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BODY PERFECT SOUL

강철규展 / KANGCHEOLGYU / 姜哲奎 / painting   2024_0216 ▶ 2023_0303 / 월,화요일 휴관

강철규_A bouy_캔버스 유채_53×4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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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02:00pm~07:00pm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인 HQ GALLERY IN HQ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97 (연희동 719-10번지) 1층, B1 Tel. +82.(0)10.9017.2016 @_innsinn_

Perfect body, perfect soul ● 아내에게 저녁에 상진과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상진 선배? 연락하고 지냈어?" 졸업하고서 처음이라고 했다. 십 년만인 셈이다. 아내도 상진을 좋게 생각했지만 이런 연락은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대개 돈, 아니면 보험이라며. 그럴 놈이 아니 라고 했다. 상진의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내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사람 일은 모른다고 했다. 그만 아내를 나무랐다. 나갈 채비를 할 때 즈음 거실은 냉랭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기분이 상해있었다. 친구 하나도 제대로 못 만냐나고 쏘아대고 싶었지만 뒷일이 뻔했다. 입을 다물고 신발을 신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데. 딱 이백까지야."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저만치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진이겠지.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상진은 많이 변했다. 대학 내내 고수하던 장발은 온데간데없고 짧게 친 머리를 삐쭉 세웠다. 캐주얼 정장에 넥타이를 하고서 구두까지 신었다. 나를 만나는데 구두를 신다니. 아내의 우려가 끝끝내 신발 안으로 들어갔는지 엄지발톱이 욱신거렸다. 상진이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 십 년 이면 다들 어찌 변해도 이상하지 않는지 생각했다. 상진의 어깨를 치면서 왜 이렇게 변했냐고 물었다. 그저 자신도 알고 있단 대답만 시큰둥하게 돌아왔다. ● 상진이 고급 중식집을 골랐다.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냥 몇 번 와 봤다고, 맛이 괜찮다고 했다. 웃으며 먼저 들어가는 상진을 뒤따랐다. 메뉴를 고르면서 학교에서 보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상진에게 말했다. "거긴 애들만 있는 곳인데 뭐."

강철규_Going home_캔버스 유채_162×130.3cm_2023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코스 요리가 차례차례 테이블에 놓였다. 팔보채, 탕수육, 동파육. 대학 땐 메뉴에서 없는 셈 치던 것들이었다. 이를 얘기하자 상진은 그랬었지 하고 말았다. 대신 진희는 잘 지내냐며 웃었다. 잘 지내는데 오늘 싸우고 나왔다고 했다. 웃으며 왜냐고 묻는 상진에겐 다른 이유를 둘러댔다. 둘러댄 변명이 더 웃겼는지 상진은 술을 마시자며 웨이터를 불렀고 이십만원이 넘는 고량주를 시켰다. 상진이 자기가 쏜다 고 했다. 시나리오는 계속 쓰냐고 물었다. 상진은 언제 얘기냐며, 졸업하고서 바로 취직했다고 했다. 상진이 취직이라니. 앞으로 더 놀라게 할 게 있는지 물었다. 상진은 3 학년 때부터 단편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투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불문과라는 추상적인 과에서 제 적성을 찾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곤 4학년이 되자 작은 영 화사에서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이 왔다. 동기들은 상진이 거장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나중에 잊으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수줍게 웃던 상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공백의 십 년과 시나리오를 빼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렸다. ● 이거 마시고 크립(Creep)이나 들으러 가자고 했다. 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저 쓴웃음, 바닥으로 내리까는 눈. 그건 일종의 배신이었다. 요즘이 아닌 우리 시절의 록을 말하는 거라고 테이블을 내려치고 싶었다. 우리의 시절. 록 밴드가 전 세계 젊은이들을 관통하던 시절. 지금이 힙합이라면 그때는 록이었으니까. 록밴드가 곧 장르고 록밴드가 곧 젊음이었으니까. 우리도 록의 물결에 몸과 정신을 맡기고 있었다. 많은 밴드 중에 단연 라디오헤드를 으뜸으로 찬양했고 톰요크가 크립을 울부짖을 때 같이 희열을 느꼈었다. 그때처럼 상진과 함께 소위 ‘떼창’을 함께 하고 싶었다. 상진이 장발을 고수한 것도 록의 물결에 완전히 빠져 있어서였다. 그런 상진이 아직도 그런 거나 듣냐고 되물었다. 듣는다고, 다만 진희가 싫어해서 집에선 듣지 못한다고 했다. 상진이 다시 웃었다. 넌 듣지 않냐며 묻자 시나리오 접으면서 듣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 나이에 무슨 록이고 밴드냐며, 이제 들으니 시끄럽고 특히 크립은 최고로 찌질한 노래라고. 찌질한 걸 들으면 자신도 찌질해 지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적당히 웃으면서 그랬지?라고 했지만 다시금 상진과의 관계가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젊음을, 아니 나의 청춘 일부를 상실한 듯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린 냉동 삼겹살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록을 불러야 한다고, 그렇게 쏘아대기엔 상진은 록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를 듣지 않는 듯했다.

강철규_Take6_캔버스 유채_53×45cm_2022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강철규_PERFECT BODY PERFECT SOUL展_갤러리인 HQ_2024

이유가 듣고 싶었다. 이토록 변한 이유. 대학 때라면 아무렇지 않게 물어봤으리라. 십 년의 공백이 무엇이라고 그런 질문을 선뜻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걸 상진이 알아챘다. 말하라고, 뭐냐며.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시나리오는 왜 접었으며 이렇게 변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그 정도가 심해서 이유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래서 선뜻 물어보지 못했다고. 상진은 우리가 그런 것들을 가릴 관계냐며 되려 서운해했다. 그러곤 낮은 목소리로 이유라 한 것을 말했다. 엄 마가 아팠고 돈을 벌어야 해서 시나리오를 접고 취직을 했다며. 변했다면 단지 그 뿐이라고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그게 끝이다.

강철규_White dot_캔버스 유채_25×25cm_2023

그래. 충분히 그랬으리라. 헌데 아팠다? 왜 그 뒤를 말해주지 않지? 거기까지 알아야만 갈증이 완벽하게 해소될 것 같은데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내가 술만 홀짝대고 있자 상진은 취해서 하는 말이라며 나더러 별일 없어 보여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신은 이제 로큰롤 같은 것 인생에 별 의미도 없고 추억을 헤집으면 비참해진다고 했다. 별일 없어 보인다니. 그 말이 듣기 언짢았다. 좋게 들으면 좋은 말이겠지만 나쁘게 듣자니 무시하는 것 같았다. 이를 끝으로 상진에게 묻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상진도 어렴풋이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남은 고량주를 따르면 세 잔은 나왔을 텐데 상진이 그만 가자고 일어났다. 우리 가 술을 남기고 간 적이 있었던가 떠올렸다. 상진이 계산을 하고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연이어 한 개비씩 더 꺼냈다. 그 게 마지막 담배란 걸 직감하니 작은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물었다. 오늘 왜 보자고 한거냐며. 상진은 연기를 한참이나 머금더니 허전해서 십 년 전이 떠올랐고 거기에 내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나를 보니 모든 게 떠올라서 다른 의미로 허전하다고 했다. "I want a perfect body, I want a perfect soul." 상진이 읊조렸다. "그래도 이 부분이 좋더라. 찌질하긴 해도." ■ 강철규

Vol.20240209a | 강철규展 / KANGCHEOLGYU / 姜哲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