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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토크 / 2023_1122_수요일_05:30pm
2023 수성아트피아 지역작가 공모 지원사업 「A-ARTIST」展 Ⅵ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2 전시실 Tel. +82.(0)53.668.1840 www.ssartpia.kr @ssartpia_official
떼어낸 일부가 사물을 간직한다. ● 정진경 작가는 이번 작업에 '일부'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옷걸이에서, 이것은 음료수 캔에서, 저것은 접어놓은 수건에서, 장바구니에서, 의자에서, 그릇에서, 단추에서. 비록 사진을 찍어놓은 것마냥 선명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쉽게 짐작한다. 작가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면과 선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한갓된 사물들에서 온다. 때로는 과도해진 하나의 면으로 때로는 어딘가 낯설어진 조각으로, 정진경의 작품은 '사물의 일부'로서 자리 잡고 있다.
일부는 바라보고 기억되고, 또한 옮겨지면서 떨어져나왔기에 하나의 추상이다. 그러나 정진경의 일부는 사물들에서 어떤 공통된 성질을 추출(抽出, 뽑아냄)하지도, 나머지를 축출(逐出, 몰아냄)하지도 않는다. 그는 작품들이 어디엔가 속했을 '일부'임을 감추지 않았다. 비록 과도하고 낯설게 보일지라도 작품은 '일부'로서 있으며, 그래서 본래의 그것이 머물렀을 자리를 알려온다. 머물렀던 이 사물과 저 사물을 알려온다. 그러한 '일부'는 추상(abstractio)이되 뽑아내고 몰아내지 않고, 오히려 떼어짐(tractio)의 사태에서 '간직함'을 주목시킨다.
그래서 정진경의 '일부'는 어떤 사물을 간직하는가? '일부'들은 기하학적 형상이 아니다. 그러한 형상들은 먼저 순전한 사유에 근거하기에 때로 그것을 사물에서 길러왔을지라도 축출의 방식에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 같은 형상은 구체적인 삶의 맥락이 제거되고 난 이후에야 발견되며, 따라서 여기서는 삶과의 무관계가 주장된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일부'는 떼어지면서도 이러저러하게 삶에 놓인 사물, 일상에 놓인 구체적인 사물들로 향한다. 이 사물들은 삶과의 관계에서만 온전해지며, 삶의 맥락 안에서만 바로 그 사물일 수 있다. 즉 전시의 '일부'가 간직한 사물은 삶에 긴밀한 무엇이다. 그것은 작가에게 가장 가까운, 정진경이란 사람과 익숙하게 관계하며 그를 둘러싸는 일상의 사물이다.
한편 떼어진 '일부'들은 사뭇 따듯하다. 다소 낯설어진 와중에도 그것은 사물을 다정하게 내보인다. 그 떼어냄이 단적인 기술(記述)은 아니기에 그럴 것이다. 작가의 '일부'는 사실들을 세세히 열거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한 기록에서 사물은 단순한 물건(stuff)으로서 그저 눈앞에 있을 뿐이며, 기껏해야 어떠한 용도와 쓸모의 목록으로서 열람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한갓된 사물들을 작가는 쓸모를 넘어서까지 바라보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사물을 제대로 보고자 했으며 사람을 보듯이 바라보았다. ● "일상의 사물은 내가 볼 수 있고, 보는 데에 제약이 없어요. 잘 들여다봐 줄게. 내가 그렇게 봐줄게. 제대로 들여다보자. 사람을 보듯이 사물을 본다. 사물을 볼 때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했어요." (2023.07.19. 작업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떼어냄의 방식으로 정진경이 택한 것은 축적이다. 여기 다소 단순해 보이는 이미지의 '일부'들은 사실 작가가 연한 물감을 계속 쌓아나가듯 칠한 결과이며, 그래서 작품들은 미세한 두께감을 품고 있다. 작가는 아마도 강한 붓터치로 담을 수 없는 사물의 모습을, 그를 바라본 자신의 시선을, 그 미묘한 시간들을 쌓아올려 '일부'를 떼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떼어냄은 정진경의 바라봄에서 시작한 기억함과 옮김, 그 섬세하고 미묘한 시간의 축적을 함축한다. 그리고 그래서, 전시에서 만나는 수건은 단지 접혀 있는 물건이 아니다. 캔 역시 음수의 도구만이 아니며 장바구니 역시 시장만을 향하지 않는다. 물감을 수차례 쌓아올린 그 떼어냄에서 사물은 또 다른 관계와 감정을 품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바라본 내밀한 사물의 근거, 일상에서 감추어졌을 사물이 놓인 자리(Platz)로서의 세계(Welt)다.
