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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대안공간 모호주택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월,화요일,2월 10일 휴관 (2월 12일 대체공휴일 정상운영)
대안공간 모호주택 alternative space MOHO HOUSE 대구시 중구 태평로22길 41-25 (북성로2가 3-2번지) 3층 모호주택 Tel. +82.(0)10.3323.7900 www.mohohouse.co.kr @moho_house
눈이 흩날려도 이상하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 12월. 대안공간 모호주택에서 준비한 기획전시 『흩날리는 것들 Something flew off』 현수하 전을 개최한다. 이번 기획전시는 대구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신진작가 현수하 작가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로 그의 신작들과 함께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번에 볼 수 있다. ● 현수하 작가는 그림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질문들을 담아낸다. 무언가를 불분명해지기까지 위한 명료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며,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주요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은 일상과 어린 시절의 모습, 도시의 변화와 현대인의 모습을 연결시키며, 우리의 존재와 기억, 감정의 다층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 대안공간 모호주택의 기획전시를 통해 현수하 작가의 예술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우리의 일상과 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진솔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대안공간 모호주택
흩날리는 것들 1) ● 1. 작가 현수하는 지난 2021년 대구 수성아트피아가 기획·후원하는 수성 신진작가로 선정됐다. 관련전시에서 '사랑의 방법들'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그 중 「남겨질. 수많은」(2021)을 비롯해한 「나무 위로」(2021), 「덕영탕」(2020), 「뱅뱅이」(2018), 「Ride a Rabbit」(2018) 등의 일부 작품은 같은 해 열린 대구발전소에서의 전시('우리 곁의 모든 곳', 2021)를 거쳐 이번 '모호주택'에서의 개인전(2023.12.20.~2024.2.18.) '흩날리는 것들(Something flew off)'에도 출품됐다. ● 동일한 작품을 몇 년에 걸쳐 다시 선보인다는 건 모두 신작으로 채워지길 기대하는 이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다. 만약 작가의 전시를 줄곧 지켜보아 온 누군가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작과 구작이 하나의 기획 아래 묶이는 건 흔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전시 규모와 성격에 따른 판단이거나, 작업의 맥락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애정이 있는 작업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픈 작가의 마음이 작용하기도 한다. ● 필자는 현수하의 실제 작업을 처음 보았고, 신작과 구작을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작업의 맥락(context)' 측면에서 유용했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작업은 포트폴리오 내 사진으로만 접할 가능성이 큰데, 어떤 이유로 구작이 다시 걸렸든 옛 그림과 근작의 병치는 오히려 작가 작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시차에 따른 그동안의 작업변화의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나름의 유익함으로 꼽힌다. ● 어쨌든 '모호주택'에서 만난 그의 그림들은 그동안의 작업 흐름과 더불어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양한 사유로 정주하지 못하는 일상(日常), 그 안에서 움직이는 생명들, 거주하거나 그러하지 못한 존재들, 시공에 남겨진 흔적들 또는 체취를 읽을 수 있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2. 현수하의 작품들은 일상을 텃밭으로 한다. 경험적 증거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어떤 믿음을 잉태한 것임을 고지한 채 겹겹이 쌓은 장지에 새긴다. 대표적인 작업은 물줄기가 기묘하게 솟구치는 장면을 그린 「밤의 소란」(2021)과, 네 명의 인물이 어느 바닷가를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을 묘사한 「Our Summer」(2023), 대구 내 실제의 공간을 파릇하고도 상큼하게 엮은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2023) 등이다. '공허'가 자리한 재개발 아파트 2) 와 '흔적' 3) 만이 부유하는 놀이터, 을씨년스러운 공사장 4) 과 다리 밑 등도 그 일부다. 대부분 우리 가까이 혹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쉽게 발견되는 광경들이다. ● 이들 그림은 다소 직관적(直觀的)이다. 대상의 직접적 파악에는 형상의 친숙함이 한 몫 한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거주지를 오가며 느끼는 환경의 변화, 그것에서 건져낸)들은 경험에 기반 한 타자의 공감을 소환하고, 몇몇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유도하면서 이면에 다가서도록 하며, 다소의 초현실적 분위기는 알 수 없는 감정적 깊이에 기여한다. 이 외 작가에 의해 지정된 시간과 장소들은 개인의 관점에서 풀이되지만 한편으론 사회적·문화적 내러티브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현수하 작업만의 특징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일상을 통한 기억과 경험을 끌어와 인간 삶과 사회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반영하는 회화적 공식은 보편적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조형적, 미학적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주목받기 어렵다. 일상을 기록한 그림은 현실적인 까닭에 친근함과 편안함, 높은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반면, 제한된 호소력과 진부함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현수하는 어떤 방식으로 그 평범함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승화시키고 있을까. 5) 일단 현수하의 작품은 시각적 매력이 있다. '모호주택' 출품작 전부가 그러한 것은 아니나 6),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를 포함한 「무늬」(2023), 「밤의 소란」 등의 작품에선 선, 형태의 배치를 포함한 요소들이 안정감 있게 자리하며 빼어난 구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색채의 조화와 시각적 깊이는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기에 아쉬움이 없다.
