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순간 Brilliant moment

이재복展 / LEEJAEBOK / 李在福 / painting   2023_1031 ▶ 2023_1112 / 월요일 휴관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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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인스타그램_@jjaebok_le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춘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개나리미술관 GALLERY GAENAREE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거두택지길44번길 7-19 (거두리 1123-6번지) Tel. 070.8095.3899 gaenaree.modoo.at @gae.na.ree linktr.ee/gae.na.ree

사물을 그린다는 것 ●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함께해서 익숙한 사물을 마주할 때, 나와 보낸 시간과 공간이 다시 다가옴을 느껴본 기억이 있다. 어릴 때 좋아했던 장난감에 대한 애착을 놓지 못하는 것도 아직 성장하지 않은, 세상에 홀로 던져지지 않은 시절에 대한 동경인지 아니면 지금은 이미 지나가 버려 더 소중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그런, 감정과 느낌 기억이 지금의 공기 속에 섞여 들어온다. 주방에 들어온 햇살에 반짝이는 유리컵에 한동안 쓰지 않아 내려앉은 먼지를 닦으면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의 사람과 느낌과 감정이 살짝 스친다. 나의 애착으로 사물에 사람과 시간과 공간이 깃들어 버렸다. 그때 그 공기가 지금에도 나의 가슴속 어딘가를 스쳐 지나 따뜻한 충만함을 주고 지나가듯이 언젠가 또 선물같이 나에게 올 시간들 속에 사람과 공간과 감정이 주는 시간들이 사물에 또 깃든다. 기억은 분절되어 파편으로 존재한다. 분리되어 조각나 다시 재구성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구성된다.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3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3

이재복 작가의 회화작품 속에 분할되어 나누어진 색 면은 일반적으로 인지된 사물의 색과는 다른 새로운 색으로 구성된 사물로 화면에 존재하며 여러 시공간 속에 존재했던 사물이자 공간이자 시간이고 느낌과 감정이다.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다가올 시간에도 있기에 동시적인 인식은 여러 개의 파편으로 남아 한데 모여 나에게 인지된다. 하지만 견고하게 완결된 연속성이 아닌 유동적이며 분절된 연속성으로 구성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사물이 아닌 그 사물로 인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인식이 함께 존재한다. 하나의 터치는 하나의 순간을 담고 그 터치가 모여 만들어진 색 면은 사물을 구성하며 살아있는 숨 하나하나가 되어 작가의 시간과 삶과 존재를 고스란히 담는다. 색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삶, 지금 이 순간 존재의 흔적으로 한순간도 같을 수 없는 시간 속에 존재를 증명한다. 따라서 색은 정의할 수 없고, 변화한다.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3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7.9cm_2023

내 눈앞에 놓인 사물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변화하여 정지되어 있지 않고 상호작용한다. 그 속에 나로 존재하고자 하였지만 거역할 수 없는 유한성에 대한 수용이자 미련과 애착이 작품으로 남는다. ■ 솔안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7.9cm_2023
이재복_Brilliant moment no.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끝없이 넓고 넓은 우주에 가늠할 수 없는 공간 중 아주 순간적으로 생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그런 찰나의 시간과 공간 안에 또 순간적으로 같이 존재하고 공존하며 살아가고 교감하면서 살아가는 그 수없이 많은 순간에 그 수 많은 세상 속에 아주 잠깐의 스치는 순간을 붙잡아 영원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손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 그 찬란한 순간 영원이 된다.

이재복_IN PLACE "good d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2×66cm_2022

어릴 적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티브이에서는 현란하게 반짝이는 트리와 도시를 울리는 캐럴 양손 가득 선물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 빨간 옷을 입고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의 모습들 추운 단칸방 이불 안에 여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보던 티브이 안에 풍경들은 현실과는 너무 다른 이미지였다. 하지만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속에 웃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이미지들이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 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런 의미를 떠나서 현실과는 너무 다른 반짝이고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의 이미지들은 나로 하여금 찬란하게 다가올 나의 순간들을 상상하는 이미지로는 충분했다.

이재복_IN PLACE "LEGO-Eeyo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3cm_2023

추운 겨울은 어김없이 다가오지만 또 어김없이 지나간다. 마른 나뭇가지에 초록의 새싹이 아주 작게 나왔다. 커다란 나무의 이미지는 아직 바짝 마르고 차가운 겨울의 이미지이지만 손톱보다 작은 초록의 작은 싹은 여름의 우거지는 녹음을 상상하게 한다. 찬란한 순간들을 삶은 곳곳에 존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하루하루 걱정과 근심, 관계와 불화, 불안정한 미래 등 힘든 삶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찬란하게 잠깐이나마 반짝일 순간이 있어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지 않을까? 겨울이 지나가는지 저녁 바람이 언젠가 느꼈던 그 기분처럼, 향기처럼, 행복했던 기억의 순간처럼 온몸을 한번 휘감고 지나간다. 봄이 왔다. 찬란한 순간처럼, 눈부신 봄이 다시 왔다.

