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Part 1 / 2024_0221 ▶ 2024_0303 참여작가 / 고경호_류재성_범진용 Part 2 / 2024_0305 ▶ 2024_0317 참여작가 / 김나나_김환명_함성주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Tel. +82.(0)10.9017.2016 @_innsinn_
그림의 '손맛' ● 회화는 움직이는 손의 일이다. 그래서 그림을 화가의 신체 운동, 일종의 퍼포먼스로 해석하고는 한다. 회화는 화가가 붓끝으로 화면과 대결한 흔적, 캔버스라는 수면에서 발생하는 화가의 물장구다. 순간순간 마주하는 신체 감각을 숨 가쁘게 실어 나르는 붓질, 서로를 밀고 당기고 뒤덮는 안료의 거침없는 움직임, 화면을 구성하는 긴장과 이완의 호흡. 화가는 캔버스의 피부에 생생하고 풍성한 물결을 일으켜낸다. ●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인 회화는 1990년대 이후 미디어아트의 융성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재고하게 됐다. 197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론이 크게 성행하면서 회화는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그 '죽음 이후 회화'의 변화 또한 눈부시다. 2000년대 초 글로벌 미술시장의 활황에서 회화는 여전히 미술의 주역을 맡았다. 2010년대 회화의 주된 기조는 '좀비 형식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 모더니즘 회화의 유산을 소환하되, 내용보다 색채, 구도, 물성의 형식적 유희에 치중하는 회화를 일컫는 비평 용어다. 이때 추상 미술이 강세를 보였다. '모더니즘의 역습'이기도 하다. 오늘날 회화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그 스펙트럼은 회화의 힘을 약화하는 위협으로도, 반대로 회화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장하는 기회로도 전환할 수 있다. 또 회화의 변신을 바라보면서 더 '회화다운 회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손의 쓸모'가 점차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회화는 이른바 '손맛'이 살아 숨 쉬는 예술이다.
회화라는 군도 ● 『Ducks and Drakes: 수면 위의 연쇄』展은 오늘의 회화를 '연쇄'라는 상호 작용으로 조망한다. 하나의 대륙이 아니라 바다라는 연장선상을 공유하는 군도(群島)를 모아, 저마다 다양한 회화론을 한자리에 펼친다. 먼저 작가 6인의 주요 키워드를 꼽으면 1부 고경호-정물, 류재성-시간, 범진용-풍경, 2부 김나나-도시, 김환명-디지털, 함성주-신체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이 여섯 섬의 여정을 전시 1부의 출품작 고경호의 정물화에서 출발해 보자.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착안해 21세기 정물화로 재해석한다. 정물이라는 대상, 바니타스 양식 등 전통 미술사의 조형적 근간을 수용하면서도 여기에 자신의 내밀한 서사를 녹여낸다. 유년 시절 성장기부터 가정에서 겪은 마찰, 가족의 죽음, 포용과 사랑까지..., 고경호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오마주해 조형적으로 변용하는 것은 물론, 외부 대상에서 내면의 심리로 깊이 파고들어 간다. 이러한 과정은 범진용의 풍경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범진용은 수풀이 우거진 풍경을 그린다. 나무가 빽빽하게 모여있고 인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둡고 깊은 숲속. 풍경 역시 오래전부터 회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해 왔다. 사실 우리가 눈을 뜨고 보면 풍경 아닌 것이 없다. 내 시선을 중심으로 사방의 모든 공간이 풍경이다. 하지만 풍경화에서 풍경이란 우리 몸을 둘러싼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다.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놀라운 경치가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힘이다. 풍경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과 그곳의 장소가 격렬하게 부딪칠 때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범진용이 그린 풍경은 한 컷의 장면이 아니다. 화가가 특정 상태에서 공간과 얽힌 경험의 총체이다. 풍경의 효과가 그곳에 있는 화가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것.
