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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6:00pm
아트스페이스128 ARTSPACE128 대전 중구 중앙로112번길 46 2층 Tel. 070.7798.1280 www.artspace128.com @artspace128
필멸하는 자들의 공존 ● 저 깊은 해저에 닿은 투명하고 영롱한 빛을 닮아, 짙은데 맑고 채도가 높은 색. 고고하게 흩어져 주변을 차갑게 물들이지만 서늘하지 않고 신비로운 마법 같은 파랑. '바다 너머'의 뜻을 가진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다. 유리 광택을 발하는 오묘한 광물이자 금빛 결정과 조흔을 함유한 청금석에서 채취해 한때 유럽 종교화에 아껴 사용하며 다루었던 안료. 존귀하고 신성한 도상에게만 그 사용이 허락되며 경이와 경배를 상징했던 색상. 나는 지금 그것이 화면 전반에 자욱하게 깔린 그림을 보고 있다. ● 이는 '필멸자'들의 그림이다. 살아나 죽고, 멸망하며 멸종해가는 존재를 담은 그림. 불사의 신이 아닌 필멸의 그들은 유약하고 아프며, 불안하고 위태롭다. 유년의 얼굴로, 약자의 동태로, 웅크리고 기대어 아스라이 제 윤곽을 내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이미 풍파가 지나 스러진 뒤의 형상 같다. 부단한 속도의 시간은 옅고, 권력과 위계의 층위도 없이 따로 혹은 서로가 정적으로 있는 모양. 무심한 듯 초연한 듯 표정은 대체로 가리어져 있고 통곡의 슬픔은 아니나 우울의 습기가 골고루 베인 전경. 그들에게 서린 파란 색소의 명암은 그러나, 존망을 앞둔 자들의 위기를 단순히 고조하는 데 쓰이고 있지 않다. '바다 너머'의 그 빛은 여전히 신비롭고 성스럽다. 가시적인 눈의 자극이 아니어도 현혹될 심오한 힘이 내리쬔다. 영력과 같은 빛의 기운이 이들 필멸자의 세계를 비춘다. ● 여리고 지쳐 있으되 생명 존폐의 공포를 초월한 차분한 감도가 분위기를 일군다. 황망하기도, 원초적이기도 한 대지를 배경으로. 드넓은 초원, 적막한 사막, 잔잔한 호수와 같은 것들이 교차하기도 한다. 성서의 시작인 듯 아니면 예언의 끝인 듯, 기묘한 고요 속에서 필멸자들은 적은 수나마 다양한 종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서로의 사정도 각자의 수명도 다르지만 하나의 푸른 지구에서 동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느슨한 연대와 같이 모여 공동의 자연 생태계를 공유하는 것처럼. 이어진 삶을 대변하듯 하나의 시공, 같은 파장의 빛깔이 더해진다. 붉은 피와 살을 가진 그들 모두에게. ● 심연에 도달한 거기 푸르른 객체 가운데 불의 전령 이블리스(iblis)가 있다.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타락 천사다. 코란 경전에 의하면 이블리스는 인간에게 경배하라는 신의 지시를 거역했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일러 아담에게 부복하라 하니 그들 모두가 부복하였으되 이블리스는 그렇지 아니하고 흙으로부터 창조한 인간에게 부복하란 말이요 라고 하면서 거역했더라", 꾸란 17장(알 이스라Al-Isra '밤의 여정') 61절. ● 진흙으로 빚은 인간은 불에서 창조된 자신보다 저급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천국에서 추방당하게 된 이블리스는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고자 한다. 세계 종말을 은유하는 '심판의 날'까지 신에게 자신의 추방을 유예해달라 간청하여 승낙 받는다. "그가 또 말하더라 이것이 당신께서 내 위에 은혜를 더한 자이뇨 당신께서 나를 심판의 날까지 유예한다면 나는 그의 후손들을 소수만 제외하고는 멸망케 하리요", 꾸란 17장 62절. ● 그런데 이 악마의 화신은 왜 필멸자들과 그림 속에 함께 있는가?