여기에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와 「무늬」 등의 작품에서 드러나듯 '보이는 것' 너머의 서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한다. 이는 단지 그의 그림이 망막에 맺힌 이미지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표상 뒤에 감춰진 시간과 공간, 기억과 경험, 작가의 시선과 사회적 메시지가 중첩-교차-혼합되며 새로운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보이는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관람자를 안내한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 이 중 중첩과 교차, 혼합은 더 이상 원래의 것이 구별되지 않는 영역 속에 있다. 시공의 결, 그 안에 자리하기에 그렇다. 특히 「무늬」의 경우 재현을 넘어 작가의 감각적 체험이 만들어낸 시공의 콜라주를 통해 다차원적인 시간성을 가시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희석되는 모든 감정과 기억의 교차, 흔적과 교류되는 세월의 간극, 공간이 기억하는 이미지와 사적인 기억이 상상력 아래 공존하는 양태는 인상적이다. 형상은 다르지만 오랜 시간 쌓인 작가의 붓질-그 무수한 시간의 레이어(layer) 7) 로 채워진 작품 「뱅뱅이」나 「Ride a Rabbit」 등도 매한가지다.
3. 하나의 화면에 풍경의 단락들을 누적-중첩-천첩시키는 행위는 대상의 외삽 8) 이 아닌, 기억의 채록에 가깝다. 그 시작은 사실적인 풍경을 캔버스나 종이에 전이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명료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매체 관점에서 보자면 일상성과 접근성의 용이함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서구 모더니즘의 원형을 따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하지만 그의 작업을 한 꺼풀 벗겨내면 단지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론 사실성이 사라지고 난 후의 존재의 실체와 밀접함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흩날리는 것들'이다. ● 현수하의 작업은 동시대적 상황과의 거리감이 좁다. 대개 일상을 소재로 한 풍경임에도 사변적인 내레이션에 멈추지 않은 채 공동체의 기억과 경험을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 잃어버리거나 잃어가는 자리(장소)를 존재와 부존재 9) 로 구분 짓는 환경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감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우리의 관심사로까지 확장된다.
그의 작품에서 화자(畵者)인 '나'는 경계된 자리에 있다. '나'는 언제나 공간과 관람객의 관계를 새롭게 위치시키며 사회적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매개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작품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에서 '나'는 사물과 풍경의 단일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고, 「Last Fantasy」(2021)에서는 누구나 하나쯤을 갖고 있을 법한 공통의 기억과 경험을 각자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기억으로 타자화 함으로써 시공의 층위를 재구성-우리 삶의 양태와 존재, 시공의 변화를 다시 일깨운다. 작품 「무늬」와 같이 때로 모호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조차 '나'는 어떤 지정을 이탈한 자유로운 탐색을 열어준다. ● 그의 작품은 객관적 묘사에 덧칠된 주관적 조작의 흔적과 과정을 통해 회화의 재현기능을 되살리고 가시적 실체와 시간의 층위를 접합시킴으로서 각각의 특질을 존재화하지만, 작가의 시선과 공간의 변주를 개입시킴으로써 결국 회화의 평면성을 통해 미적의미를 구현하고자 함을 드러낸다. ● 미적의미의 구현은 계산이라기 보단 무의식적 반응에 가깝다. 촘촘하게 스케치를 하며 공을 들이는, 재료의 쓰임에도 민감하지만 대상과 풍경, 인물의 선택은 작가의 비의도적인 과정 속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시공을 포갠 결과들은 결국 여러 층위에 놓인 물리적 거리감과 고유한 내러티브를 포박한 평면성, 시공의 직렬이라는 지형도를 그린다. 10)
4. 그의 그림은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 당장의 새김과 기억을 '과정의 집합' 아래 복원하는 경험이자 희미해지기 전과 후의 잔상을 사실성을 통해 재생산함으로써 '관계된 삶'을 담아내고 있다. 허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과정의 집합'은 전달해야 할 것과 전달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것들의 지속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익숙해 발견되지 못한 것의 발견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삶의 지층을 덮고 있는 현재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분명 현수하 작업의 장점이자 특별한 여울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 특히 회화설치와 모호주택 개별 룸에 내걸린 드로잉 설치작업 「가장 보편적이고 아주 찬란한 날갯짓」(2023) 11) 에서 확인되는 매체 및 조형의 확장성은 현재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실험적 태도를 증거하기에 보다 건강하고 밝은 미래를 예상하게 한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확실히 