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브알라! Minja, Voilà!

이상미展 / LEESANGMEE / 李尙美 / mixed media   2023_1108 ▶ 2023_1114

이상미_겨울나기를 위해 털옷을 입다_ 실, 양모,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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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인스타그램_@sangmeelee1215

초대일시 / 2023_1108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 (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개인전의 제목, 『민자, Voilà!』의 의미 ● '민자'는 누굴까? ● 평상시와 같은 목소리로 점심 약속을 저녁 약속으로 변경하고 집안 일을 보던 작가에게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 핸드폰을 통해 들려 온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 그리고 서둘러 갔지만 갈라진 목소리로 "사랑해!"라는 외침을 유언으로 남긴 이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작가의 엄마 성함이다. ● 'Voilà!'는 프랑스 말로 "짜잔, 여기를 보세요~!" 혹은 "봤지!"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 말을 하는 화자의 내면에 청자에게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감정, 즐겁게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즉, 이 전시는 작가가 자신의 엄마가 어이없게 놓아버린 엄마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시간에 대해 딸이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민자에게 헌정하는 민자가 누리지 못한 그녀의 아름다운 시절이다. 동시에 민자의 클론인 상미에게 민자가 앞으로 가장 '상미답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가라는 조언이다.

최고의 시간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 바람, 절벽 그리고 탈주 ● 평소에도 자신의 집 한 켠에 작업할 공간을 마련하고, 작업하는 행위를 멈춘 적이 없는 이상미 작가는 자신의 사회적인 정체성을 내심 '작가'라고 생각했다. 작품이나 전시 참여를 왕성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온다면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만의 근거를 가지고 스스로를 믿었다. 그런데, 막상 기회가 왔을 때 그녀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고 그 사건은 그녀의 각성 1기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변명을 찾아 스스로를 납득시켰고 일상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 그리고 쓰나미처럼 몰아 친 엄마의 영원한 부재... '허무'라는 감정, '상실'이라는 느낌, 정말 인생은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는 새삼스러운 깨우침, 나아가 엄마의 유언, "사랑해!"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끊임없는 생각들에 답을 찾으려는 작가는 그녀의 작업실, 이젤 앞에 앉았다. 가장 '상미다운' 모습으로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그녀만의 최상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 전에 자신의 집 한 켠에서 그녀는 '바람'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제 그녀는 그녀만의 공간에서 '절벽'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작업실에 쌓인 작품에는 절벽도 있고 바람도 있다. 대부분의 작품 제목은 시적이면서 시니컬cynical 했다.

이상미_에덴의 저쪽_바람_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2~3
이상미_에덴의 저쪽_시작_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2~3
이상미_에덴의 저쪽_가 보지 않은 길_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2~3

작가는 개인전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한 작품에 너무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거즈와 아크릴로 채색한 「에덴의 저편」이란 작품으로 「바람」, 「시작」 그리고 「가 보지 않은 길」 모두 3개의 작품이다. 작품 「에덴의 저편」에서 거즈는 다양한 표현을 담당하고 있다. 캔버스를 온전하고 넓게 감싸 안아 아크릴 물감을 엄청 흡수하기도 하고, 또 거즈를 찢어 부분으로 붙이기도 하고, 실처럼 길게 꼬아서 쌓아 붙이기도 했다. 거즈를 찢고 실처럼 꼬는 행위는 자신의 거짓을 찢고 꼬아서 캔버스에 박제화시키는 것이라 했다. 허물을 벗는 행위, 변태 metamorphosis다. 다시 태어나는 과정인가? 캔버스와 거리를 두고 보면, 원시림을 그린 것 같다. 에덴의 저편이 아니라 에덴인 것 같다. 태초의 공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 같은 공간처럼 보이는데 또 누군가 다녔을 것 같은 '길'이 보인다. 그녀에게 '에덴'이란 낙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일까? 작가에게 에덴이란 공간이 낙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계속 지금까지 작가의 생각, 인식, 태도 등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 작가에게 왜 그렇게 그 작품을 붙들고 있냐고 물어 보았다. 작가는 이 작품의 의미는 '이전'과 '이후'에서 '과'에 해당한다고 했다. 과거 자신의 작품과 앞으로 만들 미래 작품을 연결도 하고 구별도 해 주는 작품이라고. 그래서 통과의례처럼 이 작품을 꼭 끝내는 의식을 치러야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그녀가 「에덴의 저편」을 마무리 하기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 「에덴의 저편」을 끝내고 포장을 한 뒤, 그녀의 캔버스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표현할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를 버리고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하고 캔버스 화면을 의도적으로 설정하고 배치하는 미장센mise en scène을 보여 준다. 풍경 혹은 대상을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하면서 만들고 싶은 이미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드러날 최소한의 장치들을 선택하고 캔버스에 배치했다.

