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

림배지희展 / LIMBAIJIHEE / 林培智熙 / painting   2023_1031 ▶ 2023_1105

림배지희_『×××-±∆∇→‡』_한지에 호분, 과슈_129.8×162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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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배지희 홈페이지_www.limbaijihee.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공공을 위한 100개의 질문 릴레이展

후원 / 충북문화재단_충청북도 주관 / 비칠칠문화예술협동조합 www.b77.kr

관람시간 / 10:00am~06:00pm

어계원 갤러리 EOGYEWON GALLERY 충북 청주시 흥덕구 흥덕로127번길 14 (운천동 848번지) 1층 Tel. +82.(0)43.232.8622 @eogyewon

너희들의 삼켜진(삼킨) 대화를 관음한다. - 삼킨 것과 토해 낸 것 ● 림배지희의 작품을 생각해 보면, 수수께끼와 같은 이미지가 가득 채워진 검은 회화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흑색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여 캔버스 천 위에 뭉개고 짓이겨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기괴한 형상과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채운 검고 짙은 흑백의 그림.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상징과 이미지가 캔버스 화면 가득하게 채웠음에도 오히려 침묵과 공허함이 물결처럼 흐르고 있다. 그 공허함은 어디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일까?

림배지희_⌒⎘⌒■⎘⌇⍚⎉, 한지에 호분, 과슈_97.1×194.1cm_2023
림배지희_껍데기_한지에 혼합재료_130×194cm_2021

림배지희는 그동안 타인과의 대화에서 발설하지 못하고 말을 삼키면서 생겨나는 관계의 균열들을 그려왔다. 삼킬 수밖에 없는 경험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삼켜진 나라'라는 가상의 공간에 모두 토해낸다. 그리고 '언어의 자유는 타인과의 분열과 불균형에서 시작'함으로 정의 내린다. 이 '언어의 자유'는 타자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 그가 구축한 회화의 세상으로 한정된 해방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관람자가 완벽하게 해석이 불가능한 상징들로 화면을 가득 채웠음에도, 오히려 그 속에 자신을 숨기고 침묵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외부의 눈을 피해 자기 내면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행되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어기제이다. 마치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는 생물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보호색을 띠도록 진화해 온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림배지희_⌑⌑⌑⏧⋦_116.7×91.1cm_2023
림배지희_새_나무판넬에 혼합재료_45.4×52.8cm_2022

대면이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 2020년이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코로나-19는 초고속 사회 속에서 그동안 겪지 못했던 물리적 단절을 경험하게 하였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사회 시스템과 우리의 일상이 대부분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 그러나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물리적 단절을 겪은 이후, 타인과의 관계 형성 방식의 변화가 곳곳에 감지되었다. 림배지희는 팬데믹 이후 변화된 사회 분위기와 최근 작가 개인적으로 변화된 환경에 의해 '나'가 아닌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공간에 들어와 그들을 '관음'하게 됨으로써 그의 회화 속 세계관도 이 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림배지희_컵_한지에 먹, 과슈, 흑연_116.9×91.2cm_2022
림배지희_산_한지에 먹, 과슈, 흑연_116.9×91.2cm_2022

이 '관음'이라는 행위, 이번 개인전 『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2023)를 관통하는 단어로 넌지시 다가온다. 림배지희는 왜 '관찰'이 아닌 '관음'이라는 다소 음침하고 부정적인 단어로 자신의 행위를 정의하였는가. '관음'으로 명명한 것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어계원 갤러리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 옆 벽에 설치된 작품 「눈알」(2022)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이 작품은 2022년 갤러리 밈에서 개최한 개인전 『눈알을 던져라』(2022)에 먼저 출품된 2점으로 구성된 회화이다. 작은 사이즈의 나무 판넬 위에 눈의 형상이 부조 형태로 툭 튀어나온 눈알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 같다.

림배지희_ↈ(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림배지희_ℽ∼(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어느 전시장이나 마찬가지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설계된 화이트 큐브에서는 갤러리에 배치된 테이블은 사람 대 사람이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작품 「눈알」은 타인을 관음하기 시작한 작가 자신의 시선이기도 하다. 특정 구역을 감시하는 CCTV와 같이, 림배지희는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해 왔던 자기 눈알을 내면 밖으로 던져냄으로써 삼켜왔던 자신의 나라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그리는 대상이 삼자의 시선으로 이동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림배지희 회화의 중요한 변곡점이다. 흥미롭게도 시각의 변화로 그의 회화는 역동적인 이미지와 색의 사용으로 변주하게 된다.

