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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1003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실험공간 슬 Projectspace Sl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137길 3 (청담동 71-20번지) 3층 Tel. +82.(0)10.6248.3336 blog.naver.com/projectspace_sl @projectspace_sl
하나 이룬 고리에 노닐다!-류승환이 짓고 일으킨 '늘그이'의 미학 - #1. 숨은 거미, 류승환 ● 류승환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 그이는 스스로 있는 바람이요, 속내로 말하는 '말숨' 1) 이요, 숨은 거미다. 홀로 나날 내고, 홀로 나날 낳고, 홀로 나날 돋는 '오늘살이' 산다. 두루두루 몸 내고 맘 낳고 얼 돋는 삶이다. 얼에 '밝'이 내고, 맘에 '응'이 낳고, 몸에 '흥'이 솟는다. 그이의 나날 삶은 그렇게 신명이요, 감응이요, 감흥이다. ● 실험공간 슬 한쪽에 숲 속 거미줄을 짓고 앉아서 노자 '늙은이(老子)'를 냠냠 집어 삼키고, 장자 '고른이(莊子)'를 꿀꺼덕 한 입에 털어 넣었다. 2) 다석 류영모가 걸어간 길을 좇아 시나브로 예 이르렀다. 문 닫아걸고 나들지 않으며 '늘그이' 3) 로 숨어사는 그이는 온갖 군데로 다 열린 이다.
'아무'로 아무데나 있는 '있(存在)' 4) 이다. 제멋대로 산다. 마음대로 한다. 숨어 벗어나지 않고 떠나지 않으나 여기저기거기 없는 데가 없는 까닭이다. 베틀어미에 빗대어 말하면, 그이는 텅 빈 고요(虛靜)에 한가로운 무름(恬淡)을 엮어서 새끼줄 꼬는 여름아비라고 할까! 5) 이름 없이 본 그대로 늘 있는 그이는 '이제'를 심어 '여기'를 내고 '지금'을 키워 '저절로'를 이뤘다. ● 가느다란 연필 끄트머리로 이어이어 내고 낸 실줄의 긔림 6) 을 보고 있노라면 온 우주 은하 소용돌이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느낌이 일어난다. 헤아릴 수 없는 무량억겁(無量億劫)이 연화장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꼴이다. 슬에 걸어놓은 실긔림 7) 하나는 '있다시 온(如來)' 8) 이 몰래 숨어들어 고루 펼쳐져 있다. 올이 바르다.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에 가득 빛나는 우주 씨알바다 물방울이다.
가지 않고 아는 길이리라. 문을 나서지 않고 세상을 알며, 창문을 내다 안보고도 하늘 길(天道)을 보는 일이리라. 세상으로 열린 숱한 길들을 다 간다고 길이 열리는 게 아니다. 걷는 길이 있고 보는 길이 있으며 아는 길이 있을 터. 두 발로 걷고 또 걷는 길은 세상의 길이다. 두 눈으로 좇는 길도 그렇다. 그러나 참을 좇는 길은 두 발로만 걷는 게 아니다. 맘의 발로도 걷는 길이다. 머리를 텅 텅 비우고 쉬엄쉬엄 걷는 맘의 길은 맘눈(心眼)을 환히 뜨고 가는 길이다. 밝고 밝은 '빛눈' 9) 이요, '참눈'을 크게 뜸이다. ● 그이가 사는 거미줄 집은 지게문이다. 예부터 방문은 호(戶)라 하고, 집 문은 대문(大門)이라 하고, 마을 문은 이문(里門)이라 했다. 호(戶)를 '지게문'이라고 하는 것은 지게 진 모습처럼 드나들기 때문이다. 지게문은 나 잘난 없는 '낮춤'(謙遜) 10) 이요, 더 잘난 없는 '모심'이다. 스스로 낮춤이요, 저절로 모심이다. 빈 집은 또한 빈 몸이다. 집은 비어서 살림을 꾸리고 돌린다. 거미로 사는 그이의 살림이 똑 그렇다.