이상미_바람으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_ 인연의 틈새로 떨어지는 바람들이 뜨겁다_ 실,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1
이상미_바람으로 만든 집 아래_ 실,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1
이상미_바람으로 지은 집_정서의 찌꺼기들_ 실,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1

「바람으로 만든 집」 시리즈는 캔버스에 수직선 몇 개로 전경과 후경을 나누고 후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거즈에 담았다. 작품 제목에 '집'이 있으니 「바람으로 만든 집」 시리즈의 화면에 등장하는 수직선은 지붕을 받치는 기둥 이기도 하겠고, 그 기둥에 붙어 흔들리는 커튼 같은 천 자락을 보면 그것은 창문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커튼의 방향으로 보아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집 안에 위치하게 만들고, 커튼의 형태를 보면 강한 바람에 휘말린 커튼이 아니라 바람의 끝자락, 달큰하고 유혹적인 바람의 끝자락이 살짝 머문 커튼으로 보인다. 이 작품 속 시간은 좀 나른한 시간으로 이성이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화려하게 박제된 공간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의 작품을 보면 기둥 아래가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다. 화면의 아름다운 색상 배치로 '먼지화' 되는 기둥에는 시선이 머물지 않는다. 결국, 아름다운 함정에 현혹되어 저당 잡힌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경험에서 나오는 '경고'일까?. '자기다움'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안락한 함정을 경계하고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열정을 살펴 보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 참지 말고 해라~!", "Do it, now!", "Carpe Diem!"하고 외치는 것 같다. ● 2020년까지의 「질주_Stop and smell the roses」 작품에 등장하는 '바람'은 캔버스 위에 바람을 가르며 한 곳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몸통과 팔, 다리에 바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질주는 시간이든 공간이든 관계든 자유로워지기를 갈구하는 작가의 내면, 혹은 '자기다움'을 외면하고 회피하며 도주하고 있는 자아를 표현하고 있다면, 2021년의 '바람'은 달라져 있다. '자기답게 되는 것'을 멈추게 한 아름답고 안락한 구속에 대한 정황, 작가의 인식 상태 그리고 스스로에게 고발하고 경고하는 '바람'으로 그 성질이 변화된 것 같다.

이상미_춤추는 절벽_양모,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2
이상미_탈주의 선_삼베, 혼합재료,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22

처음 '절벽'이란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왜 절벽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등에 바람을 메고 절벽에 선 느낌인 것일까? 절벽의 형상성이 너무 선명해서 작가가 이' 절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멀리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절벽'을 담은 시리즈, 「춤추는 절벽」, 「탈주의 선」, 「뒤집어 살기」 등 캔버스 화면의 좌우에 절벽의 가장 간단한 상징적 표상, 수직적인 선을 배치한다. 화면의 좌측이든 우측이든 캔버스 수평 하단에 덩어리 같은 것이 사선으로 궤적을 그리며 던져져 튀어 오르며 마치 불꽃놀이의 화약처럼 터지는 광경이 보인다. 앞의 세 작품이 자연 속 절벽을 연상시킨다면, 작품 「100층짜리 집_그림으로 들어 간 세상」, 「공기의 속삭임」, 「지하 그리고 창 밖」은 절벽의 새로운 설정이다. 도시 속 절벽, 내 (집)안의 절벽,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절벽이다.

이상미_지하 그리고 창 밖_실,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3

'절벽'이라는 장소는 이상미 작가 개인의 경험이 불러일으킨 감정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그녀의 절벽 시리즈를 보면서 그녀가 절벽에서 느꼈을 좌절, 절망, 나아가 더 이상 절벽을 수직선이 아니라 수평선으로 바라 볼 여유를 찾고 발상의 전환을 가져 온 그 곳에서 춤을 추는 그녀에게 감정적 공명을 느낄 수 있다. 이상미 작가가 준비한 작품들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성찰의 결과가 우리들의 삶 혹은 그 삶이 가져온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 혹은 공감의 여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또 이 개인전을 통해 이상미 작가는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관객만의 메시지를 담아 가기를 원한다고 했으며 그래서 작품에 관객이 담아갈 공백을 두었다고 했다.

