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선 Another line

설휘展 / SEOLHWI / 薛輝 / painting   2024_0102 ▶ 2024_0129 / 일,월,공휴일 휴관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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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휘 블로그_blog.naver.com/seolhwi1

초대일시 / 2024_010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요일_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초이 GALLERY CHOI 서울 마포구 토정로 17-7 Tel. +82.(0)2.323.4900 www.gallerychoi.com @gallery.choi

'또 다른 선', 통념에 맞선 비순응적 조화 ● 표상(表象)은 언제나 미완전한 속성을 지니는 현전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그 결정체는 유동적이다. 내적 유발에 의한 행위의 표면적 반응은 정신적 현상으로 정의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시각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철학이 개입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시공의 누적된 표층이랄 수 있는 작가 설휘의 근작들은 바로 그 해석의 여러 층위로 인해 더욱 매력적이다. ● 작가에게 '행위'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조형의 드러남이다. 선(線)과 색을 포함한 재료 뒤에 숨어 있는 감각과 기호, 감정처럼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든 것들에 시각적 형태를 부여하는 절차이면서 미적 감각으로 걸러낸 심상의 모든 것이다. '또 다른 선'(Another line)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 작품도 마찬가지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7cm_2023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근작에서 역시 자유분방함과 '틀' 없는 조형성을 통해 작가 자신에게 존재하거나 이미 존재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작거나 큰 화면에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 들숨날숨을 통해 '화면의 감성'을 옹립시키며, 제3의 선(또 다른 선)을 대입함으로서 자신의 작업이 어떤 물질이기에 앞서 독자적 미의식의 결과물임을 드러낸다. 이를 달리 말하면 '행위에 담보된 회화'라고 할 수 있다. ● 그 중에서도 '선'은 '행위에 담보된 회화'의 중심이다. 덧댐과 덜어냄을 왕복하는 조형의 핵심에 해당된다. 그것은 단순한 붓질이 아니라 악(惡)과 선(善), 보편성과 비보편성, 인위성과 비인위성의 중간에 위치한 채 무한히 거듭되는 시간의 중첩이며, 지평선처럼 등장하는 선을 통한 계획성과 더불어, 조류의 깃털을 회화적 도구로 한 '무계획적 행위의 관계성'을 관통하는 설휘식 문법의 축이다.

ㅌ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23

미적으로 볼 때 이는 유보의 관념이며 개념상 가감의 보류에 가깝다. 의식과 무의식의 극점에서 구체화되는 이 선은 매우 즉흥적이기에 그 자체로 의식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줄 뿐더러, 고의적으로 병치된 화면은 최소한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원초적 에너지와 시간의 겹 위에 그의 작업이 위치함을 명징히 고지한다. ● 설휘의 근작에서 '선'은 의식의 시각성을 요청하지만 행위를 유발하는 자유의지 내부에서 비롯된 시간의 지연과 연속된 흐름 사이에 놓인다 해도 무리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적 변화와 물파적인 요소가 강한 그의 회화는 일차적으론 의식과 무의식을 교차하며 행위의 시간을 포함한 모든 유무형의 대상과 사고를 근거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23

근작에선 '조화'(調和)도 눈여겨봐야할 부분으로 꼽힌다. 안과 밖의 조화, 감흥과 침묵의 조화, 익숙함과 낯섦의 조화, 물성과 개념의 조화, 채움으로써의 공간과 비움으로써의 공간이라는 조화,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은유와 명징함의 조화 등이 그렇다. 따라서 그에게 계산되는 것과 속박 없음은 모호하다. 행위, 몸짓, 시간, 공간, 사물, 삶, 관계는 부유하나 경계를 두진 않는다. ● 물론 여기엔 우연성과 필연성, 절제된 규칙과 자유로움, 논리와 탈논리, 작위적인 것과 무작위적인 것, 질서와 무질서, 이성과 감정의 자연스러운 조화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 현실 내에서 발아한 '사유와의 조화'는 설휘의 근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자 변별력이다. (사유성은 그의 회화를 빛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 근작에선 활발하게 유동하는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에너지는 즉흥성, 우연성을 바탕으로 한다. 계획적 사고와 논리를 내치진 않으나 대척점에 자연스럽게 놓임으로서 동일성의 논리를 부정하며 의미의 고정성을 해체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작품과 작가 간 맥락을 획득하게 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현실과 탈현실,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한 서술을 담보하는 실체로도 기능한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23

