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XX훼손 factcheck

조은상展 / JOEUNSANG / 趙銀相 / installation.media   2024_0127 ▶ 2024_0224 / 일,공휴일 휴관

조은상_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_인터랙티브 미디어_200×100×3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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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기획 / 서울시_(사)서울영상위원회_오!재미동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7:55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지하 199 충무로역사내 Tel. +82.(0)2.777.0421 www.ohzemidong.co.kr @ohzemidong

0.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상관없다. 나는 그냥 출근길에 핸드폰 화면을 끝없이 내리다 보니까, 서먹한 친구랑 너무 진지한 얘기를 하기는 곤란하니까, 머리를 식힐 때 깊게 고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A모씨의 일을 적당히 정리한 이야기를 적당히 듣는 거다. 그다지 자세하게 알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궁금하지도 않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진실은 나야 모르지.

조은상_NFT(natural fungible token)_FRP_35×13×13cm_2024

1. 애석하지만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은 그것이 발생한 순간에서 점차 멀어지며 어느새 처음과는 사뭇 다른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삭제와 추가와 수정이 일어난다.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에 바탕을 둔 자의적인 해석, 섣부른 판단에 따른 오독, 이해관계에 따른 다분히 의도적인 변형. 이렇고 저런 주석을 달아 그 사건을 여러 겹으로 감쌌다는 혐의에서 당사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때로는 원래의 사건으로부터 가장 멀어진다. 즉 이 모든 변형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며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조은상_NFT(natural fungible token)_FRP_35×13×13cm_2024_부분

2. 그 모순이 6분 남짓의 경쾌한 웃음을 수상한 것으로 만든다. 화면 밖의 누군가를 맞이하는 열렬한 환호와 응원은 직설적인 문구와 경멸의 표정으로 이내 그 진의를 드러낸다. 철저히 남의일 일 때는 관대하게 웃어주지만, 감히 자신과 동등한 자리를 넘볼 때는 망설임 없이 혐오하며 구분을 시도한다. 그를 포착하는 시점 역시 이중성을 드러낸다. 영상은 멸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닐 때 한 걸음 물러선 관찰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자신 역시 시선의 장에 포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쾌감을 느끼고 그의 치부를 찾아 기다린다. 영상의 끝에서 결국 그의 실체가 드러나 복수가 성공한 것 같지만, 악으로부터 승리했다는 모순된 확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상은 이내 다시 시작하며 끝없이 반복된다.

조은상_혼인빙자간음(I swear)_단채널 영상_00:06:30_2023

3. 조은상은 계속해서 이 이중적인 잣대를 다룬다. 색상 코드로 환원된 이미지는 해석의 가능성을 잃고 다만 문자와 숫자 몇 개가 된다. 그는 이 문자와 숫자 다발을 디지털 스크린에 띄우고 현수막에 뽑았다. 코드화된 잔잔한 스크린 속 세상에 파동이 이는 것은 움직임이 감지될때이다. 움직임은 개입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 은유로, 제멋대로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스크린 앞을 지나던 관객의 움직임은 우연한 개입을 의미한다면, 현수막 위 작가의 흔적은 다분히 의도적인 개입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는 색상 코드의 나열로 남아 있던 현수막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지 친절히 알려준다. 어떤 것을 찾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가만히 기다려 사태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도, 여러 형태로 개입해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모두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4. 당사자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태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하나의 의식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면 이것은 제법 현상학적으로 들리고, 타자는 물론이고 사건을 겪은 자조차도 모종의 이유로 각자의 해석을 덧붙인다고 말하면 이번에는 꽤 음모론적인 제안으로 들린다. 그러나 작가는 작업을 읽을 때 어떤 접근법을 취해야 하는지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작업에서 다루는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이 작가의 의도로 생각되는 경우가 잦지만, 그가 제공하는 불확정적이며 양가적인 시점은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기를 거부한다. 무더기로 쌓인 플라스틱의 대체 가능한 토큰과 자신은 다르다는 듯 좌대 위에 고고히 선 빛나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 역시 유행의 끝에서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0. 진심으로 말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게시글로, 점심시간을 채우는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각자 몇 마디 얹어볼 수 있는 그런 시시한 적당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 사건의 내막을 가장 자세히 알고 그렇기에 가장 절박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매우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진실을 모르겠지만. ■ 장유진

Vol.20240127a | 조은상展 / JOEUNSANG / 趙銀相 / installation.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