림배지희_≑⊜⋋⋱,(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림배지희_ᨕ§*∝⁜(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대화의 뒷면이 궁금할 때 ●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긴 서사물도 몇 초안의 강렬하고 짧은 문장과 쇼츠와 같은 영상과 이미지로 생산하고, 그것을 신속하게 소비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상들은 지금을 상징하는 풍경이 되었다. 그가 관음하는 이 세상은 차마 말하지 못해 숨기는 것이 아닌, 정보의 과잉 속에서 알맹이는 삼키고 시선을 강렬하게 끌기 위해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계이다. 림배지희는 상호적 언어 소통은 점점 부재하게 되고, 가볍고 피상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현상들에 주목하고 다시 한번 눈알을 던진다. 「『×××-±∆∇→‡』」(2023)은 흘러내리는 듯한 두 명의 인간의 두상이 검은 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회화이다. 이 검은 막은 두 인물에게 소통의 창구가 되지 못하고 온갖 흘러넘치는 사물로 인해 막힌 터널과 같아 보인다. 서로는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막을 통해서 접하는 사물과 정보로 상대를 인지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관계는 언제나 단절과 왜곡을 배양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림배지희_□⌇⌇⌇▒(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림배지희_⅏(연작)_한지에 호분, 과슈_60.5×72.6cm_2023

「ⓐ ↈ」부터 「ⓕ ⅏」로 이어지는 6점의 연작은 3D 스캐너로 스캔 된 펼쳐진 인간 두상의 평면도가 마치 책장을 넘기듯이 한 장씩 넘기면 각각 다른 질감과 색이 드러난다. 림배지희는 앞서 언급한 『눈알을 던져라』(2022)의 「눈알」(2022)을 비롯하여 물체의 사방을 기록하고 한 화면에 펼쳐 그린다. 즉 입체를 다 시점의 평면으로 옮기는 조형적 실험을 병행하여 껍데기에 숨겨진 본질들, 즉 삼킨 말들을 해체하고 펼쳐버린다.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으로 펼쳐 그린 「컵」(2022)을 시작으로 직접 이동하면서 산의 여러 시점을 드로잉한 후 화면에 옮긴 「산」(2022), 사람 머리 아래 거대한 테이블이 둘로 쪼개지고 그 위에 여러 사물이 진흙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2023)은 본인의 내면이 아닌 관음의 대상이 된 세상의 뒷면을 열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살면서 겪은 관계의 갈등과 이로 인한 내적 트라우마 분출과 해소의 그리기에서 한 단계 진화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며, 난무하는 껍데기들 속에 소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림배지희_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展_어계원 갤러리_2023
림배지희_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展_어계원 갤러리_2023
림배지희_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展_어계원 갤러리_2023

껍데기는 혼이 되었다. ● 이번 전시의 마지막 동선에 걸린 작품은 「껍데기」(2022)이다. 이 작품은 원형 테이블 위의 시든 꽃다발이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하였고 테이블 밖은 푸른색으로 강렬하게 채워져 있다. 종교와 신앙의 구절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육신이라는 껍데기가 사라진 뒤에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미 생을 다한 죽은 꽃의 시체가 테이블을 장악하듯이 이미지로 박제된 껍데기가 세상의 혼령이 된 현시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사람이 죽어도 살아생전 사용한 SNS상의 흔적들은, 그 사이트가 폐쇄되지 않는 한 영혼이 부재된 채 껍데기만 남아 디지털 세상에서 표류하게 된다. 어쩌면 이 껍데기가 21세기 혼령이 아닌가.

림배지희_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展_어계원 갤러리_2023
림배지희_대화의 풍경_그 어딘가에展_어계원 갤러리_2023

그럼에도 흰 여백의 공허함이 아닌 푸른빛으로 배경을 가득 채워 흑백의 껍데기를 감싸고 있다. 사물의 뒤편을 궁금해하고, 흑색을 벗어나 다른 빛을 내는 색들이 화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놓은 벽을 조금 허물고 이제 자신의 주변과 세상에 자신을 던진 것 같이 보인다. 이제는 림배지희가 삼킨 말, 삼켜진 대화가 공허함이 아닌 그 어떤 색이라도 채워져 서로를 환대할 수 있기를. ■ 이연주

Vol.20231030f | 림배지희展 / LIMBAIJIHEE / 林培智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