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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터테인 기획展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 2층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artertain_
당신의 찰나 ● 인류가 진실을 찾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창조의 의미 즉, 기원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변화의 의지가 강렬한 가장 작은 단위의 세포로부터 파충류의 시대에서 인류의 시대까지 여전히 생명의 기원은 미스터리하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바탕으로 과학은 변화의 의지가 강렬한 가장 작은 단위의 세포로부터 파충류의 시대를 넘어 지금 인류의 시대로 이어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즉, 진화를 기원으로 정의하고자 했다.
반면, 인문학은 진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성에 중점을 두고 인류의 기원을 찾는다. 세포분열로부터 인류의 시작을 논하기 보다는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를 토대로 기원의 의미를 찾고 있다. 어떻게 인류는 복잡하지만 가장 간결하고 효율성 좋은 신체 구조를 갖게 되었는지, 그에 못지 않게 복잡하지만 인류 발명과 발전의 근간인 사고를 하게 되었는지. 정신적으로 보다 근원적인 진실의 증거를 밝히고자 한다. 이러한 인문학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오용석 작가는 인류 천년의 시간을 찰나의 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어느 순간 우리는 중세의 어느 마을에서 스마트폰 기지국이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 할 수도 있고, 중세의 어느 누구는 2024년 3월 서울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말과 갑옷으로 슬퍼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에게 시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상들로 구성된 변화의 연속일 뿐 어제로 인해 오늘이 형성되고 오늘로 인해 내일이 만들어지는 직선적이고 물리적인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내일이 다시 오늘로 마찬가지로 오늘이 다시 어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부적 (Anacronico Talisman)'은, 시대와 시대 (시간과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일종의 통행증과 같은 형상들이다. 그러한 의미로 작가의 우주에는 중력이 없다. 우리의 사고는 물리적인 개념으로 떨어지거나 어딘가로 향하는 힘으로 인해 옳고 그름이 나뉘어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그리고 사물은 그 자체 의지를 가지고 있어 단지 스스로 조화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것이 곧 시대와 시대를,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나들 수 있는 부적을 만드는 원동력임 셈이다.
빛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천지창조의 신호였음에 대한 이의가 없다. 빛은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을 의미하는 찰나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 빛은 지구가 탄생된 시점부터 여전히 세상 모든 물질들을 현존하게 만드는 에너지였다. 그러나 빛은 충분히 그 존재를 느끼고 알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형체를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이 결국 빛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빛은 본래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회화를 통해, 빛을 물질로 재현했다. 물론, 전적으로 작가의 사고를 바탕으로 물질화된 빛이지만 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매체적 가능성에 대한 완벽한 주장으로서 의미가 있다.
작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알타이 신화는 아시아 문화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다. 거기엔 유럽신화와는 다른 구조를 가진다. 끊임없이 누군가 태어나고 서로 싸우고 죽이는 과정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로 그려내고 있는 유럽신화와는 다르게 아시아 신화로서 알타이 신화는 하늘과 땅, 동쪽과 서쪽, 절대악과 절대선의 대립이 죽음과 지배구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대립 즉, 통합과 조화의 토대를 구축하는 대립으로 그려진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조화로운 인간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믿지 않는 다는 것은, 빛을 알면서 빛을 모른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굳이 알타이 신화를 따라 이분법적인 사고를 벗어나 조화로운 삶을 찾는 수고도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삶을 이어가면서 보이지 않았던 나만의 가치를 믿고 그 자체의 아우라를 찾을 수 있다면 오늘, 눈을 뜨고 감는 순간, 그 천 년이 찰나가 될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 임대식
Vol.20240316c | 오용석展 / OHYONGSEOK / 吳庸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