#2. 썩잘은 물과 같고나(上善若水). 11) ● 그이가 세운 긔림의 이마(主題) 12) 는 '물'이다. 실험공간 슬에 짓고 일으켜 벌려 놓은 것들의 이마도 물에서 비롯되었다. 물이 솟아서 짓고 일으킨 꿍꿍(想像) 13) 의 한 자락이었다. 솟는 것들이 아름답다. 땅에서 솟고 물에서 솟고 나무에서 솟고 사람에서 솟고 하늘에서 솟는 그 모든 것들의 솟구침이 어여쁘다. 그이는 공간을 까마득한 빈탕으로 바꾸고 우주 은하 흐르는 땅하늘의 솟구침을 지었다. ● 노자 늙은이(老子)를 따른 장자 고른이(莊子)가 글월로 지은 소요유(逍遙遊)는 아득히 거닐며 노니는 큰 새 '붕(鵬)'과 큰 물고기 '곤(鯤)'의 이야기다. 큰 물고기 곤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 수천리에 이르기 때문이다. 곤이 몸을 바꾸어 새가 된 것이 붕이다. 큰 새 붕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힘껏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 가득 드리운 구름처럼 드넓다. 날개 짓 한 번으로 구천리를 솟구쳐 여섯 달을 쉬지 않고 난다. ● 그이는 검님 14) 처럼 까마득한 물에 물고기를 풀어 놓았다. 큰 물고기 곤을 빗대었다.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관객의 눈에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은 아주 큰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 물고기가 산나무를 타고 솟구쳐 큰 새 붕이 되었다. 한쪽 모서리에서 맞은편 모서리까지 하늘우물에 베풀어 놓은 큰 새 붕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보는 눈을 눌러 넘어뜨린다. 곤이 붕으로 구천리나 치고 올라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꼴이다. 용오름이 일어나는 장소가 곧 슬이다. 이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찰나에 숨이 트인다. ● 땅에 새싹이 돋고, 하늘에 이슬이 맺히고, 땅에 꽃잎이 나고, 하늘에 얼이 깨었다. 얼빛이 환한다. 땅하늘을 휘감아 도는 빛이 터지는 우주 하늘은 얼마나 크게 반짝이는가. 솟고 솟아서, 오르고 올라서, 곧이 곧장 올바로 선 것들이 다시 맺히고 환하게 열려 내리는 돌고 돎의 이 돌아가는 다사리 15) 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모두 다 말하게 하고, 모두 다 살리어 내는 다사리의 하날님 16) 뜻을 알음알이로 알맞이해야 한다. 저로만 살지 않는, 늘 삶의 저 이룰 나위 17) 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 하늘땅이 길고 오랠 나위 있는 건 오롯이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열린 길을 따름이리라.
#3. 있기는 땅에 잘(居善地). 속은 깊기 잘(心善淵). ● 노자 늙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물은 잘몬(萬物) 18) 에게 잘 좋게 하고 다투질 않는다."고. 물은 부드럽고 무르다. 부들무릇하다. 결코 여리지 않다. 무름과 여림은 비슷같잖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그 '빛숨(易)' 19) 은 위로 간다. 앞뒤 없는 때빔(時空) 20) 이 다 열려 시방(十方)에 덩그러니 홀로 우뚝하다. 물은 아래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 밑을 터 위로 오른다. 다시 '없몬(無物)' 21) 에 돌아간다. 그래서 물은 '없꼴의 꼴'(無狀之狀)이요, '없몬의 그림'(無物之象)이라 했다. 22) ● 그이는 곤이 붕으로 솟고 붕이 곤으로 내리는 '생태순환고리'에 물이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곤과 붕은 됨 짓 올바른(造化定) 몬(物)의 한 꼴일 뿐이다. 그것은 빗대어 풀어낸 '꼴짓'에 불과할 뿐이다. 가만히 살펴야 할 것은 '함없 함(爲無爲)'에 가닿은 '없꼴'이요, '없몬'이다. 말이 끊어진 자리에 긔림이 비롯한다. 그의 긔림과 그가 짓고 일으켜 베푼 온갖 것들은 다 '그리움'이 낸 꼴들이다. 댓살로 엮고, 나뭇가지로 엮고, 그렇게 크고 큰 새 한 마리, 미르 한 마리, 물구름을 타는 물고기가 태어났다. 그이는 나들지 않은 채 우주를 창조했다.
