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 Counte-ring Reason

김슬기_손여울_최신영展   2023_1102 ▶ 2023_11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원소영 협력 / 탈영역우정국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7:00pm

탈영역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먼저, 반지의 성격(반지-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 분주히 나갈 준비를 끝마치고 집을 나서기 직전, 악세사리 함에서 반지를 꺼내 손에 낀다. 손을 옥죄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하루의 작은 사건들을 마주하고, 머리가 생각하는 동안에 왼손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에 낀 반지를 돌리고, 조이며, 그 촉감을 느낀다. 반지는 미미한 존재감만을 띠기에 그 구속은 자연스럽게 인지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충격으로 반지가 깨어진다. - 단단한 반지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하다면 충격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

김슬기_Sword Stand_아크릴, 혼합재료_95×71×40cm_2021 김슬기_Shinjangcal_아크릴, 혼합재료_50×120×23cm_2020 김슬기_Bangul_아크릴, 혼합재료_가변크기_2023(remake version of 2020)
김슬기_Chunky Totem Series 2_아크릴, 혼합재료_33×50×30cm_2021
김슬기_Chunky Totem Series 2_아크릴, 혼합재료_33×50×30cm_2021
김슬기_날씨를 알려주는 돌멩이_웹사이트, HTML, CSS, 자바스크립트_2023(remake version of 2020)

반지의 깨짐은 주체를 이성적 사고의 틀에서 반-이성적 사고로 옮겨 가게 하는 사건이다. 꼭 맞았던 반지가 깨지며 반지에 부여한 생각-다짐-기원이 깨어진 것은 아닐까, 불안이 엄습한다. 이로 인해 깨진 반지는 불안함의 상징이 된다. 이성(reason)이 쌓아 올렸던 지성으로의 지향은 순간 통제를 잃으며 반지성의 영역으로 추락하고 만다. 반지에 의해 사고의 출발점이 반-지성의 영역으로 옮겨 온 주체에게, 지성의 영역은 '믿어야 할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지성'은 어떤 것인가. 작은 충격에 깨질 정도로 연약하지만, 그 이미지만은 단단해 보여 마치 영원한 듯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 수많은 인터넷 기사와 짧은 글로 습득한 지식 역시 그러하다. 전에 없이 발달한 과학기술을 누리며 교육받은 지식인의 시대에 반지성적 행위는 더욱 성행한다.   

손여울_Data Sea_영상(00:02:11, loop), 프로젝션, 설치_가변크기_2022
손여울_Data Sea_영상(00:02:11, loop), 프로젝션, 설치_가변크기_2022

중간 과정을 알지 못하는-결과로 등장하는 마트에서의 포장된 과일과 같은- 기술/데이터를 누리고 있는 현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의 팩트는 입증 불가능한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회의 공론장에서 논증되지 않은 팩트는 일련의 '믿음의 대상'으로 다가오며, 사람들에게 토템과 같이 작동한다. 어디에서 자라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마트의 과일처럼, 우리에게 과학기술과 데이터는 달큰한 맛으로 사회에 등장한다. 온라인에 부유하는 '팩트' 또한 그러하다. 논증의 과정을 알 수 없는 나열된 과일들. 개별의 과일을 선택하는 자들은 저마다의 확증편향에 기반해 과일의 원산지를 추적해 낸다. 각자가 믿는 복수의 원산지들 사이, 실제의 원산지가 섞여 있을지라도 이미 토템화된 '지성'을 믿는 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지 않은 '팩트'는 그들에게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이 되어버린 팩트-(가)거짓-은 이렇게 지성의 봉우리 사이에 고여 있게 된다. 메신저와 인터넷에 퍼지는 가짜뉴스, 사주와 타로 따위의 미신, MBTI 와 같은 유사 과학이 쉽게 믿음을 얻는 만큼 '팩트'는 쉽게 의심받는다. ●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 인간은 종교에 닿는다. 얼굴 없는 유튜버를 따르는 구독자들과 트윗을 퍼다 나르는 팔로워들은 신앙에 가까운 확신을 지닌 채 성찰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비록 그것이 지성에서 출발한 것이더라도 그 진행 양상은 의미 없는 말싸움과 비난이라는 반지성적 행위로 귀결된다.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으리라는 아집 사이로 피어나는 불안을 숨기지 못한 채 성찰은 사라지고 승패만이 남는다. 이성적인 자세로 '토템화'된 지성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당신은 반지성주의자이니, 그를 반성하고 지성인이 되라'는 말은 불화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허울 좋게 포장되어 몇십 개의 '좋아요'를 획득하는 메시지의 실상은 언제라도 부패하고 삭제될 수 있는 얄팍한 믿음에 불과하지는 않은가.

최신영_A Piece of Cake_D1 백토 자기, 인조 케이크_가변크기_2023 최신영_주님의 신부가 되길 원해요_폴리스티렌, 점토, 아크릴채색_20×20×10cm_2023
최신영_빨갱이도 구원이 필요해_폴리스티렌, 점토, 아크릴채색_30×30×20cm_2023
최신영_정신승리 비거니즘_폴리스티렌, 점토, 아크릴채색_21×30×10cm_2023
최신영_헌금_젤라틴, 종이, 버터크림_2023 최신영_내가 만든 쿠키_버터 쿠키, 아이싱 설탕, 젤라틴_2023  최신영_기술로 기후위기를 극복하자_제누와즈, 버터크림_18×18×8cm_2023 최신영_주님의 신부가 되길 원해요_제누와즈, 버터크림_20×20×10cm_2023

인간은 반지성적인 믿음과 불안정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움을 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fact)과 이성(reason)으로 벼려진 진실은 결국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기에 주관적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진실'이 다를지언정 이는 모두 반-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다만 그 토대가 주관적인 반지-성이기에, 지성을 향한 이성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반지성은 그 기반에 자리 잡고 있다. 오직 나의 진실과 타인의 진실이라는 복수의 지성들이 있을 뿐이다.  ● 우리의 지식은 구성된 것이며, 진실은 지성의 지향점과 어긋난다. 우리는 모든 팩트를 알지 못하고, 온전한 이성을 발휘할 수 없고, 사회와 동떨어질 수 없기에, 진실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애써 쌓아 올린 진실이 사변적 영역에 그치지 않으려면 나의 이성으로 쌓아 올린 탑에 구멍을 내어 사유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주관적인 진실들을 경유하는 사유의 통로를 내기 위해 충돌할 것을 제안한다. 나의 진실을 의심하고 타인의 진실을 받아들여 서로의 세계를 교차시킬 때 역설적으로 진실과 지성의 간극은 좁혀질 것이다. 결국, 내가 쌓아 올린 진실이 '지성'이 아닐 수 있음을 감각하는 순간- 사유의 통로는 새로이 뚫린다. ■ 원소영, 한문희

Vol.20231112a | 반지-성 Counte-ring Reason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