사실, 내가 보는 이 그림 속에서 이블리스는 여느 악마적 도상에 근접해 있지 않다. 그는 작은 눈과 입으로 표정을 전하는 불꽃 모양으로, 필멸자들 주위에서 위로의 역할을 한다. 문제를 공감하고 걱정해 주는 요정, 우정과 애완이 주는 온기를 연상시킨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노트를 참조하여 볼 필요가 있다. ● "이블리스, 아랍어로 샤이탄은, '길 잃은'이라는 의미대로 인류가 길을 잃고 죄를 짓도록 유혹했고, 필멸자들은 길을 잃은 존재, 집을 잃어버린 망명자, 존재의 근원을 놓쳐버린 방랑자가 되어 이블리스와 오랜 세월 반목했다. 그러나 무심하게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해와 달을 바라보며 필멸자들은 천상의 무관심을 깨닫는다. 이제는 서로를 저주하는 굴레를 깨부수고, 추방자 이블리스를 광야 한복판의 구직자와 멸종자들 틈으로 보내어 꺼져가는 생명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는 관계로 전환하고자 한다. 서로를 비추는 빛이 되고, 뜨겁게 데우며, 가로막힌 장벽과 허물은 태워버리고, 빼앗긴 길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필멸의 공동체로 새로운 관계를 제안한다." (작가노트(2023)중에서) ● 작가 심성훈은 이런 글을 쓰고, 이블리스와 필멸자들이 어우러진 그림을 그렸다. 그는 천계에서 버려진 이블리스와 현세에서 생존의 곤궁을 맞는 필멸의 자들을 비슷한 운명 공동체로 본 것 같다. 신원과 자존과 생명을 잃어버린 이들이 '최후의 심판'에 그대로 굴하며 낙담하게 두지 않았다. 갈등이 있던 자리에 대신 화합을 넣었다. 작가는 하늘 아래 심해와 다름없는 이곳에서 함께 허우적대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의 발신자가 되었다. ● "보아라 심해어들이다 / 판화 속에 새겨진 것처럼 바닥에 들러붙은 저 몸들을 보아라 / 저들은 어둡다 몸에서 빛 한 방울 새어 나오지 않는다 /외로움으로 뭉쳐진 저 어둔 덩어리들을 보아라" (김혜순, 「히말라야 가라사대」중에서) ● 그리고 '바다 너머'의 빛깔에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와 코발트 블루(cobalt blue), 레몬 옐로(lemon yellow)의 색상을 섞어 필멸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그려가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 이블리스는 파란데 노란 테두리를 가진 횃불로 묘사되었다. 다른 필멸의 실루엣도 대부분 그랬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과 정령의 외로움이, 그 뭉쳐진 덩어리가 마치 금빛처럼 화면의 인상을 장악하게 되었다. ● "어둠 속에서 차츰 밝아지고, 밝음 속에서 차츰 어두워지는 궁극적 영토에 남은 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노트(2022)중에서)
"묘굴 속에 살고 있다." (작가노트(2017)중에서) ● 짐짓 해탈한 듯이, 심성훈은 말한 적 있다. 십 년여 전 겨울, 그가 10대 후반의 나이일 때 애완조 일곱 마리가 죽었다. 마당에서 키우던 십자매였는데, 하늘에서 날아온 야생 새의 습격을 받아서였다. 그는 주인으로서 무력하게 그들 죽음을 보았다. 작은 묘굴 같은 새장에서 나고 자라 고스란히 죽음을 맞은 것들에게서 나온 무언의 것을 자기 안에 삼켰다. 연민과 유폐의 길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차라리 자책에 더해 불안정과 광기를 흡수한 인간의 절멸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느 애도하고도 다른, 체념과 각성의 감각이 벤 채 그는 크기만 좀 다른 묘굴 안에 있는 자신과 주위에 눈을 돌렸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여름, 자궁에 종양이 발견된 모친의 병환 때문에 그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체의 양가성을 보았다.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지하묘굴'이라 명명한 초기 작업에서 심성훈의 표현주의적 드로잉과 인체 분열적인 묘사가 관찰됐다. ●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회화과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에 방황기를 겪던 심성훈은 안성의 비봉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너리굴문화마을에 있는 무형문화재 입사장전수관에서 공예가 선생님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깊은 산골이라 자연친화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짧은 쇠줄에 목이 늘 묶여있던 개 '바우'가 있었는데, 심성훈은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이면 바우의 목줄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뒷산에 오르면 누군가의 산소가 있는 너른 땅이 있었고 거기에서 바우는 해방감을 느끼며 뛰어다녔더란다. 억압과 자유와 생계와 죽음이 수시로 교체되던 풍경과 경험을 그는 그렇게 거쳐왔다. 무위에 해탈한 듯, 잠잠한 표정의 필멸자들이 그래서 그같이 그림 속에 그려지게 되었을까. ● "내 회화 작업에서는 내러티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러티브, 이야기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세상 누구든, 어떤 것이든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중심보다는 주변부에 머무는 대상들에 집중해왔다. (...) 작고 연약해서 차마 이야기 '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계수조차 되지 않는 길 위의 존엄한 삶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다." (작가노트(2021)중에서) ● 존엄한 삶에 귀 기울이겠다는 작가의 발언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역치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무명의 변두리에서 쓸쓸히 소멸하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회화가 낼 수 있는 여백 안에 그들을 담아 기록하는 행적에 결심과 명분을 불어 넣었다. 지난겨울, 잃었던 생명의 불씨를 더는 허망히 꺼뜨리지 않으려는 듯이. 안성에서의 1년 여 일을 마치고 심성훈은 첫 개인전을 열었다. 공방의 소소한 기물, 산에서 자란 꽃과 나무, 그리고 그가 본 말, 개, 개구리 같은 것들을 그렸다.
