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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홈페이지_gaeehdwls.wixsite.com/artistdongjinkim 인스타그램_@rosla
초대일시 / 2023_1124_금요일_05:3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3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_SEOUL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modoo.at @indipress_gallery www.facebook.com/INDIPRESS
이 폐허를 응시하라 ● 김동진 작가에게 전해 듣는 부모님의 삶은 마치 전쟁 같았다.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그의 부모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형편 때문에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다. 벽돌 공장, 대농의 머슴, 택시기사, 막노동 등 건강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온갖 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형제를 돌보고, 어린 동생들 학비를 대느라 그의 삶은 늘 고단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났다. ● 어머니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다. 청각장애인 부모와 6남매의 가난한 집안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의 장녀가 가장이 되어 생계를 꾸렸고, 셋째였던 어머니는 8살에 조금 더 형편이 나은 집의 수양딸로 보내졌다. 10대가 되어서는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출퇴근을 했다. 전자회사에서 납땜을 하던 어머니는 직장 동료였던 고모의 소개팅 주선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1982년 그들은 결혼을 했다.
김동진의 기억에 남아있는 부모의 첫 모습은 세 살 무렵이다. 집 한 켠에는 타일로 된 부엌 겸 세면실이 있었고, 계단을 두어 개 정도 올라가면 화장실이 있었다. 작은 지하 단칸방에서 부모, 누나와 함께 4명이 살았다. 아버지는 화물차 기사였고, 어머니는 집에서 늘 부업을 하셨다. 하루 종일 구슬을 꿰고, 인형 눈을 붙이는 어머니 옆에서 종알대며 도와드렸던 기억은 애잔하게 남아있다. ● 부모님의 노력으로 형편은 점점 나아지는 듯했으나 IMF가 찾아왔고, 아버지는 실직을 했다. 1997년 추운 겨울 집에서 말없이 뉴스만 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작가가 처음으로 목격한 아버지의 좌절한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퇴직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족 모두가 악착같이 분투하던 시절이다. ● 아버지는 폐기물 처리장을 인수했다. 버려진 폐기물들을 손으로 분류하고, 처리하는 일이다. 어머니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스무 살 무렵, 부모님을 돕기 위해 처음 방문한 폐기물 처리장의 현장은 처참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들, 가족을 위해 폐기물 속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부모의 모습은 처절했다.
김동진의 작업은 부모님의 삶 그 자체이다. 평생 가정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부모의 노동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질문한다. 전시 『끝과 시작』은 부모를 위한 헌정이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작가의 애환이 담긴 회고이다. 전시 제목은 2016년 작가가 제작한 회화작업의 제목과 동일하다. 작가는 그즈음부터 부모를 배경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폐기물장에 버려진 쓰레기, 노동을 반복하는 부모의 행위에서 자식으로 느껴지는 죄책감, 쓰레기에 대한 적개심, 나아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원망을 담았다. 한편으로는 버려진 사물을 관찰하면서 자본주의에 매몰된 시대의 흐름과 모순을 읽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 작업의 배경은 부모님의 일터이다. 쓰레기가 입고되고, 분류되어 다시 배출되는 과정에서 변화하고 이동하는 사물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 안에서 노동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과 사진을 레이어드해 작가의 시점과 자식의 시점에서 발견한 현장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그의 회화에는 유독 핑크빛 물감이 눈에 띈다. 버려진 것, 쓸모없는 것, 미시적 요소들이 배제된 쓰레기 더미에 생명력을 주고 싶었다. 색이 바래고 희미해진 것들에 칠해진 핑크빛 물감은 '불확실하고 막연한 삶이 조금은 분명하고, 밝아졌으면'하는 작가의 바람이기도 하다.
대형 캔버스 다섯 개에 그려진 <끝의 시작에서 그들은, 그리고 나는.>은 폐기물 처리장을 폐업하면서 노동의 마지막 과정을 준비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들의 삶의 과정에 어떠한 가치가 있었는지 회상의 시선에서 시작해 나아가 노동의 끝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한다. 현장에서 사생을 기반으로 부모님을 조망하는 스케치를 한 뒤 기록해 놓은 사진 이미지를 조합해 색을 얹는다. ● 먼 곳을 응시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담은 「끝에서 끝으로」는 25년간 쓰레기와 함께한 그들의 마지막 애환이다.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해있을까.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살아갈 시간이 그때는 많이 남아있었다. 이루고 싶은 삶과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감내할 수 있었다.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진 그들은 은퇴와 동시에 삶의 마지막 시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삶의 마지막 주거공간이 될지도 모르는 작지만 소중한 새 집을 도시 밖 저 멀리 짓고 있다. 삶의 생물학적 시기도, 주거지도 끝으로 밀려나는 순간에도 희망을 품는 부모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미국의 여성학자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혁명과 재난을 동일선상으로 보았다. 재난과 폐허는 민중의 결속을 높였고, 규칙이 깨진 자리에 많은 문이 열렸다. 연대와 불확실성은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유토피아란 정강이나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를 구하고 폐허 속에서 서로를 보살피려는 노력의 결과"(리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A Paradise Built in Hell, p.35)이기 때문이다. 지옥일 수도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유토피아를 향한 문을 발견할 수 있다. ● 신은 노동을 인간에게 주는 형벌로 묘사했다. 한편 헤겔은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구원수단으로 노동을 이야기한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특성은 노동의 본질을 희석시켜 재화가치의 수단으로 측정되기도 한다. 어떤 철학도, 사회적인 이슈도 고난을 대하는 인간의 의지를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폐기물을 양분 삼아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 그런 삶에 대한 열망 이야말로 자연으로서의 인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폐기물 처리장을 마감한 부모와 그런 부모의 애환을 마무리하려는 김동진의 새로운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 이선미
Vol.20231125g | 김동진展 / KIMDONGJIN / 金東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