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도시 Abstract Urban Nature

추상도시 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서울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북한산에서 흘러 형성된 하천과 그 주변의 문화, 한강의 상류와 하류에 조성된 생태지역과 개발 제한지역, 신도시에 조성된 공원과 아파트 숲 등의 지역에서 '도시와 자연의 관계적 풍경'에 대한 주제로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인간의 삶을 위한 도시화로 인해 조성된 자연물과 조경물들이 시간이 흘러 생겨난 균열과 상처의 풍경, 이를 봉합하기 위해 생성된 풍경들과 마주하며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삶의 기억, 역사,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등의 관점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원준_바람과 빛 0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5×80cm_2023

이원준은 '바람과 빛' 연작에서 도시에 조성된 공원을 산책하고 사색하는 것을 수단으로 작업을 한다. 그는 공원에 조성된 나뭇가지, 잎사귀, 억새, 풀잎 등이 역광으로 비쳐 반짝이는 순간의 자연의 생명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작가가 바라본 공원 안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지만, 공원 밖의 시간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이 같은 현실체험은 움직임과 정지의 작업 개념을 낳게 하였고, 공원 안의 자연 대상은 저속 셔터로 동적인 표현을, 공원 밖의 건축물은 밝고 선명하게 처리하여 배경으로 구성했다.

이정목_예측하지 못한 0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80cm_2023

이정목은 '예측하지 못한' 연작에서 생태지역의 개발 제한구역에 조성된 식물하우스, 폐 하우스, 공터 등의 장소에서 의자, 끈, 페인트, 해골 등의 설치작업으로 개입해 장소의 특이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연작에서는 아날로그 카메라 용도의 특수필름을 생산하는 레볼로그(Revolog) 회사의 번개 효과를 내는 테슬라 필름을 사용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번개 형상을 만들어 익숙해 보이는 특정 장소에 긴장감과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철호_The Stone_모성애_젤라틴 실버 프린트_46×58cm_2023

이철호는 하천가나 공원에 조성된 돌, 건축의 기능을 위한 돌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형태를 찾아 '돌' 작업을 한다. 그는 한때 어떤 목적으로 쓰였지만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돌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바라보고, 공원에 조성된 돌들에서는 조경 구성의 의미를 해석해 낸다. 이렇게 해석된 돌들은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박혀 애처롭게 보이는가 하면, 수석가의 애장품처럼 다듬어지고 꾸며진 친근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정희숙_Immigration_세 자매_젤라틴 실버 프린트_58×46cm_2022

정희숙은 '이주' 작업에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우연하게 마주한 대상들의 기호화된 의미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의미적인 속성을 찾아 시각화한다. 그의 '세 자매' 사진은 길가에 심어진 세 그루 나무 형태에 동화되어 자신의 세 자매 가족을 연상하며 촬영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응시는 나무의 물성과 표상된 의미 너머를 지시한다. 또한 '세 자매' 사진은 무분별하게 잘려진 나뭇가지의 형체를 빗대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변모하는 자연풍경의 변형과 상실에 대한 우문현답의 중층 의미를 드러낸다.

최지영_Planterior_O+R_#003_검프린트_67.2×48cm_2023

최지영은 '플랜테리어' 연작에서 카페나, 정원, 온실 등의 공간 속에서 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특성을 기록하는 작업과 병행하여 공간 속 식물들의 타자화된 모습을 인물의 초상처럼 보는 작업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식물의 초상 작업을 모아서 선보인다. 하남시에 걸쳐있는 남한산성에 위치한 카페 식물원에서 30년간 성장한 다육식물의 주름을 고해상도의 렌즈로 디테일하게 담아내었으며, 이에 걸맞게 수공예적인 작업을 요하는 아날로그 검 프린트 기법을 사용했다. ● 이렇듯 작가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측면 가운데서 특정한 측면만을 가려내어 포착하는 것이다.'라는 추상(抽象)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도시와 자연의 관계적 풍경'의 표현을 위해, 도시에 조성된 자연물의 부분과 부분을 장님이 코끼리 몸통을 어루만지며 그 실체를 알아가듯이, 도시를 기록하는 재현의 한계를 넘어 표상되지 않는 비의미적인 요소들을 말하려 한다. ■ S·U·N

Vol.20240105a | 추상도시 Abstract Urban Natur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