은 어두운 땅속에서 갈갈이 부서져 무덤가 망초꽃으로도 피지 못하고 여기 영생불사의 시렁에 앉아있는 그들을 위한 애도의 푸가인가 싶다.

맺는 글 ● 김혜식의 사진이 제시한 것은 결국 이야기다. 매체는 다르지만 형식을 파괴한 포스트모던 계열의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도 사람, 개, 나무, 금화, 색깔, 죽은 시체까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파묵의 주인공들이 그러듯이 무덤에서 영생불사를 꿈꾸며 살아난 토기들은 모두 제 얼굴과 이야기를 가진다. 무생물이면서도 전시의 주인공인 토기의 이야기를 기꺼이 듣고자 하는 이는 또 다른 신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나의 동지 김혜식의 사진이 더 깊은 단계로 가기를 기대한다. 어제의 언어체계가 아닌 새롭고도 낯선 언어를 찾아가야만 한다. 예술이 분열된 우리 시대의 총체적 위기를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우리 모두를 위한 제안이다. ■ 이정희

Vol.20240328b | 김혜식展 / KIMHYESIK / ???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