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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식 / 2023_1223_토요일_07:30pm
참여작가 초대작가 / 노열_배수관_이강훈_이시영 대학생 예비작가 10팀(37명) 경북대학교 2팀(6명)_계명대학교 2팀(8명) 대구대학교 1팀(3명)_영남대학교 2팀(7명) 대구예술대학교 2팀(7명)_대구가톨릭대학교 1팀(6명)
드론 아트쇼 2023_1223_토요일_07:30pm 2023_1224_일요일_07:00pm 2023_1231_일요일_07:00pm
작가의 신작로 작품 설명(도슨트) 2023_1223 ▶ 2023_1231 매일 07:00pm / 수성관광안내소 앞
주최,주관 / 재단법인수성문화재단 후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_대구광역시 (주)우경정보기술_아트뷰 예술감독 / 서영옥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점등시간 / 05:00pm~10:00pm
대구 수성유원지 일대 수성못 상화동산, 수성못 둘레 동편 산책로 (수성못입구~수성호텔 네거리)
수성문화재단(수성구청)주최·주관하는 '수성빛예술제'가 12월 22일에서부터 31일까지 열흘간 수성못 일원에서 열린다. 지난 2019년 수성못에서 첫발을 내디딘 수성빛예술제가 올해 5회를 맞이했다. 회를 거듭하며 수성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수성빛예술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에 선정된 대구 대표의 야간관광명소로 수성못의 황량한 겨울을 좀 더 따뜻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이제 겨울이면 수성빛예술제를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올해 수성빛예술제에는 주민 1,200여명, 기업 2개 업체, 마을공동체 4팀, 전문작가 4명, 대학생 37명(10팀)이 참여한다. 본 기획은 전문작가팀(초대작가 4명, 대학생(예비작가) 37명(10팀))으로 구성된 '작가의 신작로' 『관계relationship)』展에 관한 내용이다. ● 수성빛예술제는 '사회참여형 공공미술'과 궤를 같이한다. 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미술이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잃어버린 유대감을 회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개인적인 자유와 공공적 가치가 교차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미술은 자유로운 예술을 매개로 도시에서 지역으로 또는 소외계층으로 향한다. 작가의 작업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되는 공적 영역이 일반 대중의 삶과 그들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장으로 확장된다. 바로 수성빛예술제의 지향점이다. 1회부터 꾸준했던 작가존 '작가의 신작로(新作路)'가 그렇다. 특히 '작가의 신작로'는 수성빛예술제가 예술성을 겸비한 차별화된 '빛예술제'라는데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여기서 '신작로(新作路)는' '새로운 작품이 펼쳐낼 새로운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제목을 환기하며 참여작가 전원은 장소특정적 미술로 주제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 예술은 삶이 바탕이며 삶을 조명한다. 삶은 사람의 준말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랑은 불가분하며 사람은 사랑의 결정체다. 사랑은 긍정에 가까우며 어둠보다는 밝음이다. 빛은 밝다. 세상을 비추는 빛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가려진 곳에까지 가 닿는 빛은 시각적인 것에서 심상으로 확장된다. 바로 빛과 불가분한 조형예술의 영역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 → 삶 → 사람 → 사랑 → 빛 → 밝음(또는 심오함) 이라는 관계구도를 그려볼 수 있다. 우리 삶은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영어로 대화할 때 관계대명사를 사용하면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하다. 이때 '관계(relationship)'는 가교(架橋)가 된다. 주민과 작가, 수중과 육지, 지역과 세계 뿐관 아니라 소소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개인과 개인 간의 스토리가 또 하나의 관계도를 형성한다. 바로 이번 제5회 수성빛예술제 '작가의 신작로'팀이 풀어낼 주제다. '작가의 신작로' 작가들은 '관계'를 입체적으로 질문하고 제작한 작품 14점을 수성못 입구에서 동편 산책로에 설치한다. ● '작가의 신작로(新作路)'는 지난 8월부터 약 5개월간 초대작가 4인과 예비작가(대학생) 10팀(37명)이 몇 차례의 워크샵으로 기반을 다졌다. 야외 설치작업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예비작가(대학생)들은 초대작가와 1:1 멘토·멘티 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관계 구도는 학생들의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향후 작가로서의 진로와 방향성 모색을 고려한 기획이다. 