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스트로-A 『2023 STRA-OUT』 신진 작가 전시 공간 지원 공모 선정展 @c_straw_official
전시문의 / [email protected] / @c_straw_art
주최 / 비케이씨앤씨_STRAW 후원 / 한국문화진흥_컬쳐랜드
관람시간 / 11:00am~07:00pm
씨스퀘어 C-SQUAR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326 컬쳐랜드타워 1층 Tel. +82.(0)2.560.0812 www.culturetower.co.kr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마음 ● "필립: 여보세요, 앙드레? 형이다. 대체 어디 있었어? 제기랄, 네 말 안 믿어. 왜냐, 빨래방 앞에서 30분이나 기다렸는데도 넌 안 나타났잖아. 오후 2시에 대학에서 논문 발표가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 중요해. 돌아가신 분이 입던 옷을 그냥 가난한 사람들한테 줄 순 없어. 먼저 세탁해야지. 그게 도리야. 아니, 집이 아니라, 어머니 댁에 있어.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 그래, 오늘 하기로 했어. 몇 주씩 질질 끌기 싫고, 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기념 삼아 가졌으면 하는 가구나 물건 있니, 아파트에서 치우지 말았으면 하는? 책장? 아, 그 커다란 검은색 책장, 어렸을 때 우리 방에 있던? 어, 계속 사용하셨어. 근데 그걸 원한다면 연장통을 들고 와서 분해해야 할거다, 엘리베이터에 안 들어갈 거야. 일요일 저녁까지 와서 가져가. 관리인한테 월요일 전에 집을 비우겠다고 막 얘기했거든. 아파트를 벌써 다른 환자에게 배정했대.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그럼, 나머지 서류 정리는 언제쯤 할까? 아니, 수요일은 안 돼. 몬트리올에 간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코스모돔에서 중요한 회고전이 있거든. 논문을 위해 보고 와야 할 것 같아. 화요일? 네 방송은 몇 신데? 앙드레, 한 시간도 안 걸릴 거야. 약속해. 서명 두 개만 있으면 되는데... 남기신 게 없으니까! 저축 채권으로 5천 달러쯤 있는데 생명보험은 안 드셨어, 그래서... 아니, 아냐. 커피는 내가 끓일 테니 머핀은 네가 가져와. 부탁 하나 들어줄래? 금붕어 좀 가져 갈래? 금붕어 기르셨어. 앙드레, 알레르기는 물고길 먹을 때 일어나는 거지, 물고길 기르는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계셨던 생명체잖아, 그리고 난 그걸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릴 용기는 없어! 그러니까 네 집이잖아! 그 놈이 뭔데? 아니, 공식적으로 네 집에 들어온 거야? 야, 더 이상 토론할 시간 없어. 화요일에 얘기하자. 화요일 아침 10시... 그리고 이번엔 정말 나와주는 거지?" (로베르 르빠주(Robert Lepage)의 『달의 저편(The Far Side of the Moon) 대사 중에서: 성수정 번역』)
* ● 이유진의 「Re-flat」(2023)에는 엉뚱한 농담과 거대한 냉소와 내밀한 귀여움이 유리창에 걸쳐있는 햇빛처럼 순간순간 드러났다 없어지곤 한다. 거창하게 쌓아 올린 전시 도면 뭉치 한쪽 면에는,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친숙한 할머니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반복하는 무심한 행동에 의해 인쇄물은 차츰 줄어들 것이 분명하고, 무언가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도면과 함께 그 모서리에 얇게 인쇄된 흑백 사진 이미지를 한 줄씩 덜어내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참여하게 된다. 본다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의 이상한 수수께끼다. 다 알아듣지 못한 애매한 농담 같고, 익명의 행위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차분히 묻는 것 같기도 하다. ● 「Guards」(2023)와 「언제나 환영합니다」(2023) 앞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하는 작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직 들어서지 않은 저 내부에서 벌어진/벌어질 일들이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오가며, 영상은 내막을 알 수 없는 장면들을 기록하고 있다. 