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3_121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1,2 전시실 Tel. +82.(0)53.668.1840 www.ssartpia.kr @ssartpia_official
순환하는 에너지 ● 점·선·면은 도형의 기초가 되는 기본요소로, 점이 움직인 자리가 선이고 선이 움직인 자리가 면이 된다. 말 그대로 점·선·면이라는 조형 언어는 비켜나면서 충돌하는 다른 동시에 연결되는 '순환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박종규-이명기-이지현은 점·선·면으로 공간을 구성하되 '개별 속 전체/ 확장 속 개성화' 속에서 “동시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평면·설치·공간으로 확장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험을 감행한다. 픽셀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점과 선을 추출하여 노이즈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박종규, 작품의 경계를 전시공간에 스며들게 하여 '실제와 작품' 사이를 미니멀하게 연결하는 이명기, 책과 옷 등의 오브제를 해체해 '조형과 개념'을 현실적 모티브로 옮기는 이지현, 이들의 점-선-면 사이에는 “붙이고 뜯는, 닫고 여는, 나누되 나누지 않는" 현대미술의 틈과 균형의 이중 변주가 자리한다. 우리는 경험이 예술이 되고, 일상이 작품이 되는 현실의 순환고리 속에서 '점·선·면이 하나의 프로세스'로 기능하는 현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점-선-면, 순수조형에서 확장의 모험으로 ●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현대조형이론의 근간이 된 『점·선·면; 회화적인 요소의 분석을 위하여』에서 구상미술이 추구하던 자연의 재현을 벗어나, '점', '선', '면', '색채' 등의 순수조형 요소들을 통해 '조형의 원초적인 속성'에 주목한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강의를 집대성한 이 이론은 예술에서의 절대정신을 발견하기 위해 조형요소를 건축·회화·공예·디자인 등에 접목해 '작가정신의 근간'을 찾는 에너지가 되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점'은 본질들이 모이는 자연의 질서이며, 이는 사물의 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합목적성)이다. '선'은 점의 집합이지만 점과 가장 대립되는 요소로, 힘의 작용에 따라 직선이 될 수도 있고 곡선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선의 다양한 형태는 곧 사건의 발생과 긴장, 그리고 대립을 암시한다. 따라서 수평, 수직, 사선, 자유직선과 곡선, 그리고 각 선형이 암시하는 색과 이들의 긴장-대립 관계들은 작가의 선택을 통해 체계화된다. 선의 집합인 면은 '캔버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기초평면으로, 색채(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긴장-대립-운율에 따라 시·공간을 드러내는 콤포지션(Komposition)으로 이어진다. 박종규의 점이 선적 변주와 만나 가능성의 개념을 창출한다면, 이명기의 미니멀한 대상해석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하나인 듯 침묵하면서 '공간 그 자체'와 일체화되는 무화(無化)로서 기능한다. 해체적 구성을 통해 '점-선-면'을 오가는 이지현의 설치들은 본질과 변형의 위계를 균등한 일체감으로 전치(轉置)시킴으로써 보편성을 개별적 언어로 재배치한다. 말 그대로 '점-선-면'은 따로 존재하는 개별언어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연계되는 '합목적성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점·선·면의 네트워크_시각적 진실, 박종규 ● 노이즈를 휴머니티와 연결한 박종규는 '수직적 시간'에 대한 도전적 개념으로 '한국중심의 미술'을 서술한다. '서양중심-서울중심'과 같은 '중심점'을 벗어난 에너지를 통해 '수평적 시간=일상'에서 포착한 정지된 노이즈에 '신감각적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점-선-면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디에도 치중되지 않은 수직과 수평이 연결된 평등한 구조 속에서 시·공간은 예술적인 경험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설치된 영상 작품들은 사이즈가 불규칙한 LED 패널 속에서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의 답변을 거세하고 그들의 소리를 불규칙한 선들로 연결한다. 중요한 것은 본래 의도와 다르게 바뀌는 불규칙함 그 자체이다. 시각적 진실을 향한 박종규의 모험은 '유튜브 인코딩 넘버'를 통해 사람의 전화번호나 주민번호로 연결된 기하학적 시각을 전복시킨다. 돌을 여러 각도로 그린 그림들은 수많은 대상들의 다름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균형없이 비뚫어진 현실 속에서 도트와 트레이싱 페이퍼 위에 붙은 평면들조차, 점-선-면 공간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작가의 본질은 대상의 가능성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회화, CCTV와 멀티채널이 활용된 디지털-다매체 등과의 연동 속에서도 작품이 쉬이 읽히는 이유다. 점-선-면이 연동된 시각구조는 노이즈 자체 혹은 주제로부터 벗어난 부수적인 것들(소외된 객체)에서 확장한 체화(Embodyment)의 개념으로 종합된다. 두려움/거부감 없이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위계없는 수용의 구조'가 박종규가 점-선-면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닐까.