이상미_절벽, 터벅터벅 걷다._삼베, 실,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3

작품 「절벽, 터벅터벅 걷다.」를 보여주며 작가는 절벽 시리즈의 가장 처음이라고 했다. 개인전 준비 마지막 구간에 제작한 작품인데 작가는 그런 말을 했다. 아마도 절벽 시리즈 작품을 하면서 내내 가슴에 품었던 모티브 이미지이거나 절벽 시리즈 작업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남은 절벽의 정수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상미_그곳, 원초적 자리 Ⅰ_전선, 코일, 한지,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2×130.3cm_2023
이상미_그곳, 원초적 자리 Ⅱ_전선, 코일, 한지,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2×130.3cm_2023

작품 「그곳, 원초적 자리 Ⅰ, Ⅱ」 또한 정말 오래 붙잡고 늘어진 작품이다. 작품에 들인 시간과 수고를 고스란히 목격했다. 얇은 한지를 여러 번 배접하면서 주름을 잡아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건조하고 또 배접하고, 아크릴 물감을 원하는 색으로 발색 될 때까지 여러 번 붓질을 하고, 전선의 길이도 다양하게 조절하며 절단하고 묶고 작은 소품들도 끼워 고정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다가 피곤과 모자란 잠이 불러 온 착시가 작품의 어느 부분이 성기의 일부로 보여서 민망해하다가 터부가 하나 사라진 것 같아 자유롭게 웃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L'origine du monde」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아마도 쿠르베가 그 작품을 그린 이유와 이상미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느꼈던 각성과 메시지가 비슷해서 그랬을까?

이상미_겨울나기_날개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3
이상미_나비의 세월_면사, 거즈,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23

「겨울나기_날개」와 「나비의 세월」은 「윤동주와 시간 거미줄」 오페라 공연과 사단법인 창무의 창작 무용극 「모시나비」 공연 팀과 콜로키움 퍼포먼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상미 작가의 작품을 보았던 두 공연 감독들의 제안으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의 아뜰리에Atelier에서 홀로 내면으로 파고들며 작업하던 작가에게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공생하지만 전혀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오페라와 춤 공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는 공동 작업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만나는 즐거운 경험도 하고 버릇처럼 자신의 예술적 노선을 유지하려는 고집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그 경험에 만족해했다.

이상미_당신이 보는 그것_꿈에는 황금 열쇠가 있다._ 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3
이상미_당신이 보는 그것_무엇이길 거부한다._ 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3
이상미_당신이 보는 그것_씨앗은 싹을 틔우고_ 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3

「당신이 보는 그것」 시리즈는 그 동안 캔버스를 감싸 안았던 거즈를 생략하고 작가의 강점, 실과 바늘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작품이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중심에 부정형 사각형의 프레임을 실로 붙이고 그 안을 자수로 채웠다. 작가는 이 부정형 아우트라인을 그릇이라고 했다. 어쩌면 개구리가 살고 있는 우물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한 개인이 가진 세상의 크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개인을 구성하는 내용들... '우물 안 개구리는 꼭 나와야 하나?'라고 자문을 하면서... 탈주를 꿈꿨지만 되돌아 그 자리인 것 같다는 그녀는 여전히 혼돈의 카오스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 그림자와 싸우는 중 같았다. ● 이상미 작가가 사용하는 색상은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다. 아마도 노랑, 초록, 파랑, 핑크, 빨강 등 같은 색상이라도 채도가 높은 물감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쨍"한 색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녀의 내면에서 폭발하는 생각들, 기억들, 감정들이 명확하게 '활자화'되지 못하는 답답함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 하나 하나의 아우라가 커서 「당신이 보는 그것」 시리즈는 전시장의 벽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이상미_민자, Voila! Ⅰ_철사, 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40cm_2023
이상미_민자, Voila! Ⅱ_철사, 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40cm_2023

「Voilà, 민자! Ⅰ, Ⅱ」 작품은 철사로 상반신 실루엣을 만들고 캔버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자수로 놓았다. 마치 명함 사진 혹은 인물화처럼 구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왜 웬디가 피터팬에게 그림자를 꿰매 주는 장면이 떠올랐을까? 또 사고의 흐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융의 그림자 이론에까지 이르면서 민자의 자아 혹은 그녀의 내면 그림자에 상미의 자아 혹은 그녀의 내면 그림자가 겹치며 민자가 삶의 마지막에서 발견하고 누려야 했을 민자의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이 발현되며 느껴야 했을 행복 에너지가 딸 상미, 이상미 작가를 통해 거부와 수용 마침내 완성으로 이 작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이상미 작가가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마무리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1년의 개인전을 준비 과정에서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의 경험과 엄마의 부재를 통해 자신의 내면 그림자를 대면하고 수용하는 계기를 가졌고 그 경험에서 자신에게 내재된 재능, 잠재력, 폭발적인 에너지를 자각한 것 같다. 이제 그녀의 과제는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원하던 삶에 대한 발견, 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화(體化)하고 마침내 가장 '상미다운' 행복한 예술가가 되기를 바래본다. ■  

Vol.20231108i | 이상미展 / LEESANGMEE / 李尙美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