역(易)은 쉬지 않는 '해숨'이요 '빛숨'이다. 그 숨이 돌아 뒤바꾸는데 '녘'이 있다. 아침놀과 저녁놀이 잘 돌고 뒤바꿔야 '늘숨'이 짓고 일으켜 온갖 짓됨이 벌어진다. 그대로 변화무쌍이요, 생생화화(生生化化)다. 내고 낳고 되고 이루는 '짓됨'에 산일름(生命)이 너울거린다. 하늘 하나 하시는 숨이다. 슬에 숨이 가득하다. ● 봄 푸나무는 부드럽고 여리다. 부드럽고 여린 그 속에 산알(生靈)의 무름이 오른다. 무름이 여릴 수는 있어도 여린 것이 다 무른 것은 아니다. 물은 여리지 않아서 아주 굳센 것도 칠 수 있다. 부들무릇해서 센 것을 이기는 것이다.
#4.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잘.(事善能) ● 산나무는 노자 늙은이가 말했듯이 구부려서 성하고 굽혀서 곧고 움푹해서 차고 묵어서 새롭고 적어서 얻고 많아서 흘린다. 땅하늘이 올 하나로 돌아가는 저절로의 빛이요 힘이다. 산나무 자라는 품새에 너울거리는 춤이 있다. 산사람도 숨 쉬는 사이에 '빛힘' 23) 이 얼을 키운다. 류승환 그이는 산나무 댓살로 큰 새 붕을 엮었다. ● 댓살 하나하나는 다 올이다. 올은 그이가 땅하늘 하나로 돌려 돌아가는 맘 바탕에 하루하루 용오름 타고 오르내린 춤이다. 눈 감은 몸에 눈 뜬 맘이 오르내리고, 뜬 맘이 감은 몸을 휘감아 '밝'을 틔웠다. 깊게 숨 지그시 밟는 '깊힘' 24) 에 두 발이 하늘너울이요, 어우렁더우렁 더덩실 숨 돌리는 '낮힘' 25) 에 어깨 들썩이는 땅너울이다. 너울너울 더덩실 두둥실 추어 추는 걸음걸음이다. 더덩실에 세움이 솟아 '세큰긋'(三太極) 드러남이요, 두둥실에 시방세계 열리는 '가온뚫림' 26) 솟남이다. 오호라, '숨돌(氣運)' 27) 동그란 마당에 뚝 떠 솟구친 얼이다! 그이는 낮밤 없이 큰 새 붕을 타고 놀았다. ● "얼이 추는 춤은 들숨날숨 사이 / 멈숨에 조용히 솟는 늘이요, / 더할 나위 없는 맨 그 자리 늘이요, / 푸른 산 흐르는 물이요, / 나날로 여기에 여는 '살이'니, / '늘살이'로 솟나는 해달이요, / 해달이 한 꼴로 팽이 돌리는 '검밝' 28) 이리라."
큰 새 붕 가슴에 우주여자 검님이 있었다. 검님은 시루깃대 꽂고 굿을 지어 일으킨다. 돌무더기 오보 29) 에 버드나무 기둥을 세우고 오신다. 기둥에 걸린 푸른빛 하닥 30) 이 하늘하늘하다. 바람에 날리어 나풀거린다. 검님 등걸 31) 은 우람했다. 등걸을 타고 물이 흐른다. ● 마른 씨알을 단박에 깨는 도끼가 물이다. 죽은 듯 긴 마른 잠을 자는 씨알을 뒤흔들어 깨우는 힘이다. 마른 땅에서 마른 잠자는 마른 씨알을 깨고 터트려야 솟구친다. 물은 번개처럼 꽂혀서 씨알을 깨운다. 깨트리고 뒤흔든다. 마른 흙을 쑤시고, 흙에 파묻혀 몸을 숨긴 물고기도 화들짝 놀랜다. ● 물은 부드러운 듯 날카롭고, 낮게 엎드려 솟아오르며, 막힌 것을 가만두지 않고, 고인 것을 끝끝내 밀고 밀어낸다. 누른다고 눌러지지 않는다. 가둔다고 가둬지지도 않는다. 흐르면서 하늘로 솟고 땅으로 스미니 돌고 도는 '숨돌'의 돌돌이 그친 적도 없다. 그러니 물이 씨알 깨움이다. 참올 32) 의 씨알은 물로 일어선다.
