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쉐마미술관
관람료 / 성인 2,000원 / 청소년,어린이 1,000원
관람시간 / 09:30am~05:30pm / 월요일 휴관
쉐마미술관 SCHEMA ART MUSEUM 충북 청주시 청원군 내수읍 내수로 241 Tel. +82.(0)43.221.3269 schemaartmuseum.com @schema_artmuseum
자연과 사람, 그 접점에서 생명을 노래하다 작가 김연옥의 작업 수행은 복합적 혹은 다원적 트랙을 달리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엄밀히는 세 가지 양식을 축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계관이나 미학, 조형적 방법들이 변모해간다. 김연옥 작가의 경우도 시기별로 '기하적 추상' → '재현-개념적 추상' → '표현적 추상'으로 이어지는 추이를 보인다. 보통 한 양식이 끝나면 역사에 묻고 새로운 양식으로 넘어가지만, 작가의 경우는 과거의 양식과 현재의 것을 병행하여 발전시켜 간다. 시각적으로 다소 상이한 양식이 공존한다는 것이 흔한 예는 아니지만, 내면적 동기의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어 병행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 작가에게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해가는 동인(動因)이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다. 즉 시대의 담론, 트렌드, 스쿨 같은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면의 충동이나 보상적 동기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기하적 추상'과 '재현적 추상'은 초집중과 몰입을 요구하는 치밀하고 정교한 도식이나 장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계치에 달하게 되는 순간이 오곤 한다. 기하적 구성이나 아우라를 발하는 재현도 그러하지만, 작가가 창안한 조형적 장치까지 조합함으로써 도달하는 완성도는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날카롭게 집중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해방적이고 역동적인 요소들로 중화시켜야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연옥 작가의 플래그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겹' 연작 혹은 항아리 연작이다. 작가에게 달항아리는 넒은 지평에서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혹은 연결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우리의 전통 도자 혹은 도자화 이미지를 재현 혹은 구성하면서도 추상성의 범주를 띠는 것은 그만의 독자적인 장치에 기인한다. 전통 도자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나 심미성을 회화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재현의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감싸고 있는, 혹은 너머의 심미성과 얼을 탐구하고 표현하고자 할 때, 보다 창의적인 접근방식을 필요로 했다. 특히 그것은 오랜 시간을 통해 우아하고 고상한 원형적 취미의 상징성을 담아내야 하는 과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재현이면서도 재현을 넘어서는 방안으로 극적 무대 효과를 도입한다. 재현적 이미지에다 개념을 탑재시키는 것도 방법이지만, 작가는 장치의 창안으로 풀어나간다. 달항아리 소재를 무대에 등장시키는 전략, 즉 미장센 플랜은 특이한 장치를 창안함으로써 구현된다. 그 방법의 일단이 화면에 가늘게 도드라진 선들의 스트라이프들이다. 컨버스 띠를 철(凸)자 모양으로 접어 붙인다. 그럼으로써 캔버스에 일정한 간격과 높이의 직선 부조를 형성한다. 이 스트라이프가 화면에 조합되어 조형적인 슈파눙 효과를 조성하게 된다. 시각적으로 마치 블라인드커튼을 열어 무대에 등장하는 백자에 조명을 쏟기 시작하는 듯한 장치로서 정적인 화면에 극적이고 신비적인 서사를 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물론 작가의 이러한 비상한 장치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천년대 중반 '접점' 연작에서 시작되었다. '겹' 연작에 비해 훨씬 기하적인 면구성에 예의 스트라이프가 조합되거나, 혹은 이 선들의 반복과 순환이 구성적으로 조성되는 양식이다. 이 양식에서도 순수 기하적 추상에서 반복적 질서에 기반한 단색조 미니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사역되는 장치가 바로 스트라이프 요소들이다. 이렇듯 차갑고 엄밀한 양식이지만, 이 선들은 아주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과 집중력의 결정체들이다. 자연의 비밀이나 역사의 비밀을 기록한 바코드 같은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 ● 작가가 이렇게 전통도자 세계와의 인연은 좀 각별하다. 어린 시절 부친이 지금의 만수동, 박촌, 여주 등지에서 도자 기업을 운영하였으며, 도자기들은 어린 작가에게 장난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다. 자라면서 그림에 재능을 보이면서 도자화 그리는 일에도 참여했다 한다.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가게 되면서 도자기는 자연스럽게 그림에 투영되게 된다. 특히 단조로우면서도 우아한 곡선미를 지닌 달항아리의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구현하는 것이 압권이다. 