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가구 新識家具

나점수_방석호_송기두_정명택展   2023_1006 ▶ 2023_1104 / 일,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아트스페이스3 기획 / 육상수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3 ARTSPACE3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23 (통의동 7-33번지) B1 Tel. +82.(0)2.730.5322 www.artspace3.com @artspace3_seoul

물체에 어를 심어 서사로 일어서게 하는 일-신식가구 新識家具 ● "가구는 말을 하는가? 생각을 하는가? 스스로 움직이는가? 고요히 머무를 수 있는가?" ● 이 엉뚱한 질문은 가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작은 단서였다. 기능과 효율의 생활 도구인 가구는 우리들이 이해하는 상식에 둬도 되지만, 사물에도 격조가 있고 그것의 구성 인자인 물질에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것은 나름의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서양식 삶의 구조를 차용한 생활방식은 그에 맞는 가구가 필수적으로 따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가구가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현재의 감각과 이해가 충만한 전환기적 현대 가구를 등장시켜야 함은 한국의 가구 작가들에게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신식가구 新識家具』는 시대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2년 전 즈음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신식가구展_아트스페이스3_2023

프로젝트에는 조각가 나점수, 조선가구 소목장 방석호, 가구디자이너 송기두, 아트퍼니처 정명택 작가가 참여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작가를 부른 데는 낯설어 생경하거나, 두터운 서사를 입은 가구를 통해 가구의 인식의 체계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4인의 작가들은 '물(질)의 감춤과 드러남', '조선가구의 미니멀리즘과 현대화', '직선과 곡선의 비일상적 감각의 교집합', '고전적 사물의 기척이 발현하는 무위의 기운'을 화두로 삼아 물성의 이면을 탐미하고 조형해왔다. 자기만의 세계관과 입지가 튼실한 작가들에게 『신식가구』는 '업(業)과 체(體)'를 화두로 던져주고, 가구의 인식에서부터 담론을 아우르고 실체적 형태와 초월적 지위를 해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 가구는 일상과 밀접한 도구이면서 문명의 상징체로 인류와 동행해왔다. 그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 세계 최초의 가구는 스코틀랜드의 오크니 제도에서 발견한 신석기 시대 돌침대와 돌찬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시작으로 서수의 가구 역사는 오늘날까지 형식과 기능이 어우러진 가구를 만들었고, 디자인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이성에 호소했고,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는 권위와 사치를 상징하는 형식과 문양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고전주의가 도래하면서 엄격한 자연주의 기준이 세워졌고, 산업혁명과 함께 열린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는 기계와 수공 제작의 오차를 경험하면서 '미술 공예 운동'의 시발이 되었고, 이 흐름은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시대로 이어지면서 유기적인 형태와 기하학적 형태의 가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스런 가구들이 힘을 잃을 즈음, 독일에서는 근대 디자인의 산고인 바우하우스가 모더니즘을 견인했고 그 영향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최근에는 미술 공예, 디자인이 제시하는 사물에서 기학적 수치에만 편중되어 과도한 형식과 억압적 의식을 강요하는 경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사물의 현재적 '현상' 그 자체가 아닌, '현상물(現象物)'에 한정하는 오류 때문이다. 『신식가구』 또한 물성의 상태를 직시 않고 형식주의에 도취한 기형적 사물에 의도를 견강부회하는 오류를 경계했다. 그래서 『신식가구』는 형식의 새로움보다 그 새로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역점을 두었다. '인(認)과 식(識)'의 차이와 정도를 승화시키고 가구의 몸을 이루는 물질의 들숨과 감각의 날숨이 한 몸이기를 의도했다. 이것은 물질의 질료와 작가의 정신이 반죽되어 시의 언어가 되고 몸의 체액이 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가구가 자산의 숙명적 형태로 초월의 상태를 살피는 '알아챔'의 새로운 영역을 의미한다. 가구에 대한 이해의 시점을 달리해 물질과 형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이끌어내어 사물의 도리(道理)를 발현하는 일은 현대 가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조건이 된다. 이 일련의 모든 상황을 이해한 작가들은 사물의 대표적 매체인 가구를 대상으로 담대한 의도와 독창적 작업으로 조율해갔다. 전시장에 놓인 20여 점의 가구 표지에는 기능을 바탕으로 상징과 은유가 도사리고 있어 관람객의 안목에 따라 가구가 내뱉는 언어와 표정이 차이가 확연하게 다를 수 있다. 기능을 찾으면 용도만큼 보이고, 의미를 얻고자 하면 물성의 서사에서 작가의 세계관까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신식가구展_아트스페이스3_2023

