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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K_서울 SPACE K_Seoul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Tel. +82.(0)2.3665.8918 www.spacek.co.kr @spacek_korea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강서구 마곡동 소재)은 오는 11월 16일부터 내년 2월 4일까지 도쿄를 중심으로 국제적 활동을 이어가는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 (b.1982, Yuichi Hirako)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여행』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30여 점이 소개된다. 유이치 히라코는 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동식물이 함께하는 풍경들을 소개해 왔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며 나아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유이치 히라코의 '여행' ● 지난 초가을, 나는 30여 종 꽃씨 모둠을 사서 화분에 심었다. 씨앗 크기가 아주 작았기에 파종 후 물도 조심조심 주며 싹이 트길 기다린 지 몇 주가 지나자 푸른 싹으로 화분이 가득 찼다. 개중에는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식물이 있어서, 이 풀은 자라서 어떤 꽃을 피울까 기대에 차 있었다. 얼마 지나 풀은 본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정체는 강아지풀이었다. 식물에 대한 나의 무지를 탓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나는 강아지풀을 쑥 뽑아서 계단 아래로 던졌다. ● 스무 살 여름방학, 나는 공부를 위해 문학잡지 영인본 한 박스를 안고 절에 들어갔다. 약 3개월 가까이 절밥을 얻어먹으며 정작 글은 읽지 않고 고추 농사와 마당 쓸기에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비 내린 다음 날, 아침 공양을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과 함께 법당 앞마당에 삐죽이 올라온 잡초들을 뽑을 때였다. 잡초도 생명인데 이 잡초를 뽑을 때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스님은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이 풀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기에 뽑는다고 했다. 자연을 아끼되 있을 자리가 아닌 것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 그것은 비단 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공생을 유지하는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낳은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자연이 가차 없이 그 대가를 되돌려주는 것처럼. 내가 계단 아래로 던진 강아지풀은 어느새 꺾였던 목을 세우고 뿌리에 조금 남아있던 흙을 기초로 몸을 일으켜 계단 틈새에 자리 잡았다. 그 생명의 치열함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강아지풀과 나의 공생은 앞으로도 여기 계단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유이치 히라코의 전시 시작과 함께 겨울이 왔다.
유이치 히라코(平子雄一)는 1982년생으로 오카야마현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재학 중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며 미술인으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오랜 역사의 공원들이 도시 곳곳에 조성된 런던인만큼 작가는 친구들과 자주 주변 공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과 친구가 느끼는 자연(인간이 조성한 유사 자연)의 차이를 인식하며 자연과 식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계기를 마련한다. 유이치 히라코의 작품에는 일본의 토착 신앙인 신토(神道, 신도) 사상과 조화를 중요시하는 와(和, 화) 문화에 대한 영향이 곳곳에 묻어난다. 신토는 자연숭배와 조상숭배를 기본으로 모든 동식물, 장소, 자연 등에도 감정과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애니미즘 사상이 혼합된 문화이다. ● 800만의 신이 있다는 일본은 신화와 샤머니즘, 조상숭배, 불교, 기독교 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이다. 일본은 일찍이 16세기 중반에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여전히 신자가 전 국민의 1% 정도인 곳이다. 반면 교회에서 여는 결혼식을 가장 선호하며 장례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이루어진다. 타문화를 받아들이되 체화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흡수하는 일본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북유럽의 위그드라실(우주를 지탱하는 신성한 물푸레나무) 신화와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프로 '천공의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를 만든 것처럼 유이치 히라코는 자연을 대표하는 트리맨과 더불어 나무의 다른 형태인 책으로 세계를 지탱하는 자신만의 위그드라실「 Yggdrasill/Books, 2023」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림「Lost in Thought 65, 2021」에서 트리맨은 줄기가 잘린 채 화병에 담긴 꽃들을 배에 싣고 떠난다. 화병에 꽂힌 꽃들은 철저히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개량되거나 선택된 식물들이다. 대홍수와 구원으로 이어지는 서양의 종교적 비유 혹은 신화에 나오는 망자가 건너는 강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무거운 주제로 읽힐 수 있음에도 다채로운 색상과 유이치 특유의 만화적 구성은 관객을 흥미진진한 모험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트리맨: 자연이 인간의 몸을 갖기까지 ● 초기 작품인 「Memories of My Garden / A march, 2010」에서는 숲 가운데 사람이 연상되는 눈동자를 그리거나 식물에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과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안식과 평안을 주지만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 존재이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없다. 작가는 이 자연이 어느 날 우리에게 등을 돌리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마침내 우리가 흔히 트리맨이라 부르는 나무 머리에 사슴뿔 모양으로 단순화된 나뭇가지 그리고 인간의 몸을 한 캐릭터를 완성했다. 생존을 위한 일이 아니고선 사람의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나무를 인간이 무분별하게 사냥(벌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리적 저항이나 반응을 가장 느낄 수 없는 약한 존재에게 지금껏 우리가 죄책감 없이 해왔던 많은 폭력을 돌아보게 한다. 