대구시 6개 대학교 대학생(34명) 10개 팀은 공모를 통해 참여했으며, 이들은 초대작가뿐만 아니라 예술감독과도 잦은 소통으로 주제를 작품으로 녹여내는데 주력했다. 순수예술학과가 폐과 또는 통합되는 현실에서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예술 실험과 창작발표의 장을 제공하는 것은 작가를 꿈꾸는 미대생들에게 또 다른 활력이 된다. 학생 작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공공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기성작가와 타 대학생들과 연대를 맺고 현실적인 네트웍을 형성했다. 예비작가인 대학생 참여는 주민참여의 일환이며, 기성작가와 신진들의 하모니로 탄생한 작품은 지역주민들에게도 수준 높은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 5개월이라는 준비기간에 비하면 10일이라는 전시 기간이 턱없이 짧다. 전시 기간이 짧은 만큼 더 많은 관람객에게 작품을 알리기 위해 23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저녁 7시 수성관광안내소 앞에서 예술감독이 직접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작품 톡톡의 시간도 마련했다. 일련의 과정을 기록해 기록집으로 남김으로써 분위기에 들뜬 단발성 축제가 아닌 예술제의 진정한 가치를 제고한다. ● 배수관 작가는 수성못이라는 장소와 역사를 해석한 높이 3m 가량의 「상화, 광야(光野)를 멍하다.」를 제작해 동편 산책로 데크를 장식한다. 수성못이라는 장소성과 시인 이상화, 그리고 그의 친구 이육사를 빛이라는 주제로 관계짓는다. 2023년 동시대인들이 수성못의 화려한 밤 풍경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참여형 작품이다. 배수관의 작품 '상화 광야를 멍하다' 에는 시간 대비를 통해 빛의 소중함을 느껴보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이 스며있다. 노열 작가는 길이 10m 가량의 「치유터널」로 시민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이 잠시 걸으며 치유를 경험할 것을 권한다. 최근 전쟁과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빛과 밝은 색을 선사하며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무상무념의 공간, 치유의 터널을 설치한다. 이강훈 작가는 별을 든 높이 6m의 「어린왕자」를 두산오거리 입구에 설치해 시민들에게 내재된 동심을 자극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어린왕자 중).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동화적으로 표현한 작품 '어린 왕자'에는 마음속의 진짜 빛이 무엇인지,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치, 또 다른 빛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이시영 작가는 1550 × 3000 × 4000mm 강철에 조명을 단 '수성못 파빌리온'을 설치한다. 2500개의 모듈로 구축된 파빌리온은 수성못 주변 공간과 조각처럼 서로 맞물려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직각으로 맞물려 균형을 유지하는 십자형 모듈은 잔잔한 물결이 보이는 수성못에서 공간과 시민, 인간과 도시환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여주는 모듈 공간이다.
지역의 6개 대학교(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대구예술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미술 전공 관련학과 학생들의 풋풋하고 참신한 작품 10점도 '작가의 신작로'를 채운다. ● 영남대학교(YU트랜스아트팀)의 「Pinkbear」는 수성빛예술제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반기는 판다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판다가 따듯함을 나눔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기운을 쫓아준다고 한다. 이러한 판다가 수성빛예술제에 온 모든 사람들을 치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영남대학교(SSCK 팀)은 「Pin Point」를 설치한다. 구글 맵의 핀 포인트가 지도상의 장소 표시에 사용된다면 작품 「Pin Point」는 이러한 지리적 위치를 넘어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북대학교 (콰치와 팀)의 작품 「수성못 1915」는 처음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고 현재의 수성못이 존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재래식 펌프로 표현했다. 펌프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수성못의 현재와 과거의 관계를 잇는 매개체로 자리한다.
