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기억 - 그 빛 Forgotten memories - the light

김범준展 / KIMBEOMJUN / 金汎俊 / printing.installation   2023_1121 ▶ 2023_1130 / 월요일 휴관

김범준_Majesty of my heart_애쿼틴트_70×50cm_200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잇다스페이스 itta space 인천 중구 참외전로 172-41 Tel. +82.(0)10.5786.0777 itta1974.modoo.at @itta_space

잊어버린 것들 – 그 빛 ● 어두운 방 안에서 바라보는 카세트 플레이어의 녹색 불빛이 좋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의 고요와 'play'라는 녹색 불빛(몇 년 후에는 주황색으로 바뀌기도 했다)은 오묘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점멸하는 빛. 그것은 어둠과 고요에 어우러져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일깨운다. 지금도 늦은 밤, 문 닫은 가게들의 'welcome'이라는 네온 사인을 보면 지난 기억들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빛을 그렸다. 아니 동판을 긁었다. 지난 기억에 오늘의 힘을 더해 긁고 또 긁었다. 어느 날 밝은 그림자가 찾아왔다. 어둠 속의 빛이 아니라 밝은 그림자다. 따스한 햇볕은 커튼에 창밖 풍경의 그림자를 만든다. 어릴 적 '학익동 산동네 집'의 작은 마당이 생각났다. 망태기와 잎 떨어진 식물들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거나 긁지 않고(물론 그리고 긁는 것을 완전히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그림자를 위한 빛을 만든다. 이번 전시는 긁은 빛과 만든 그림자를 모두 전시한다. 어두운 공간의 빛과 밝은 장소의 그림자. 잊어버린 것들이 되살아 빛으로 기억되기를 (2023년 개인전 '잊어버린 기억' 에 부치는 글) ■ 김범준

김범준_The light_애쿼틴트_70×38cm_2010
김범준_Silence-homage_메조틴트_40×60cm_2010
김범준_The quiet_메조틴트_54×32cm_2013
김범준_The light - R·I·P_메조틴트_58×99cm_2015
김범준_1CORINTHIANS 13:12_검프린트_47×110cm_2020
김범준_Chrish_종이에 색연필_100×126cm_2020

① '명징성(明徵性-clarity)과 모호함(模糊-ambiguity) 사이의 어느 지점' ● 김범준은 작업을 통해 '명징성(明徵性-clarity)과 모호함(模糊-ambiguity) 사이의 어느 지점'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Hiroshi Sugimoto)는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임계 초점면을 조정하여 세잔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원한 사과를 포착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다시 말해 스기모토 히로시는 수많은 개개의 사물과 풍광으로부터 일종의 이데아를 추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김범준 또한 스기모토 히로시, 세잔의 방향을 추구한다. 스기모토 히로시가 마주했던 지금 눈 앞에 있는 풍경과 사물은 명료하게 관찰가능하다. 이는 믿을 만한 것, 확실한 것,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명징성은 영원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지금 명징한 것은 곧 변화한다. 이와 반대로 모호함, 혹은 '불가시성'(不可視性-Invisibility)은 믿어야만 하는 것, 확신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음을 내포하지만, 가시성과 불가시성을 나누는 임계점을 통과하면 영원성을 담보하는 어느 지점으로의 도약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나는 이 임계점을 일종의 '막'(幕-membrane)으로 가정하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한 이미지를 추적한다. ● 우리 인류는 모든 것에 대해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전적인 무지(無知)라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부분적이나마 '어떤 것'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다. 김범준은 이 앎의 문제를 시각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즉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안다'는 명제를 '우리가 모든 것을 또렷이 볼 수는 없으나 우리는 어떤 것을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는 명료한 표현보다는 모호하거나 빛에 의해 산란되는 형상. 혹은 명순응(明順應, light adaption)의 순간과 같은 빛에 의한 형상의 퍼짐에 주목한다. 이것은 볼 수 있는 것과 보지 못하는 양극단의 어느 지점을 점유한다.

