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0308_금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두석_김천일_박정규 박수경_손동현_이진경_홍인숙
2024년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전
주최,기획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5:3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6 www.muan.go.kr/museum @muan_museum_of_art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은 '전통, 잇다 가로지르다'라는 주제로 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반영하며 흘러온 전통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동시대에 어떻게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획전으로 갑진년 새해의 문을 열고자 한다. 이 전시는 여느 해처럼 미술관이 지역사회의 예술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아카이브 역할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는 다음 두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 『1부: 천년의 감성』에서는 김두석, 김천일, 박정규 등 지역작가를 초대하여 서남해안의 독특한 지형과 문화로부터 태동한 한국화와 도예작품을 들여다본다. 『2부: 그림이 된 문자 - 문자도』에서는 박수경, 손동현, 이진경, 홍인숙 작가를 초대하여 문자적 요소와 그림적 요소가 어우러져 여러 가지 기호적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문자도의 형식을 차용하여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는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 ● 서남해안은 동해와 남해가 만나 독특한 지형을 이루며, 남도 지역은 리아스식 해안과 갯벌, 부드러운 구릉, 그리고 정겨운 논밭이 어우러져 신비롭고도 평화로운 자연경관을 선사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무안은 서해 바다와 영산강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농경지, 거주에 합당한 구릉, 해상교통의 요충지라는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도자 제작에 알맞은 조건 속에서 무안의 분청사기는 다양한 기법들로 만들어져 소박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우리 민족의 특질과 한국적 풍토를 그대로 이야기해 주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사상을 일깨워준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해온 남도의 산수와 그 속에서 탄생한 무안 자기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은 이러한 감성을 화폭에 산수로 담아내고, 아름다움과 감동을 빚어낸다. 억겁의 시간 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해온 자연에 경배하듯 그리고자 하는 장소를 수차례 방문하며 정성 들여 관찰하고, 자연에서 태토를 채취하고 이를 걸러 정제하고 건조시켜 다듬는 과정을 거쳐 수백, 수천 도의 가마 속 열기와 사투한다. 무수한 시간의 역사와 풍경이 인류학적 감성을 거쳐 우리 앞에 진경 화폭으로, 도자로 자리한다. ● '문자'는 우리 인류가 의사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이며, 수많은 시간을 거쳐 이어져 온 선조들의 염원이다. 문자의 역사는 벽화로부터 시작하여 추상화된 형태로 그림문자라고도 불리는 상형문자가 탄생한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도식화되어 언어를 나타내는 문자 기호로 진화하거나, 사실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나타냄으로써 회화의 시초가 된다. 이렇듯 본래 그림과 문자는 그 출발점이 같다고 볼 수 있으며, 그림과 문자가 결합된 형태인 문자도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시간과 노력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문자도의 종류를 살펴보면 첫째로 잡귀를 쫓거나 액을 막는 벽사기복(辟邪祈福)의 마음이 반영된 수호적 상징 문자가 있고, 두 번째는 길상문자도로 장수와 부귀를 염원하는 마음을 길상적 의미를 갖는 수(壽)와 복(福)에 담아 표현하였다. 마지막은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이다.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8개의 문자에 유교적 덕목을 담았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효제문자도가 가장 많이 그려졌는데 문자도에는 민중의 염원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상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변화, 관람자의 니즈에 따라 문자도에 담기는 가치와 사회적 관념은 변화해 가는 것이다. 무수한 과학, 의술, 사회의 발전을 거치면서 21세기 우리의 관심사, 소망, 염원은 획일화되지 않고, 수없이 많은 가지로 뻗어나간다. 사회적 다양성과 다양한 인종, 성별, 성 정체성 등 인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지고, 환경 보호, 대인관계, 독창성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며 예술적인 표현으로써 다양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발전 속에서 문자 자체도 진화를 겪는데, 과거에는 한자를 소재로 하였지만, 현재 우리에게 더 익숙한 문자는 한글, 영어와 같은 문자이다. 작가들은 변화한 문자들의 형태와 기능을 탐험하며 실험하는 과정들을 거쳐 전통을 토대로 현대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현대의 문자도는 전통을 기반으로 글자로써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담아내며 언어적 표현의 폭을 넓히고 문자가 가진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 인류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적 발전이 가속화되어 문화 또한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문화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 물 흐르듯 흘러가는 소리들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전통을 기억하고 현대로 끌어오는 작업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재가 존재할 수 없고, 어둠이 없다면 빛이 그토록 찬란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세계의 조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와도 같다. 이 전시를 통해 아득한 세월을 면면히 흘러온 전통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떠한 방식으로 현대와 잇고 있는지 살펴보고, 전통과 현대가 융합되면서 어떻게 새로운 예술 언어가 탄생하는지 경험할 수 있다. ■ 박건우
□ 1부: 천년의 감성 김두석의 작업은 도자기라는 형태에 머물지 않는다. 도조, 석조에서 평면으로, 3차원의 도자에서 2차원의 회화로 형태와 기능을 탐험하는 과정들 속에서 도자의 전통과 그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 나간다. 작가는 "바닥 돌에 난 수많은 상처는 고달픈 삶을 살아낸 우리의 흔적으로, 이것을 도자편 하나하나에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듯 그의 손을 거쳐 평면의 회화로 다시 태어난 도자기 조각들은 작가가 보내는 투박한 신호이자 고달픈 삶에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천일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그쪽의 사람과 자연을 잘 연구하면 그게 바로 본질적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화폭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남도의 아름다운 산천 풍경이 담긴다. 작가의 감성적 언어가 생각만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현장을 찾고, 산을 오르며 작품의 대상을 세세히 관찰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마침내 본질에 다가서면 한 폭의 진경산수가 펼쳐진다. 이렇게 탄생한 진경산수에는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이 표현되는데, "전통화법을 배웠어도 항상 현실을 바탕으로 출발해야 하며, 현실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표현하는 세계는 예술세계라는 다른 체계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 아래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박정규는 무유소성 기법을 사용하여 무유 백자 달항아리를 제작한다. 가마 속에서 아주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소나무 재가 도자기 위에 내려앉아 고온에서 녹으면서 자연적으로 유리질화된다. 이러한 자연유를 입혀 탄생한 도자가 무유 달항아리이다. 그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선을 추구한다. 달의 형태에는 둥근 보름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하듯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선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자리한다. 37년이라는 도예 경력이 고스란히 담긴 도자에는 어떠한 자만심도 사치스러움도 없이 묵묵히 지켜온 지역에 대한 애정,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도예에 대한 애착이 가득하다. 전통을 이어온 명장의 손에서 자연을 닮은 도자가 지금 여기 탄생한다.