물은 '있없(有無)'으로 번갈고 되돌며 한 꼴 차림이다. 길의 꼴이 빈탕한데 33) 있듯이 물도 '있없'의 꼴로 돌고 돈다. 위아래로 기웃 흘깃거리면서 소리울림이 맞아 어울린다. 그러니 앞뒤 따르는 참올의 숨돌이 그대로다. 온갖 짓을 하고도 거짓 하고잡 34) 이 없고, 낳아도 갖지 않는다. 무얼 하고도 저를 믿거라 하지 않고, 이루고도 갖지 않으며 심지어 붙어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늘 새 자리다.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새 자리! ● 물길을 터야 씨알도 튼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자리로 흘러 트는 것이 물길이다. 거기에 '썩잘' 35) 의 씨알 깨움이 있고 길이 있다. 씨알을 뭇사람으로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씨알이 흘러 낮은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솟구쳐 오르기 위해서다. 그이는 이 모든 돌아감(生態循環)의 고리를 보여준다. ● "옮기어 돌아가는 셋에 네모루쳐 이룬 고리는 하나다! 運三四成環五七一 / 고이 노닌다! 妙衍" ■ 김종길
* 각주 1) '말숨'은 거룩한 말씀으로 숨 쉬는 일, 또는 거룩한 말을 세워 쉬는 일을 뜻한다. 2) 노자(老子)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늙은이'를 뜻할 뿐이다. 장자(莊子)를 풀면 '고른이'라는 뜻이다. 3) '늘그이'는 '늙은이'를 풀어쓴 것인데, 늘 그이로 사는 이를 뜻한다. 4) 우리말 '있'의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유(有)', '있을 존(存)', '있을 재(在)'가 있다. 셋 다 '있'의 뜻이다. 여기서는 존재(存在)의 우리말로 썼다. 5) 혀정염담(虛靜恬淡)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속에 티끌만큼의 사심(私心)도 머무름이 없이 깨끗하게 비워 고요하게 처함"을 뜻하는데, 글쓴이는 "텅 빈 고요에 한가로운 무름"으로 풀었다. 6) 우리말 '그림'의 본디 뜻은 '그리다'에서 왔다. '그리다'는 '그리움'으로도 풀린다. 그리워 그리는 것이 '긔림'이다. 다석 류영모가 그리 썼다. 7) '실긔림'은 실험공간 슬에 걸어놓은 류승환의 연필그림을 나타낸 것이다. 8) 부처를 부르는 열 가지 말 가운데 여래(如來)와 선서(善逝)가 있다. 다석 류영모는 여래를 '있다시 온'으로, 선서를 '옛다시 가온'으로 풀었다. 깨달은 이가 다시 오시니 '있다시 온'이요, 그이가 잘 돌아가니 '옛다시 가온'으로 푼 것이다. 이때 '있'은 깨달은 이 곧 부처를 뜻한다. 9) 마음눈은 '맘눈'이라 심안(心眼)으로 쓰고, 밝고 밝은 눈은 '빛눈'이라 영안(靈眼)으로 쓰며, 마음눈에 '빛눈'이 떠서 다 깨달아지는 '참눈'은 진안(眞眼)으로 썼다. 10) '낮춤'은 너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으로 겸손(謙遜)의 우리말이다. 11) 노자 늙은이 8월(章) 첫 글이다. 우리말 풀이는 다석 류영모를 따랐다. 12) '이마'는 주제(主題)를 풀어 쓴 말이다. 주(主)는 '님'이요, 제(題)는 '이마', '맨 앞머리'를 뜻한다. '이마'라는 우리말에 그 뜻이 다 담겨 있다. 13) 우리말 '꿍꿍'의 한자말이 상상(想像)이다. 다석 류영모가 그리 풀었다. 14) 우리말 '검님'은 하날님, 하느님, 한얼님 등으로 풀 수 있다. 또 '검님'의 말뿌리에는 'ᄀᆞᆷ'이 있어서 '엄마'라는 여성성도 가진다. 15) 우리말 '다사리'는 '다섯'의 풀이다. '다사리'는 '다 말하게 하다', '다 살리다'의 뜻이다. 16) '하날님'은 '하늘님'으로도 불리는 아주 오래된 우리말로 텅 빈 우주 하나로 늘 계시는 '님'을 이른다. 가장 크고 거룩하며 곳곳 어디에나 있으면서 두루 고루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17) 우리말 '나위'는 '더할 나위 없'다고 할 때 많이 쓴다. 이때 '나위'는 능할 능(能)과 이어지는 말이다. 