신중한 점·선·면_무위하는 미술, 이명기 ● 작가의 방에 들어서면 작품을 발견할 수 없다. 그냥 지나쳐 공간과 작품이 구분되지 않으면 성공이다.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작가의 세계관은 '비우고 채운 것(虛實)이 한 몸'이기에 되도록 설명을 배제한다. 작가는 작품이 전시장의 일부가 되는 퍼포먼스 형식의 개념적 설치에 대해,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예술로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 대로 영속성을 배제한 전시경험 속에서만 읽히는 '현장설치'작업인 셈이다. 체화된(embodied) 문화자본을 거세한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Habitus)처럼, 영속적이고 구조화된 것들을 성찰적 행위로서 '예술과 분리' 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문화자본의 기능마저 무화시킨다. 제도-개념-형식 등 개인에게 축적된 사회화된 위계들이 '창작하는 자유'를 막는 은폐와 오인효과를 남기기 때문이다. 빈 액자가 걸리거나 한 면만 칠하는 작업 사이로, 위계 없는 수평의 선이 지나간다. 액자의 기능을 거세한, 계량을 없애는 미니멀 한 작업 속에서 미술은 스스로의 개념을 확장한다. 작가는 점·선·면의 외형적 조건에 질문을 던지면서 “지우고 없애면 미술이 아닌가?"라는 경계 없는 경계를 만든다. 약속된 기간 동안 전시장의 벽면은 예술작품이 되었다가 다시 벽면이라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점·선·면의 변신_해체된 자유, 이지현 ● 현실적인 맥락을 경험적으로 비워내는 '구상 해체 작업들'은 책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오브제를 벗어나 '이지현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직접 경험하거나 시절인연을 담은 '동시대의 맥락-시간과 결이 맞는 책들'을 선택해 뜯거나 옷과 같은 다른 형태로 변용시킨다. 예를 들어 '옷'에 관한 내용의 책이라면 인간의 육체에 맞는 실제 옷으로 변형시키는 작업들이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학창시절에만 만날 수 있던 교련·도덕·국어·역사 교과서 등을 해체해 결과를 물음표로 바꾼 작업들을 선보인바 있다. '동시대성-시대의 어떤 것들'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러한 책의 변신술은 '점-선-면'을 이해하는 기초단위를 순환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개념의 확장을 보여준다. 책 작업 이전의 변형 오브제 작업들(신문지 해체작업)에서도 텍스트를 가늘고 길게 뜯어서 실내공간을 만드는 '인문학적 변신'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보푸라기들을 뜯어내 변형시키는 '개념 드로잉 작업'이나, 신문의 해체작업들은 기존의 인식을 특별한 물질로 보이게 하거나 본질을 알아 볼 수 없도록 하여 '저작물의 의도'를 바꾸는 변신 작용을 한다. 당대의 기록을 보관한 책을 해체해 재구성함으로써 '사회화된 의식'을 말캉말캉한 '개별화된 사유'로 전환하는 예술적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 안현정
Vol.20231218b | 점·선·면 사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