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닫히는 소리 The Sound of a Book Closing

오민예展 / OHMEENYEA / 吳旻㵝 / artists' book   2023_1215 ▶ 2023_1221

오민예_신순희-할머니는 새가 되고 싶다고_원주 한지에 목판잉크_33×46×0.2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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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15일_03:00pm~08:00pm

무목적 無目的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누하동 22번지) 3층 Tel. +82.(0)2.792.9075 @mu.mokjeok

끝과 시작 ● 책은 소리 없이 닫힌다. 눈꺼풀이 감기듯. 온 세상이 적막에 잠긴다. 닫힌 눈 아래 수만 가지 빛이 소용돌이친다. 다음 번의 열림을 기약하면서.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또 한 번의 끝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랜 침묵. 책 속에 잠든 영혼은 다른 영혼을 부른다. 자신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할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책이 닫혔다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비밀스러운 연결이 일어난다. 끝은 끝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 책이라는 몸에 깃든 삶은 그렇게 영원에 가까워진다. 이런 재생과 순환은 떠들썩함과는 거리가 멀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내밀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민예가 들었을 '책이 닫히는 소리'는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다. 하나의 삶이 또 하나의 삶에 노크하는 소리다. 아주 작은 인기척도 놓치지 않는 세밀함을, 오민예가 공들여 만든 8권의 아티스트 북에서 보았다. 한 권 한 권이 다 사람이고 삶이다. 또한 죽음이다. 오민예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자기 자신과 소중한 이를 떠올리며 짧고도 강렬한 인상을 공유했다. 어둠에 잠겨 있던 기억이, 빛을 보지 못한 꿈이, 오래도록 선명할 사랑이, 그렇게 찰나의 순간을 타고 흘러나왔다. 인터뷰이와 함께한 시간은 몇 시간 남짓이었지만, 아직 형체를 갖추지 못한 영혼에 알맞은 몸을 선물하는 일은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21년에 시작된 프로젝트의 결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이곳에서 소리 없는 웅성거림을 듣는다. 책들이 기지개를 펴고 들썩거린다. 그들은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마쳤다.

오민예_최은영-물드는 책_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리스 경첩_30×40×6cm_2023
오민예_남호섭-꿈 영화 이야기_종이에 UV 프린트, 혼합재료_30×30cm×7, 사운드 00:03:40_2023
오민예_보라-나에게 해주는 말_흑지에 백색 프린트, 스테인리스 스틸_9.78×17.6×3cm_2023
오민예_수정-세 개의 이름_종이, 소가죽에 아크릴 에어브러쉬, 아연판_52×30×2.5cm, 소가죽 84.5×52×0.1cm_2023
오민예_Y-38번의 여름_종이에 포토폴리머, 모노프린트_37×21.5cm×38_2022
오민예_Y+S-Twin Flame_종이에 과슈, 양피지에 형압_17×19.5×1cm_2023
오민예_분아-엄마로부터 딸에게로, 딸로부터 엄마에게로_캔버스천에 UV 프린트_520×34cm_2023

책은 분명 '슬픈 불멸주의자'의 발명품이다.1) 세대를 연결하는 유산이고, 엄숙한 소장품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기쁜 필멸주의자'의 끝없는 유희이기도 하다. 우리 존재의 유한함, 이 막막한 삶의 취약성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인생을 손에 쥘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물로 변형한다면, 그러면 더 받아들이기가 쉬워질까? 아이가 처음 세상을 배우듯, 두 손을 뻗어 삶과 죽음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면 말이다. 앞면과 뒷면, 겉과 속, 끝과 시작을 가진 책은 어쩌면 불가해한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는 가장 적합한 비유일 수 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사물. 두 손에 들렸다가, 머리맡에 놓였다가, 허리춤에 매였다가, 코트 안주머니에 깊숙이 숨었다가, 급기야 사방이 유리로 된 진열장에 놓이게 된 사물. 인류 역사상 그 많은 장난감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동안, 놀랍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충직한 사물. 가장 고독한 인간의 유일한 친구, 책. 당신이 어떤 모양의 책을 상상하든, 책이 당신에게 뭘 해줄 거라고 기대하든, 그 예상을 뛰어넘는 다채로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책을 달리 보는 경험이, 당신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하나의 책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그 시간을 일생이라 부르자. 한 권의 책이 펼쳐지는 제약 없는 공간을, 평생이 전개되는 무대로 바라보자. 우리, 그곳에서 만나자. ■ 홍예지

* 각주 1)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슬픈 불멸주의자: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이은경 옮김, 흐름출판, 2016 참조.

Vol.20231215b | 오민예展 / OHMEENYEA / 吳旻㵝 / artists' book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