그래서 작가의 떼어냄은 사물을 세계와 함께 드러내는 운동이며, 이 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사물을 '그 사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일상의 사물들은 작가의 떼어냄에 의해서 '그 사물'로서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쩌면 스쳐지나가고 잊히고만, 사물의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겠다. 정진경의 떼어냄은 사물을 간직하되 그의 시선과 쌓아올린 표현으로 '다르게' 간직한다.
부품이 아닌 '일부'를 만나다. ● '떼어냄'에서의 '일부'는 부품(Bestand)과 구분해야 한다. 물론 때때로 우리는 부품을 엮어가며 전체를 형성하기에, 부품 역시 사물을 이루는 일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 우리는 전체와의 관계에서 부품을 하나의 부분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품은 무엇을 간직하는가? 홀로 떨어진 부품은 그것이 나온 자리를 간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볼트가 있다. 볼트는 다양한 전체와 관계할 수 있기에 언제고 하나의 부분일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홀로 떨어진 볼트는 어떠한 전체도 특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품인 볼트는 익명의 부분인데, 이는 그것이 대체 가능한 연속에서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부품의 자리는 평준화이고 이는 그것이 손쉬운 교환의 대상임을 뜻한다. 그래서 부품은 어떤 전체의 일부이기에 앞서 이미 그러한 평준화 안에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만 하나의 부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물을 그러한 부품의 총합으로 이해한다면, 사물 역시 대체 가능한 무엇으로 적시될 것이다. 즉 부품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때 사물은 인간의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부여받은 신분, 물건으로 전락하여 저장된다. 그러한 사물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무차별하게 조정할 수 있는 대상, 언제든 사용하도록 쌓아놓은 재고, 교환 가능한 상품을 말한다. -그러나 정진경의 작품에서, 떼어진 '일부'에서 우리는 그러한 부품의 평준화를 경험하지 않는다.그것은 평준화된 연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삶의 맥락을, 그 다양한 의미들을 길러내는 '일부'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일부'는 또 다른 '일부'로 치환할 수 없으며, 사물 역시 그러하게 제시된다. -정진경의 일부는 사물을 고유하게 간직한다.
일부들이 풍경을 이룬다. ● 정진경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일부들을 모으고 배치해 본다. 사실 '일부'가 이미 어떤 자리를 점하고 있기에, 이는 일종의 재배치다. 일부는 머물렀던 사물을 간직하는 이름이고, 그 사물은 정진경이 만나온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오기에 그렇다. 예를 들어, 작품의 옷걸이는 시중에서 만나는 옷걸이 중 하나가 아니다. 그릇과 의자 역시 공장에서 생산된 수없이 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옷걸이는 '이 옷걸이'고 그릇과 의자도 마찬가지로 '이 그릇'이고 '저 의자'다. 그래서 '일부'로서 전시된 사물들은 작가의 떼어냄을 경유하여 이미 고유한 자리를 점한다. 그 용도만이 아니라 작가의 매일, 속하는 관계, 버릇, 즐거움, 고민, 피곤까지. 사물들은 정진경이 떼어내며 드러낸 자리에서 비로소 '그 사물'로 있다. 즉 '일부'로 이름 붙인 작품들은 정진경의 바라봄을 경유하여 이미 하나의 고유한 자리를 간직하며 놓여있다. 그래서 전시의 배치는 더해진 배치다.
작가가 이를 연결이라 부르는데, 해당 표현에서 우리는 '일부'들이 새롭게 배치되면서도 본래의 자리에도 여전하게 놓여있음을 짐작한다. 즉 그의 재배치는 '일부'들에 새로운 자리를 억지로 주입하는 작업이 아니다. 본래의 자리는 훼손되거나 제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겨져 있다. 그렇기에 연결은 오히려 '일부'들과 함께 본래의 자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 고유한 그 자리들의 중첩이다. 이 중첩에서 떼어낸 일부와 일부가, 간직된 사물과 사물이, 고유함과 고유함이 관계한다. 정진경의 연결은 그러한 중첩으로서 사물을 위한 새로운 자리의 마련일 것이다. 이를 통해 전시의 공간(空間, spatium, 비어있음)은 하나의 장소(場所, Ort)에 이르고, 이 장소에 따라 사물들 역시 간직한 고유함과는 또 다른 무엇으로 제시된다. 이 새로움의 장소, 중첩하여 쌓아올린 고유함을 정진경은 '일부들의 풍경'이라 부른다. ■ 임정석
Vol.20231124j | 정진경展 / JUNGJINGYEONG / 鄭晋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