하나의 무대에 등장하듯이 재현되는 달항아리는 그 어떤 이미지보다 강렬하면서도 우리의 원형에 어필하는 심오한 결정체로 부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근래 역점을 두는 양식은 '봄', '생의 변주' 연작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설계하여 연출해온 세공 같은 장치들 공정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면서 작가의 내면에 동요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들이마시는 들숨만 있었으니 날숨도 필요하다. 작가의 시그니쳐인 스트라이프 장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안으로부터의 보상과 시너지의 계기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 대안이 바로 '표현적 추상' 양식이며, 작가 스스로 힐링과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 생명을 가진 유기체는 끊임없는 운동, 그것이 우연적이든 자발적이든 움직임을 통해 진화하며 창조성을 발휘한다. 이것은 곧 자연의 본질이기도 하다. 작가의 화면에는 강한 생명의 리듬 혹은 춤사위들이 바람처럼 일고 있다. 대부분이 추상적 표상 너머로 원초적인 미지의 유기체 혹은 생명대사 기관들의 생명현상, 꽃잎이나 바람, 구름 등의 자연 같은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무의식 세계로부터 끌어올린 무언가의 몸짓이 가감 없이 그대로 각인되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모종의 리듬으로 환원된 초월적 세계로 상상할 수도 있다. 밝고 흥에 겨운 환희와 경이로움의 환상적인 생명의 율동 그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 보통 4월경이면 자연이 연출하는 대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봄바람이 유난히 거세질 때를 기다렸다가, 소나무들이 일제히 송홧가루를 기류에 실려 보내는 사랑의 퍼포먼스 말이다. 말없는 나무들도 그렇게 본능에, 자연율에 충실하다. 자신의 생명을 널리, 그리고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하는 모습. 그것은 자연의 숭고하고도 위대한 퍼포먼스다. 생명체는 자연에 의존하기도 하며, 자발적으로 산종(散種)할 수 없는 개체들이 자연의 역동성에 편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동하는 생명으로 충만할 때 자연은 스스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면에 펼쳐지는 속도감 있는 추상표현적 표상들 역시 생명의 몸짓인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 '생의 변주' 연작은 내면의 해방적 에너지에 충실하다는 점이 우연에만 의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숨 막히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난다 해서, 화면을 방종이나 혼돈으로만 흐르게 방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창작활동을 통해 본능적으로 체득한 조형감각 내지는 표현의 내공이 은밀히 작동 혹은 조율되고 있음이 목격된다. 어떤 형상인 듯도 하고, 또 어떤 데서는 선적인 필치들인 듯한 요소들이 화면 전체에 생기와 활력을 배가하는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화면은 무의적 충동과 우연적 몸짓에 의한 필치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요처에서 번득이는 감각적 필치들이 중심추로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작가의 그림들이 시가 되고 노래와 춤이 되는 극적 연출도 바로 이러한 감각적 키노트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렇듯 상반된 양식들을 횡단하는 작가 작업은 내적인 요구와 필요에 직면하여 자연스럽게 도출해낸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광폭의 조형세계를 누비는 작가의 작업은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는 미의식적 순환으로 이해된다. 상이한 양식을 병행한다는 사실이 광폭의 역량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며, 지극히 음과 양의 조화, 들숨과 날숨의 교차처럼 자연스러운 수행으로 파악되고 있다.
넓은 지평에서 통찰할 때,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매개적 지점으로서, 작가 바깥 세계의 자연과 내면의 자연이 생명의 대사(代謝)를 수행하는 장이자 세계이다. 외부 세계의 에너지와 자극들이 흡입되어 축전지처럼 응축되어 정형성을 이루는 것이 하나이며, 내면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충동과 욕구들은 미의식의 승화와 건류장치를 통과하면서 생명의 환희를 화면에 쏟아내는 것이 또 하나이다. 그의 작업은 세계의 본질을 음양의 조화로 이해하는 그대로다. 그 섭리대로 자연스럽게 들이마셔야 할 때 흡입하고, 내쉬어야 할 때 뿜어내는 생체의 원리 그대로다.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하고 느껴야 할 때 느끼고, 움직여야 할 때 행위하는 그대로다. 자연과 사람, 모두를 매개하는 생명과 생명력을 담아내는 일은 작가에게 너무도 절실한 명제이다. ■ 이재언
Vol.20240317c | 김연옥展 / KIMYEONOK / 金淵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