「Guards」는 작가에게 사전 "지령"을 받은 퍼포머들이 전시 오프닝에서 관객으로부터 작품을 안전하게 지키거나 작품으로부터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경호하는 일련의 수행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다. "봄"과 "보여짐"의 팽팽한 긴장과 균형 사이에서, 어쩌면 이 어중간한 위치의 행동들은 차라리 드러나지 않았어야 했을 텐데, 그는 굳이 이 일을 동일한 복장의 수상함에 중첩시켜 드러내고야 말았다. 「언제나 환영합니다」는 웰컴매트처럼 내부로의 입장을 허락하는 일종의 문지방 역할을 하는데, "금지"와 "허용"의 경계에서 어떤 망설임을 실체화 할 것이다. "동선을 따라 이동해 주세요"라는 문구는 얼마나 친절한가. 부드러운 권유의 말은 사실상 금지를 내포한 말로, 전시장 한쪽 벽을 따라 붙여 놓은 발자국 시트지의 헝클어진 동선만큼이나 의심스러운 이면을 강요한다. ● 이유진은 이러한 이중적인 경계를 오가는 내내, 냉소적인 곁눈질을 하는가 싶다가도 순간적으로 귀여운 표정으로 돌변해 유머를 쏟아낸다. 때때로 무모한 노력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대한 질서에 맞서려는 듯한 용기를 드러내다가도, 곧장 바로 이 순간의 낭만에 한없이 빠져드는 감성을 타인과 공유한다. 「We should keep 3m away from each other」(2023)가 그렇다. 나와 너 사이에 필요한 3미터의 거리,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잇는 우편 엽서 속의 다정한 말들, 그리고 그 교묘한 말들 이면에 (어항 속 금붕어처럼) 특별할 것 없지만 이미 특별해져 버린 새의 이미지들이, 나와 너의 심장을 뜨겁게 했다가 차갑게 식히며 3미터 거리의 멀어짐과 다가감을 동시에 제안한다. ● 작업을 전시에 포함시키지 않고, 그것을 뒤집어 작업 안에 전시를 포함시키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넌센스처럼, 이유진은 잘 드러나지 않는 흐릿한 사물과 단어와 형상들로 구성된 작업 안에 전시를 재배치하려는 의도를 그럴듯하게 성취해내고야 만다. 나는 「We should keep 3m away from each other」에 함의되어 있는 냉소적인 현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대면한 "이유진"의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계단에 떨어뜨려 놓은 편지 봉투가 (사실은 아두이노 보드를 담아 놓기 위한 그럴듯한 장치였지만) 비슷한 색의 옷을 맞춰 입고 연기한 퍼포머들처럼 이 사건 속에서 내밀한 메신저로서의 수행을 성취할/성취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게 한다.
* ● 김주영와 정보경의 작업은 세 개의 비계(scaffold)로 매개되어 공존한다. 정보경의 「A Way Not To Slip 2 (#1-5)」(2023)는 회색 리놀륨을 길게 재단하여 조각도로 추상적인 패턴을 새겨 넣은 것으로, 일련의 방향성을 함의한 사물처럼 공간에 놓여있다. 그는 우연히 신발 바닥면의 고유한 패턴들을 보다가 그것이 보도블럭의 패턴과 함께 충돌하며 일으키는 물리적인 작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한쪽이 심하게 닳거나 패턴 사이의 홈에 단단히 박혀 있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어떤 힘의 물리적 이동을 암시하는 현상에 대한 집요한 망상 같은 것이다. ● 그는 중력을 덮고 있는 지표면과 신체를 중력으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발 바닥면이 맞닿으면서 발생하는 힘의 이동 내지는 어떤 물리적 형상의 변환, 그리고 단단한 축처럼 일련의 표류에 맞서 변화를 지연시키는 거대한 세계의 몸체 같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를테면 그가 제시한 새로운 "사물"의 형태는 스스로 자립하여 존재하기 보다는 건축적 구조 안에서 변형을 감수하며 제 위치를 한시적으로 점유하는 방식을 따른다. 보통은 이러한 내막에 의해 완성된 리놀륨 판을 특정 장소나 전시 공간의 바닥에 펼쳐서 그 위에 익명의 신체들을 세움으로써, 지표면과 바닥면이 서로 역전되는 개념상의 공간적 위상의 전이를 시도해 왔다. 즉, 신발 바닥면의 물리적 현상을 떼어와 그것을 반대 반향의 지표면 보도블럭처럼 제시함으로써, 그 위에 다시 올라선 삼차원 공간 속의 신체는 그 이면의 공간 속에 동일한 신체의 형상을 반영하게 된다. ●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한 쌍의 물리적 공간을 재/배치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그 임의적인 평면을 길게 늘어뜨려 임시가설물의 뼈대를 타고 움직이는 유기체적인 형태로 제시했다. 