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ity of life

강호생展 / KANGHOSAENG / 姜鎬生 / painting   2024_0228 ▶ 2024_0311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104-4_천에 먹, 아크릴채색_30×30×5.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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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청북도_충북문화재단 기획 / 강호생

관람시간 / 10:00am~07:00pm

충북갤러리 CHUNGBUK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2층 Tel. 070.4224.6240 www.cbartgallery.com

생명의 사랑 ● 이번 발표하는 작품들은 그간의 작품들과 연결성을 지닌다. 이러한 것들은 가시성과 비가시성, 현재와 비현재, 실재와 비실재, 물질과 비물질, 추상과 구상 등의 상반 또는 상보적 관계들이 포함되는 생각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의 단초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육감 등은 분출 또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촉매작용이 되었을 것이다. ● 나는 이것의 극복으로 작업의 주제를 '생명의 사랑'이라 이름 하면서 언제나 기본적으로 세상의 초등 학문과 원리에 속박되길 원치 않음을 미리 못 박아 둔다. 왜냐하면 이러한 소꿉놀이 같은 것들보다 더 귀중한 거듭남의 자유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작품세계와 관련된 최소한의 것들에 무책임할 수 없음으로 나름의 정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121_천에 먹, 아크릴채색_122×122×5.5cm_2024

나의 수묵화 작업은 동양미술 특유 중 얼루전allusion의 세계이다. 내 작품의 형성과정을 보면 말 그대로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고정관념을 버려야 이해될 수 있는 '그림이 그림을 그리다'라는 것을 무릎 치며 공감할 것이다. 즉 이 말은 내 작품 속에 늘 고려하는 것들의 기저와 동일한 원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122_천에 먹, 아크릴채색_122×122×5.5cm_2024

수묵화는 최상의 감각을 요구하는 영역이기에 체험의 즐거움은 무엇이라 표현할 길이 없다. 그 동안 나의 작업은 소재의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필선 고유의 맛을 드로잉적 요소로 표현한 수묵화 중심의 작업이었지만 수년 전부터 시도한 작업의 흐름은 천 위에 먹물과 색채를 사용하여 물기둥과 흰 종이 흔적의 형상 그리고 점과 실선들의 기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업은 온도, 습도, 물과 먹물의 양, 주어진 작품 면적 값에 따른 정확한 물과 물감의 비율들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의 싸움이다. 이 타이밍의 과정 속에는 우연과 필연이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듯 나타나는데 우연을 필연으로 이끄는 것이 나의 영역이기도 하다.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124_천에 먹, 아크릴채색_122×122×5.5cm_2024

이러한 작업에서는 최소한으로 시도되었던 담채淡彩에서 색채를 적극적으로 끌어 들였다. 그것도 아예 원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원색은 긴장감을 주는 물리적 세상의 현실reality이며,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black hole로 비유한다. 따라서 원색의 적극적 시도는 현실세대의 역동성dynamic을 의미한다. 온갖 비주얼에 감각 없이 길들여졌기에 블랙홀을 탈출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나의 내면에 언제나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안식처'이다. 그 안식처haven는 바로 '생명life의 여백margin'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마음과 그림에는 언제나 여백을 말하고, 그 여백은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제공하며 정신적 유희의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125_천에 먹, 아크릴채색_122×122×5.5cm_2024

원색이든 모노톤이든 내 작업의 궁극은 여백의 감성sensibility을 추구하기에 마음속의 욕심이 아닌, 버림으로써 자신을 비우는 공간조형을 우선한다. 無nothingness, 素whiteness, 空emptiness은 서로 다를 게 없는 동일한 것으로 無nothingness는 有existence의 근원이 되기에 有는 無에 이르러 마침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가시적有'인 것은 '비가시적無'인 것에 이르러 열매를 맺는다.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고,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 이치이기에 내가 유희하는 부분은 여백! 그 '텅 빈 자리'이다. 여백! 그것은 '텅 빈 충만'이다. 그것은 채워진 빈자리이다. 그것은 가벼운 중량감이다. 그것은 숨 쉬는 공간이다. 비움으로 채울 수 있기에 나는 그 여백을 사랑한다.

강호생_Charity of life 20240202_천에 먹, 아크릴채색_130×265×5.5cm_2024

결론적으로 이 작업은 이후에 원색에서 파스텔 계통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색의 역동성과 먹물의 고요함을 통한 여백의 유희이다. 색, 먹물, 여백은 각각 현실, 희생, 감성으로 부른다. 즉, 가시적인 유채색과 무채색과의 이질적 공통분모에서 잉태 된 새로운 비가시적 여백의 감성적 가치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것이기에 이 여백을 나는 '생명'이라 이름 한다.

아울러, 광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 현실의 블랙홀에 떠밀려 내가 추구하는 감성의 아름다움을 탈취 당할 수는 없다. 본성을 산출하는 모체는 비가시적 감성이기에 가시적 현실만 좇는다면 이것은 분명코 주객이 전도 된 삶이며, 주객이 전도 된 작업이기에 나는 이것을 거부한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섭리 안에 포함된 먹물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존중한다. 이것은 '그림이 그림을 그리다'라는 엄연한 실재를 내 작업의 향방에 포함하면서 나를 속이지 않는 올곧은 마음으로 생명의 길을 묵묵히 걷고 싶다. ■ 강호생

Vol.20240228b | 강호생展 / KANGHOSAENG / 姜鎬生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