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일_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

한진하展 / HANJINHA / 韓珍河 / painting.installation   2023_1121 ▶ 2023_1205 / 월요일 휴관

한진하_기억의 방(생일카드)_벽지에 출력, 도배_가변크기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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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아트스페이스 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실 Art Space Sill 인천 부평구 부평대로38번길 22 Tel. +82.(0)507.1330.2519 www.artspacesill.com @artspacesill

걸어서 기억속으로. ● 기억을 주제로 작업한다고 하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발품을 팔아 수집하고자 했다. 과연 노력으로 기억을 얻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직접 기억의 장소들을 방문하는 일 밖엔 없었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장소들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무 기억 없음' 혹은 '조금 기억이 나는 듯함' 뿐이다. 일단 가보면 무언가 기억할 수 있겠지, 그 장소들에게서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은 강원도 도착 하루 만에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또다시 어려움에 빠지지만 어쨌든 매일 성실하게 기억의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열심히 돌아다닌다. 기억하지 못하는 장소에 직접 가보게 되면서 나는 이제 그곳을 '알게' 되었다. '앎'으로서 나는 이제 그곳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한진하_기억하는 일_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展_아트스페이스 실_2023
한진하_기억의 연도_제수용 향, 인센스 파우더, 인센스 도우, 대나무 스틱, 나무_가변크기_2023
한진하_기억의 인센스 만들기_제수용 향, 전자저울, 절구와 공이, 인센스 파우더, 인센스 도우, 대나무 스틱, 니퍼, 나이프, 기억의 몰드_가변크기_2023

스무살이 된 기억. ● 이제는 정확히 20년이 된 기억을 가지고 작업한다. 20년 동안 그 기억은 나와 함께 살아왔다. 성인의 나이가 될 20년의 세월 동안 기억은 내 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었을까. 한동안은 나를 휘둘렀고, 그래서 오랜 시간 나를 고민하게 했다. 계속 내 안에 그것이 존재하니까 나는 계속 그것을 바라보았다. 보아도 보아도 닳지 않고 그대로인 기억을.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어느 날, 나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 처음의 경험이니까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바라본다. 일부러 쳐다보기도 했고, 갑작스럽고 의도치 않게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어떤 큰 기억은 그렇다. 그 기억이 의도하지 않아도 계속 그 자리에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신경이 쓰이니까 그것들을 가져와서 그려도 보고 연결도 해본다. 반복적으로 기억이 나에게 오거나 내가 찾아가니까 그린 것들을 연결해서 패턴을 만들어 본다. 연결된 기억의 형태들에게 나는 내 안에 온전한 자리 한편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기억과 함께 20년을 공생하고 있다.

한진하_눈 달린 벽(모래시계)1,2,3,4,_벽지에 아크릴채색 펜_각 64.5×44.5cm_2018
한진하_기억의 형태 변화 연구_시트지 커팅_가변크기_2023
한진하_기억의 방(생일카드)_벽지에 출력, 도배_가변크기_2023 한진하_기억의 방(모래시계)_벽지에 출력, 나무_900×1130×600cm_2023

아는 것과 기억하는 것. ● 나는 알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기억하기 때문에 아는 것 사이에 서있다. 20년이 된 기억은 여전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안고 조금은 무뎌져갔고, 기억하지 못하지만 찾아가서 알게 된 곳들은 새롭게 내 안에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 정확하게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흰 종이를 버리고 모눈종이를 들였다. 기억하지만 나에게 없는 것, 기억하지 못하지만 살았던 장소들은 작은 기억과 수집한 자료에 의지해 모눈종이 위에 그려진다. 그리다 보면 기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시도에서 나는 결국 기억에도 나의 해석이 따름을 발견했다.

감정적 경험과 함께 내재된 20년 된 기억은 그것을 유발하는 사물에게서 그 형태를 가져왔다. 고장 난 모래시계와 전보로 붙여진 생일카드. 두 사물을 남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 그날의 경험이 아직도 나에게 유효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나는 모래시계와 생일카드를 보면 20년 전 그날의 경험을 떠올린다. 잊지 못해서 기억하는 이야기들. 기억의 사물에게서 형태를 가져와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그날을 표현하기 위해 기억의 패턴을 만든다. 여전한 기억은 마치 내 방을 둘러싼 꽃무늬 벽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패턴으로 만든 벽지를 만들었다. ● 한 경험과 대상을 기억하는 작업은 기억의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나를 통과한다. 나는 각각의 기억들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이 나라는 여정을 거쳐 독립적인 형태를 갖길 바랐다. 나는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해서 기억하려고 한다. ■ 한진하

Vol.20231125f | 한진하展 / HANJINHA / 韓珍河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