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Kairos) 벽화

최재란展 / CHOIJAERAN / 崔在蘭 / photography   2023_0930 ▶ 2023_1013 / 월요일 휴관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01_백릿 필름에 피그먼트 프린트_66.7×10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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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1003_화요일_05:00pm

후원 / 수원시_수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아름 ART SPACE ARU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4 2층 Tel. +82.0507.1357.9654 blog.naver.com/artspacearum @artspacearum

찰나의 찬가, 『카이로스 벽화』 ● 시간은 삶에 관한 것이고, 사진은 삶의 사건에 대한 것이다. 삶은 사건들로 이뤄지고, 세상의 사물 역시 잠시 변하지 않는 사건일 뿐이다. 유한한 삶에서 흩어지는 사건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보내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다. 기억은 사건을 저장하고, 그것은 과거가 되어 현재를 선택하며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시간은 인간의 기억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른다. 한편 사건을 재현하는 사진은 인간의 기억에 밀착한다. 사진의 생생한 재현이 파편화돼 소실되는 기억에서 삶의 사건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으로 시간을 사유한다는 것은 기억 안에서 유한한 삶을 사유하는 것과 같다. ● 작가 최재란은 첫 전시 『꿈꾸는 연가』(2017)부터 『Tears』(2019), 『화성, 언저리 풍경』(2019), 『화성, 묵시의 풍경』(2020) 그리고 『카이로스 벽화』(2023)까지 인간이 눈여겨보지 않아 잊어버린 사건들에서 유한한 시간을 사유해왔다. 그것은 약하기에 더 견디어 빛을 내는 찰나의 기억들이다. 『꿈꾸는 연가』는 아름다운 연꽃의 외현이 아닌 진흙에서 피고 지는 연꽃의 생명과 소멸을 보여준다. 또 『Tears』는 거리의 벽과 문, 길 등 생활 주변에서 스친 생명 없는 사물로부터 여인을 닮은 생명의 초상을 포착한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02_백릿 필름에 피그먼트 프린트_66.7×100cm_2023

한편 10여 년간 이어지는 『화성, 언저리 풍경』, 『화성, 묵시의 풍경』, 『카이로스 벽화』는 작가의 생활공간에서 멀지 않은 수원화성(水原華城)의 시간을 사진으로 사유한다. 그 역시 찬란하게 빛나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화성의 면모만은 아니다. 성곽 언저리에 있어 무심히 지나치는 풀과 나무와 돌에 눈길을 주고, 핀홀(pin-hole) 카메라에 가늘게 새어 들어오는 오늘날 화성의 잔상을 '묵시의 풍경'으로 좇으며, 마침내 중첩한 사진으로 화성에 배어 있는 시대와 시간의 간극을 드러낸다. ● 이번에 선보이는 『카이로스 벽화』는 예부터 오랜 시간을 견디는 모습으로 인간에게 '영원'을 사유하게 했던 '돌'에 현대의 '찰나'를 중첩함으로써, 무상한 시간에 남기고 싶은 인간의 기억을 보여준다. 작가는 '영원'을 품은 '벽화'의 돌을 사진 속 화성의 성벽과 그 성벽을 축조할 때 쓰이다 남겨진 바위에 은유했다. 그리고 사진을 중첩함으로써 어두운 밤 근대 화성의 성벽에 현대 성곽의 풍경을 비춰 시대의 간극을 내보이고, 밝은 낮 성벽 밖 채석장의 바위에 인간의 풍경을 얹어 영원과 찰나의 간극을 담았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03_백릿 필름에 피그먼트 프린트_66.7×100cm_2023

