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돌 DARK STONE

한선희展 / HANSUNHEE / 韓善姬 / painting   2024_0322 ▶ 2023_0407 / 월,화요일 휴관

한선희_검은돌 DARK STONE展_갤러리인_202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Tel. +82.(0)10.9017.2016 @_innsinn_

검은돌 : 시간 짓기 ● 여린 거죽을 덮고 있는 흑연은 처연하리만큼 그 표면에 단단히 붙어 있다. 그 단단함의 실체는 '돌'이라는 형상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혹은 수행적 작업의 기저에서 발현되는 무게감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작가에게 무엇이 미적 대상이 되는가는 철저하게 작가의 관점과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 대상은 시각예술 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을 거쳐 비범함을 지닌 존재로 전환된다. 한선희가 채집하고 수집하는 '돌'은 그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무용無用에 가까운 광물이었지만, 그subject의 선택을 통해 시간과 장소, 그리고 기억을 함축한 객체object로 치환된다. 그가 돌을 채집하는 기준은 심리적 요인과 결부되어 객관적 근거는 부재하지만 이러한 근거의 부재가 오히려 그 시간, 그 장소를 오직 하나뿐인 그것(검은돌)으로 공고히 한다.

한선희_검은돌 DARK STONE展_갤러리인_2024
한선희_검은돌 DARK STONE展_갤러리인_2024
한선희_검은돌 DARK STONE展_갤러리인_2024
한선희_검은돌 DARK STONE展_갤러리인_2024

수년간 흑연의 물성에 천착하며 돌과 자연을 시각화해 온 한선희는 이번 개인전 『검은돌』에서 작가 개인의 서사를 담은 특정 대상을 흑연이 지닌 고유한 물성을 통해 시각언어로 발화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궤적에서 발견한 작고 단단한 (광)물질에 휘발되는 시간과 기억(작가의 이전 개인전 『휘발되는 시간/기억』(2023, 동덕아트갤러리, 서울)의 제목에서 차용)을 박제함으로써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작용하고 내부를 공명하는 대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실제보다 수십 배 확대된 형태로 얇은 종이에 흑연으로 재현되며,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로 생성된 셀 수 없는 '겹'과 '주름'(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의 '주름' 개념 참조)으로 현전한다. 고집스럽고 맹목적인 행위의 신체성은 한선희의 굳은살이자 검은돌의 나이테로 번안되어 일상과 시간을 함축하는 시각언어로 귀결된다. 작업의 지지체가 되는 종이는 얇지만 결코 약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 견고하고 묵묵하게 그의 수행적 작업을 흡수하며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다.

한선희_20240204_종이에 연필_109×78.8cm_2024
한선희_231130-동_종이에 연필_31×41cm_2024
한선희_8, 69, 10-2, 58_종이에 연필_22×22cm_2024
한선희_27, 50, 16, 51_종이에 연필_22×22cm_2024
한선희_20231210_종이에 연필_15×15cm_2024

「20220713」(2024), 「20231210」(2024), 「65, 24, 11」(2024) 등의 숫자 배열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은 작가가 돌을 수집한 날짜이거나 돌에 관련된 일기를 작성한 날짜, 혹은 넘버링 된 돌을 조합한 숫자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작가 자신의 경험이 중심이 되는 시간과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규정된다. 채집된 돌은 이미지로 번안되기 전, 마치 발굴된 유물과 같이 넘버링 되어 제작된 박스에 보관된다. 이는 무명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로, 검은돌은 이렇게 획득한 고유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서사를 내포한 시간 짓기의 초석이 된다. 작업의 주요 키워드인 '검은(돌)'은 작가의 작업에서 단순히 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작가 내면의 어둠, 침울, 절망을 은유하는 지시어로 정의할 수 있다. 작업의 주재료로 사용되는 흑연은 작가의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담아낸 색이라 할 수 있으며, 작가는 이를 '검은 길을 걷다 회색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작가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는 색은 묵직하고 단단한 물체를 휘발되는 기억과 시간으로 박제하기 위한 욕망의 도구로 기능한다. 그의 욕망은 그저 무의미한(해 보이는) 자신의 일상을 시간의 켜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가시화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휘발되는 흑연을 사용함으로써 애써 고착화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매개와 환원의 대상인 한선희의 수많은 검은돌은 물질과 시간을 해체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덩어리로 직조된다. 다층의 겹을 쌓은 시간의 덩어리는 작가에게 혹은 모종의 누군가에게 결국 하나의 도상이자 기호로 귀결된다. 또한, 작가의 내밀한 서사가 응축된 이미지는 선을 긋는 행위가 거듭될수록 자신은 선 속으로 사라지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기에 관람 주체에게 또 다른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연과 필연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나와 타자, 그리고 대상이 교차하며 한선희의 시간 짓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이상미

Vol.20240322d | 한선희展 / HANSUNHEE / 韓善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