경북대학교(토둥이 팀)의 작품 「달빛 토토」는 빛나는 돌 틈에서 하늘 보며 휴식한다. 동화 같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바쁜 사람들에게 토토와 같은 여유를 선사한다.
계명대학교(세나클 팀)의 작품 「대구와 나」는 대구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타자의 입장에서 대구를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다수와 연결된다면 지구의 지역성 즉 로컬리티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계명대학교(조이윤 팀)의 작품 「Love my self」는 수많은 관계 중 가장 쉽게 소홀해지는 자신과의 관계를 조명한 작품이다. 현대인들의 자존감과 우울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love myself"라는 메시지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강조한다.
대구대학교(브라이티 팀)의 작품 「수달들의 하모니」는 사람과 수달의 관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수달과는 달리 서로를 위한 멜로디를 부르지 않는 삭막한 사회를 보며 앞으로 우리 사회는 서로를 위한 멜로디를 불러 줄 수 있는 빛과도 같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인터미디어학과 팀)의 작품 「Baobab Yudong」는 안정감과 포근함을 강조한다. 생명력과 생존력을 상징하는 바오밥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바오밥 나무처럼 여러 세대가 관계를 맺으며 긍정적인 소통을 바라는 희망이 담긴 작품이다.
대구예술대학교(1팀)의 작품 「문(gate)」은 과거의 변화와 미래의 희망으로 향하는 입구와 출구를 상징한다.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발에 맞추어 LED가 점등되며 이때의 빛은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대구예술대학교(Innovation 2팀)의 「Steps」는 수성못의 아름다운 자연과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앞으로도 함께 할 대구시민들을 상징하는 「Steps」는 작품이 형상 너머의 실재 풍광과 오버랩되어 수성못의 사람, 사람의 수성못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 국내 유일의 주민 주도적 빛축제에 전문작가가 예술작품을 버무려짐으로써 차별화된 '빛예술제'로 견인한다. 예술이 주민화합과 국가경쟁력 상승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례로써도 의미 있다. 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에 삶과 예술이 어우러져 풍요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장소인 수성못을 예술로 해석하고 아카이브 함으로써 대구의 또 다른 역사적 궤적을 남기는 계기가 된다. (2023. 12.) ■ 서영옥
노열 - 위로는 따뜻이 감싸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 노열 작가의 「치유 터널」은 팝업 공간 프로젝트의 범주 안에 있다. 긴 직사각 육면체 위에 삼각 지붕을 얹은 뼈대를 노란 천이 감쌌다. 안쪽 바닥엔 모래가 깔렸다. 차분한 관람자는 거기서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작업의 목표는 제목만으로 알 수 있다. 갖가지 일로 지친 각자 일상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작가 본인이 먼저 치유 받고자 하는 바람도 클 것이다. 작가는 두 가지 조건을 미리 염두에 두었다. ● 우선, 걷기. 이건 작가에게 중요한 일상이고, 모두와 이 치유법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짙다. 작가는 정해진 작업 일과 전후 시간을 산책으로 채운다고 한다. 작가는 본인이 터득한 걷기의 효용을 체험자들에게 제안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전제는 노란색이다. 계절이 겨울이다 보니, 위안은 온기와 짝을 맺는 게 정석이다. 여름이었더라면 색상은 청량함 쪽으로 갔을 거다. 노란색이 보여주는 가시성은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예술과 세상 나머지 것들을 확실히 구분시킵니다. 여러 무늬나 도상을 넣은 디자인도 고려할 만하나, 취향상 그런 제안에 설득될 작가가 아니다. ● 왜 이 인스톨레이션의 이름이 힐링 하우스가 아니고, 힐링 터널일까? 집을 나타내는 기호로써 각진 지붕이 있지만, 이 구조물은 내부에 사람이 머물지 않고, 양쪽으로 걸어가는 통로 성격이 크다. 「치유 터널」의 크기는 만만하지 않다. 