어떤 입체적인 좌표 위에 상하좌우가 계속해서 위상을 변화시키며 입체적인 형태로서 자신의 공간을 재구축하는, 즉 납작한 평면이 어떤 물리적 힘의 이동 안에서 비가시적인 공간을 구축해내는 상상적인 역량을 제시한 셈이다. ● 한편 김주영은 평소 비계와 같은 임시가설물, 배수격자구조물 등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에 집중해 왔다. 그는 물과 같은 유동하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도시의 풍경을 탐구하는데, 거대한 질서 속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현실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미세한 파동과 이동, 변환과 재배치 등 일상성을 관통하는 조련되지 않은 "상태"에 주목한다. 규격화된 도시 구축과 정비에 쓰이는 비계와 배수격자구조 등을 지지체 삼아 그 세련된 질서 안에 흐릿하게 공존하고 있는 근원적인 혹은 자연적인 상태의 흔적들을 붙잡아 둔다. ● 그는 특히 작업의 재료와 기법을 매우 연쇄적인 은유 체계 안에서 다루는 것 같은데, 비계의 견고함과 임시성이 환기시키는 양가성은 배수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격자구조의 덮개가 유동적인 물의 흐름에 이중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로 전이되었다가,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의 유리 제작 기법과 그 안에 흐릿하게 전사시킨 도시 곳곳에서 수집한 물의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같은 방향을 타고 연쇄한다. 그러한 까닭에, 김주영의 작업은 마치 미완의 상태 혹은 지연된 상태 속에 한시적으로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시공간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지연된 장소, 여기와 저기 사이에 흐르는 시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균형을 이루는 긴장 상태의 연극적 무대처럼, 그의 작업은 무어라 규정하기 힘든 시공간의 현존을 불러온다. 「Vacumm sealed package (#1-7)」(2023)은 그러한 사유가 축적된 결과물로서, 물의 유동성과 도시구조에서 시작해 항해와 운송, 여행과 이동 등의 개념이 덧붙여 지곤 한다. 이와 같은 시공간의 표류와 이접은, 작업의 구조와 닮음을 지향하며 계속해서 조립되고 압축되고 이동하는 형태로 변환한다. 작업 표면에 기생하듯 달라붙어 있는 홍합 껍데기에서, 배와 해류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거리의 이동과 정착에 관한 서사를 자신의 작업과 동일시 하는 작가의 속내도 엿볼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임시가설물의 지지체는 정보경의 리놀륨 매트마저 시공간 속에 빨아들여 그 형태의 "변환"에 끊임없는 동력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공간과 관객, 현재라는 시공간의 의미마저 이 임시가설물의 개입에 의해 재배치되는 표류의 순간을 그는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상은 이유진의 작업과 긴밀하게 겹치면서, 이 무채색에 가까운 회색빛 구조물들이 재설정한, 수직 수평을 넘어선 급진적인 유동성을 그려내게 한다. ● 이제, 이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길게 인용한 글을 보자. 로베르 르빠주의 1인극 「달의 저편」에 나오는 필립의 첫 대사에는, 저 먼 우주에 대한 자기애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상상과 함께 어항 속 금붕어만큼이나 소소한 현실의 대상이 공존한다. 그것은 별개인데 한 사람의 경험 속에 긴밀한 사건으로 엮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크기와 무게를 재사유하게 하고, 마침내 현실의 시공간 속에 무한한 영역을 재배치하는 역설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립의 대사는 이유진, 김주영, 정보경, 세 사람의 작업을 관통하는 제목 "붙잡고 부유하는"에 대한 또 다른 단서가 될 지도 모른다. ■ 안소연
Vol.20231103b | 붙잡고 부유하는 Driffing While Hold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