세상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한 순간의 사진이 재현한다면 「카이로스 벽화」는 중첩된 사진의 시간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인간이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한 장의 사진에 압축했다. 화성의 복원된 성벽은 230여 년간의 풍파를 감춰 역사의 시간을 상상하게 하고, 성벽 안팎의 진달래와 담쟁이, 수양버들과 노송, 깃발을 펄럭이는 바람과 눈과 비, 사계의 변화는 유구한 자연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중첩된 인간의 시간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삶의 순간으로서, 작가는 그 순간들이 화성에 대한 인간의 기억에 새겨지길 소망한다. ● 「카이로스 벽화」는 화성을 둘러싼 시간을 세 가지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한다. 먼저 작가는 선사시대 라스코 혹은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와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인간은 불씨가 붙은 나무 막대로 또 색이 있는 돌가루와 나뭇진 등을 섞어 소와 말, 곰 등의 생명을 동굴의 벽에 붙박아 기억과 희망을 그렸다. 한편 땅속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묘주의 생애에서 회고할 만한 일과 당대 풍속 그리고 고대하는 내세를 담아 미래의 소원까지 전했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07_백릿 필름에 피그먼트 프린트_66.7×100cm_2023

카이로스 벽화」에서 작가는 인간의 회고와 소망을 한밤에 화성의 아름다운 성벽과 그 너머 휘황한 고층빌딩을 촬영한 사진에 유원지와 관광지로 성곽을 이용하는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합성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미지를 투명 필름에 인화해 라이트 패널의 빛으로 비춘다. 이로써 18세기 조선 후기 행정, 군사, 경제 등의 성장과 발달을 희구하며 조성한 화성을 둘러싼 성벽과 21세기 화성을 구경하며 즐기는 인간의 풍경이 사진에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화성 축조 시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세운 공심돈의 벽면에서는 인간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파라솔 밑에서 휴식하며, 유사시 적의 침입을 알리고 막는 봉돈의 벽면에서는 흐드러진 벚꽃 아래를 평화로이 거닌다. 230여 년의 흔적을 품은 근대의 공간에 현대의 인간이 남긴 자취가 어우러져 사진에서 시대의 간극이 표출된다. ● 한편 작가는 소멸로 향하는 인간의 시간과 선택적으로 계승되는 역사의 시간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통해 작품에서 상징화했다. 남녀노소가 화성 성곽을 걷는 모습을 지난 10년간 촬영한 사진들에서 떼어와, 해마다 피고 지는 꽃들이 포루로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걷게 했다. 시간을 걷는 장면에는 1796년 화성이 완공된 후 성벽이 감싼 시가지의 장대한 풍경이나 일제강점기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시 파괴되고 훼손된 전경, 1970년대 정부의 국방문화유산 정비계획에 따라 복원과 보수, 주변정화사업으로 정비되는 화성의 정황은 찾아볼 수 없다. 변화무쌍한 공간은 문자와 이미지로 역사에 기록되고, 역동하고 요동치는 시간은 인간의 기억에 남아 '소멸'이라는 운명으로 향한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19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23

마지막으로 작가는 「카이로스 벽화」에서 화성의 성벽을 쌓기 위해 돌을 뜬 팔달산 채석장의 바위를 촬영한 사진에 화성을 유희하는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중첩했다. 마치 해와 달이 비치는 신성한 바위에 신에게 올리는 말씀으로 삶의 기록과 기원을 새겨놓은 선사시대 암각화를 닮았다. 다른 점은 암각화가 그 풍광만으로도 신비스러운 바위에 새겨진 반면 「카이로스 벽화」는 화성 축조 이후 쓸모를 잃고 성벽 밖에 방치된 채석장의 바위 사진에 새겨져, 그 '돌' 자체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 작가는 빛과 그림자가 선명한 바위의 절단면을 캔버스 삼아 성벽 안팎 풍경들을 원근법에 따라 섬세하게 배치했다. 사진에서 바위와 풍경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팔달산의 담쟁이가 타고 오르내리며 그 경계를 허문다. 채석장의 바위는 성벽의 돌과 달리 인간이 무관심했기에 오히려 부서진 자리에서 오랜 풍화를 견딘 시간의 면에 오늘날 화성의 풍경을 오롯이 덧입었다. 원시 인간이 돌에 '영원'을 새겨 소망했다면 작가는 돌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의인화해 오늘날 화성의 찰나를 목도하게 하며, 화성의 오늘을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해주기를 기원한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20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23