길이가 15미터에, 높이 4미터, 폭이 2미터 50센치미터인 탓에 야외에서 주위 건조물 사이에서 묻힐 존재감은 아니다. 작품 규모가 꽤 되지만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완성할 성격의 작업도 아니다. 대부분의 수고를 혼자 치러야 하는 조건은 그의 본 작업이나 여기에서나 매 한 가지다. ● 여러분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었다면, 「치유 터널」은 도심 공간 가운데 미술 만세를 외치는 임시 공간이다. 그곳은 모두를 위한 미술, 일상의 심미화, 시민 체험 미술, 친환경성을 며칠간 이루는 예술의 코뮌이다. 그런데 본문은 사실 하나를 숨기고 있다. 상술한 내용은 아직 들어서지 않은 구현체를 묘사한 설명이다. 글을 쓰는 시점은 절차상 작품 완성 일시보다 앞서야 하며, 따라서 나는 미리 된 듯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 뻔뻔함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현장성이 큰 설치 미술에서 비교적 흔한 일이다. 정작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다. 이런 걱정은 나 혼자가 아니라. 작가와 진지하게 고민했다. ● 첫째 난점은 강한 바람이다. 호수를 끼고 부는 바람에 구조물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냐는 걱정이다. 영구적인 조형물은 땅속에 콘크리트 기초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럴 필요까지 없는 이번 일도 바람구멍이나 소재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작품 고도가 높지 않고, 출입부가 뚫려있는 게 횡력을 지탱하는 요소임은 맞다. 두 번째는 빛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작품은 주변에 압도당하지 않을 면모를 갖추었다. 그렇긴 한데 그건 「치유 터널」과 배경이라는 양자 간 관계였다. 여러 작품이 병렬 관계에 놓일 때, 관람자가 작업 의도를 잘 헤아릴지는 미지수다. 우선 필요한 장치가 조명이다. 작가의 계획은 내부에 엘이디 광원을 넣는 식이다. 나는 구조물을 밖에서 밝히는 매립 조명도 생각했으나,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빛을 가릴 우려가 있다. 엘이디 개수를 늘리면 관람률은 높아지겠지만, 작품은 인근에 있는 루미나리 시설과 다를 바 없이 된다. 더구나 전시 일정은 일대가 성탄절 장식 빛으로 가득 찰 무렵이다. ● 셋째 문제는 모래다. 깔아야 할 면적은 15 곱하기 4로 60평방미터란 계산인데, 쌓을 치수를 모르는 관계로 모래의 전체 용적을 알 수 없다. 어림잡아 4톤가량이 필요한데, 조달은 별개 문제다. 기간 동안 입장한 사람들이 디딘 자국과 어지럽힘은 작가의 예상 범위 안에 둘 만한 건지 모르겠다. 만약 그걸 참여와 과정의 미학으로 쳐서 두더라도, 이따금 모래를 평탄하게 고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모래가 적절한 재료가 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아래와 이어진다. ● 넷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다. 작가는 중력 조각을 구사하는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고 뒤집어서 돌출부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만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원리를 이용한 형태 완성이다. 일정하게 할애한 공간 안에서 일정하게 경과하는 시간이 중첩된 원리가 중력 조각의 기본이다. 이렇게 말하면 작업이 중력의 물리학만 엮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실은 이 문제가 건설적인 논쟁이긴 한데, 지금 상황이 진지하게 밀어붙일 때는 아니다. 작가가 "중력 조각"이란 명칭을 붙인 마당에서도 그렇다. ● 중력이 그의 조형에 끼치는 제1요소는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는 거대한 통일장 안에 중력 이외에도 여러 힘이 통하는 곳이며, 사물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장력을 발생시키는 만큼 물감 덩어리가 어느 지점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한편 물감이 마르면서 굳는 과정은 화학의 지배를 받는 영역이다. 여기에 돌기가 드러난 형태가 유기체의 어떤 얼개를 연상하게 한다거나 군집의 밀집과 산개와 흡사한 점은 생물학의 여러 가정을 보여주는 계기도 된다. 이렇듯 자연과학에 좋은 교보재로 소개될 여지가 그의 작품에 있다. 그러나 우선은 예술이다. ● 현재까지 나온 가장 큰 대작은 을갤러리에서 공개되었던 대규모 설치작업이다. "흐름에 따르다"라는 주제로 완성한 그 작업은 전시장 천장에 쇠줄로 그리드를 만든 다음, 긴 막대기에 붓을 이어 격자에 분홍색 물감을 연거푸 겹친 결과다. 