이는 유이치가 만화 캐릭터나 팝아트가 가진 대중성을 미끼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트리맨은 사람이 나무의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나무가 인간의 몸을 가지게 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번 전시 '여행'은 식물의 여행인 동시에 우리의 여행 그리고 해외 미술관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Lost in Thought 111, 2023」은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배낭을 메고 도토리 위에 서 있는 트리맨과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다. 여행은 새롭게 펼쳐질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도토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바닷가로 날아든 해바라기씨는 서프보드의 형태로 묘사되기도 하고,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단풍나무 씨앗은 여행을 위한 날개를 달고 동료들과 통조림 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친근해 보이는 트리맨 캐릭터들은 캔버스 밖을 나와 관객을 압도하는 크기로 등장한다. 작가는 거대한 트리맨을 제작하며 자기 고향에 있던 신목(神木: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나무)을 떠올렸다고 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마을 입구에도 신목(당나무)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보호수 등의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했던 이 나무에 오색 천을 달기도 하고 돌탑을 쌓기도 하며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은 나무에 존경을 표했다. 이와 더불어 마을의 입구에서 액운을 쫓던 장승이 떠오르기도 한다. 관객을 압도하는 크기의 트리맨은 우리 앞에 나타나 자신이 자연을 수호하는 전사임을 알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만약 트리맨의 머리가 사실 전사의 투구를 쓴 자연의 모습이라면, 이 캐릭터를 더 이상 귀엽게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 배치된 과일들도 마찬가지다. 다채로운 색상의 과일들은 우리가 알던 색깔과 크기가 아니다. 인간 중심으로 과일의 유전자 편집이나 품종개량이 이루어지다 보면, 미래에 우리는 사람 머리보다 큰 과일을 생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떠나는 나, 남겨진 너 ● 작품 「The Journey, 2023」은 세로 3.3미터에 가로 2.5미터인 4점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어진 약 10미터의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일관된 주제를 담고 있지만 4점이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으론 4폭의 화면을 한 작품으로 여기기에 시각적 연결고리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작품이 카툰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첫 번째 그림은 여러 씨앗의 모습을 담았다. 식물은 자신의 지속 가능과 영역확장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다. 물 위를 잘 떠다닐 수 있도록 배 모양의 형태를 갖춘 씨앗, 동물의 털 등에 잘 옮겨붙어 이동할 수 있도록 침이나 갈퀴 모양으로 진화한 씨앗, 이외에도 깃털이나 날개 형태로 바람을 통한 이동이 쉬운 씨앗, 동물의 먹이가 되어 영역을 확장하는 씨앗 등 다양한 씨앗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여행을 준비한 그들은 이번 생에 맡은 소임을 위해 각자의 여행을 떠난다. ● 두 번째 그림에는 두 개의 큰 산이 보인다. 산의 경계는 붉은색 푸른색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인간이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나누어 왔던 경계와 다르게 식물의 이동은 어디든 자유롭고 우연적이다. ● 세 번째 그림에는 캠핑하는 트리맨의 모습을 통해 여행의 중간, 정착지를 찾기 위해 잠시 머무는 시간을 보여준다. 이는 인생이란 여행 중간에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 네 번째 그림에는 일본 도심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배설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는 찌르레기를 그린 그림이다. 이들은 인간들에겐 불편한 존재이지만 식물의 여행을 돕는 훌륭한 조력자 중 하나이다. 또한 샤머니즘에서 신목(神木)에 앉은 새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使者)로 간주하기도 한다. ● 찌르레기와 마찬가지로 유이치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와 개는 인간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이자 둘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트리맨에 안겨있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귀여워 보이는가? 우리의 사랑스러운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원령공주)'에서 자연을 수호하기 위해 모여든 멧돼지 무리나 늑대처럼 나무 투구를 쓴 트리맨을 도와 공생을 방해하는 우리를 향해 감춰둔 이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동물의 세계에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거칠게 구분할 때는 눈이 붙은 자리를 통해 판단한다. 육식동물은 사냥을 위해 눈이 정면을 향해 있어서 상대와의 거리 측정에 용이하고, 초식동물의 눈은 포식자가 다가오는지 사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얼굴의 양측면에 자리한다. 트리맨은 눈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눈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그가 정면을 향해 눈을 뜨는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식물은 자신들의 종족 보존을 위해 물에서 뭍으로 옮겨오며 끊임없이 진화했다. 「Lost in Thought 92, 2022」에서 보듯 우리 역시 미래는 모른 채 겨우 코앞만을 비추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하며 수많은 결정을 해왔다.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여행은 어느 날 꽃이 활짝 피는 절정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곧 여행의 완성인 떠남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행성 역시 그 빛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떠난 이후 남겨질 이들을 위해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수호자인 동시에 파괴자이다. 그리고 그 공생의 중심에 당신과 트리맨이 있다. ■ 이장욱
Vol.20231116j | 유이치 히라코展 / Yuichi Hirako / 平子雄一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