작가가 주관적 선택을 통해 제한된 시공간을 중첩한 사진은 기억처럼 재구성돼 있다. 작가는 이를 「카이로스 벽화」라는 제목에서처럼 '카이로스(Kairos)'로 상징한다. '카이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회'의 시간을 의미하며,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하는 적절한 순간으로서 특별한 찰나를 일컫는다.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의 순간이다. 「카이로스 벽화」의 시간은 10여 년간 작가가 화성을 걸은 무수한 시간에서 촬영한 찰나의 '카이로스'와 그 사진들을 중첩해 만들어낸 기억의 '카이로스'가 맞닿아 새로운 '카이로스'를 마주하게 한다. ● 이렇게 「카이로스 벽화」의 '카이로스'는 훼손돼 복원한 유형의 공간인 화성에 무형의 시간을 중첩해 새로운 기억의 시간을 생성한다. 달라진 공간과 변화한 시간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다. 인간의 파편화된 기억이 변하고 혼재되며 때로는 새롭게 다른 기억으로 생성되어 소멸함을 「카이로스 벽화」의 중첩된 사진이 가시화한다.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카이로스 벽화」가 눈부신 빛의 이미지로 애달프게 찬미한다. 그리하여 무한한 변화 속에 살아가는 유한한 인간에게 유일하게 유의미한 것은 매 순간 잃어버리는 찰나뿐임으로 다시 기억하게 한다. ■ 정은정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22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23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ronos)와 카이로스(Kairos)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했다. 크로노스(Cronos)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흘러가는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진 객관적, 물리적, 절대적인 시간이며 카이로스(Kairos)시간은 저마다 인식하고 있는 주관적, 심리적, 질적인 시간으로 나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 ● 우주 안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며 서서히 소멸해 간다. 인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의 방향성을 결코 거스를 수 없으며 생과 사를 포용한 채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고 있다. 태고부터 사람들은 멈출 수 없는 시간의 불가항력 앞에, 자신의 삶이 영원할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흔적들을 라스코 동굴벽화, 고구려 벽화로 남겨놓았다. 이 벽화들은 오래전 펼쳐졌던 그 시대의 삶의 모습과 생각을 현재와 이어주는 통로이자 증언으로써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 되고 있다. ● 화성 채석장은 축조 후 229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채석장 한 구석에는 고병호, 김익호 등 새기다 만 과거의 흔적들이 벽화처럼 누워 있다. 사진은 찰나의 사라질 순간을 박제시켜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주고 옛 기억들을 회상할 수 있게 하는 매체이다. 화성이 축조될 당시 카메라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 등 많은 것들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화성의 역사적 시간들에 내가 바라본 부재 속으로 망각되어질 현대인들의 모습들을 중첩시켜 사진 벽화로 만들어 유물처럼 보존된 시간으로 남기기 위해 카이로스 벽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최재란_카이로스벽화#123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23

카이로스 벽화 작업은 화성성벽, 채석장에 흐르는 역사적 시간에, 현대인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스치고 지나가는 한 순간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유구한 역사를 가진 화성에 흐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을 사유해 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업 방식은 성벽에 프로젝터로 비추듯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기 위해 백릿 필름에 인화하여 라이트 패널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10여년간 촬영한 화성 이미지 중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떼어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똑같은 한 방향으로 성벽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배치하여 인간이 성장 변화하며 매일 매일 분주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았다. 또한 채석장의 오래된 돌에 벽화를 새기듯이 이미 사라진 한 순간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중첩시켜 시간의 흐름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소멸을 사진 벽화로 표현하여 카이로스 시간으로 보존시켰다. 화성의 카이로스 벽화 속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몇 백년이 흐른 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어떤 모습, 어떤 기억으로 해석되어질까? 화성의 시간성 안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들 모습에서 우리 시대만의 고유한 문화와 시대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이번 작업을 통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에서 나는 카이로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유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시간성에 대한 사유를 다음 시리즈에서는 주변에 소멸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 최재란

Vol.20230930a | 최재란展 / CHOIJAERAN / 崔在蘭 / photography

2025/01/01-03/30