그때가 확대결정판이라면, 이번엔 축소판 또는 변형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돌기처럼 뻗어난 형태는 고드름이나 종유석을 닮았다. 「치유 터널」에도 이 흔적이 등장한다. 이건 마땅히 연출되어야 하는 시그니처다. 이는 중력 조각과 설치작업을 잇는 물증이다. 앞에서 했던 모래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된다. 이 공간 프로젝트의 계획은 바닥에 모래를 깔기 전에 페인트로 도색 작업을 하는 순서다. 두텁게 바른 흰 안료가 돌기를 키우는 와중에 물감은 바닥에 떨어진다. 만약 모래 위에 떨어진다면 현장은 또 다른 흔적이 남기는 셈이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이다. ● 아무튼 마지막 물음이 여기서 발생한다. 그건 바로 한정된 설치 시간 안에, 물감 고드름을 흡족할 만큼 자라게 할 수 있냐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작가와 작업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은 설령 고개를 들어 그 부분을 봤다 하더라도 그걸 서툰 페인트칠로 여길 수도 있다. 이 점은 작가가 매체를 오래 다뤄온 탓에 문제없이 처리할 것이다. ● 「치유 터널」은 노열 작가의 미술 세계에 익숙한 사람들이 볼 땐 그의 작업실과 산책로를 벗어난 일종의 나들이로 생각할 여지가 크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위로할 범용성이 여기에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지치게끔 하는 근원은 다 다르다. 작품으로 위로받을 지점 또한 한결같을 순 없다. 우리가 치유의 터널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그 앞에는 비슷한 고민이 새롭게 기다리고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15미터를 거닐며 얻는 짧은 체험이다. 하지만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오래도록 남는 기억과 감흥이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에게 이 작업은 나중의 어려움을 자가치유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 윤규홍
이시영 - 무한우주를 보는 「파빌리온」 ● 이시영의 「파빌리온 pavilion」은 가변적인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을 그 기획의 중심 개념으로 두고 있다. 실제 장소의 주변 환경을 작품화하는 설치작업으로서 미학적 관점과 작품 자체를 공간으로 설정하여 관람객이 공간 내부에서 작품과 관계하는 전시공간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설계한 점이 흥미롭다. ● 작가가 선택한 특정 장소, 지구별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867-1번지 수성못의 동남쪽 모서리 십자 교차로에 인접한 인도 위에 조각가 이시영이 설계하고 제작한 세로160×가로310×높이350㎝ 크기 직육면체 형태의 조형물이 서 있다. 철제로 된 이 '파빌리온' 조형물은 18×18㎝ 일정한 크기의 십자형 모듈 2,500개를 결합하여 만들었으며, 1) 임시성과 가변성, 2) 장소 특정성, 3) 부분으로서 작은 개체가 결합하여 전체가 되는 구축성, 4) 안과 밖이 열려있는 혹은 그 경계가 없는 확장성 구조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 '파빌리온'은 박람회와 전시회에 이용되는 가설 건축물을 일컫는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상업문화의 산물이던 박람회 형태의 전시 건축물에서 변화하여 오늘날에는 예술과 결합한 조형 건축의 한 형태로 지칭되고 있다. 작가는 장기간 사용의 목적이 아닌 일회성의 장소, 시간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한시적 공간'의 맥락은 유지하되, 미술의 '설치(Installation)' 작업과 함께 조형 건축의 내부공간과 그 안에서 바라본 주변 환경 전체를 전시 작품화하여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파빌리온」을 기획하였다. 이것은 이 야외 설치미술을 즐기는 관람자의 공간 경험이 경험 대상과 사이에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작업이 의도한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제시되었다. 