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있지만 없는 There But Not There

이이나展 / LEEEANA / 李怡奈 / painting.installation   2023_1219 ▶ 2023_1230 / 월요일 휴관

이이나_Hidden35_스틸, 패브릭_270×200×160cm(가변설치)_202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이나 인스타그램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사진 / 닉스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문화양조장(스페이스빔) Incheon Culture Brewery(Space beam) 인천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 1층 우각홀 Tel. +82.(0)32.422.8630 www.spacebeam.net @spacebeam_community

이이나의 『Hidden』: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이이나의 작업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긴장은 작업의 본질적 측면을 감안할 때 미적, 감각적 긴장이며, 나아가 예술적, 윤리적 긴장이기도 하다. 이 긴장의 정체를 말하는 것이 그의 작업의 핵에 접근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그의 작업은 형상과 배경이라는 단순한 지각 구도와 공간적 구조 아래 출현한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어둑한 형태가 형상이고, 특정한 장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것이 어딘지, 어떤 구조인지 명확히 재인할 수 없는 공간적 한정성과 장소성이 배경이다. 이 배경은 화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추상적 색면을 포함한다. 여기서 이 한정적 장소성은 모호한 추상적 대상이 될 수 있었을 형상에 최소한의 구체적 정황과 현실적 배경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 어둑한 형상은 단순히 추상적인 것으로 환원되거나, 한낱 영적인 존재 일반의 시각화(영화의 CG 장면 같은) 같은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이 이미지가 구체적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과 연관 있을 것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만든다.

이이나_그곳에 있지만 없는展_인천문화양조장(스페이스빔)_2023
이이나_Hidden3_스틸, 패브릭_270×200×160cm(가변설치)_2023_부분
이이나_Hidden3_스틸, 패브릭_270×200×160cm(가변설치)_2023_부분

그러나 여기에 이이나 작업의 묘미와 긴장이 있다. 그는 반대로 그 장소나 상황,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게 만들지도 않는다. 관객이 그것의 장소나 상황을 명확하게 재인할 수 있도록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공간적 구조만 남기고 그것의 구체적인 속성이나 상태, 그 구조가 놓인 또 다른 공간적, 장소적 정황은 배제하기 때문이다. 구체성에 반하는 장치는 화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추상적 색면에 의해 강화되고, 이 장치는 이미지 전체를 은유적인 것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관객은 모호한 재인의 상태, 추상성과 구체적 재인의 중간 지점에 놓이게 된다. 장소나 상황, 형상이 현실적 대상이나 정황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최소한의 암시를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 그 현실적 상황에 머물지 않고, 관객이 참여하는 미적 메커니즘을 그 현실적 대상을 넘어서서 작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이나 작업에서 나타나는 긴장 중 하나이다. 이 긴장엔 구체와 추상의 긴장, 장소와 공간, 형상과 배경, 형태와 형태 없는 것,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형태와 형태 없는 것 간의 긴장은 물질적인 한정성을 가진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모호성에서 온다. 어둑한 형상은 반쯤은 물질적 장소와 함께 자라는 구체적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영적인 것, 혹은 어떤 물질적 규정성도 배제하는 몰형식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긴장은 결국 이 형상이 감각적 세계의 저편에 있는 것이면서도 결국 물질적 가시 세계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긴장 상태가 다른 긴장, 이이나 작업의 궁극적인 미적 긴장을 만들어 낸다.

이이나_Hidden3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콩테_193.9×130.3cm_2022
이이나_그곳에 있지만 없는展_인천문화양조장(스페이스빔)_2023