개인전 『숲의 레퀴엠』(2021), 『어디에서도 끝나지 않는 하늘』(2022)에서 심성훈은 신화적이고, 환상적이며, 친자연적이고, 문학적인 자기 회화의 언어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그림에는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이 자주 등장했다. 태고의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숲의 면면, 자연신의 형상도 드러났다. 의인화된 비인간종이거나 동·식물화된 인간에 종교적 도상을 차용해 철학적 무게감을 이루기도 하였고, 동화나 애니메이션 삽화 같은 단순 묘사로 가볍고 명랑하게 캔버스 위를 지나기도 했다. 자연도감과 같이 사실적 재현의 방식을 따를 때에도 초현실적이며 몽환적인 이미지를 함께 섞었다. 나는 올여름 심성훈의 대전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축적된 자연과의 일화 및 모태신앙이 예민한 작가적 감수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작업을 이루는 특유의 신비주의는 성경, 시, 소설, 만화, 영화 등 작가에게 노출된 문화의 영향이며, 일부는 세속화된 코드에 대한 반작용일 거라 추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작가는 가치의 우열을 단정 짓고 단적인 답을 내리기를 꺼리므로, 그의 도해는 끝내 복잡하고 미지인 수사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내는 주의의 여운은 길고 강력하다. ● 전시 『남겨진 것 이후에』(2023)에 출품한 신작은 서두에 쓴 바와 같이, 청색을 주조로 한 것들이다. 배에 홀로 탄 코끼리를 아이가 어루만지는 장면을 그린 「mystic river」, 순록과 북극곰, 북극토끼, 때까치, 호박벌 등이 인간과 함께 야외 자연에 앉아있는 「동행피난」은 '노아의 방주'가 그랬던, 최후의 심판 뒤 종의 생존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림에서 이블리스는 이들 현장을 목격하고 동조한다. 도상 중 가장 작은 크기이지만 비교적 명시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드러난 표정은, 관람객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요소 부분이다. 심성훈이 노래하는 코러스 단원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시작해 그 뒤 다양한 목소리의 소수자에 관심을 두고 만든 소형 입체작 「ordinary people」(2016)을 보면, 지금의 이블리스의 이목구비에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게는 회화의 주역과 그들의 약호화된 인상을 다루는 전초가 되었을 것이다. 심성훈의 이블리스는 주변인으로부터 태어났다. ● 「구직자, 멸종자」, 「over the horizon」, 「필멸의 밤」에도 인간과 동물이 등장한다. 산양, 반달가슴곰, 고라니, 독수리, 산토끼, 수달, 너구리, 도롱뇽, 오소리, 일각고래, 물까치 등이다. 이들은 함께 있다. 반목하지 않는다. 외로움으로 뭉쳐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어떤 공격의 의사도 없다. 「구직자, 멸종자2」에는 무릎에 고개를 괴고 앉아있는 두 명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리를 굽혀 쉬고 있는 멧돼지와 호랑이가 있다. 이블리스는 이들 가운데에서 저의 몸을 빛과 온기로 내어주고 있다. 여기에도 어떠한 적의가 없다. 「부상자들」에는 제비나비와 물까치, 거위가 있다. 다리에 상처를 입고 넘어진 부상자도 보인다. 뒷다리에 보조바퀴를 단 푸들이 부상자의 한쪽 다리를 핥고 있다. 수달은 나뭇잎에 물을 떠와 상처를 치료해 주려는 모습이다. 이블리스도 이를 돕는다. 상처 난 곳을 모두가 보고 있다.
이들은 합일된 마음으로 관계를 이룬다. 필멸의 운명을 함께 하며 '최후의 날'까지 서로를 치유한다. 심성훈은 그것을 다짐하는 작가다. 우리는 그가 미술을 경유해 남기는 의미를 보고 있다. 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될 모습도. ● "아직 해는 지지 않았어" (심성훈 그림책, 『붉은 너구리』(2022)중에서) ■ 오정은
Vol.20231102g | 심성훈展 / SIMMSUNGHOON / 沈聖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