김범준_For Me_검프린트_61.5×85cm_2020
김범준_The Burning bush No. 1~4_LED 라이트 패널에 종이_각 31×79cm_2023
김범준_The Burning bush No. 1_LED 라이트 패널에 종이_31×79cm_2023_부분
김범준_Beyon the veil_LED 라이트 패널에 필름_80×110cm_2023
김범준_Lives_LED 라이트 패널에 필름_71×100cm_2023
김범준_잊어버린 기억 - 그 빛展_잇다 스페이스_2023

② 빛과 그림자의 판화적 접근 ● 김범준은 위의 내용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해 왔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전통적인 판화방식과 판화적 요소를 갖는 기법, 예를 들어 초기 회화주의 사진가들이 인상파를 동경하여 만들어낸 검프린트 기법(인화과정에서 작가의 개입하여 색과 형상을 조절할 수 있고 제작이 판화의 소멸 판법과 매우 유사함) 등이 있다. 김범준의 근작은 LED패널이 장착된 프레임에 필름 이미지를 덧대고 이것을 판화지에 음영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김범준은 줄곧 빛과 그림자, 즉 실루엣을 다루어왔다. 그의 작업은 매체가 변화하여도 한결같이 빛 속의 실루엣이나 어둠 속에 작게 비취는 빛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빛과 그림자는 김범준의 작업 소재이며 주제이다. 이것은 주로 정통판화를 포함하여 '사진적인 판화', 혹은 '회화적인 사진'으로 표현되어 왔고 최근 작품은 빛과 어두움을 그린 이미지가 아닌 실제 빛을 판화적으로 재구성되었다. ● 김범준은 판화의 간접성에 주목한다. 판화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겹(Layer)들이 판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간의 간격을 두고 겹겹이 쌓인다. 회화도 중층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판화와 같이 판을 매개로 하지 않으며 붓으로 화면에 즉시 반영된다. 즉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이미지를 분해하고 이를 재현하는 과정은 회화보다 판화에서 더욱 치밀해야 할 수도 있는 요소이며 반대로 판화는 직접성의 회화보다 작가가 의도치 않은 우연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판화의 간접성, 즉 이미지의 분해와 재결합 과정과 이미지를 그리지만 시간과 과정을 두고 결과를 기다리는 집적성(集積性)을 강조한다.

김범준_Times_LED 라이트 패널에 필름_48×120cm_2023
김범준_Wonderful day_LED 라이트 패널에 필름_55×120cm_2023
김범준_잊어버린 기억 - 그 빛展_잇다 스페이스_2023
김범준_잊어버린 기억 - 그 빛展_잇다 스페이스_2023

③ 『빛의 판화 - Light Print』_판화의 확장 ● 김범준의 최근작은 위의 판화적 간접성과 집적성이 잘 드러나 있다. 판화지에 드리워진 이미지는 직접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것의 그림자와 빛이다. 정통판화에 대응하자면 이미지 필름은 판과 잉크에, 빛은 프레스로 치환할 수 있다. 또한 발광하는 LED모듈과 이미지 필름, 판화지, 마지막으로 유리를 포함한 프레임은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집적된다. 감상자가 바라보는 빛의 사각형은 빛과 이미지, 종이의 아름다움이 판화적 성질로 중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작품 「The Burning bush」 는 LED패널이 장착된 프레임에 필름 이미지를 덧대고 이것을 판화지에 음영으로 드러나게한 작품으로 모션센서를 적용하여 관람자가 작품이 있는 암실에 다가가면 제목과 서명만 기입된 텅 빈 판화지에 빛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어둡게 연출된 전시공간은 서울 모처에서 수집된 소리(바람과 나뭇잎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채워진다. 이러한 연출은 판화지 고유의 재질감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워 흐릿하게 보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저편에 있는 무엇, 혹은 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 ■

Vol.20231126c | 김범준展 / KIMBEOMJUN / 金汎俊 / pr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