아마도 헨리무어(1898~1986)가 전통적인 조각에 구멍을 뚫어 작품의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상호 소통하고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임을 발견한 이후로 더 자율적으로 확장한 조각의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 이시영이 생각하는 조각은 시각과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3차원의 물질성에서부터 2차원, 비물질성까지 확장한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보고, 만지고, 내부로 들어가 참여하는 다양한 감성체험의 장으로서 조각을 생각했다.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의 바우하우스 신교사(1925~26) 및 르 코르뷔제(1987~1965)의 사보아 저택(1928~31),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8~29) 등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흠모해온 조형 건축물이며, 이번에 제작한 파빌리온도 이들을 참고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고 수많은 구멍이 뚫린 파빌리온, 아니 내부와 외부의 경계벽이 느슨하거나 아예 없어져 버린 파빌리온은 어떨까도 생각했다. 내‧외부의 경계가 없으면 관계의 극적인 자연스러움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구조물의 내부에 들어가서 몸을 돌아보며 밖을 내다보면 주변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잔한 수면과 그 주변 거리의 카페와 음식점,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들, 치열하고도 한편은 여유로운 삶의 모습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나무와 숲, 산과 하늘, 구름, 밤에는 별과 달도 작품이 된다. 이 파빌리온에서 보는 것은 무한우주의 공간이다. ● 작은 크기의 모듈을 결합하여 구조적 형태를 구축하는 설계는 정확한 계산과 원칙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어린이들의 조립형 블록 장난감에서처럼 동일한 가치 추구의 원칙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직각으로 맞물려 균형 있게 결합한 십자형의 모듈은 하나의 덩어리를 구축하며 예술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1)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것, 2) 남녀 성별, 나이, 세대를 초월할 것, 3) 오래 볼수록 질리지 않고 단순할 것, 4) 활기차고 매력을 가질 것, 5) 저항으로부터 상상력, 창의력, 성장을 지향할 것, 6) 늘 화제가 될 것, 7) 안전성이 높고 멋질 것. ■ 정종구
배수관 - 배수관의 조각-멍의 작가적 조형 의식 ● 올해 5회를 맞이하는 '수성빛예술제'는 '주민 주도형 빛 예술축제'이다. 지역의 전문작가들이동참하는 이번 예술제에서 배수관작가는 수성못이라는 장소와 역사를 해석한 높이 3m 가량의 「상화, 광야(光野)를 멍하다.」를 제작해 동편 산책로를 장식한다. 이를 계기로 건조한 일상에도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의 나눔과 행복의 가치를 실현하는 빛 예술제가 되길 바란다.
Ⅰ. 근본적으로 인간이 행하는 예술적인 제작적 행위는 지극히 의식적이자 의도적 구조를 지닌다. 작가가 작품에 예술적이자 미적 의미를 부여함에 어떠한 작가적이자 제작적 의식과 의도를 반영하는가에 문제 삼는 이유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 의식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영역을 說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지적할 바는 의식이라는 주체가 인간의 편에 놓여 있는 만큼 의식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의식의 저편에 놓여 있는 의식의 객체, 즉 의식을 낳는 빌미를 제공하는 '현실―형식'으로서 세계 대상에 대한 매체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인식이 세계와의 접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 작가에게 있어 의식은 바로 이 세계라는 접촉 매체에 대한 작가적 수용을 동반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의식은 작가적 의도를 수반하게 되고 그 의도가 접목된 의식이 작가에게 자리함과 동시에, 작가는 그 의식을 바탕으로 해 작품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이들 과정을 동반하는 가운데 작가적 의식은 의식으로서 예술적인 眞 의미를 확립하는 것이다.