바로 그 에너지가 류재성의 그림에서 더욱 심화된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작업실의 빛과 색조를 그림의 주된 요소로 드러낸다. 서사가 사라진 추상적 선과 도형, 물성만이 남은 형상, 생명력 넘치는 거친 붓질 등은 작가가 시간과 함께 빚어낸 '기억의 랜드스케이프'다. 그런데 무엇도 명료하게 읽어내기 힘든 이 격정적인 화면에서 우리는 오히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인 몸짓을 느낀다. 손의 흔적이다. 수만 년 전의 동굴 벽화와도 닮은 류재성의 그림은 우리에게 메시지가 아니라 생의 감각을 전달해 준다. 이미 누군가 이 자리에 살아있었다는 증언. 회화의 원류는 바로 여기에 있다.
1부 전시가 주로 화가의 내면, 회화의 역사에 가까웠다면, 2부는 동시대로 성큼 넘어온다. 두 번째 여정은 김나나의 그림 섬에서 시작한다. 김나나는 유리창에 반사되는 빛의 충돌에 주목한다. 자연광과 인공 빛에 노출되어 일렁이는 표면, 변색된 형상, 시시각각 왜곡되는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고 캔버스에 옮겨 회화적 효과를 더한다. 그의 그림에서 핵심 소재이자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유리다. 도심의 빌딩 숲부터 번화가의 쇼윈도, 유행하는 카페 인테리어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온통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김나나는 그 유리창 너머로 투명하게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유리 표면에 맺힌 상에서 회화의 즐거움을 찾는다. 캔버스 화면을 일종의 유리 필터 삼아 일상의 풍경과 색을 유희적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한편 동시대 회화는 디시털 시대의 문법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전통 회화의 특징적인 조형 요소였던 구성이나 구축에서 벗어나 트리밍, 클로즈업, 프레이밍, 시퀀스 등의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
김환명은 캔버스에 포토샵 프로그램 이미지를 환영처럼 옮겨낸다. 멀리서 보면 컴퓨터의 화면을 크게 출력한 듯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눈속임을 내기 위해 한 땀 한 땀 기계처럼 격자를 그리고, 그 위에 질서를 무너트리는 제스처를 중첩했다. 그는 낙서 같은 요소를 구현하기 위해 막대에 펜을 붙여 휘두르거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는데, 디지털과 아날로그, 의도와 우연을 교차해 완성한 회화는 디지털 시대 회화의 효용을 고찰하게 한다.
함성주의 그림 또한 동시대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디지털 게임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신체 일부분을 크롭해 흑백 톤으로 묘사한다. 게임의 배경, 맥락, 컬러가 사라진 인물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디지털 오락이 익숙한 세대에게 게임은 특별한 작업 모티프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는 게임의 전체 인터페이스보다 캐릭터의 신체 부분을 강조하면서 회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현실의 인간 몸이 기술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함성주는 디지털에서 추출해 온 신체, 즉 '몸을 재현한 몸'을 그리면서 신체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한다. ■ 이현
회화적 관점에서 '수면'은 지지체의 메타포이다. 수면에 비치는 상은 이미지로, 그 위에 띄우는 것은 작가가 구축하는 화면으로, 그 아래 수심은 기질적 세계로 인식된다. 회화 작업은 그 수면을 바라보는 동시에 뛰어드는 넘나듦의 반복이며, 이것이 시작된 수면surface으로 다시 귀결된다. ● "Ducks and Drakes"는 물수제비를 뜻한다. 납작한 돌을 튕기며 만들어지는 잔물결이 수면 위를 이동하는 오리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여 만들어진 표현이다. 수면을 지지체로 치환한다면 그 위에 잔물결을 만드는 물수제비는 행위와 움직임의 연속이지 않을까. 본 전시 『Ducks and Drakes: 수면 위의 연쇄』는 수면 위에 펼쳐지는 회화의 과정들을 참여 작가 6인의 작업을 통해 '연쇄'의 관점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 전시 안에서 연쇄의 방향은 종과 횡으로 구분된다. 