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3_1219_화요일_04:00pm
기획 / 이지원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제이무브먼트 아트스페이스 & 갤러리 J. Movement Art Space & Gallery 부산 금정구 동부곡로5번길 101 Tel. +82.(0)51.622.9151 jmovegallery.com @j.movement_official
지난 세기 말, 전 세계를 연결한 전지구화(globalization)는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여러 가치들을, 끝없이 가속하는—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달려야 하는 붉은 여왕의 왕국처럼—상대적이고 비교 가능한 무엇들로 바꾸었다. 물질적 토대 위에서 견고해 보였던 현대성(modernity)은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라는 이름으로 잘게 부서지고, 녹아버렸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가 가진 계측 도구로는 형태를 잃고 파편화된 동시대를 측정하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 한때 우리가 믿었던 모든 진보와 혁명, 초월, 연대, 사랑과 같은 이상(理想)들은 이제 소비하냐 마냐의 문제로 일원화된다. 일상의 소비 공간,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몰려든 군중, 그리고 그들이 거닐고 쉬던 골목과 광장의 정치는 점점 더 빠르게 사라져가지만, 반대로 방 안 침대에 누워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웹을 통해 더 쉽게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 ● 미술계에서 우후죽순 난립하는 페어들도 미술을 철저하게 상품으로 진열한다. 상업미술은 더 많은 돈을 끌고 오기 위해, 마치 지난 시대의 박람회처럼 테크놀로지의 신화를 이용하는데, 근래에 미술시장이 눈을 번득인 NFT니, 메타버스니 하는 기술들은 그 자체의 결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저열한 자본주의적 욕망들에 의해 허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하나의 총체적 진실이나, 거대 서사가 사라진 불확실의 세계에서는 찬란한 이상도, 최첨단 기술도 신자유주의 아래서 평등하다는 점만이 유일한 진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걸었던 파사주(Passage)는 오늘날 현실도시를 넘어 가상 세계를 통해 구현되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미지는 곧 환상등(phantasmagoria)이나 다름없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무한한 숫자만큼 존재하는 스펙터클의 범람 속에서, 재현 불가능한 '현실'을 재현하여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다. 미술이 그 의무를 방기한다면, 다시 말해, 세상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인식의 몽타주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역사를 드러내는 일을 멈춘다면, 네트워크 속 '멋지고, 예쁘고, 귀여운' 이미지들과 제대로 경쟁이나 될 수 있을까. ● 이번 전시 《측정 불가 지역 Immeasurable Area》은 동시대 작가들이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보고, 듣고, 두드리고, 사유하는 몇가지 방법론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강수빈, 이정동 두 작가가 감각하는 세상은 분명 인식되거나 측정이 가능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에서, 불분명한 현실은 끝없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더듬어지거나(강수빈), 인식할 수 없게 일그러져 궤적만을 남긴채 해체된다(이정동).
다양한 형태의 거울들을 이용한 「MEDIA」 연작(2022)에서, 강수빈 작가는 거울 조각들을 분절시켜 조각내거나 반사면을 굴절시키는 방식으로, 그에 비치는 세상을 어떤 코드로 서툴게 변질시킨다. 거울 앞을 지나가는 관객의 신체는 조각난 거울의 경계면을 따라—마치 에티엔-쥘 마레(Etienne-Jules Marey)의 연속사진(Chronophotography)을 연상시키는 형태로—그 일련의 움직임만을 남긴 채 추상화되고, 이 움직임은 단채널 영상 「작동하는 신체」(2023)에서 디지털 포맷으로 옮겨져 무한 루프(loop)되며, '지금 여기'의 시간에 붙잡힌다. ● 「매일의 가장 가운데」 연작(2023)에서 작가는 매일 사각형 거울의 중심을 재고, 항상 똑같은 원을 그리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가 매일같이 그리는 원은 미묘하게 중심이 어긋나고 차이가 생긴다. 작가는 매일 자신의 오류와 관측을 의심함으로써, 동시에 그가 존재하는 현실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의문을 품는다.
이정동 작가의 드로잉과 설치 작업에서 '선'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혼란스러운 가능태가 된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는 선은, 아마도 작가 스스로도 그 완결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방향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간다.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도 이어질 수 있고, 알 수 없는 곳에서 멈출 수도 있다.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져 나갔다가, 여러 방향에서 하나로 수축할 수도 있다. 그 여러 가능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질서는, 모든 형태를 오롯이 선으로 단순화시키려는 동시대적 강박 뿐이다. ■ 이지원
Vol.20231116f | 측정 불가 지역 Immeasurable Area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