Ⅱ. 작가 배수관이 지향하는 작가적 세계이자 작품세계에 있어 '멍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멍한 상태의 자기를 비우는 몰입의 과정 속에서 ...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몰입'의 과정이자 상태로 귀결짓는 작가적 의식은 예술적으로 큰 의미를 내포한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적인 '의식의 흐름'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으로 대체되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멍의 사전적 의미가 그렇듯이 한편에서 보자면 예술적 의식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는' 상태로 진척되는 것이다. 이는 예술적 활동이 '몹시 놀라거나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얼떨떨한' 정신상태에서 비롯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가적 몰입과정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Ⅲ. 진정한 의미에서 '멍한 상태'는 의식의 집중에서 오는 것이 아닌 무의식적 진공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멍한 상태는 얼빠진 상태로 실재한다. 멍한 정신상태는 주어진 사실에 대한 실망과 낙담의 상태에서 비롯한다. 작가 스스로도 작가적 의도대로 그러한 정신적 과정이자 상태가 작가적 의식을 지배되기를 원한다. 작가적 의도대로 작가적 의식으로 멍한 상태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 주목할 점은 이의 구현을 위해 작가는 작가적 의식이자 의도가 사적 이익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의식의 멍한 상태, 즉 의식의 무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적 정서가 작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전제한 바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의 의식은 멍한 무의식의 상태에 안착하기보다는, 또한 그것이 사악한 의식으로 도치되어 작가적 의도가 반영되기 보다는 그 의식을 소실시켜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작가 배수관은 괴체적 속성 부여를 특성으로 하는 조각이란 예술적 제작을 구성함에 굳이 멍한 의식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과정을 전제로 작가는 스스로 작품이란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럼으로써 작가는 스스로 작가적인 사적 욕심이 배제된 공간을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공공적인 조각적 특징을 채움이 아닌 비움의 공간으로 이끌어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구현해 나간다. 이렇게 작가는 조각의 예술적이자 제작적 수단을 통해 작가의 과한 사적 욕심을 버리고 그의 작가적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확장해 나가 결과적으로는 조각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Ⅳ. 작가는 작품제작이 '생활의 일부로서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극복' 할 것을 지향한다. 작가적 무의식 상태인 '멍의 의미' 또한 이러한 이유로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멍한 의식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의 시간, 극적 몰입의 과정을 반복' 할 뿐만 아니라 이들 과정을 작품제작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전제한 멍한 의식상태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그의 작가적 의식은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가의 의식적이자 의도적 산물인 조각품들은 '멍―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헨리 무어가 작품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시도한 것과 같은 작가적 의식의 반영이다. 그렇게 그는 작가적 조형물의 속을 비워가며 그 공허함을 의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치환해나가고 있다. ● 이렇게 작가적 조형의미를 확립해나가고 있는 주어진 작가적 의식은 '멍한 작가적 의식'을 통해 구멍 나 버린 조각공간을 채워가면서 스스로 조각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스스로 의식을 소실해 가면서...
「작품 1:상화, 광야「光野」를 멍하다」는 광복 78주년에 즈음하여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에 빼앗긴 들(광야)을 바라보던 과거의 이상화가 소환되어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 찬 현재의 수성못을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면 무슨 생각에 잠길까 상상해 보는 작품이다. 당시 같은 지역 출신으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역시 국권을 상실한 국토를 텅 빈 암울한 들판으로 비유하면서 '광야「曠野(허허벌판)」'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 「작품 2:멍 때리는 친구」는 2023년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수성못의 화려한 밤 풍경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참여형 작품으로, 두 작품의 관계 속에서 시간적 대비를 통해 빛의 소중함을 수성못에서 느껴보도록 하였다. ■ 홍준화
