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벽 Wall for 7 days

김경한展 / KIMKYUNGHAN / 金勁翰 / painting   2023_1019 ▶ 2023_1119 / 월,화요일 휴관

김경한_03:0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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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 홈페이지_www.hansikim.com       인스타그램_@kyunghankim0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3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展

주최,기획 / (주)신한화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포네티브 스페이스 PONETIVE SPAC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 Tel. +82.(0)31.949.8056 www.ponetive.co.kr

전문가 미술재료 제조기업 (주)신한화구는 모든 장르의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Thinkartkorea를 주관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Thinkartkorea는 2014년 첫 선을 보인 이래 2019년까지 총 10명의 작가를 선정했으며 선정 작가에 대한 개인 전시회 개최 및 전폭적인 지원과 협업을 통해 작가가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2023년 다시 시작된 Thinkartkorea는 수많은 작가들의 관심과 지원이 줄을 이었고 신한화구는 심사숙고하여 최종적으로 김경한 작가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김경한_03: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22

김경한 작가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 미술대학교 회화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국내로 돌아와 2017년부터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수원 아트 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 김경한 작가는 어느 작가 노트를 통해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항상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서로 부딪힌다" "회화 안에는 분명 작가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늘 존재하기에 만만하게 대할 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상의 반복이 습관화된 표현으로 연결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오늘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계속된다"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하나의 행위를 얼마나 진중하게 바라보고 더 나은 것을 위해 고민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아크릴컬러를 주 재료로 완성되는 김경한 작가만의 회화를 직접 마주하고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는 시간을 이번 2023 Thinkartkorea 전시를 통해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김경한_7일의 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22

21세기 영웅 서사: 김경한의 예술세계 ● 모더니티의 종말을 주장한 잔니 바티모(Gianni Vattimo, 1936-)에 의하면, 역사는 모더니티의 강력했던 전제가 차츰 약화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비슷하게 아서 단토(Arthur C. Danto, 1924-2013)는 예술의 종언을 말했다. 예술에서의 네러티브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티모의 경우, 이전 세기인 1985년에 저술한 [모더니티의 종말(The End of Modernity)]에서 역사에서 거대 담론이 약화된다고 예언했다. 단토의 경우, 1996년에 저술한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에서 예술은 역사에서 벗어나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내다보았다. 21세기가 시작하고 스무 해가 지난 지금, 그들의 예언과 진단은 놀라우리만큼 적중하고 있다. 첫째, 현대미술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모더니티의 약화된 전제의 느슨한 되풀이와 재해석이 긴요한 의제처럼 작용한다. 셋째, 담론의 변방인 동아시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작가와 미술 관계자가 부재하는 사실도 음울한 정신적 기후를 배가시킨다. 이것이 종말의 징후이다.

김경한_7일의 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22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은 1951년 「숭고한 영웅(Vir Heroicus Sublimis)」을 그렸다. 1년 넘게 그려 완성했는데, 작가가 지프(Zip)라고 말하는 네 개의 수직선과 빨간색만을 사용하여 인간 조건의 비극성을 그려냈다. 전면이 농후하게 붉은 이 그림은 숭고를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색이란 (관람객으로 하여금) 객관성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주관적인 영역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라고 1) 말했다. 네 개의 수직선이 가른 다섯 개의 분할면은 이산(離散)되다가도 하나로 수렴(收斂)되는 것이다. 그 작품은 관객이 어떤 해석을 내리더라도 갖은 해석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추상 회화의 영원한 힘은 무한한 해석을 허용하는 수용성에 있다. ● 최초의 진정한 추상화가로서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을 우리는 존경한다. 서거하기 몇 해 전인 1950년에 완성한 「하나: 넘버 31, 1950(One: Number 31, 1950)」는 전면회화의 걸작으로 충격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드립 페인팅의 진수였으며, 우연과 필연이 자웅을 겨루는 가운데 둘의 힘이 완벽하게 중립을 이루는 기적을 연출했다. 작가는 "나는 변화를 만들고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림은 그 자체에 이미 생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2) 말했다.