그렇다. 12) ● 다만 약간의 조언을 덧댄다면 가급적 개인의 감정에 의탁-서술하는 건 지양하고, 구작들(재개발로 인한 이주, 인간 삶의 문제 등)에서 이미 펼쳐낸바 있듯 예술작품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새로운 "정지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틈" 13) 으로서 기능하는 것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은 인류 공통의 현안에 대해 '토론을 유도하는 장소'이자 '논의'의 매개이지 사적 일기장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동시대미술 14) 은 변화된 세상을 읽고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일 뿐, 아무도 관심 없을 개인의 넋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미술은 급소를 정확히 찌를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누구나의 머릿속에 있지만, 아무도 감히 보려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미술이다.") 15) ● 또한 현재처럼 매체실험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어가 다양해야 문장도 수월하다. 특히 시대인식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탁월한 작품은 언어의 풍부함에서 비롯되고 시대성이야말로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인 탓이다. ■ 홍경한
* 각주 1) '흩날리는 것들'은 모호주택 기획 초대전의 전시 제목이다. 이번 전시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 빌려왔다. 2) 장소가 지어지고 허물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설치형식으로 구현한 「남겨질, 수많은」. 3) 흔적을 좆는 과정에서 우린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받아들이며 기억이라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경험을 통해 우린 자신만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4) 이는 '흔적'과도 맞물리면서 "지역성을 상실한 건축물로 인한 환경의 혼란과 생활의 터전으로 영위 했던 사람들의 개개인의 역사도 사라지고 있다."는 작가의 발언으로 대체 가능하다. 5) 아직 독창성, 개성, 표현력 등에서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의 그림들(그 중에서도 근작들)은 작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투사한 미적 문법이 점차 견고하게 다듬어져 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용적 부분에선 과거 작업의 연장을 고려해도 될 법하다. 6) '모호주택' 출품작 중엔 근작 대비 다소 설익은 옛 작품도 있다. 이는 작품별 시차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 간 변화가 읽히고 서로 비교되며 드러난 결과다. 7) 장소에 덧댄 시간의 층은 '선(線)'으로 나타난다. '선'은 세월이 순환하면서 잃어버린 기원 부재한 대상이 그의 화면을 통해 새로운 원본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엿보게 하는 수단이다. 기원부재와 현재로의 환원 사이에 놓이는 건 시공의 평형과 평면이다. 8) 이는 회화가 '스스로 예술화'되는 단계를 나타내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것의 모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함을 넘어 인식론적인 측면까지 염두에 둔 작업이랄 수 있다. 9) 현수하는 존재하는 대상과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환경의 서로 다른 성질에 의한 갈등을 공간, 사람, 시간이 어우러진 무대를 통해 상황을 연출하고, 빼어난 주연과 조연 없이도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건 극적이거나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되레 나지막하고 조용한 '울림'에 속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시간과의 관계를 훑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10) 일상 풍경에서 건져 올린 각각의 이미지는 고유의 형과 색을 외면하지 않으나 현수하 식의 방법론을 거치면서 사물에 부여된 원래의 가치는 해체되고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되며, 그 새로운 이미지 속에 다시 주름을 편 시공이 배어든다는 것이다. 11) 이 작업은 하늘을 날거나 어딘가에 앉아 있는 새를 묘사했다. 작가는 이 작업과 관련해 "새가 도약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무수한 노력과 반복, 촘촘한 시간이 응집되어 빛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혼자 애틋해진다."고 작가노트에 썼다. 12) 여전히 각고면려(刻苦勉勵)해야겠으나 근작들은 과거 작업 대비 조형적, 사고 면에서 성숙해진 측면이 있다. 13)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s) 14) 동시대미술은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이며, 우리와 시간성을 공유하지만 동시에 각자 고유의 시간성을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타인들과 공유하며 공존하는 방식이기도하다. 15) 고트프리트 헬른바인(Gottfried Helnwein)
Vol.20231221f | 현수하展 / HYUNSOOHA / 玄受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