이재복_IN PLACE "LEGO-good n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60.6cm_2023
이재복_IN PLACE "LEGO-Robo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23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매 순간순간 온 힘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부담감들 스트레스를 받는 소식들 관계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들 나만 힘든 것 같은 자괴감 하지만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는? 찬란했던 과거의 기억, 찬란한 어떤 순간들, 찬란할 앞으로 기대들, 함께 이야기할 찬란한 순간들. 삶의 무게나 현실의 많은 부분들은 힘들지만, 누구나 찬란했던 순간이 있고 찬란할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긍정적이고 조금은 지금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순간순간을 보냈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하려 한다.

이재복_IN PLACE "LEGO-Taz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3cm_2023

하얗게 비어있는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계획으로 가득 차 있지만 항상 작업을 시작하는 시기에는 이런 시간이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오는 두려움과 기대 같은 기분 밖에는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던 봄의 단비가 내리고 있다. 하얀 캔버스를 위에 꾸덕꾸덕 나이프 위의 물감들을 바르고 있다. 하늘의 색 풀의 색 바다의 색 다양한 색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꾹꾹 눌러 담듯이 쌓아 내고 있다.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듯 감정들을 하나하나 담아내려 애를 쓴다. 아니 애를 쓰지 않아도 담아지고 있다. 색은 나의 언어이다. 언어들이 쌓아지고 적혀져서 또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 나온다. 하나의 작품은 한 권의 책이다. 그 속에 수많은 단어가 수많은 문장들이 뒤엉쳐 있는 하나의 공간이다.

이재복_IN PLACE "LEGO-Winni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3cm_2023

작업을 하다 보면 온갖 잡념에 휩싸인다. 겨울에는 발끝이 시린 그런 느낌이 영원할 것 같았다. 주변의 풍경도 그러했다. 요즘 주변이 많이 달라져 있다. 발끝이 시린 느낌보다 자꾸 팔을 걷게 되는 따뜻함을 넘어서는 기분들과 갈색이었던 주변의 색이 연한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누군가는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던지 모르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또 같지만, 한 번도 같지 않았던 순간들이 온다. 또 그런 순간들을 같지만, 한 번도 같지 않은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문득 나의 마지막 순간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흐름 안에 그렇게 나의 마지막 순간도 왔다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지 않을까?

이재복_IN PLACE "Moo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5×84.5cm_2022

한바탕 소나기가 내렸다. 연두의 색상은 점차 초록으로 진해진다. 소나기 후의 하늘은 흐릿한 회색을 모두 밀어버리고 먹구름 사이로 연한 하늘색의 색을 보여준다. 연한 하늘색의 하늘은 어두컴컴했던 구름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밀어내고 하늘색에서 점점 진해져서 온전한 파란색으로 변해간다. 파랑의 하늘과 언제부터 생겼는지 하얀 뭉게구름들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피어오른다. 초록의 대지는 점차 더욱 진해진다. 파랑과 흰색, 초록 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간다. 여름의 그 가장 뜨거운 순간이 지나간다. 눈을 감아 뜨거운 공기를 천천히 마셔본다. 아련히 남은 비의 향기와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진 풀의 냄새와 습한 나무의 향기가 어우러진다.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나의 작업은 이렇다. 나의 작업은 항상 찬란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런 순간을 천천히 담아낸다. (2023년 7월 초 비와 뜨거운 태양이 오가는 시간 사이에서)

이재복_IN PLACE "Ro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2
이재복_IN PLACE "Rout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40cm_2022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함께 변화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다 지나가버리고 변해버린 순간들을 그리워하고는 하지만 지금 현재 또한 그리운 순간으로 변할 것이다. 이재복작가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같은 대상일지라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형태와 색, "현재"라는 과거보다도 찰나인 순간을 날카롭게 바라본다. 글나 계속해서 변화하는 현재 속에 우리 자신임에도 변하지않는 것들이 있다. 내가 있는곳, 있어야하는곳, 각 사물들은 저마다의 쓰임이 있고 있어야하는 자리가 있다. 그 순리에서 오는 안정감과 명확성을 지나가는 순간에 담아낸다.

어느 하나의 시간대라고 추측할수 없는 색감으로 그려진 그의 정물들은 캔버스 안에서 "카모플라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자리"를 찾은 모든 사물들은 그 순간에 녹아들어 주변 환경과 동화한다. 그것이 나 자신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라고 말하듯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달콤한 색감들로 구성된 그의 정물들과 같이 어지러이 변화하는 세상 속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제자리"는 어디일지 잃어버리고 있었던 우리의 본모습은 무엇인지 상기하기를 바란다. ■ 이재복

Vol.20231031f | 이재복展 / LEEJAEBOK / 李在福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