□ 2부: 그림이 된 문자-문자도 박수경은 동양화의 먹과 한지로 남도의 먹거리와 문자를 결합한다. 그녀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연해의 수족을 취급한 어보인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재치 있고 친숙한 언어를 사용하여 전라도의 낙지와 생선들로 화면을 구성한다. '魚'라는 한문 문자로 구성된 밥상 위에 군침이 도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이 보이고 이제 막 잡은 듯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이 보인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식(食), 특히나 한국인에게는 안부를 물을 때도 빠질 수 없는 '식사'라는 소재를 문자와 결합해 섬세한 붓질로 실감 나는 음식들을 표현하며 새로운 형태의 문자도를 탄생시켰다. 목포에서 활동하며 남도의 생태, 문화, 환경 등 지역의 특색을 관찰하여 작품으로 담아온 그녀의 작품에서 남도의 음식과 이 지역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자를 통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손동현은 전통적인 한국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탐구한다. 그는 잡지의 전성시대라고도 불리는 90년대를 지나오며 다양한 음악, 영화 잡지를 통해 대중문화에 소재를 두며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과거의 동양화에서 자주 쓰였던 '자연'이라는 전통 소재의 틀을 벗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인간이 상상하고 만들어낸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는 문자를 통해 새로운 인물화를 보여준다. 과거부터 문자도의 주제가 그 시대의 관심사와 가치를 반영했듯이 오늘날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분야 속의 인물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그는 또한 상상의 인물을 문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문자도를 재창조한다. 그의 작품세계에선 문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며 여느 외국 히어로물에 나올법한 인물상들을 보여준다. 그 세계에선 문자와 그림의 구별이 없이 문자가 곧 그림이 된다. 상형문자로 보이는 것들이 갑옷, 얼굴 등 형태를 만들어 내며 신선함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에서는 서양의 그래피티, 캘리그래피, 카툰 등의 문화를 동양의 전통인 먹과 종이뿐만 아니라 서구의 아크릴 물감을 혼용함으로써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고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이진경은 한국적인 것, 친숙한 것, 자연에서 얻는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소재로 삼아 그림과 손글씨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종이박스에 적힌 글씨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업에서 멋 부리지 않는, 어쩌면 투박하고 소소한 그녀의 세계가 글씨체에서 드러난다. 서울 토박이지만 청년 시절부터 시골에 거주하며 속세와 동떨어져 살아온 그녀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경쾌한 작업을 이어 나간다. 둥그런 그녀의 글씨에서 그녀만의 특유의 밝은 기운과 고유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친숙함 또한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말은 곧 삶이고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간 것들 혹은 잊혀진 것들은 문자로 다시 한번 기억되며 새로운 의미로 새겨진다.
홍인숙은 일상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일기의 형태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날의 기억과 생각이 적힌 비밀 일기처럼 그녀의 작품에서는 한글 단어와 꽃과 기와집, 인물 등이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사람이 성장하듯이 한 단어의 의미 또한 나날이 달라지고 그 안의 역사와 기억이 층층이 쌓인다. 그녀가 전달하는 단어의 의미와 보는 이들이 생각하는 단어의 의미가 일치되었을 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한 문자를 다시 보게 된다. 추억의 순정 만화에 나오는 인물의 모습, 어린아이의 글씨체 등에서 보이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동심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림으로 그린 문자를 읽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기도 하며 글과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된다.
전통에 대한 이들(참여작가들)의 관심사와 접근 방식은 모두 다르다. 어떤 작가는 거시적이고 원론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어떤 작가는 일상의 소재를 미시적으로 분석한다. 어떤 작가는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을 철저하게 파고들고, 어떤 작가는 손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여기'의 범주 또한 각양각색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무안'이 드러나고, 어떤 작품에서는 '남도'가, 또 어떤 작품에서는 '우리나라'가 드러난다. 어떤 작품에서는 특정한 지역의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민한 관람자들은 작품을 마주했을 때 그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겪었던 시간성과 장소성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감을 통해서 '넘겨주기(traditio)'가 이루어진다. 문화적 유산이 과거의 구태가 아니라 실질적인 전통으로서 동시대성과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도 이러한 넘겨주기가 필요하다. '그때'와 '지금', '거기'와 '여기' 사이의 연결 고리가 형성되는 지점은 작가들이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업 과정뿐 아니라, 이들의 노력을 관람자들이 체험하는 과정이다. 2024년 무안군오승우 미술관에서 대면하는 김두석, 김천일, 손동현, 박수경, 박정규, 이진경, 홍인숙 7명 작가의 작업을 통해서 이러한 연결 고리가 활발하게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전시서문 '한국현대미술의 전통과 동시대성' 중에서) ■ 조은정
Vol.20240224c | 전통, 잇다 가로지르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