이강훈 - 어른 왕자의 새로운 여정 ●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中에서) ●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 『어린 왕자』와의 추억은 가슴 한쪽 희미한 글귀로 남아있다. 어린 왕자의 대화에 귀 기울였던 그 시절의 어린 왕자들은 시간이 흘러 모두 멋진 왕들이 되었을까. 아니면 어린 왕자가 만났던 소행성의 어른들처럼 되었을까. 자기의 행성으로 돌아간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지구에서 어린 왕자와 함께 꿈을 꾸었던 어린 왕자들의 이야기는 이강훈의 작품에서 이어진다. 이강훈의 작품에는 어린 왕자를 통해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살이를 흥미롭게 들었던 꿈 많은 어린 왕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왕자들을 어린 시절의 꿈은 희미해지고 삶에 갇혀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른이 되어 버린 어렸던 왕자들이다. ● "당신은 당신이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당신의 장미에 당신은 책임이 있어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던 말들은 세월이 흘러 왕이 된 어린 왕자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이 길들인 것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멋진 성과 좋은 말이 필요해졌고 자신의 왕자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 많은 재화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늘 쫓기듯 자신이 어린 왕자였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이강훈은 이런 모습을 '어른 왕자'라 말한다. ● 그는 작품에서 이러한 어른 왕자를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어른 왕자의 작품들에는 순수하고 꿈 많던 어린 왕자가 청년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가 태어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인해 감상자와 공감 형성이 쉽지 않은 예술 형식인 조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감상자와 소통 너머의 감정들로 연결된다. 감상자와 작품과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심리적 동질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강훈 작가의 작품 세계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확장성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삶의 성찰로부터 출발한다. ● 이강훈은 20대부터 지금까지 삶의 여정에 따라 작품의 변화를 가져왔다. 신화적 상상의 동물에서 자신을 비롯한 현대인의 심리를 투영한 '오롯이'까지 작품의 매체, 표현, 형상의 변화가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실존적 물음은 존재의 본질, 자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삶과 작업 여정을 함께 해왔다. 그는 청년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예술가에서 선생으로, 실존적 존재의 부재 안에서 삶이 이끄는 데로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안에서 멋진 왕이 되기 위해 긴 시간 '오롯이' 나갔다. 한순간도 자신이 예술가임을 잊지 않고 있었던 그는 어느 순간 실존적 존재를 자각하고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은 인생의 순간에 마주하는 정답 없는 질문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전환을 갖게 되었다. 멋진 왕이 되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예술가로서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행복한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던 여우의 말처럼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세계를 대하는 태도도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왕자가 아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어른 왕자가 되기로 했다. ● 그러므로 이강훈의 작품은 생텍쥐페리가 남긴 어린 소년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그의 조각상들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지만 가슴에 꿈을 간직한, 실존적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꿋꿋한 어른이다. 가늘게 왜곡된 인물의 형상은 작가의 상징인 스카프를 바람결에 날리며 가느다란 목을 옥죄고 있다. 스카프는 삶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글픈 눈매, 고개를 떨구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애원하듯 또는 절규하듯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이와 달리 사색에 빠져 있거나 망원경을 통해 열심히 별을 찾는 모습 그리고 힘찬 걸음을 내딛는 어른 왕자의 모습들도 있다. 이런 양가적인 모습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 그에게서 '어른 왕자'의 의미는 조금씩 변해왔다. 어른이 되어 삶에 쫓기듯 살아가던 어렸던 왕자들에서 자신의 꿈을 꾸는 어른 왕자의 모습으로 변해왔다. 작가의 무의식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온 어른 왕자는 이전의 작품보다 더 확장된 의미로 전개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현대인들의 무거운 삶을 대변하던 어른 왕자는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열정을 모아 당당히 불을 밝히는 모습이 되었다. 수성빛예술제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은 당당히 하늘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꿈과 가족을 위해, 이 시대의 모든 어린 왕자들을 위해 불을 밝힌다. 이런 시각적 형태의 변화는 그의 작업에 새로운 전환이 전개되고 있음을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각적 형태 변화가 작품 세계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 세계를 지배했던 실존적 물음에 대한 탐구는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인생이 한층 깊어질수록 주제에 대한 탐구는 깊어질 뿐이다. 그리하여 조각가로서 매체에 대한 고민이나 형상의 창조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그의 작품에는 철학적 깊이를 더해 갈 것이다. ■ 서희주
Vol.20231222e | 작가의 신작로(新作路)-관계-제5회 수성빛예술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