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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kumhomuseumofart
철학하는 예술가가 그려낸 존재의 풍경 ● '위계 없는 세계'가 인간사회에 한 번이라도 존재했던가. 인간은 탄생과 함께 위계의 세계로 진입한다. 가족이 형성하는 위계, 학교에서의 위계, 사회에서의 위계, 성별과 인종의 위계, 국가와 지역의 위계 등 개인은 복수의 위계가 이루는 층위와 그물망 속에 얽혀 있는 존재이다. 정해진 위계에 의해 억눌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아우성으로 시끌벅적한 세상이다. 개인에 따라 위계를 인식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연 위계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까. 위계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위계 없는 세계'를 그려낸 박용호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 그러나 박용호의 '작가의 변'과 작품 제작의 원리를 보면 그에게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위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행동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철학자의 면모를 지닌 예술가이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근본 원리와 존재와 삶의 본질을 사유하는 학문이다. 박용호는 '위계 없는 세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위계'의 근거가 부재함을 예술로써 증명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의 작업은 위계 현상의 직접적인 재현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대신 존재자와 그들의 존재 양상에 대한 더 근원적인 질문을 향한다. 그는 '위계 없는' 상태가 세계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근원적 상태와 존재 원리를 추상예술의 언어로 표현한다. 현실을 유사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추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위계'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박용호의 작업은 추상적 형상을 띄는데, 그 재현의 원리는 수학적이고 과학적이다. 과학의 눈으로 미시세계를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그는 '방정식'과 양자역학을 통해 '위계 없는 세상'이 자연의 상태이며 진실이라고 치밀하게 우리를 설득한다.
그의 작업은 개별자와 그들이 함께 존재하는 방식 및 그들이 이루는 미시세계의 풍경을 담는다. 개별자는 방정식에서 미지수 X에 상응하며 불완전한 변수이다. 이 불완전한 단위는 다른 단위와 관계 맺기를 반복하며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것의 총체인 현상의 풍경을 구성한다. 두 개별자가 상호작용한다면, 그것은 자칫 위계를 형성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박용호의 '위계 없는 세계'에서 두 개별자의 속성은 위계로 규정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의 『Interaction』 시리즈는 이질적인 두 존재가 관계를 맺는 변화하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금속과 목재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재료가 합쳐서 이루는 풍경은 결코 현실 세계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형상적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추상화로 표현된다.
『The Part and The Part』는 박용호의 '위계 없는 세계' 존재론의 결정체이다. 추상 이미지의 정사각형으로 표현된 개별자는 전체를 이루는 단위인 부분이 된다. 그들은 격자형 구조체 위 각자의 위치에서 상호작용한다. 박용호에게 있어 그리드로 나누어진 프레임은 세계를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세계의 일부를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시각화한 것이다. 사각형 단위는 프레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쉽게 꽂거나 빼내어 옮길 수 있는 구조이다. 입자나 단위,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의 관계는 우연성의 기류를 형성하며 한 장면이 된다. 각 단위의 유동성과 관계 맺기의 변수는 지속해서 풍경을 바꾼다. 무한한 세계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면, 박용호는 그 미시세계의 구성 양상을 "유한한 풍경"으로 시각화하여 무한한 세계를 가늠하게 한다. ● 박용호의 예술적 여정은 금속을 다루는 데서 출발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한때 차가운 금속의 물성과 디자인적인 구성이 두드러졌다. 회화적 표현을 더 하는데 집중한 지난 몇 년 그는 도형성에서 벗어나 조형성을 획득했고 작품에 본인의 사유를 깊이 있게 담게 되었다. 그에게 금속은 작품을 받쳐주는 골격의 역할을 하며 공간성, 입체성, 가변성을 허용하여 개별자가 자유로이 상호작용하는 단위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 미시세계를 물질적으로 가시화한 유한한 놀이터에서 우연적인 상호작용을 구성하는 미지수 X 단위들은 그 값에 따라 각각의 방정식을 성립하며 추상적 풍경을 그려간다. 그 유동적인 과정의 한순간을 포착한 그의 작업에서 개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그려내는 풍경은 회화적 표현이 더해져 감각적이고 촉각적이다. 감상자는 시간이 흐르고 대기가 바뀌고 빛의 강도가 잔잔히 바뀌면서 변화하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박용호의 예술은 그가 가진 평등과 존중의 사상을 미학적으로 표현한다. 추상과 관념, 과학과 방정식을 오가는 박용호의 작업은 사실 생생한 몸의 노동에서 나온다. 그는 철저하게 장인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가시화한다. 「유한한 풍경」의 다각형을 3mm의 간격으로 배열하거나 「부분과 부분」의 격자형 구조체를 2mm의 금속판을 가공하고 교차하여 세우는 과정에는 금속을 다루는 이가 흘린 땀과 장인정신이 스며 있다. 그의 평등의 철학은 물감을 입히는 과정의 수직성을 배제하고 수평성을 실천한다. 개별자들을 대변하는 사각형 단위의 채색은 어떠한 수직의 위계도 작용하지 않도록 바닥에 수평으로 놓은 상태에서 행해진다. 이처럼 예술가의 철학은 작품 제작의 방법을 결정하고 철저한 설계와 인고의 노동을 통해 작품으로 탄생한다. 철학의 실천이 언술을 통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철학하는 예술가는 침묵하는 노동의 시간을 견딘다.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홀로 고요히 땀 흘리고 인내하여 작품으로 내어놓는다. ● '위계 없는 세계'는 관념이고 이상일 뿐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박용호는 그것이 과학이고 수학이며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박용호는 왜 이토록 위계 없는 세계에 천착하는 것일까.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박용호의 "위계 없는 세계론"은 철학하는 예술가인 박용호의 지혜의 산물이다. 그의 지혜의 목소리에 따르면 개별자는 동등하며, 따라서 서로를 존중하며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의 대상을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에 빠져 그의 작품을 한 발 떨어져 감상하면 위계와 차별에 짓눌린 개별자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예술가의 철학이 담긴 작품은 감상자의 마음에 존재와 삶을 사유하는 풍경을 연다. ■ 이필
Vol.20231102e | 박용호展 / PARKYONGHO / 朴龍昊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