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3_1230_토요일_05: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예전과 구분되는 새로운 회화의 흐름에 내가 주목한 때가 2010년대 후반께 였다. 그 무렵 한 미술공모전에 심사를 들어간 적이 있는데, 심사가 끝나자 주최 측에서 의례적으로 지원자들의 수준을 묻기에 답변을 궁리하다가, 문득 회화 지원자가 많아졌다는 것, 회화 지원자들이 다른 장르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다는 느낌을 떠올렸다. 미디어아트가 미술판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했던 긴 시절이 있었다. 올해로 10년차에 들어선 MMCA현대차시리즈 선정 작가는 모두 미디어아트거나 설치 장르에서 나왔고 회화 작가는 한 차례도 뽑힌 적이 없다. MMCA현대차시리즈에 선정된 라인업은 미디어아트가 미술판에서 주류일 때 출현하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작가들이라 하겠다. ● 그렇지만 2010년 전후로 회화가 미술상 공모전이나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선발 현장 등에서 선전하기 시작했다. 지루한 러닝 타임에 심각한 주제를 담기 마련인 미디어아트를 향한 말 못할 피로감도 한 몫 했으리라 본다. 아트페어가 아닌 주류 미술현장에서 회화의 반등을 이끈 건, 기존 회화를 생성한 문법에서 탈피한 부류였다. 그 흐름은 산발적이되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구상과 추상이라는 단순 이분법에서 벗어난 회화, 스토리텔링이나 의미에 비중을 두지 않는 구상 회화, 대상의 표현 방법이 아니라 유희의 수단으로 쓰이는 회화, 인터넷과 스마트폰 생활을 내면화한 세대에게서 유독 관찰되는 '포스트 인터넷 미감'의 회화.
유승호. 단어의 음절을 점 단위로 헤쳐모아 대상을 재현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표면적으론 의미를 포함한 단어를 내세우되, 단어들을 뜻의 전달이 아닌 화면에 나열하는 기호로써 유희적으로 사용한 작업을 발표하며 2000년대 초반 주목을 받았다. 그 무렵 보기 드물게 새로운 회화를 선보인 대표 작가로 떠올랐다. 「슈- shooo」(41x32cm, ink on paper, 2022) 같은 작업에선 무언가 조용히 쏟아지는 양상을 묘사하는 의태어 '슈'를 화면 위에 반복적으로 적어 넣어 '슈'라는 음절들의 총합으로 무언가 쏟아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유승호는 주제를 의식하지 않는 회화, 게임으로서의 회화 세계를 2000년대 초반 보여준 희소한 경우였다. 2000년대 초반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시 입주를 필두로, 두산 뉴욕 레지던시 등을 거쳤고, 석남미술상, 종근당 예술지상 등에 선정되었다. 휴스턴미술관 모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조세미.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미적 질감을 다루는 예술을 미술로 볼 때, 그 정의에 들어맞는 회화 작업을 제작해왔다. 화면에 처음 붓이 닿아 만들어진 우연적 선line으로부터, 계획하지 않은 또 다른 선을 이어가며 연달아 여백을 채워나간다. 그 점에서 조세미의 회화는 자율적인 채색과 붓질이 만드는 서로 연관 없는 무정 형태들의 총체로 구성된 비구상회화다. 모든 작업에서 스토리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추상화에 가깝지만 난해함이 느껴지지 않거니와 유머러스하고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지각된다. 타고난 색채감각과 미술사의 선례를 소환해서 빗대자면 자동기술법의 결합이 만든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참으로 유쾌하고 자율적인 회화로 규정할 만하다. 드로잉 연작 「공기식물」은 자신의 자율적인 드로잉 방식을 식물이 성장하는 우연적 방식에 은유해 지은 제목이다. 공예를 전공했으나 회화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발전시킨 경우다.
류재성. 3D 콘텐츠 서비스가 문화생활의 주류로 떠오른 현실에서 2D라는 회화의 본질을 화해시킬만한 구상을 작업으로 옮겼다. 아마도 3차원을 측량하는 좌표계 xyz축을 지시하려고 지은 듯한 「X, Y, Z」라는 연작은 4각형 캔버스가 아닌 6각형 캔버스를 채택한 평면 작업이다. 정확히는 6면체라는 3D 입체를 회화라는 2D 평면으로 재현하기 위한 미적 타협안으로 이 같은 변형캔버스를 고안한 것 같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며 체득한 포스트인터넷 미감이 회화적 반성으로 재현된 경우이기도 하겠다. 캔버스 뒤에 숨어 화면의 틀을 잡아주는, 나무 프레임의 존재를 재현한 연작 「Full Empty」도 있다. 이 연작은 회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자의식을 담은 메타회화 meta-painting로 분류될 만하다 싶다. HSBC 독일 겨울프로젝트 수상(2018)과 폰 룬트슈테트 미술상 수상(2017) 경력이 있다. ■ 반이정
Vol.20231213f | 뉴 페인팅, 새로운 회화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