결과적으로 그의 근작들은 인위적이지만 '무위'를 받든다. 인위와 무위 사이에서 행위는 기호를 소환한다. 여기서 기호는 다른 의미를 담은 다른 시각 기호를 만들어내는 것에 방점을 두기 보단 기호가 의미하는 과정을 다르게 이끄는 명사다. 때문에 설휘의 근작들은 평면에 앉힌 '기호화된 물성의 집합'을 넘어 미학적 관계망을 훑는 것, 행위를 축으로 한 작업으로 그림 자체와 작가 간 호환성과 기록의 권역을 되찾고 이를 통해 내재된 미의식이 반영된 산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 예술가는 다양한 미적 원천과 원형으로부터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하고 인용하며 끌어들여 영역의 지평을 넓힌다. 또한 작가의 삶 속에 집약된 경험과 선형적 시간을 비선형적 궤적으로 관통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기존 맥락과 다른 어떤 것이거나 '익숙한 듯 낯선 무엇'을 생성한다. 설휘의 작업도 그렇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23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채 목도되는 것과 내재된 것의 무게를 병첩해온 설휘의 근작엔 존재하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이 음악처럼 녹아 있다.(그의 작품은 어쩌면 존재자로서의 사회와의 호흡이요, 내적인 것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를 그러모은 일체의 투영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엔 리듬이 있고 운율이 있다. 마치 웅장한 교향악마냥 고독과 환희, 절망과 기쁨, 숭고함과 경쾌함, 무거움과 가벼움, 속박과 해방, 침묵과 외침 등이다. 이들은 숱한 붓질로 거둬 펼쳐놓는 행위로 표면화되며, '또 다른 선' 너머에 놓인 사유성을 촉발하는 원인이다. 그리고 사유성은 조형성의 밑동이자 궁극적으론 설휘만의 언어가 된다. ● 언어는 정신에 놓인 어느 한 부분을 동기로 삼지만 때론 비형상적 추상으로 치환되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무대에서 발현됨으로써 비로소 제 모습을 띤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의 근작은 가시적인 조형요소와 숨겨진 내재성에 함몰되며, 우린 그 속에 감춰진 의미들을 침묵의 격정으로 수용한 채 그의 '행위'를 되짚게 된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7cm_2023

붓과 공간 틈 사이에 놓인 '결' 또한 설휘 작업의 주목도를 높인다. 마치 억 겹의 나날을 드러내는 것 마냥 작가의 행위에 따라 서서히 (화면에)고착되면서 (드러나는)집약된 시간의 궤와 삶 속에서 체감했을 법한 어떤 '결'을 함축하고 있다.(작가는 지금도 아침마다 의례를 치르듯 캔버스에 붓질을 한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이때 몸이 먼저 말을 하고 내뱉는다. 몸과 마음은 동체다.) ● 자세히 보면 그 마디마디마다 세월의 품 안에서 광범위하게 연계된 존재의 본질 및 생의 파편들이 자리한다. 적어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환기' 역시 배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환기는 인지 가능한 형상 없이도 드러남이 명징하다. 밝은 색채와 가필(加筆) 없는 선(線, 특히 화면 중간을 지나는 선),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면서도 격정적인 흐름만으로도 얼마든지 목도 가능하다. ● 우린 그 환기 덕분에 화면 위로 부상한 시간의 그림자, '또 다른 선' 아래 드리운 찰나의 연속성을 마주할 수 있다. 둔탁한 듯 힘 있는 붓질에선 세월의 파편을 솎아내기 위한 작가의 고민 또한 읽을 수 있다. 특히 시공을 휘감는 에너지와 더불어 부각된 일편의 감성 또는 감각이 갖는 작은 떨림은 개념-공간-시간이라는 영원한 공생에서 설휘가 추구해온 본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틈'이다. ●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작가가 경험한 삶과 현실에 관한 격정의 잔재들이며, 순간의 상황에 충실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예술로 만드는 동기는 따로 있다. 바로 작가 내부에서 늘 꿈틀거리며 거주해온 '현존'에 대한 탐닉이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23