다석 류영모는 그 뜻에 '내가 위로 솟을 힘'을 더했다. '나'+'위'로도 푼 것이다. 18) '잘몬'은 만물(萬物)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만(萬)의 우리말은 '잘'이요, 물(物)의 우리말은 '몬'이다. '몬지'나 '먼지'라고 할 때의 그 '몬'이다. '먼지'보다 더 오래 쓴 말이 '몬지'여서 '몬'이라 한다. 19) '빛숨'은 역(易)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역(易)은 해 혹은 빛을 뜻하는 햇빛 일(日)과 깃발 물(勿)이 하나로 엮인 글씨다. 깃발 물(勿)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들숨날숨으로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곧 역(易)을 우리말로 바꾸면 '빛숨'인 것이다. 물론 '해숨'으로 풀어도 좋다. 20) '때빔'은 시공(時空)을 바꾼 것이다. 시공(時空)은 시간공간이 하나로 맞붙은 말이다. '때빔'이라 해야 그 뜻이 잘 뚫린다. 21) '없몬'은 무물(無物)을 우리말로 바꾼 것인데, 우주의 첫 비롯보다 먼저를 뜻하는 말이다. 아무 것도 비롯된 바 없는 거기, 그러니까 티끌(몬)조차 없는 것을 뜻한다. 우리 모두는 '있(存在)'으로 왔다가 '없(無)'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가는 '없' 자리가 바로 '없몬'의 자리다. 22) '없꼴의 꼴'과 '없몬의 그림'은 노자 늙은이 14월(章)에 나오는 무상지상(無狀之狀)과 무물지상(無物之象)을 우리말로 푼 것이다. 말 그대로를 푼 것이다. 물은 없이 있는 꼴이 '없꼴의 꼴'이요, 없이 있는 그림이니 '없몬의 그림'이라 푼 것이다. 노자 늙은이는 '길(道)'의 뜻풀이로 썼으나 글쓴이는 '물'의 뜻풀이로 썼다. 23) '빛힘'은 숨 쉴 때 나오는 기(氣)의 우리말 풀이다. 24) '깊힘'은 심연력(深淵力)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다석 류영모가 그리 썼다. 25) '낮힘'은 스스로 낮은 자리로 돌아가는 데에서 솟는 힘을 뜻한다. 다석 류영모가 노자 늙은이를 풀 때 썼다. 26) '가온뚫림'은 가없이 큰 우주 하늘땅 가운데가 뚫렸다는 뜻이다. 다석 류영모는 '가온찍기' 그러니까 가운데 그 자리를 끝끝내 찍는 것이 곧 스스로 깨닫는 것으로 보았다. 가운데 중(中)의 우리말 뜻이 곧 '가온뚫림'이다. 그것은 중도(中道)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27) '숨돌'은 기운(氣運)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기운'이란 숨 돌리는 걸 뜻한다. 28) '검밝'은 신명(神明)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검'은 각주 14에서 이야기한 그대로다. 그 '검'이 환히 빛나며 '밝'으로 터진 것이 '검밝' 곧 신명이다. 29) '오보'는 몽골어다. 돌무더기를 말한다. 30) '하닥'은 '오보'에 꽂은 나무에 달아 놓은 푸른 색 천을 말한다. 31) '등걸'은 큰 나무의 밑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군(檀君)의 박달나무 단(檀)도 함께 빗대어 썼다. 몽골에서는 단군을 '텡그리'라고 하는데 그 뜻은 크고 거룩한 하늘님이다. 32) '참올'은 진리(眞理)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진리는 참에 올이 바르다는 뜻이다. 참 올바르다. 33) '빈탕한데'는 우주 허공(虛空)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34) '하고잡'은 무얼 자꾸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욕망(欲望)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35) '썩잘'은 뛰어난 선을 말하는 상선(上善)의 우리말 풀이다. 다석 류영모가 그리 풀었다.
Vol.20231003c | 류승환展 / RYUSEUNGHWAN / 柳承煥 / draw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