김경한_시들지 않는 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3×163cm_2023

회화가는 미술사와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시각언어를 발견하고, 외부세계와의 만남을 통한 성찰 속에서 세계관을 직조하는 거미이다. 그런데 어떠한 직조를 이루더라도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바넷 뉴먼이나 잭슨 폴록과 같은 영웅적 서사는 마무리된 것이다. 이때 바넷 뉴먼이나 잭슨 폴록의 후세대 현대 미술가가 내릴 수 있는 자기 처방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미술사학자 테리 스미스(Terry Smith, 1944-)에 의하면, 현대미술가가 찾은 돌파구는, 첫째, 리모더니즘(Remodernism)이며, 둘째, 레트로 센세이셔널리즘(Retro-sensationalism)이다. 끝으로, 경관주의(spectacularism)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가 결여되어 있는데, 그것이 포이에시스(poiesis)라는 것이다. 3) ● 이러한 세계적 정황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의 회화가 여전히 재해석되며 부피를 키우거나 감정을 조작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회화의 새로운 돌파구나 의미 있는 형식에 대한 모색을 더는 찾기 어렵다. ● 김경한 작가는 이러한 정황에서 회화의 역사를 향해 온몸을 던진다. 김경한 작가는 2021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던 『별거 없는, 가장 특별한』展에서 아주 특별한 회화작품 수십 점을 제시한 적이 있다. 도시공간을 추상적으로 재구상한 듯 보이는 작품은 서로 밀고 당기는 인력과 척력을 겨룬다. 작품을 보는 사이, 우리는 모든 작품이 작가의 신체로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며, 순간적으로 아연실색하게 된다. 도시공간이나 추상적 구상의 회화는 「경계에서」, 「밑에서 위로」, 「무제」와 같은 제목으로 인해 관객은 한층 더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김경한_시들지 않는 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3×163cm_2023

바넷 뉴먼처럼 극단으로 주관성을 강조하든, 잭슨 폴록처럼 극단으로 필연을 파괴하든, 작가와 캔버스 사이에는 반드시 심리적 거리가 주어진다. 그림은 관찰과 사색, 성찰과 반복의 과정을 겪는 수행적 공간(performative space)이기 때문이다. 김경한 작가는 몸에 물감을 바른다. 관찰 이후 순식간에 캔버스라는 심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물질 속으로 투신한다. 거기에 오체(五體)가 모두 관여한다.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의 「개미(Ant)」 연작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이때 이브 클랭 언제나 회화에서의 관찰자적 시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김경한 작가는 즉자(卽者, Ansich)가 되어, 관찰자인 동시에 피관찰자가 되고 마는, 불가능한 관계항을 성립하는 것이다. 신체가 붓이 되고, 신체가 캔버스와 동일화되는 것이다. 온몸으로 눌러 찍고 팔뚝으로 뭉개어 그린 그림은 놀랍게도 색면주의 회화가 품고 있는 숭고나 구성주의 회화가 지니는 미적 긴장을 구유한다. 나는 심인(心印), 즉 마음의 이미지는 있어도, 신인(身印)이라는 말은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나의 제문(自祭文)』의 첫 구절을 "때는 정묘년 9월"이라고 시작한다. 여기서 9월의 원문은 "율중무사(律中無射)"이다. 무사(無射)는 음악에서 십이율의 열한 번째 높은 소리를 가리킨다. 두 번째로 높은 음으로 추운 가을로 넘어간 날씨를 표현한 것이다. 이와 달리 김경한은 가장 직접적인 접촉으로 가장 뜨거운 색을 만들었다. 육신과 캔버스 사이에서의 심적 거리가 상쇄된,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즉물적 투신으로부터 발열하는 뜨거운 예술가의 육신(신체) 속 체온과 직접적으로 차오르는 체감이 우리의 시선에 닿고 귓가에 울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직접적 감각과 생생한 인지의 생명체험을 캔버스에 영구히 가둔다. 그 생생한 생명체험은 캔버스에 영구히 보존되어 뜨거운 발열을 멈추지 않는다. 차가운 계열의 색채가 주가 되더라도 뜨거운 열기는 유지되며, 붉은 계열의 색채가 나타날 즈음에 시선은 충격적 열기에 놀라다 못해 급기야 'stunned abstract'라는 단어가 뜻하는바가 무엇인지 절감(切感)하게 되는 것이다.

김경한_벽을 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4×450cm_2023

리모더니즘, 레트로 센세이셔널리즘, 스펙터큘러리즘, 요즘 세계 미술에 이 세 부류가 판을 친다. 여기에 시성(詩性)이 빠진 것이다. 의미를 빙자한 디자인이 판을 치는가 하면, 시각적 형식언어에 대한 고민 없이 철학을 미술에 남용한다. 자본주의와 디지털 가상은 현대미술의 두 날개이며, 컴퓨테이션 앞에 육화(肉化)의 기적은 전설의 옛 이름으로 화석화된다. 그러나 김경한 작가는 예술의 종말은 있을지언정 예술가의 종말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군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지어다."라고 말했듯이, 김경한은 온몸으로 밀어붙여 회화의 새로운 돌파구를 뚫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하나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의 뜨거운 기운과 기세가 쉽게 식지 않을 거라고 본다. 예상을 넘어 오히려 정열은 신선한 지혜와 절충하여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한다. ■ 이진명

* 각주 1) en.wikipedia.org/wiki/Vir_Heroicus_Sublimis (2023년 9월 3일 접근): "Color is freed from objective context and becomes the subject in itself." 2) moma.org/artists/4675 (2023년 9월 3일 접근): "I have no fears about making changes, destroying the image, etc., becausehe painting has a life of its own." 3) Terry Smith, "Questionnaire on The Contemporary," October, Vol. 130 (Fall, 2009), pp. 50-51.

Vol.20231019a | 김경한展 / KIMKYUNGHAN / 金勁翰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