物: 나점수 / 다루고, 다가감의 여정 ● 조각가 나점수는 물질이 형태에 구속되는 오류를 피하고 '인위가 우연을 배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가구를 보는 시선의 감춤과 드러냄을 읊는다. 그는 테이블의 본질은 비어 있는 것이며 그것의 여백의 품을 수 있도록 조각했다. 옮기기 불편할 정도의 무게를 가진 의자는 고정된 채 기능은 감추고 물질의 현상에 인접해 사유의 능력을 부여해 기존의 의자와 현격한 차별을 주었다. 또한 벽에 홀로 세워진 책장은 나무의 한가운데를 깊게 파내고 그 자리에 단 한 권의 책만 꽂도록 한 것은, 책을 품어 하나의 세계관로 진입하는 통로로 삼기 위해서이다.

必要: 방석호 / 필요의 필요만 남기다 ● 조선 가구는 기능을 내재한 기물이면서 이치와 격조의 대상체이다. 소목장 방석호는 조선 가구의 정서와 감성을 현대성으로의 전환을 도모한 가구 장인이다. 그는 조선 가구의 특징인 사면의 수직, 수평 구조에 전통미와 현재의 감각을 교차시키고, 묵직한 먹의 중력에 최소한의 필요조건만 남긴 조선반닫이에 주력해왔다. 『신식가구』에서는 미묘한 곡선과 장식을 절제한 신작 두 점을 내놓았다. 절곡과 카빙 기법으로 마치 돌을 깎듯이 다듬은 표면에는 목수의 정신과 몸의 의도까지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간절한 '필요'만으로 교차하는 기능과 형태의 절묘한 미감의 반닫이가구는 국제적 수준과 교통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신식가구展_아트스페이스3_2023

각각의 감각: 송기두 / 구조적 감각의 교집합 ● 건축을 전공한 송기두는 건축의 직선과 자연의 곡선이 만나는 가구에 감각의 속성을 입히는 가구디자이너다. 기능적이면서 동시에 미적 오브제로서도 조형된 그의 작업은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이끌어내 가구 너머의 가구를 추구하고 있다. 집성한 목재의 결을 따라 흐르는 곡선의 앙상블은 가구의 미래성이 농후하다. 『신식가구』에는 4면이 각각 다른 형태적 변화에 자연과 인공의 즉흥적 감각을 교차했다. 그는 비일상의 감각을 명징하게 전하고자 몇몇 군데에 의도적 미완성의 자리를 남겨 시간차를 주었고, 표면에 드러난 감각의 충돌과 반동은 조화와 융합으로 마감한다. 곡선의 시선을 쫓아가도 좋고, 그냥 쓰다듬어도 좋다.

둠: 정명택 / 역사의 흔적을 조형한 오브제 ● 정명택은 한국 고건축에 내재된 사물의 정신과 공간의 내재율을 호흡하는 아트퍼니처작가다. 그는 무위(無爲)의 순수미, 무심(無心)의 담백미, 무형(無形)의 공간미를 조형해 '데'와 '둠'으로 안착시키고 한국의 성정(性情)을 녹여낸다. 초석으로 사용한 자연석 '덤벙주초'를 갈고 다듬어 재료에 은폐된 물성의 담연한 자태, 생략과 무관심, 대범함을 미적으로 승화했다. 이번 『신식가구』에는 경주 황용사 터에 놓인 초석(礎石)을 금속으로 재현해 인간의 의지와 사물의 역사성,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를 조형의 표면에 남겼다. 역사와 현재를 생환하고 그 침묵의 흔적이 바람으로 흘러내려 '데'와 '둠'의 세계를 이룬다.