현존은 불현듯 발현되어 진실함을 좆는다. 그리고 그 진실함은 매사 기울인 진리를 통해 발화되며, 그렇기에 진리는 진실함의 거푸집이다. 이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면 진리란 존재자에 대해 부과되는 특질이다. 존재자는 삶의 이치를 생명력 꿈틀거리는 본연의 상관성에 개인의 서사를 군더더기 없는 조형요소로 심어놓으면서 회화에 대한 믿음, 깊이에의 다름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 결국 그의 회화는 실존을 실존답게 만드는 관계의 서술이다. 외적으론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매개이면서 비현실의 세계가 드리워지는 무대이지만, 가시적 환기를 소환하는 공간이고, 사고와 표상의 상호 충돌로 인해 생성되는 공감각적인 상황을 외면하기 힘든 조형의 장(場)이다. 물론 근작처럼 사고와 표상의 상호 충돌의 조형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곤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규칙적이거나 계산되지 않은 행위로부터 촉발된 그것은 해체와 통합이라는 양가성 아래 제 모습을 보인다. 이때 그의 해체와 통합은 해방의 상징이자 표상으로 귀결된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23

이렇듯 설휘의 회화는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는 '또 다른 선'을 기호로 치환하고 그렇게 태어난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규칙과 질서를 구축해낸다. 비옥한 신비성을 근간으로 작가 자신의 삶의 의미가 강조된 표상과 예술가로서 존재해온 초시간적 몰입의 흔적들을 개입시킨 채 폐쇄된 자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특유의 방법론을 내보인다. ● '또 다른 선'을 주어로 한 설휘의 작업은 인식과 지각, 구축과 해체, 환기와 소환과 같은 깊고 넓은 사유와 철학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근본적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이 어떻게 실제화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일정한 주기로 확연히 변화하는 작업들은 언뜻 일관성에서 벗어나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나'를 은유하는 고유한 문법이며, 그의 정신과 가슴에 끊임없이 쌓여지는 조화와 감정을 담아내는 장치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진솔하면서 때론 아픔과 슬픔까지 공감토록 하는 작가 내면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창, 일종의 항거할 수 없는 의식의 대리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설휘_Another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23

특히 작가는 그러한 의미의 구현을 특정한 장르별 규정에 제한 없이 전개하는데, 이 또한 작가 작업의 이해에 중요한 지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는 매체에 국한되는 양상이란 없으며, 빛을 이용한 작품이든 평평한 회화든 기법이나 장르 간 구분은 무의미하다. 순간의 붓놀림에 따른 찰나의 감성 혹은 불현 듯 스치는 그 무언가도 결국은 변화와 탈바꿈이라는 거친 숨결이 흩뿌려진 결과이다. ● 이는 설휘 스스로 동시대 예술가로서 위치를 자각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통념적 기준과 잣대에 비순응하는 자기 실험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만의 언어를 정착시키기 위한 몸짓의 연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의지가 의미를 만든다. '또 다른 선'을 제목으로 한 이번 전시(갤러리초이 초대전, 2024.1.2.~29) 역시 통념을 거부한 비순응적 조화,그 일환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2023.12.31.) ■ 홍경한

Vol.20240102e | 설휘展 / SEOLHWI / 薛輝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