이 궁극적 긴장은 감각 세계에 나타나는 것과 감각에서 물러난 것, 재현가능한 것과 재현불가한 것의 긴장이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제목이자 대상 영역을 암시하는 것, 즉 나타나는 것과 나타나지 않고 숨겨진 것(hidden)의 긴장이다. 이 긴장을 위해 위에서 말한 다른 모든 긴장이 봉사하고 궁극적 긴장에 수렴한다. 그 긴장이 바로 이이나 작업의 미적 요체이고,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말하고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거기엔 이 미적 문제의식을 시각예술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할 때 일어나는 문제들과 씨름해온 예술가의 노고가 녹아 있다. ● 이 긴장을 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적으로 이해하려 든다면, 우리는 간단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업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상상력을 발휘하면 재인이 가능한 정황이나 대상도 있다. 대상이나 구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떤 것이 어떤 공간적 구조에 갇히거나 매여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도 있다. 사실 그의 작업은 번식장의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 씨월드에서 공연하는 돌고래, 구제역 살처분 현장의 돼지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죽음의 현장이다. 죽음은 실제적이기도 하고 존재론적 비유이기도 하다. 구제역 현장은 실제적 죽음과 관련되며, 돌고래나 뜬장 안의 강아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거나, 살아도 산 게 아니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이나_Portrait of the Unknown4,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콩테_116.8×91cm_2023
이이나_Portrait of the Unknown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콩테_116.8×91cm_2023

그의 작업은 분명 동물 타자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건드린다. 그 죽음의 장면들은 레비나스가 말한 절대적 타자와의 마주침을 유발하고, 그 마주침은 우리를 불러 세워 타자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윤리는 타자가 있을 때만 성립하는 존재론적 개념이다. 이이나가 목격한 장면은 그 자체로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지, 정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원한도 품지 않을지,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길래 그들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등의 여러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이나의 작업이 이런 윤리적 문제의식과 관련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술가 이이나에게 죽음과 마주하는 충격은 윤리적인 요청만이 아니라, 미적인 경험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죽음의 출현, 감각 너머의 실재의 현전이라는 매혹이 미적 긴장으로 주어진다. 그의 작업은 이 미적 긴장을 시각화하면서 바로 이를 통해 미적, 예술적 방식으로 윤리를 활성화한다.

이이나_Hidden2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콩테_146×300cm_2022
이이나_Portrait of the Unknown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콩테_26×18cm_2023

그는 행동가나 르포 기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예술 매체 앞에서 서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실제로 그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그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하지만, 그는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일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 그의 작업이 구제역 현장을 재현한들, 그것이 뉴스나 르포 기사가 하려는 일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예술이 그들과 어떻게 다른 힘을 발휘하는지의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예술가로 작업한다. 르포가 우리의 시야나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장면 그 자체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데 반해, 예술로서 이이나의 작업은 보이는 것을 경유하면서,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현전하게 한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긴장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이 모순적 상황이 바로 예술 일반의 묘미이며, 이이나 작업의 매력이다. ● 그의 작업은 이 긴장의 황금비를 맞추려 한다는 데서 더 특별하다. 작가의 성향이나 미적 취향에 따라 그 긴장의 정도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거리가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이나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긴장 속에 나타난다. 둘 영역이 밀착할 때는 타자(동물)의 감춰진 실재나 영혼이 마치 어둑한 감각적 형상 안에 직접 나타나는 것 같은 환영을 일으키고, 다소 거리가 멀어질 때는 은유적으로 작동하면서 관객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한다. 그것은 환영과 은유의 긴장이다. 실재는 재현 불가하지만 동시에 재현되어 있다. 이 전략적 모호함 혹은 이 긴장이 바로 이이나 작업의 미적 특성이다.

아도르노가 말한 것처럼, 자연과 동물이라는 타자를 죽이는 일은 결국 죽음의 변증법으로 되돌아와 우리를 죽인다. 생명을 수학적,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방식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것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증거다. 이 문제는 비단 동물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생명 일반에 관한 것, 나아가 존재나 객체 일반에 관한 것으로 확대된다. 이것이 이이나 작업이 르포가 아니라, 예술로 나아가는 이유다. 예술은 추상과 은유를 통해 존재 일반, 실재 그 자체로 우리를 안내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업은 재현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져 온 숭고 미학의 담론과 실천의 문제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간의 미적 긴장이라는 해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고유한 미적 지위가 예술가로서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 조경진

Vol.20231219e | 이이나展 / LEEEANA / 李怡奈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