신식가구展_아트스페이스3_2023

이제 4인의 작가들이 제시한 가구가 어떤 반응과 결과로 이어질지는 오로지 관람객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 낯설고 형태와 생소한 메시지에 다소 당황할 수도 있고, 작품의 세계관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전시는 자기 혁신을 통해 더 나은 가치를 도모하려는 작가들의 수고만큼은 간과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 보이는 것에 감춰진 물질의 내밀한 언어와 보이지 않는 것에 스며든 사물의 이치를 구현한 『신식가구』의 지속적 운동성이 우리 앞에 와 있다. ■ 육상수

나점수_무명-정신의 위치(테이블)_나무, 스틸_72×310×90cm_2023

조각가 나점수: 물(物)과 체(體) ● 물질은 인식 이전의 상태이고 체(體)는 인식된 것들이 형식을 갖춰 드러나는 것이다. 물(物)이 체(體)가 되어 격(格)을 갖춘 물체(物體)가 된다는 것은 구조와 기능을 넘어 심미적 도취와 승화의 변모를 품고 있어야 한다. ● 물체로부터 격(格)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물질이 형태에 구속되는 것과 인위가 우연을 배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물이 기능에 함몰되면 구조만 드러나게 되고 물질이 과도하게 가공될 때는 물성(物性)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경계하는 마음에는 유보의 마음이 있어야 하며, 유보의 마음에는 감춤의 마음이 있어야 하니, 조형 예술을 대하는 시선에는 감춤과 드러냄, 조율과 승화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 물질을 다룬다는 것은 다가감의 여정과 같은 것이다. 살핌은 현상하고 있는 물질의 모습을 직감하는 것이고, 다가감은 물질을 덜어내거나 제시하는 과정이다. 덜어진 것을 통해 정신의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물질에 다가가는 이의 업(業)이며 태도이니 이를 가리켜 예를 향한 길, 예도(藝道))라 부르고자 한다.

비어있는 수평 공간, 테이블 ● 지면으로부터 물질을 상승시켜 현실의 지평 위에 여백을 품게 하는 것이 테이블이다. 그 여백에 동참하는 우리의 행위와 과정들이며 정신의 드러냄이니, 테이블 공간은 품어 안아 채워지고 다시 흩어지는 소통의 통로가 된다. 여백이란 비어 있지 않고서는 품을 수 없으니, 테이블의 본질은 언제나 비어 있음에 인접해 있다. 그것은 붙들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지금 우리를 이곳의 시간에 머물게 하는 장소가 된다.

나점수_무명-정신의 위치(책장)_나무_170×11×30cm_2023

앉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것, 의자 ● 물질로부터 불러낸 구조와 형태는 어떤 상태에 인접해 있는가? 이것은 의자라는 구조와 물질적 속성 사이에 위치한다. 그것의 상태는 가공을 미루어 물질을 툭하고 제시하고 있으니, 장식화 기교의 영역은 퇴보하고, 자연의 시간이 품고 변화한 흔적과 물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기능을 따르려는 태도가 아니라 물질의 현상에 인접해 자연의 성품에 다가는 것을 말한다. 기능의 의자로부터 감각의 의자로, 감각의 의자로부터 사유(思惟)의 의자를 제시하고자 한다.

공간을 품은 물질과 물질에 인접한 정신, 책장 ● 오래된 나무의 내부를 파고들다보면 알 수 없는 무게 같은 것을 느낀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어둠의 무게 같은 것인데, 덜어내고 남겨진 빈 공간에서는 오래된 나무의 향이 스민다. 마치 한권의 책을 선택한 한 사람이 갖는 마음의 향기처럼 그것은 생의 무게를 덜어내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책장은 책을 품어 하나의 세계를 열고 있으며 나무는 마음의 방향을 관조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선택하는 모든 것은 흩어지고, 흩어진 모든 것은 시원으로 돌아간다."

물질이 공간을 품어 시(時)로 놓인다, 공간 ● '정신을 품은 몸과 몸에 인접한 정신' 그것은 둘이 아니다. 내게 공간(空間)이란 붙들 수 없는 시(詩) 같은 것이니 물질은 공간에 놓여 시가 되고, 시는 물질을 품어 생명이 된다. 내 작품에 형성된 공간은 물질이 탈각되거나 구조 사이에 조성된 여백이다. 그 빈 공간의 상태는 언어의 정의로부터 하강한 시적 정서에 가깝다. ■ 나점수

