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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갤러리175_한국예술종합학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Gallery175
나는 엄마, 주부, 그리고 파입니다 ● 얼마 전,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생명의 신비와 모성에 관한 기쁨과 고민과는 별개로, 출산 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 '출산 후에 경력이 단절되면 어떡하지?' ● 그렇게 보름달이 열 번 뜨고 출산을 하고 나서, 바로 다음 고민이 시작되었다. : '일을 할 때, 아기 엄마인 걸 알려야 할까?' ●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내 삶은 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예술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직업은 사실 삶과 별개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시를 보고 기획하는 일에 업무시간과 여가시간은 딱히 구분되지 않았고, 머릿속은 언제나 전시와 예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일과 관련되든, 그렇지 않든, 어울리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예술가나 큐레이터 등 예술 관련 종사자였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 중 하나는, 아기를 가진 엄마 예술가나 큐레이터가 육아 이야기를 열띠게 하거나 육아 때문에 업무 시간을 조정할 때 조금도 그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으려 했던 나의 태도이다. 또한 그들의 '날 서지 않은 감각'을 은근히 얕보기도 하였다. 지금 와 고백하자면,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사죄라도 하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중심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계는 확장되고, 에너지는 배분된다. 즉, '잠시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확장된 관찰 대상과 변화하는 관점 등은 비평가의 관점에서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여성이 아니면,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하지 않으면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감각들이 예술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 이채연
이채연 작가는 자신을 '파'라고 지칭한다. 그녀는 파이지만 파가 아니기도 한다. 이건 무슨 말일까? 파는 한국적이면서 대중적인 식자재이다. 그리고 흔히, '아줌마'로 통칭되는 주부들에게 가장 친숙한 오브제(!)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파이지만 파가 될 수 없는 애통함이 비롯된다. 파는 그냥 파인데, 파는 마트에서 살 수 있고 밭에서 재배되어 왔을 뿐인데 우리는 파를 오브제1)라고 지칭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는 파가 될 수 없다.
이채연 작가는 입시 시절 수채 정물화를 그릴 때 파를 가장 잘 그렸다고 한다. 그렇게 파는 이채연 작가의 스킬을 입증하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그림 대상이 되었다. 이후에 작가는 한국 미술대학 중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입시미술에서 익혔던 스킬 위주의 작업은 더 이상 현대미술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동시에,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파는 그녀의 삶과 먹거리와 반찬과 국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결혼-살림-육아라는 종합세트가 삶으로 찾아온다. 아기를 들춰업고 파 봉다리를 손에 든 자신을 종이봉투에 넣은 바게트를 든 파리지앵에 대입하며, 그녀는 다시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찾아 나선다. 바로 여기에 한국(혹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여성 작가들의 2차 자아가 발현된다. 잃어버린 예술가의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엄마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살림하는 주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리서치이다.
출품작 「내 그림의 집」에 등장하는 집이 있다. 여기에는 「엄마에게」라는, 전작이 확장되고 변주된 결과물이다. 이 작업이 출품되었던 이전 전시의 가장 큰 주제는 '엄마'이다. 작가 이채연의 엄마에게 바치는 작업에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점이 모두 뒤섞여 있다. 이 그림은 따뜻하지만 쓸쓸하고, 바나나와 칠면조의 맛을 표방하지만, 실은 파의 맛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작가의 엄마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희생적이고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한 장의 그림으로 어루만진다. 그림과 같은 집에 어여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 마치 성모마리아와 같은 그윽한 자세로. 부엌에는 바나나가 놓여 있고 칠면조가 오븐에서 익어간다. 건담, 목마와 같은 아름다운 장난감이 바닥에 있다. 벽에는 엄마가 취미로 놓은 자수 그림이 걸려 있다.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림인가. 초가집을 수 놓은 자수는 작가가 어린 시절 서랍에서 발견한 엄마의 습작이다. 엄마도 만들고 그리는 일을 싶었구나. 나처럼. 다른 예술가처럼, 엄마에게도 자신을 표현하고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구나. 바나나는 오빠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 사달라고 졸랐던 과일이지만 비싸서 먹을 수 없었던, '그림 속의 과일'이다. 칠면조는 작가가 꿈꾸는 만찬이다. 장난감과 엄마의 의상 역시, 상상으로 각색된 엄마의 과거이다. 여기까지는 작가의 뿌리, 엄마에 대한 노스텔지어와 연민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파'이다. 짐작하다시피, '이것은 파가 아니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작품 속 문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에서 비롯되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지는 실재를 대체할 수 없으므로, 파이프 그림은 파이프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채연의 그림에 등장하는 파는 작가의 자아를 대변하는, 일종의 '페르소나'이다. 파는 다양한 모습으로, 삶과 그림에 등장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검은 비닐봉지 안에 파가 있다. 미인도 병풍에도 파가 있고, 팜므 파탈을 꿈꾸며 도발하는 파, 인사하다가 뻑큐!를 날리는 파가 있다. 여기서 파는 작가 그 자체이면서 파의 정체성에 이입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재료이면서, 어디서나 잘 자라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파는 이채연 작가 자체이다.
이번 전시는 아트북을 근간으로 진행되는 전시라는 특징을 갖는다. 아코디언 북의 형태로 펼쳐지는 「이것은 파가 아니다」라는 아트북에는 작가의 이야기와 파의 그림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왜 파로부터 시작되는가? 왜 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물음과 답변이 짤막한 글과 산문의 형태로 실려 있다. 입시미술 시절 그린 파에서부터 시작해 아기 엄마가 되면서 마트 장바구니에 담긴 파, 자화상과 살림, 그리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살고 있는 진천에서 진행된 민화 시리즈까지, 기존 작업이나 전시에서는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작가의 스토리와 궤적이 담겨 있다. 아코디언 아트북은 작가의 그런 이야기의 구석들이 조근조근 펼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또한 이채연 작가가 늘 찾고 헤매고 있던 예술가의 자아를 찾아 나서는 단초가 될 것이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드로잉, 디지털페인팅, 영상, 퍼포먼스, 민화 등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파'라는 대단히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페르소나를 선정하여 그 안에서 숨겨진 예술가의 자아를 드러내려고 한다.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전 전시에서는 자신의 뿌리(엄마),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 그리고 앞으로 전시에서는 열매(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계획 중이다. 「내 그림의 집」(2D 애니메이션, 3분, 2023)이 작가 과거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면, 「이것은 파가 아니다」(책, 2023)는 현재의 바라보기를 형상화한다. 작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솔직함과 꾸준함은 관심을 받아 마땅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엄마와 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가 예술가의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 조숙현
* 각주 1)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Vol.20231123b | 이채연展 / LEECHAEYEON / 李菜蓮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