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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1227_수요일_04: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2023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주최,주관 / 김지수 기획 / 홍예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선잠로2길 14-4 (성북동 46-26번지) Tel. +82.(0)2.766.7660 www.can-foundation.org @can_foundation
당신의 온몸으로 나를 맡아라 ●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쓰는 것은 하나의 회로도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그저 지금인 것."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1)
태초에 공백(空白)이 있다. 깊은 암흑을 가르며 흰 빛이 솟아오른다. 밝음과 어두움이 생겨난다. 밝음은 낮이 되고 어두움은 밤이 된다. 높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 위아래로 맑은 물이 들어찬다. 윗물은 아래를 향하고 아랫물은 위를 향한다. 아랫물이 한 곳으로 모이자 뭍이 드러난다. 뭍은 땅이 되고 모인 물은 바다가 된다. 촉촉한 땅 위로 씨앗이 심긴다. 질긴 껍질 속 가능성이 움튼다. 한 번도 전개된 적 없는, 순수한 미지 그 자체가. 여린 풀이 돋아나고 나무가 자란다. 열매가 맺힌다.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지는 빛이 두 갈래로 나뉜다. 큰 빛은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은 밤을 다스린다. 작은 빛보다 더 작은 빛이 하늘에 점점이 박힌다. 헤엄치는 몸과 날아다니는 몸과 기어가는 몸이 태어난다. 눈 깜짝할 새 무수한 몸이 생겨난다. 그중 마지막이 인간이다. 2)
나뉘고 흩어진 모든 생명은 하나다. 지고(至高)의 나, '하나의 진정한 나'는 '텅 빈 충만'이다.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늦둥이 인간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탄생의 비밀은 이 무한한 기쁨에 감싸여 있다. 그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이 세상의 끝은 어디인지, 우리에게 주어진 몸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묻는 자에게 가호가 있으리라. 그를 에워싼 공기가 파르르 떨리며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태초부터 함께해온 말이다. "이 말은 나무 이파리나 동물의 털에도, 대기 속을 날아다니는 각각의 먼지 알갱이에도 배어 있다. 물질의 원천, 최종적인 핵심, 최정상은 물질이 아니라 이 말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며, 영원토록 너 -먼지, 짐승, 사람- 를 향해 돌아서 있다." 3)
단 하나의 진실한 말이다. 의미로 가득 찬 이 말은 그저 귀로 듣는 게 아니다. 당신의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손끝에 닿는 진동으로, 혀끝에 감도는 여운으로,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로. 당신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그렇게 알아보거나 그리워할 수 있다. 이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아무리 멀리 있는 것이라도 가까이 끌어온다. 그 만남의 순간은 찰나지만 당신을 고양시킨다. 당신은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다. 지금-여기 왜 살아 있는지 알게 된다.
김지수는 이런 초연결의 감각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는 모든 걸 바쳐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무수한 나, 당신을 향해 있다. "하나라도 백 개인 향" 4) 이 경계 없이 퍼져 나간다. 냄새 분자들이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광활한 우주를 순식간에 다녀오는 향이다. 아주 미세하고 순간적인 움직임이다. 그는 이것을 붙잡아 캔버스에 옮긴다. 천천히 그림이 완성되는 동안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을 그. 예리한 신경이 주고받은 신호를 붓의 궤적에서 확인한다.
그의 주제는 순간이자 영원이다. 그는 '있음'을 그린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 공기 중에 떠도는 입자를 그린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미묘한 에너지를 포착한다. 흩어지는 것들 가운데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응축해 그린다. 꿈꾸는 시인처럼. 그가 시인의 몸으로 생산한 텍스트와 드로잉, 회화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다. "시인은 사라지기 쉬운 어떤 뉘앙스를 드러내 주기에 우리는 모든 뉘앙스를 하나의 변화로 상상하기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오직 상상력만이 그 뉘앙스들을 볼 수 있으며, 상상력만이 한 색채에서 다른 색채로 이행하는 길목에서 그 뉘앙스들을 포착한다." 5) 이러한 이행과 끊임없는 뉘앙스의 운동은 신작 「Smellscape」에서 두드러진다. 불그스름한 갈색과 진초록, 연초록이 엉켜 들며 서로를 향해 뻗어 간다. 닿을락 말락 하는 아슬아슬한 틈에 가느다란 숨결이 지나간다. 머리카락처럼 갈래갈래 나뉜 보랏빛이 상서로운 징조를 보인다. 곧 천지가 뒤집히며 새로운 창조가 시작될 것이다. 그림이 당신을 부른다. 먼 곳으로부터 바람결에 실려온 속삭임이다. "당신의 온몸으로 나를 맡아라." ■ 홍예지
* 각주 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아구아 비바』, 민승남 옮김, 을유문화사, 2023, p.15. 2) 창세기 1장을 다시 쓴 것이다. 3) 크리스티앙 보뱅, 『지극히 낮으신』, 이창실 옮김, 1984Books, 2023, p.17. 4) 김지수의 '냄새 드로잉'(2023) 연작 중 하나의 제목이다. 5) 가스통 바슐라르, 『공기와 꿈 – 운동에 관한 상상력 시론』, 정영란 옮김, 이학사, 2020, p.16.
Vol.20231227a | 김지수展 / KIMJEESOO / 金志修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