방석호_bc 반닫이_호두나무_65×69×39cm_2023

소목장 방석호: 필요의 필요 ● 조선가구는 기물(器物)에 충실한 가구이다. 성리학자의 디자인 감각과 목수의 장인 태도가 합체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정신과 몸이 이룬 사물의 상태이자 결과에 따라 정진(精進)의 수행처가 되기도 한다. ● 조선가구는 기본적으로 직진성의 사물이다. 그 까닭은 목재의 물성에 따른 것으로 곡선의 형태는 목재의 과도한 소비와 제작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는데 있다. 그러다 보니 가구의 형태는 단순해지고 장식은 구조와 기능에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 상자 형식의 조선목가구는 인류가 물건을 보관할 목적으로 만든 기본적인 사물이다. 우리 가구의 절반은 앞면이 열리는 문을 달아 편리를 도모했고 그 명칭도 반닫이로 불렀다. 반닫이가 가진 나뭇결의 아름다움과 목재의 묵직한 존재감은 간편하고 기능적이며 값 또한 저렴하기 때문에 현대 가구가 범람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그 가치는 유용하다. 특히 반닫이는 그 쓰임과 함께 육면체의 오브제로 조선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품이다. ● 하지만 전승과 전통 사이에 존재하는 조선 가구가 조선 후기의 형태와 기법, 소재의 답습에만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전통 형식을 지키는 것이 무형유산 이수자의 의무이기는 하지만, 현대 가구의 환경과 소목의 확장을 생각할 때 조선목수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식가구』展 에 전시될 목가구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였다.

방석호_ray 반닫이_호두나무_75×62×38cm_2023

오동 반닫이 한 점과 일월연 책반닫이 세 점은 전통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전통 소목의 구성 요소를 가지되,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분수에 지나치지 않다)를 근본 태도로 취하고 최대한 미니멀하게 제작하였다. ● 'bc 반닫이' 한 점과 'ray 반닫이' 한 점은 필요의 절대치와 묘사의 교졸미까지 수용해 작업한 결과물이다. 일반 판재의 두께가 아닌 원목으로 먼저 상자를 만들고 돌을 깎아 나가듯이 다듬어 나갔다. 없어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제거하고 필요한 요소만 남겼다. 손잡이는 벼루와 맷돌, 주춧돌 등 전통의 소재에 영감을 얻어 잡을 수 있을 만큼만 긁어냈고, 경첩은 기능에만 한정해 디자인의 핵심으로 사용하였다. ● 한국의 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유산들은 대부분 제작자를 알 수 없는 무명의 선조들이다. 영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서 있는 한 공예인의 입장에서 매우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공예품들은 그 무명인들이 정성 들여 만들고 그것이 시대를 대표하는 보물과 국보가 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 나는 소목장으로서 전통의 형식과 기술을 지키면서 한 시대를 관통하는 소목을 제작하는 데 있어 장식적이고 인위적인 면보다는 소박하고 졸박한 미를 표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먼 훗날 오늘을 되돌아봤을 때, 나의 소목이 한 시대를 풍류한 가구로 남기를 바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 방석호

송기두_mirror 001_갈참나무, 우드스테인_175×80×34cm_2023

가구디자이너 송기두: 각각의 감각 ● 가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식기를 받치거나, 물건을 넣어두거나, 책을 올려놓거나, 사람의 몸을 지탱하거나. 단지 이것뿐이라면 이 고민에 효용이 있을까. ● 흔히 쓰임이 부족한 물건을 무용하다 하지만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건 쓰임이 아니라 감각에 가깝다. 손으로 양감과 질감을 느끼고, 눈으로 형태와 색을 보고, 공간 안에서 가구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감각은 기능을 쓰임으로 한정 짓는 기존의 정의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 감각의 총체로서 자연과 건축은 이번 작업을 관통하는 두 줄기가 된다. 특히 둘 사이의 긴장감 혹은 이질감이다. 상상해 보건대 자연 속에서 그 감각만을 느끼며 살아가던 선대의 인류에게 인공, 특히 건축은 거대한 감각적 충격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자연을 재단하고, 쌓아 올린 인공의 구조물에 자연과는 다른 압도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도면의 완벽한 물질적 구현으로 서 있는 직선의 구조물들… 건축이 직선의 세계라면 자연은 곡선의 세계다. 커다란 법칙을 전제하고 즉흥과 우연으로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송기두_coat rack 001_단풍나무, 바니쉬_190×64×50cm_2023