종으로는 회화를 대면하는 태도가 반영된 방향성의 표지로 작업들을 선택했다. 동시에 수면 아래를 깊게 유영하는 움직임부터 점차 상승하며 수면 위에 떠올린 이미지까지. 각 작업이 주목하는 지점을 층위적으로 연결하며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1. 류재성은 '공간으로써의 추상'을 그린다. 그는 지지체를 공간의 일부로 인식, 그 위에 공간(작업실)에서 행해진 사건(그리기)들을 지층처럼 남기고 쌓아둔다. 그림을 그리는 현재의 순간과 그 찰나에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 즉 붓질을 통한 의식적 행위와 우연성을 화면에 남긴다. 이렇게 남은 흔적들은 혼란하고 뒤엉킨 내면이자 반응이고 비연속적 현재를 담은 레이어의 총체가 된다. ● 이번 전시에서 범진용이 보여주는 '풍경'에는 인물이 등장한다.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가 등장하는 풍경은 쓸쓸해 보이지만 어딘가 애틋하고, 혼잡한 생명력과 동시에 침잠을 느끼게 한다. 어느 순간 인물의 서사보다 풍경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러한 양가적 감상은 작가가 세상을 감각하고 이를 옮겨내는 과정 안에 투영된 총체다. 그가 마주한 풍경 안에는 켜켜히 겹쳐진 가파른 붓질과 군을 이룬 물감의 덩어리들이 존재한다. ● 고경호는 바니타스 정물화와 그 도상성을 차용, 이를 개인과 동시대적 서사로 필터링한 '정물화'를 그려낸다. 그는 작업에서 서사성과 매체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이중 전략을 취한다. 사회적 포지셔닝에 기인한 대상들을 기호화하고, 고전적 정물화 양식의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페인팅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파생되는 해석의 영역을 넓히며 그가 그려내는 정물화의 특성을 전유한다.
2. 김나나는 '맺히고 투과되는 상'을 그린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어느 가게의 창, 비온 뒤의 물웅덩이 같이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공존하는 '(투명한)막'에 발생하는 이미지적 '상'이다. 이는 굉장히 일시적이고 연약한 상황을 내포한다. 여기에 필요조건은 '내부가 더 어두운 상태'이며, 결국 외부와 내부가 공존하는 상은 명과 암이 충돌하는 상이다. 고정되지 않은 찰나에 시간을 덧대는 그의 화면에는 움직임과 고정, 충동과 관찰 등의 이항이 공존한다. ● 함성주가 바라보는 '스크린'은 현실이다. 그는 게임 화면, 수집된 사진, 실제 인물 등의 사진을 편집한 이미지를 그린다. 이미지는 데이터의 결과값이고, 실체 없는 벡터는 스크린을 통해 감각된다. 이것을 다시 물질, 즉 캔버스와 물감으로 치환하는 일련을 통해 화면을 그려나간다. 추적과 역추적의 과정에 개입되는 현실(개인)의 서사가 뒤섞이며 이미지의 질량은 늘어가고 형태를 공고히 한다. ● '가치값의 바운더리'를 고민하는 김환명의 회화는 몇 가지 꼭지에 물음표를 던진다. 화면 전반에 등장하는 'null' 상태는 '(비어있음)'을 의미하지만 이는 계획적 노동을 통해 그려진 것이다. 반대로 그 위에 그려진 'valid'(점, 선, 면 등)는 우연한 제스처를 포착한 결과이다. 길고 힘없는 막대에 펜을 연결하여 흔들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우연성을 통한 이미지 구성의 단위(추상성)를 획득한다. 회화라는 보수적 매체 안에서 이 보수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해쳐나며 본인 회화의 바운더리를 질문한다.
* ● 동료 작가와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곰팡내 나는 그림을 그리지"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풉 하고 웃으며, 곰팡이의 막연함을 느낌과 동시에 묘한 자부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쩜 이렇게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하고 대답했다. 물수제비는 수면 위를 튀어 오르고 미끄러지다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다른 돌을 쥔다. 더 멀리 던져 더 크게 물결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 고경호
Vol.20240221f | Ducks and Drakes: 수면 위의 연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