『신식가구』展 에 전시된 가구들은 일종의 작은 건축으로 시작한다. 자연을 재단하고 쌓아 올리는 건축적 조형 원리로부터 시작된 형태는 어느새 즉흥성에 기반한 자연발생적인 형태가 되고 다시 건축으로 돌아온다. 직선의 마디에서, 곡선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감각들이 생겨난다. 손끝에서, 눈에서,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감각. 건축의 구축과 자연의 발생 사이에서 생겨난 각각의 감각들은 순환하며 대립과 융화를 반복한다. ● 이 감각들 사이의 긴장감은 비일상적이다. 일상적이어서 무뎌진 감각들 사이에 비일상적인 감각이 종소리처럼 울려 다른 감각들을 깨운다. 비일상으로 다채롭고 풍요로워지는 일상. 가구가 주는 감각이 우리 삶을 좀 더 명징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가구의 역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가구들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감각을 기능의 중요한 축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될 것이다. ■ 송기두

정명택_doom 2301~2306_청동

아트퍼니처 작가 정명택: 둠 ● 오랜 역사에 걸쳐 한국인들은 삶의 이상적 가치를 지향하며 자연 재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한 '순수함', 불필요한 기교와 과시를 배제한 '담백함', 그리고 자연과 동화되어 하나를 이루는 '조화로움'을 추구하여 왔다. 이러한 자연주의 정신은 시간의 축척과 함께 드러나는 한국 문화의 독자적인 면모이자 한국인의 깊은 성정(性情)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 자연주의 정신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공간인 한국 고건축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인위적인 구성보다는 자연친화적 구성을 보여주는 한국 고건축은 자연 그대로의 멋을 창출하는 '자연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과의 소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고건축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 나아가 한국 예술의 특색을 크게 '무위(無爲)의 순수미', '무심(無心)의 담백미', '무형(無形)의 공간미'로 바라본다. ● 십여 년 전 어느 유월 새벽, 밤안개가 자욱한 경주 구황동에 도착하였다. 광활한 벌판 위에 펼쳐진 무성한 갈대밭을 가로질러 신라시대의 사찰 황룡사 터에 남아 있는 석물(石物)들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1,500년 전 신라시대 최전성기에 있었던 웅장한 건축물들은 사찰 터의 면적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큰 규모였을 테이지만, 지금은 역사의 잿더미 속에 그 형체는 자취를 감추고 덩그러니 초석(礎石)들만 남아 쓸쓸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의 풍파로 마르고 닳은 이 초석들로부터 나는 선지자(先知者)의 마음으로 영감을 구하고자 온몸의 세포를 감각하였다. ●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던 커다란 초석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의 눈과 상상을 통하여 사물과 인간, 형태와 소리, 시간과 공간사이를 오가며 무한한 무위 세계에 빠져들었다. 인간이 상징적 사물을 만들어 특정한 자리에 두는 행위는 그 자리에 대한 함축적 의미와 공간적 경험을 부여한다. 1,500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지켜봤을 석물. 그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의지와 흔적들을 살피며 사물과 나 자신은 어느 순간 하나가 되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 침묵 속에 놓여 있는 작품 '둠(Deposition)'은 무위의 상태를 대표한다. 사물과 공간의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탐구로서 인간이 사물을 특정한 장소에 두는 행위, 그것이 갖는 시·공간의 의미를 표면화하면서 황룡사지 석물의 내용과 형식을 재해석하였다. ● 『신식가구』展 에 놓인 작품들은 갈라지고 마모된 육면체의 덩어리들로 인간의 활동(무위), 정신 또는 욕망(무심), 형상(무형)이라는 상태의 부재를 철학적 주제로 담고 있다. 인간이 사물을 만들고 특정한 장소에 두는 과정에 강제로 개입하지 않고 사물 자체에서 스며든 자연스럽고 자생적인 정신을 표현하려고 집중하였다.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사물과 공간의 어우러짐은 물질과 비물질이 하나로 융화되면서 묵직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독특한 시·공간적 특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 황룡사지 석물들의 규모를 살펴보고 각 석물들이 가지고 있는 비정형의 형태, 공간과 배치, 표면, 질감 등을 해석하며 작품의 원형을 제작하였다. 작품의 원형은 청동으로 주조되고 나를 통해 황룡사지 석물로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용접하고, 갈아내고, 색을 입히고 벗겨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제작한 금빛의 청동 벤치를 통해 마침내 광활한 공간 속에 사물이 자리한 '데'와 '둠'을 구현할 수 있었다. ● 나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물들의 기척을 이끌어내며 사물과 공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자유로이 탐구하고 사유하고자 한다. ■ 정명택

Vol.20231006h | 신식가구 新識家具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